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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7강 (계시록 7장)2017-03-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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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7강

7장은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교회는 재앙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을 메시지로 담고 있습니다. 뒤에 나팔 재앙을 살펴보면 거기서도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교회의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내용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교회는 재앙 속에서도 안전이 보장된 곳이며 재앙 속에서도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지키시며 인도하시는지 보겠습니다. 

1절. ‘이 일 후’란 앞의 6:17을 볼 때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러 아무도 그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그때입니다. 아무도 설 수 없는데 서서 찬송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먼저 요한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봤습니다. 그들이 선 것은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람은 심판의 바람이며 심판으로 말미암는 여러 재난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여섯째 인 후에 재앙이 일시적으로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외칩니다. 여기서 인이란 도장입니다. 왕의 도장은 어인이고 국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찍히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아무도 그것을 어길 수 없습니다. 어인이 찍히면 아무도 그것을 건드리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좌파 청년활동을 하다가 수감되었고 교수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는 사형이 내려지기 5분 전, 아무도 그 인생을 바꿀 수 없었던 순간에 왕의 직인이 찍힌 사형취소 통지서가 내려왔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기독교적이고 매우 깊이 있는 소설들을 쓰게 됩니다. 왕의 직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장이면 얼마나 그 효력이 막강하겠습니까? 

그 천사는 외칩니다. 3절.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기까지 재앙의 바람이 얼씬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세상을 삼키려는 세력도 멈추게 만듭니다. 그는 이 인으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을 이마에 찍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시 주인이 노예를 소유할 때 가장 잘 보이는 이마에 주인의 인을 찍었습니다. 이는 주인의 소유를 의미합니다.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유와 동시에 안전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주인의 소유이기에 다른 사람이 건드릴 수 없습니다. 네 천사가 세상의 바람을 잡고 아무도 꼼짝 못하도록 하고 있을 때 한 천사는 그들의 이마에 인을 찍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 너도 내 것이다. 너희는 내 안에 있다. 내가 지킨다” 이런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4절. 요한이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었는데 이스라엘 각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십사만 사천입니다. 계시록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 숫자 144,000이 등장합니다. 먼저 왜 144,000이 되었는지를 요한은 밝힙니다. 5-8절을 보면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하면서 이런 식으로 열 두 지파가 언급이 됩니다. 이것이 신천지에서 말하는 실제 숫자가 아님을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각 지파가 정확히 일만 이천 다 동일하게 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의도적으로 일만 이천이라고 계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8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기존의 서술 방법과 다른 몇 가지의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유다 지파를 가장 먼저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약에서 지파를 계수할 때 장자인 르우벤을 가장 먼저 기술합니다. 그런데 왜 4번째 지파인 유다 지파가 가장 앞에 나왔단 말입니까? 5:5에서 어린 양 예수님이 유다지파의 사자임을 언급했습니다. 메시아가 나온 지파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지파가 가지고 있는 혈통적 의미보다 상징적 의미를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7절에 보면 레위 지파가 계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는 레위 지파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업을 얻는 지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에 모든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는 지파입니다. 그런데 레위가 동일하게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다른 지파와 역할이 같아 졌다는 것이고 구약에서 했던 제사장으로서의 특별한 역할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봅니다. 

셋째는 에브라임과 단 지파가 보이지 않고 대신에 요셉 지파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는 요셉 대신에 그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언급되었습니다. 에브라임과 단이 사라진 것은 구약 역사 속에서 가장 우상숭배를 많이 한 지파이며 적그리스도가 나오는 지파로서 단이 취급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열 두 지파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상징적이고 영적 의미를 중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일만 이천이란 숫자는 실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44,000이란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12*12*1,000입니다. 첫 번째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 열둘은 새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도 열 두 명의 제자들을 세우심으로 그들이 열 두 지파의 신약적 의미를 완성한 세계 만민을 대표하는 자들임을 공고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1,000은 충족수를 나타냅니다. 곧 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이 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실수로 인을 맞지 못한 그의 백성이 한 명도 없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온전히 인을 받았음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144,000의 수에서 하나님의 완벽한 경륜을 보게 됩니다. 그의 구원역사는 실수가 없고 실패가 없고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제대로 돕지 못한다든지, 도울 좋은 기회를 날린 것으로 인해 후회하고 구원사역을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뜻 두신 자들은 정확히 인을 맞습니다. 세상이 그들을 넘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또한 이 숫자 카운트를 통해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구약에서 지파를 카운트 할 때엔 딱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투를 위해서였습니다. 민수기는 각 지파의 수를 계수한다는 뜻입니다. 왜 계수를 하냐하면 가나안 정복전쟁에 나갈 만한 자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수는 세금을 위해서도 아니고 전쟁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1,000이란 숫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기본적인 군사조직의 단위입니다. 그러므로 144,000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싸움에 나가는 군사들이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이긴 자들의 교회, 곧 승리한 교회이면서 동시에 전투하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144,000이 신천지에서 말하는 과천성전에 모이는 그들만의 신자 144,000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9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도 증명이 됩니다. 9절에 나오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앞에서 언급한 144,000을 가리킵니다. 144,000이 실제적 숫자라면 왜 여기선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의미가 그렇게 많고 충만하다는 것이지 구체적인 숫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었습니다. 앞에서도 자주 등장했지만 흰 옷은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이긴 자들입니다. 그들은 손에 종려 가지를 들었습니다. 이것도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외치는 말이 무엇입니까? 10절.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들은 구원의 도장을 받았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어린 양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 소리에 모든 천사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를 합니다. 12절 처음에 ‘아멘’은 ‘진실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절. 장로 중 하나가 나서서 말을 합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이는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닙니다. 질문도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대답을 하면서 답을 알려주는 대화의 한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서 그는 답을 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자들입니다. 큰 환난은 평범한 재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의 때에 일어나는 사람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용광로 환난입니다. 거기서 살아 나온 자들입니다.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까?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화재가 났을 때 큰 이불에 물을 적셔서 그것을 뒤집어쓰고 빠져나오면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합니다. 큰 환난은 돈으로 스펙으로 인맥으로 어떤 능력이나 노력으로도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를 옷에 흠뻑 묻혀야 살아나올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이긴 자들이며 승리한 자들입니다. 종말에 벌어지는 전투를 교회는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어린 양의 피에 매순간 옷을 씻어야 합니다. 2,3장에서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에 내 죄를 씻은 자만이 종말의 때에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옷을 씻은 자들을 어떻게 대해주십니까? 15절.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 옛날 사가랴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의와 성결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는데 그 일이 성취되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십니다. 장막을 치신다는 것은 마치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차양을 치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그늘이 되어 주시고 보호자가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습니다.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데 상하지도 않습니다.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십니다. 이는 가장 마지막인 21,22장 가서 더 구체적으로 나올 내용입니다. 

이상을 통해서 볼 때 계시록 7장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 맞은 자들이 모인 교회를 지키시고 그 교회는 여전히 승리하는 교회요 전투하는 교회의 직분을 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환난이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지만 환난은 나를 털 끝 하나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붙잡으시고 인을 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 삼아주셨습니다. 나 혼자 이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각 나라와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 중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은 목자가 되어 주시고 생명수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으며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