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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호세아 특공대 2강 (호세아 4:1-6:3)2017-03-14 08: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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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호세아 특공대 2강

아침빛 같으신 하나님


말씀 / 호세아 4:1-6:3
요절 /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1강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임을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남편을 버리고 사랑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를 좇아갔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참남편으로서 그들을 다시 받아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주 남편인 하나님을 떠나 거짓 남편인 우상에게로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하는 참 남편이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치시고 고난을 통해서라도 돌이키고자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마음이 일정하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4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논쟁을 하면서까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해주고 싶으십니다. 그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습니다. 진실은 변하지 않는 마음인데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애는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인데 그런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알처럼 내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면 하나님으로 영접했다가 별 유익이 없으면 그런 남편을 걷어차고 다른 남자를 좇아가는 것처럼 그들에게 하나님은 부적이나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분에 불과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수많은 우상들 중의 하나와 같은 분인가? 그들은 창조주이시며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면 남편은 아내를 알아가야 하고 아내도 남편을 알아가야 합니다. 아 내 남편은 생선을 싫어하는구나, 내 아내는 돌려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뭐 알아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가 깊어지는 법입니다. 결혼한지 10,20년이 넘어가는데도 남편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면 심각한 것입니다. 예전에 지금 인디에나폴리스를 개척하는 김다윗 선교사가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었는데 부인 한쪽 귀가 안 들리는 것을 몰랐던 것을 회개하는 소감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과 신뢰는 상대방을 서로 더 깊이 알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더 이해하고 참고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공의와 정의와 은혜와 긍휼로 장가들어 오신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 그들은 밥 먹듯이 십계명을 어겼습니다.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율법에 나타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핵심인 십계명을 잘 이해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까이에 두지 않으니 자신들의 죄악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인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하는 것이 입만 아플 뿐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고 책망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네 잘못이냐, 네가 그렇게 하니 이런 일이 벌어졌지" 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만합니다. 어느 정도로 교만하느냐 하면 제사장과 다투는 자가 될 정도로 교만합니다. 제사장은 영적인 웃어른입니다. 그러면 그 앞에서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과 다툴 정도로 매우 교만했습니다. 이렇게 교만하니 안하무인이 되어 어떤 말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으로 말미암아 통곡하십니다. 6절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이 자유로움이고 가벼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곧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것입니다. 국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허약한 정치지도자를 만나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뱀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신들을 불편하게 생각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했던 것입니다. 특히 이 지식은 백성 중에서도 제사장들이 가져야 했으나 그들에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을 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의 지식을 알게 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곁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고 네 자녀들도 잊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지식을 외면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 어디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까? 8절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제물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제물은 백성들이 죄를 지어야 가져오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죄 문제를 감당해주는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백성들이 죄를 더 짓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마치 병원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해주면서도 장사가 잘 되려면 그들이 또 병에 걸려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밥벌이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고 자신들의 현실적인 유익만을 추구하는 바에 있어서는 백성이나 제사장이 일반이었습니다. 누가 더 낫고 더 못나고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마음을 두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11절을 보면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포도주와 같은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육류를 먹을 때는 레드 와인을 찾고, 생선을 먹을 때는 화이트 와인을 찾습니다. 그런데 포도주에 이끌리면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중독이 되어버립니다. 우상숭배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포도주처럼 매력이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음행이 있습니다. 음행을 부추기고 음란한 마음을 채우도록 만듭니다. 12절에서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고한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무당이나 점장이나 각종 이단에 미혹되는 것을 제 3자가 볼 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그들만의 포도주와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정명석의 JMS는 미녀군단이라 불릴 만큼 외모가 빼어난 이대생들이 8,90년대에 많았습니다. 신천지에도 예쁜 자매들이 많지만 성경의 난제와 난해한 구절들을 이원론적으로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것처럼 강의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신앙의 막힌 곳을 뚫어주고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기에 판단력을 상실하고 끌려들어갑니다.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상숭배에는 반드시 성적 방종이 뒤따랐습니다.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들과 남자들은 관계를 맺었고 결혼을 앞둔 여자들도 사제들과 첫날밤을 치렀습니다. 12절 하반절을 보면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라고 합니다. 음란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음란을 버려야 하고 육신의 소욕을 극복하는 쪽입니다. 그러므로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룩해지기는 어려워도 타락하는 것은 쉽습니다. 우상숭배는 그 쉬운 쪽으로 교리가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빠져들어갑니다. 나라의 모든 산 꼭대기와 작은 산 위와 참나무 버드나무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다들 간음을 행하였습니다. 딸들도 며느리들도 간음하고 남자들도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립니다. 이렇게 깨닫지 못하고 음란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보면 그들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다고 하십니다. 고집이 너무 세어서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소의 코뚜레를 잡아 이끌어 보신 분은 알겠지만 한번 소가 고집을 부리면 제 아무리 힘을 줘도 끌려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부드럽게 먹이시겠느냐고 하십니다. 17절을 보면 우상과 연합하고 그렇게 우상을 남편처럼 좋아하니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싫어하고 우상과 연합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니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으신 것 같습니다. 18절을 보면 그들은 마시고 음행하는 그 부끄러운 일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된통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도 막지 못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바람이 싸여서 앗수르로 날려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마지막은 앗수르에 의한 멸망뿐입니다. 

