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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호세아 특공대 4강 (호세아 9,10장)2017-03-14 08: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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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호세아 특공대 4강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말씀 / 호세아 9,10장
요절 / 호세아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십니다. 땅을 없애고 그곳에 집을 지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아직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묵혀둔 땅은 기경하긴 쉽지 않지만 원래 좋은 땅이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땅입니다. 우리가 왜 묵은 땅이 되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기경하는 것인지 깨닫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기뻐 뛰놀 때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형벌의 날, 보응의 날이 이르렀는데도 그들은 이를 모르고 뛰놀고 있습니다. 뛰노는 이유를 하반절에서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다’고 표현합니다. 타작마당이란 곡식을 수확하고 결산하는 자리인데 자신들이 음행을 하여서 이런 수확을 얻게 되었다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음행은 곧 우상숭배와 음란한 삶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하게 행할수록 수확하는 것은 더 많이 생긴다며 기뻐 뛰논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런 그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호세아는 그들 보기에 어리석고 미친 선지자입니다. 7절을 보면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은 알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호세아는 어리석고 미친 선지자입니다. 호세아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자신이 어리석고 미쳤는데, 왜 자신이 어리석고 미친 사람처럼 되어서 그들을 닦달하는지 그 이유가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문제를 ‘죄악이 많고 원한이 큰’ 문제로 봅니다. 9절을 보면 또한 이 죄를 ‘기브아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 죄라고 말합니다. 

기브아의 시대의 죄가 무엇일까요? 사사기 19,20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한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한 여자를 첩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행음을 하고 친정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는 첩을 다시 데려오려고 장인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첩을 데리고 오는데 날이 저물자 하인이 가까운 여부스 마을로 들어가 숙박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이 여부스는 이방인의 땅이니 들어가지 말고 동족인 베냐민 지파 속에 있는 기브아 동네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한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손님으로 맞이해 들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동네 불량배들이 지금 들어온 여행자들을 끌어내라며 특히 레위인을 상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자기 딸들을 줄 테니 이 망령된 일을 그치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자기 첩을 끌어내어 제물처럼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밤새도록 그를 능욕하고 관계하다가 버렸습니다. 레위인은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문을 열어보니 첩이 문 앞에 엎드려져있는데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레위인은 그 시체를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와 시체를 12개로 토막을 내어 12지파에 보냈습니다. 이 시체를 본 온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올라온 이래로 이런 죄악을 본 일이 없다며 총회를 열어 기브아 거민들을 징계할 것을 결의하고 베냐민에게 그들을 보내라고 통보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자기의 동족인 기브아 사람들을 보낼 수 없다고 하자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이스라엘의 전면전이 일어났습니다. 몇 차에 걸쳐 싸움이 벌어졌는데 처음엔 베냐민이 이겨 이스라엘 4만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나중엔 이스라엘이 베냐민의 씨를 말리게 되었는데 2만 5천, 만 8천, 2만 오천 명 등이 계속 죽어나갔고 부녀자와 아이와 가축과 만나는 것마다 닥치는 대로 죽어나갔습니다. 동족간의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겪은 후에야 이스라엘은 정신이 조금 돌아와 열 두 지파 중의 한 지파인 베냐민 형제 지파를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며 이제는 처녀들을 보쌈해서 그들에게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이며 기브아 시대의 심히 부패한 죄입니다. 

누가 잘못한 것입니까? 누구 죄 때문입니까? 다시 호세아 본문으로 돌아가면 7절과 8절에 원한이 크고 하나님의 전에도 원한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 원한이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원한은 내가 어떤 특정한 사람 때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기에 그것을 풀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게 하는 마음, 그것이 곧 원한입니다. 첩을 졸지에 잃은 레위인은 기브아 불량배들을 향한 원한을 삭일 수가 없어서 첩의 몸을 열 두 토막을 내어 전 이스라엘에 보냈고 이 불의한 놈들을 일망타진하길 바랐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중의 한 형제인 베냐민 일가가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기브아를 감싸며 전쟁을 벌여 동족을 죽이니 원한이 생겨 베냐민의 씨를 말리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원한으로 수십만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러면 원한을 품도록 문제를 만든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가장 잘못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제사장인 레위인이 율법에 어긋난 첩을 두는 것은 죄가 아닙니까? 그가 음행을 하고 친정으로 도망가게 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까? 불량배들이 막무가내로 나올 때 자기 살자고 첩을 내어준 것은 죄가 아닙니까? 왜 자기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원한만 생각합니까? 7절 하반절을 다시 보면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입니다. 원한이 크지만 원한에 앞서 죄악이 많은 것입니다. 내 죄는 생각을 안 하고 내가 입은 상처로 인한 원한만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싸웠습니다. 이것이 호세아 선지자가 살아가던 그 시대의 죄악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악을 잊지 않으시며 반드시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실 것이라고 9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셨습니까? 광야에서 포도를 만난 것처럼, 무화과나무의 처음 맺힌 열매처럼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몸을 드렸습니다. 그들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고 낳게 되는 자식은 살인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자식을 못 낳아도 문제요 낳아도 문제입니다. 누가 이런 처참함을 만들어주었습니까? 그들이 자초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그들을 버리려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 스스로 나를 내버려달라고 했습니다. 

