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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10강 (계시록 10장)2017-03-14 08: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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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0강

본문은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11:12절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는 앞 7장에서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서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은 144,000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의 내용이 교회의 보존과 승리에 관련된 메시지라면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내용은 교회의 사명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앞에서도 몇 번 얘기했지만 우리는 승리한 교회이면서도 동시에 아직도 싸우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절. 힘 센 다른 천사가 보입니다.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습니다. 언뜻 1장에서 묘사한 예수님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예수님을 천사로 표현한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문맥 속에서 예수님은 죽임 당한 어린 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5장에서도 두루마리를 언급할 때 힘 있는 천사가 등장하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절. 그의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가 있고 그의 오른 발은 바다를 밟았고 왼 발은 땅을 밟았다고 말합니다. 5장에서 인봉을 떼어야 하는 두루마리를 원어로 ‘비블리온’이라 하고, 여기서의 작은 두루마리는 ‘비블라리디온’이라고 합니다. 어근이 ‘비블’인데 여기서 ‘바이블’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두루마리가 5장의 두루마리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내용은 동일한 연결선상에 있을 것입니다. 천사가 이 책을 들고 양 발로 바다와 땅을 밟았다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이 온 세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절대적인 내용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3,4절. 그는 사자처럼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받아서 말을 합니다. 그 말을 요한이 기록하려고 하자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은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는 하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적인 흐름이 인봉된 것이 열리는 과정입니다. 종말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 감출 것이 있단 말입니까? 또 뒤에는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것에 관해 예언하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드러내어 전달하는 것인데 아직도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인봉하라고 한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인봉하라고 하셨으니 그것을 구태여 열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삼층 천을 갔다 왔으나 그곳에 관해 말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종말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없고 또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봉을 해제하시고 계시해주시는 것들에 관해서만 알 수 있고 또 말할 수 있습니다. 애매한 것은 애매하게 놔두어야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가령 악의 기원을 알 수 없습니다. 왜 선하신 하나님에게서 악이 나왔는지 어떤 논리와 철학을 동원해도 알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참 애매합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도 가물가물합니다. 우리는 지금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히려 억지로 풀려다가 시험에 듭니다. 신구약을 짝 맞추듯이 맞추어 명쾌하게 해석하여 시원하게 해주는 곳이 오히려 이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6절. 바다와 땅을 밟고 선 그 힘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해 오른 손을 들고 맹세를 합니다. 그가 맹세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세토록 살아 계시며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입니다. 영원자시요, 창조자이십니다. 그가 만들고 계획한 일은 그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그 천사는 ‘지체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향한 심판의 유예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회개하고 돌이킬 시간도 촉박하다는 것입니다. 지체한 것으로 보인 것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향해 참으셨기 때문이지 무능력하거나 공의롭지 못해서가 아니십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크고 작은 심판들을 수 없이 행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아 시대에 있었던 홍수 심판입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유황불로 철퇴를 가하셨습니다. 애굽의 교만에 대해서는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심판이 있었습니다. 우상숭배를 조장했던 아합과 이세벨이 당한 심판은 확실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 만민을 향한 최후의 심판은 아직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그 심판은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 있느냐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대로 있다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성도들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이 자기들이 살아있는 당대에 오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0년이 더 흘러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심판은 없다”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심판이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심판이 없으면 구원도 없고, 구원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없고, 그리스도가 안 계시면 기독교는 존재의미를 잃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7절. 일곱 번째 나팔이 불 때엔 하나님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힘 있는 천사가 가지고 있는 그 두루마리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며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기록된 책입니다. 이것이 이제는 온 세상에 들려져야 하고 알려져야 합니다. 요한이 환상을 보기 700년 전에 살던 선지자인 다니엘도 하나님이 주시는 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종말까지 이 책을 잘 간수하고 봉함하도록 명령을 받았지 결코 열어서 전달하라고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5장에서 본 것처럼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서 죽으심으로 인이 떼어지고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요한의 사명은 그 책을 봉함하는 것이 아니라 열어서 전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되어져야 하는 일은 복음과 그 하나님의 비밀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세를 이야기하시면서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셨습니다. 종말과 복음전파는 같이 가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태초부터 작정하신 계획이며 다니엘을 통해서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계시와 예언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며 우리를 대표해서 그 앞에 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는 명령이 무엇입니까? 8절.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나님의 비밀이 적히고 종말에 이루어질 일들과 복음이 적힌 그 책을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나아가서 달라고 하니 천사가 무슨 말을 합니까? 9절. “갖다 먹어 버리라” 가져다가 가장 잘 보이는 책꽂이 중앙에 꽂으라고 하지 않고 먹어 버리라고 합니다. 먹어 버리라는 것은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남김이 없이 다 먹어치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부담스럽든 아니든 먹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염소가 종이를 먹듯이 책을 먹으라는 말입니까? 예전에 영어 단어가 외워지지 않으면 단어장을 씹어서 먹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삶의 현장에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천사는 그 책이 ‘네 배에는 쓰지만 네 입에는 꿀 같이 달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순종을 합니다. 10절.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먹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입에는 꿀 같이 단데 배에서는 매우 썼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입에서 정말 답니다. 다윗도 말씀이 얼마나 단지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하나님의 말씀, 복음과 계시의 그 말씀들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영혼의 양식과 힘과 위로와 비전이 됩니다. 그것을 읊조리면 매우 단내가 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인류에게 임할 심판과 구원에 관한 복음을 말합니다. 그 말씀 자체는 참 좋지만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말씀 앞에서의 사람들의 반응도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개하기보다 대적을 합니다. 그래서 실제 생활에서는 쓴 맛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말씀은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쓴 법입니다. 증인의 삶은 누구보다 깊은 단 맛도 보고 쓴 맛도 보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이 모습은 겔 2,3장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도록 하셨고 에스겔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책을 다 먹어치운 요한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1절.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말씀을 저장한 요한이 결국 할 일은 예언하는 일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장했다가 적절한 하나님의 때에 드러내어 전달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교회를 대표합니다. 교회는 많은 나라와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어 전달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말의 때에 힘써야 할 교회의 사명입니다. 11장은 이 예언의 일을 두 증인으로 상징된 교회가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예언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에서 쓴 것입니다. 특히나 ‘다시 예언’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달콤한 말씀을 매우 쓰게 만듭니다. 사도 요한은 그 동안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로마 제국주의에 의해서 섬기던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양들은 정처없는 나그네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요한과 교회가 바라보는 로마 제국은 거대한 골리앗이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로마를 향하여 다시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다시 전하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힘을 비축하고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핍박이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형편을 아는지 모른지 다시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다시 예언하다가 순교당하는 일이 11장에서 벌어지거든요. 이런 하나님을 생각하면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배가 쓰린 것입니다.

  이런 일을 이미 겪었던 사람이 요나입니다. 민족의 원수인 니느웨 성읍에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을 보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지만 결국 딱 잡혀서 다시 예언을 하게 됩니다. 배가 몹시 쓰렸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때에 재앙을 내리시지만 한편으로는 또한 그의 사랑의 마음을 안고 다시 예언하는 종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제 최종적인 구원과 심판은 하나님이 작정하신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을 대표로 해서 그와 함께 부름을 받은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와서 구원과 심판의 복음을 먹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쓴 것이 목자의 삶임을 영접하고 이 종말의 날에 이 길을 열심히 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