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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18강 (계시록 18장)2017-03-14 08: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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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8강

18장은 바벨론의 멸망과 이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7장에서 바벨론은 음녀로 묘사되었고 짐승을 힘입어 교회를 대적하다가 갑자기 망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 중에서 멸망과 그 결과를 좀 더 집중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18장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힘찬 음성으로 외치는 바가 무엇입니까? 2절.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그렇게 무너질 줄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15년 전 뉴욕의 트윈타워가 여객기와 충돌 직후 1시간 만에 그렇게 빨리 무너져 내릴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9.11테러 나기 한 달 전에 동역자들과 함께 그 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고 옥상에서 사진을 찍었었습니다. 이게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현실이 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의 부와 힘의 상징이었던 그 빌딩이 무너지고 이와 함께 오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일이 말세에는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음녀 바벨론이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바벨론은 뒤에도 나오지만 많은 상인들이 모이고 부가 축적되며 강력한 권세를 발휘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귀신과 각종 더러운 영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더러운 귀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근원지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부러워하던 제자들에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외모와 달리 죄로 썩어문드러진 그 속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벨론이 무너질 것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화려한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속이 더러우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3절. 그 음행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음행의 포도주를 즐길 때는 좋았습니다. 함께 흥청망청 즐길 때는 좋았지만 그것이 올무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면서 그를 추종하며 빌붙어 살던 만국도 함께 무너집니다. 바벨론과 더불어 음행하던 땅의 왕들, 바벨론과 더불어 사치하며 치부하던 땅의 상인들도 다 무너집니다. 마치 한 대기업이 무너지면 그 기업에 붙어서 먹고 살던 중소기업들이 연쇄부도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미국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못살던 공산주의 국가에서 20년 만에 G2가 된 중국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석유를 생산하는 국가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삼성이나 애플같은 기업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물질주의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 야합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4절. 요한이 하늘로부터 나는 다른 음성을 듣는데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백성’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일진들과 어울려 아이들 돈을 뺏고 못된 짓을 일삼는 것을 본 어머니가 말을 합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그러지 말고 어서 나와! 안 나오면 인생 망쳐!” 라고 소리칩니다. 지금 화려하고 지금 즐겁기 때문에 닥칠 재앙을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영혼을 고통을 받으며 살던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거기서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꾸무럭거리니 손을 붙잡고 끌어내셨습니다. 그런 중에 소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를 돌아보던 그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망성에 살던 크리스천은 책을 읽던 중에 ‘거기서 나오라’는 음성을 듣고 천성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에서 살 수 없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늘 부대끼면서 하루도 편히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죄에 더 이상 참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의 화려함에 속지 말고 그 속의 부패를 직시하고 하루라도 빨리 온전히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합니다. 

5절.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십니다. 16:19에서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움도 기억하시지만 불의함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준다고 6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공의에 기초해서 보응하십니다. 바벨론의 불의함이 어떠했습니까?

7절. 그의 첫 번째 죄악은 자기를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영광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람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 도리인데 그는 자기만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업신여기고 하나님 위에 자신의 영광을 두려다가 형벌을 받고 세상으로 내어 쫓긴 존재입니다. 두 번째는 사치를 한 것입니다. 자기영광을 추구하면 자기를 영화롭게 꾸미는 일에 몰두하게 됨으로 사치와 연결됩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명품 구입에 아낌없이 물질을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한대로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라고 하십니다. 자기영광을 위해 산만큼 고통을 받을 것이고 사치하며 허영과 화려함을 즐긴 만큼 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우리가 느끼는 진리입니다. 우리 안에 자기영광의 죄문제가 있는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자기영광이 비어지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만큼 마음이 행복합니다. 허영심으로 사치스럽게 사는 것만큼 후회하고 남는 게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여왕이다, 난 공주다’ 하면서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도 그런 일을 당할 것입니다. 
8절. 그런 일을 하루 동안에 다 당할 수도 있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는데 몇 년 몇 개월이 걸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셈이 나오지 않는 방식대로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한 번에 하루 만에 무너집니다. 우리는 미국도 중국도, 북한도 어떤 세력도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하루 동안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그 어떤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니 바벨론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9절. 그와 함께 음행하며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울며 가슴을 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음행의 포도주를 같이 하며 희희낙락하던 그들이 울고 가슴을 칩니다. 또한 그의 고통을 자기도 당할 것을 예감하면서 무서워합니다. 멀리 서서 이르기를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합니다. 수백 년에 걸쳐 세워진 그 영화가 한 시간 만에 무너졌습니다. 실로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경영은 허사로 돌아갑니다. 

