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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여름방학특강 2강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 2:1-10)2017-08-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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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제2강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말씀: 에베소서 2:1-10

요절: 에베소서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1강에서 우리는 신령한 복이 무엇이며 신령한 복에 대한 바울의 찬미를 공부했습니다. 우리도 항상 신령한 복을 간직하고 찬미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0절은 구원론 입니다. 본문에서는 인간이 구원 받기 전 상태가 어떠했는가 (1-3)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4-10)를 대조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에서도 구원론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로마서에서보다 더 압축되어 기록된 구원론 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는 그 방법론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깊게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들 (1-3)

1-3 에서는 인간의 죄악론에 말씀 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조건을 갖춘 에덴 동산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에서 만물을 지키고 다스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낙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 두려움과 죽음과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 허물과 죄 (1)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 상태가 어떠했다고 했습니까? 1절을 보십시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 말씀에서 허물과 죄가 어떤 뜻이 있는가 보겠습니다. “허물(transgression)”은 율법적인 과오 즉 도덕적인죄를 의미합니다. 율법이 생긴후에 율법을 이기거나 범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죄(sin)”는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실패를 의미합니다.불경건의 죄인  우상숭배의 죄을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의미는 도덕적인죄(허물)과 우상숭배의죄 때문에 심판를 받아 죽게 되었다는 뜻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었다는 뜻은 영원한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영혼이 하나님을 배반한 상태를 말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을 말합니다. (딤전 5:6)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딤전 5:6) 우리는 죽은 자로서 태어났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할 때까지 죽은 자로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도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5)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이곳  대학campus에 나가면 영적인 하나님의눈 으로 보면  걸어다니는 젊은해골들이 수두룩 합니다. 육신적으로는 멋잇고 건간하게 보이나 하나님께서 보실때에  죽은 시체들입니다.


(2) 세상풍속과 육체의 욕심을 쫓음 (2-3상)

그러면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은 무슨 지배를 받습니까?

 2절을 보겠읍니다 '너회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그들은 세상의 죄악된 유행과 풍속을 쫓고 사는 자들입니다. (2중)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풍조(ways of this world) 는 어떤풍조 입니까?   합리주의(rationalism) ,물질주의, 쾨락주의,postmodernism,의 혼합된 사상의 홍수가운데 살고 있읍니다 우리는 어런 세상풍조ㅇ의 누룩에 오염이 되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매일 영적인 투쟁을 해야 하겠읍니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라. (요일 2:15,16) 예수님을 좇지 아니한 자는 다 세상을 좇는 자 들입니다. 세상을 좇는 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생활은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을 따르는 생활입니다(2c). 꿈을 주는 마귀는 공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꿈의 정욕을 따르는 생활도 사단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을 열심히 따르는 생활을 하는 것은 곧 마귀를 따르는 생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마귀의 지배를 받는 생활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이 어떻게 인간을 유혹하였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그 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엇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창 3:5) 사단은 인간의 욕망 (desire)을 이용했습니다. 사단은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권능자가 되고 하나님과 같이 지혜가 있고 이제까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 왔으나 이제는 지배자가 된다는 욕심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선악과를 쳐다 보았더니 “먹음직도 하고 (육신의 욕망), 보암직도 하고 (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이생의 자랑)”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은 낙원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에 세상을 좇는 자들을 유혹하는 방법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한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게되면 사단의 지배를 받는 생활을 하게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대학생은 새벽에 밥을 해먹고 도서관에가서 공부를 합니다. 또 열심히 취식 시험을 위해 영어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고 밤늦게야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생활은 얼마나 성실합니까! 그러나 에베소서 말씀에 의하면 그도 세상을 좇고 사단의 지배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 본질상 진노의 자녀 (3하)

유대인도 이방인처럼 어떤 자들이라고 했습니까?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 (3하)” 이 말씀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날 때부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특히 사도 바울이 말하는 우리 즉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육신으로는 아브라함과 자손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서 육체의 소욕을 좇았습니다. 이것은 특히 사도 바울의 체험을 두고 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따라 산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7장을 볼 때 사실 그것은 자기 탐심 때문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II.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4-10)


 4-10에서는 구원론에대해 말씀 하고 계십니다. 