5장은 이스라엘의 죄, 특히 제사장들의 죄를 더 다루면서 그들이 왜 하나님에게 돌아가기를 힘들어하는지 다시 한 번 말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눅 15장의 둘째아들처럼 하나님에게 돌아가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죄를 지을수록 더 돌아가기 힘든 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술을 한 잔 두 잔 더 마시면 중독이 깊어지고 중독이 깊어질수록 원래대로 건강을 회복하기 힘든 것과 같습니다. 죄의 맛을 깊이 보기 전에 거기서 빠져나오기 쉬운 것이지 죄의 맛을 깊이 보면 볼수록 그 구덩이는 더 깊어져 빠져나오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맞습니다. 깊이 빠져들어간 이유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 마음이 여호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다 빼앗아 갑니다. 이는 롬 8장과 갈 5장에서 성령과 육신의 소욕이 서로 부딪히는데 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는 1강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우상이 여호와보다 더 많은 것을 주는 남편같아서 우상숭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음란한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포도주와 같은 매력이 있어서 빠져듭니다. 그러다보면 중독이 되어서 너무 깊이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우상숭배에 중독이 된 영적 환자입니다. 

그러면 겸손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매우 교만합니다. 그래서 형제국가인 유다도 넘어지게 만듭니다. 실제 아합왕의 아내였던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는 남유다로 시집와서 수 많은 왕들을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처럼 200년 후에 멸망을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양떼와 소떼를 이끌고 와서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나님이 만나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떠나셨다고 6절은 말합니다. 그들은 남편되신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않고 우상과 바람을 피워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죄악의 열매만을 맺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다도 이스라엘로 인해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10절에서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다고 말씀합니다. 경계표는 지파 사이의 영역을 표시하는 푯말입니다. 이것을 옮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을 우습게 여기고 형제 국가인 이스라엘을 업신여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우상숭배의 죄로 고통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땅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당하는 중에 있는 형제를 보고 우습게 여겨선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가 물같이 내 위에 부어질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일이 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의지한 그 나라에게 오히려 약점을 잡히고 학대를 당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나무가 좀이 먹으면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속으로 다 부스러져서 곧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썩이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마치 뼈가 썩으면 겉으론 이상이 없어보여도 속으로는 골다공증에 걸려 곧 부러지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순식간에 그 나라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무너질 것을 말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에브라임과 유다는 깨닫습니다.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다고 말하십니다. 깨달았으면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갔다고 하십니다. 앗수르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앗수르를 하나님처럼 의지했습니다. 이것도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근본 문제, 본질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현상만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지금 힘들고 훈련을 받고 있고 내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병 중에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여 생긴 것인줄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앗수르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는 능히 고치지 못하고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현실 파악도 못할만큼 어리석은 자로 있다가 현실 상황을 파악하는 좀 나은 사람으로 바뀌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를 아는 지식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좀 먹은 자처럼 썩은 자처럼 힘든 이유는 하나님이 사자처럼 움켜쥐시고 놓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몰랐으니 그들은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제 작은 결단을 하십니다. 15절을 보면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찾을 것을 소망하시며 그때까지 그들을 버려두고자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이 알았는지 6장 1-3절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문맥을 살펴보면 이 고백은 결코 진심에서 우러나온 고백은 아닙니다. 머리에서 나온 외침입니다. 우리가 소감을 통해 회개하고 고백하는 것이 이런 립서비스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말 자체는 옳고 하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돌아가면 하나님이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삼일 후에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버리는 행위 없이 이 엄청난 말들이 그렇게 쉽게 나온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고백이기가 쉽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올바로 그리고 깊이 아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여인인 룻이나 라합보다도 모른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신 분입니다. 어김없이 그 빛을 비추시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남편되신 하나님을 향해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들이 우상숭배로 스스로 떠난 것이 문제지 언제든지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들을 받아주십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고 딤후2;3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으로 부르셨으면 영원토록 함께 하고자 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시면서 늦은 비처럼 우리에게 합당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결론입니다. 이스라엘은 위로 제사장서부터 아래로 평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음란한 마음, 육신의 소욕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방해하며 우상숭배의 매력에 중독되어 빠져나오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여러 환란과 고통으로 현상은 깨달으면서도 본질은 잘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참으시고 더 많은 고난을 통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에 어김없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고자 하십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압니까? 음란함과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나의 면전에서 스스로 쫓아내고 버려둠을 당하고 있진 않습니까? 나의 육신의 강한 욕망과 완강한 고집센 마음으로 스스로도 고통하며 옆의 형제도 힘들게 하는 일을 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함으로서 새벽 빛처럼 신실하게 나를 생명의 빛으로 비추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새벽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