11절. 그로 말미암아 먹고 살던 상인들도 울고 애통해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13장에서 짐승의 표를 받고 활발히 매매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그 표를 받을 수 없어서 경제적 제재를 받던 신자들을 조롱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젠 그들이 조롱을 당하는 처지가 됩니다. 그들이 이렇게 울며 애통해하는 것은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팔아야 하는데 무너지니 시장을 잃은 것이고 수요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과 각종 향목과 상아그릇과 값진 나무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수요와 공급의 탄력성이 큰 물품들입니다.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제품들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정말 값진 물품들입니다. 그러나 말세의 때가 되면 더 이상 프리미엄이 붙는 상품들이 아닙니다. 그것들로 생명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그 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져질 것들입니다. 

물론 13절을 보면 식생활에 필요한 물품들도 그들이 주거래 고객인데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는 사람들도 노예로 팔았습니다. 돈만 된다면 뭐든지 팔던 무자비하고 실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스피릿을 가진 사람들이 장사를 잘 하고 돈을 잘 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울며 애통할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바벨론의 영화를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17절. 울며 애통해 하는 사람들은 상인들만 아닙니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일하는 자들도 울며 애통해 합니다. 그 불타는 연기를 보며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며 이전을 그리워하지만 이미 다 끝난 게임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공통된 외침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멸망은 성도들에겐 기쁨이 됩니다. 20절.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바다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무거운 돌일수록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 바다에 던져지면 결코 다시 떠오를 수 없습니다. 죄악으로 쌓은 문명이 무겁고 견고해지지만 한 번 하나님이 들어 던지시면 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22절.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하며 퉁소를 불고 나팔을 부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풍요와 사치 속에 풍류를 즐기던 바벨론이 사라졌으니 그 악기 소리도 당연히 그칠 것입니다. 사치품을 사는 사람이 없으니 세공업자도 사라질 것이고 식량을 사 주는 사람도 사라졌으니 맷돌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밤을 새며 야간 교대 근무를 할 정도로 경기가 활황도 아니니 등불 빛도 사라질 것이고 경기불황으로 결혼은 하기 힘드니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들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24절. 바벨론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의를 외치던 그들을 죽였고 죽임을 당한 모든 자들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피 값을 갚으십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에 집중하도록 해줍니다. 첫째는 바벨론의 갑작스런 무너짐입니다. 그 영광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8절에 ‘하루 동안(In one day)’에 그 재앙이 이르렀다고 말씀했고 10절에서 ‘한 시간(In one hour)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고’고 했습니다. 17절에서도 ‘한 시간에’, 19절에서도 ‘한 시간에’입니다. 바벨론도 ‘한 시간’에 끝장이 난다면 어떤 인생이, 어떤 민족의 역사가 단 몇 초 만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둘째는 ‘결코 다시’입니다. 21-23절 사이에서 6번이나 반복되는 말씀이 ‘결코 다시’입니다. 의인의 특징은 여섯 번 넘어져도 일곱 번 일어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가망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심판의 바다에 던지시면 결코 다시 떠오를 수 없습니다. “Never, never!” “No more, no more!” 말세가 될수록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바벨론과 같은 자기영화와 사치를 추구하는 인생이 되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그 인생이 가장 견고하고 영원한 것처럼 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시간에 무너질 것이고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속히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