이상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허물과 죄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아담 아래있는 인간은 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성실히 노력을 해도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무엇으로든지 해결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분 만이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천지의 주제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죄와 허물로 도저히 살 소망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죄를 속하시고 새 생명을 주어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여 저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재미동포 김철수씨처럼 사형언도를 받아 도저히 살 소망이 없던 사람이 대통령의 특사를 받아 석방 되는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살리신 것만이 아니였습니다.


둘째로: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6)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처럼 신자는 그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고 또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것 같이 신자들도 함께 하늘에 않히신다고 했습니다. 이 일들은 우리가 미래에 갖게 될 축복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이미 완성된 확실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을 구원하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였습니다. 순수한 사랑에서 였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4)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자비로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죽은 자가 구원을 받아 다시 살아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승천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만 나타나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지속하므로서 장차 올 세상 곧 예수의 재림후의 세계에 까지도 이 은혜를 나타내려 함이었습니다. 원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경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 사랑이 자비에서 솟아났다는 것을 반복하여 제시 혹은 확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왜 하나님의 선물입니까?

 8절을 보십시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율법을 행함에 있는 것도 도를 명상하여 얻는 것도 아니고 수양을 쌓아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인간이 자기의 죄와 허물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임을 깨닫고 자기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편에서 온 은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구원의 약속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땅 위에서의 번영의 약속은 인간의 패괴와 죄악의 관영으로 홍수 속에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통한 축복의 약속 역시 인간이 울법을 범하므로서 저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롬 7:10). 이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가 아니고서는 인간은 구원의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인간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9). 왜냐하면 율법을 온전히 행위로서 지킴으로 구원을 얻지 못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무리 휼륭해도 근본적으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만 티가 있는 신자는 무엇인가 잘 못된 사람입니다. 에베소 말씀에 의거해서 볼 때 회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라고 말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영적인류를 창조하셨다는 것 입니다. 낡은 인류는 천지창조 여섯째날에 창조하셨습니다. 새 인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씀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순종으로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담안에서 육신의 소욕대로 살며 사탄의 똘만이가 되어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이 창조는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영적인 사귐이 있는 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은 이 새 창조에 의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POIEMA). 이 말씀에서 우리의 근원과 존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0하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일은 하나님에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 안에서 새 피조물로 창조한 목적은 선한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본래 살기가 등등하여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행 9:1-10) 자신이 주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후 부터는 온 힘을 다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한 일을 위해 온 생애를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말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썻습니다. ”그러나 너로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 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노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 이니” (딤후 4:5-8)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을 온전히 이루고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서 다른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그 고지만 올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나의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바람을 잡은 일 같고 피곤 하기만 했습니다. 또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도 자신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은데 왜 선한 일을 해야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이기 때문입니다(10a,롬11:36,)

 로마서11:36에서 주님은 말씀 하셨읍니다"이는 만물이주에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만물이 주하나님이 창조 하셔서 만물이 주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주 하님이 주관하시므로 우리는 주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 하다은 말씀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를 창조하시고(창1:27)  영적으로 중생시켜 영적인 창조도 하셨읍니다(고후5:17),

 둘쩨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를 받았기 때문입니다(10b) 

본래 죄로 인하여 부패하여 죽을 몸 이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써 그 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엡1:6).


세째로: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데 우리의 인생의 의미와 열매와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를 태초에 창조하시고 우리를 다시 주님을 떠나서 살 때에 허물과 죄로 죽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풍조를 쫓고 육신의 소욕을 쫓는 생활을 한 때 사탄의 종이 되어 괴롭기만 합니다. 인생의 참 의미와 열매도 없습니다. 참 기쁨과 행복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영혼의 갈급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사마리아 여인은 남편를 5명이나 바꾸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노력 했으나 실패하고 피곤한 인생길을 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1대1 말씀공부를 

통해서 예수님를 인격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요4:29) 그리고 나서  기쁨이 충만하여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마리아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전파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누린 복음의 기쁨을 자기마을 삼들에게 전파 함으로서 기쁨이 있고 열매가 있는 인생을 살수 있었 읍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결론적으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4-5) 본래 우리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 이었습니다. (1) 그러나 하나님의 그 큰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구원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신 선한사명을 마음을 다하여 감당 하여야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