10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입니다. 나무 중에는 가시나무도 있고 엉겅퀴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장 값비싼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나무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나무들이 많은데 그들은 일방적으로 포도나무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열매 맺는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고 주상을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잘 될수록 우상숭배가 심해졌다는 말입니다. 이를 볼 때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게 많고 하는 일마다 번영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별 어려움이나 손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생활이 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에게 좋은 소출만을 안겨주던 밭이랑에서 독초가 돋아나 독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믿었던 벧아웬의 송아지, 곧 바알신으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입니다.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질 것이고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고 섬기던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고 그들은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의지하던 우상이 결국 그들의 삶을 수치스럽고 슬퍼하게 만들 날이 올 것이란 말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하나님은 한탄하십니다. 9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기브아 시대의 죄가 지금도 똑같이 연출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의 전쟁과 같은 전쟁이 이 시대에도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만민이 모여 그들을 칠 것입니다. 그들은 암소처럼 멍에를 메우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우고 흙덩이를 깨트리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장차 앗수르로 끌려가 노예처럼 살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2절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십니다. 묵은 땅은 황무지가 아닙니다. 못 쓰는 땅이 아닙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 땅입니다. 단지 오랫동안 갈지 않고 묵혀 두어서 지금 열매 맺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열매 맺지 못할 땅이라고 하지 않고 묵은 땅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에게 아직 소망이 있고 그들을 통해 열매 맺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여전함을 보여줍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려면 위에서만 호미질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곡괭이를 가지고 와서 깊숙이 내리치고 땅이 갈라지고 홈이 파이면 대삽으로 깊이 퍼내어 뒤집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는 데 있어서 외적인 것만, 눈에 보이는 것만 살살 해서는 안 됩니다. 땅 깊숙이 삽을 쑤셔 넣듯이 심령 깊숙한 곳으로 말씀의 거울을 비추고 그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종양의 뿌리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은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인식하고 동의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왜 그들이 좋은 땅이 묵은 땅이 되도록 놔뒀을까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애굽이 있고 아람이 있고 앗수르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든든한 우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은 이유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가는 길을 믿었고 그 국방력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믿을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믿는 구석이 많을수록 그들의 마음 밭은 딱딱해지고 묵은 땅이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믿는 것들을 하나하나 거두어 가십니다. 믿는 것들이 바닥이 나야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고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정말 겸손한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번영하고 잘 나갈수록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정함이 없는 아침 이슬과 같은 존재임을 압니다.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것이 마음 밭이 묵혀지지 않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할 일이 무엇입니까?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겐 삶이 기준과 원칙이 없었습니다. 또 인애도 없었습니다. 기브아 시대의 죄악은 공의와 인애가 없는 그들의 총체적인 부패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공의가 없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레위인이 자기 원한을 풀려고 하기 전에 첩을 얻고 첩을 행음하게 하고 자기 살려고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 준 그 죄악을 먼저 돌아보고 회개해야 마땅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문제의 뿌리가 되는 내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 죄악이 많습니다. 그것이 땅을 묵은 땅이 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상처와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원한을 풀 길에 대해서만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원한을 푸는데 원한을 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상처를 안겨주는 일을 하고 맙니다. 마치 레위인이 자기 원한을 풀려다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 힘들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내 죄를 돌아보지 않고 원한을 풀려고 하다가 발생하는 이 죄, 그렇게 하면 두 가지 죄에 걸리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죄악을 언제나 범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묵은 땅을 기경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공의가 비처럼 우리에게 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신 것은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이 회개할 때요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내 삶에 공의와 인애가 없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이 없이 죄를 짓고서는 오히려 피해자라며 원한만을 품고 그것을 갚아주고자 했던 그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되지 않고 계속 쌓이면 묵은 땅이 될 것이고 언제 버려질지 모릅니다. 호세아서는 그래도 희망을 노래했지만 예레미야서에 오면 이런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믿던 것들을 걷어 가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지금이 그래도 좋은 때입니다. 두 가지 죄로 묵은 땅이 되어버린 우리의 심령을 갈아엎고 비처럼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