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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9강 (계시록 9장)2017-03-14 08: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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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9강

9장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나팔재앙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 재앙처럼 여섯 번째 다음에는 잠시 간격이 있고 교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과 증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은 자연계를 통한 재앙이 아니라 사람에게 직접 닥치는 재앙입니다. 

1절.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땅에 떨어진 별’은 셍떽쥐베리의 소설에 나오는 어린왕자가 아닙니다. 사14:12을 보면 ‘너 아침의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영화로운 존재였지만 하나님께 대적을 했다가 내어 쫓긴 사탄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눅10:18). 사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무저갱은 영어로 ‘Abyss’인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옥구덩이로 번역하기도 하고 바닥이 없는 구멍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것은 그곳이 사탄의 거처이며 그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받았더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권리를 위로부터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의 권세도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허용하심 안에서 취해진 것입니다. 

그가 열쇠로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고 해와 공기가 어두워졌습니다. 3절. 거기서 황충이 나오는데 땅에 있는 전갈과 같은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들은 사탄의 하수인들일 것입니다. 황충은 메뚜기인데 애굽이 받은 재앙 중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을 생각나게 합니다. 앞에서도 애굽에 내려졌던 재앙과 흡사한 재앙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굽을 심판하신 분이 또한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애굽의 바로는 사탄의 그림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바벨론 군대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데 그 바벨론 군대를 메뚜기로 묘사한 내용이 나옵니다(엘1:4). 나훔서도 그러합니다(나3:15). 그렇다면 사탄이 사용하는 황충은 하나님이 심판을 위해 쓰시는 사탄적 도구인데 많은 군사나 강력한 군사 무기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합니까? 7절부터 보면 전쟁을 위해 준비한 말들 같다고 합니다.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하는데 이는 왕처럼 일을 시행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는 것은 인간의 지능과 명철을 가지고 있고 인격체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자의 머리털과 같은 머리털이 있다는 것은 삼손의 머리털에 강력한 힘이 있듯이 그런 힘이 있음을 말합니다. 사자의 이빨과 같은 이빨이 있다는 것은 그의 탐욕성과 잔혹성을 나타냅니다. 철 호심경과 같은 호심경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가슴을 보호하는 흉배를 말합니다. 철로 된 호심경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은 약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날개들의 소리가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다는 것은 매우 신속하고 기민한 것을 보여줍니다. 또 전갈과 같은 꼬리가 있고 쏘는 살이 있어서 사람들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말씀합니다. 
11절. 그들의 왕은 무저갱의 사자, 히브리어로 아바돈, 헬라어로 아볼루온입니다. 이 뜻은 ‘파괴자’입니다. 이는 앞에서 나온 사탄을 말합니다. 아볼루온을 왕으로 추종하는 황충들 역시 파괴자의 속성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펄벅이 쓴 대지라는 소설을 보면 메뚜기 떼가 지나가는 곳마다 황폐화되고 아무 것도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사탄과 마귀가 지나가는 곳마다 인생들이 파괴되고 실낱같은 생의 소망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들에겐 전갈과 같은 권세가 있어서 사람이 한 번 찔리면 얼마나 괴로운지 6절을 보면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여 간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제 전갈이나 말벌에 쏘인다고 죽고 싶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황충의 괴롭게 함은 영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죽기를 구할 정도로까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그들은 안겨줍니다. 이것이 사탄의 속성인 것 같습니다. 사탄 마귀의 뿔에 찔리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게 생각됩니다. 매일 매일 눈을 뜨고 살아가는 것이 지옥의 고통입니다. 밥 먹는 것도 괴롭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고통입니다. 침대에 누워도 불면의 밤으로 고통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살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닐 텐데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말의 때엔 많다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무저갱에서 나온 이유는 자연재해를 일으키고자 함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못살게 굴고자 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골라서 공격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의 재앙들이 근본적으로 성도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불신자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그렇게 봐야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 재앙의 목적과도 일치하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열 가지 재앙이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엔 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애굽인들이 사는 땅에만 임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애굽인들에겐 하나님의 유일한 창조주 되심을 알게 하시며 전체적으로는 그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난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 많은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환난을 초월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황충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공격합니다. 그러나 5절을 보면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강해도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임을 봅니다. 당사자가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것이나 가해자가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이는 것은 전부 생사여탈권이 하나님에게만 속했기 때문입니다. 재앙을 당하는 자들은 다섯 달 동안 괴로움을 겪는다고 말씀합니다. 다섯 달이 메뚜기의 생존 기간이라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비유로 보자면 황충의 공격이 강력하나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죽지 않을 만큼만 괴로움을 겪게 하셔서 회개에 이르도록 하심인 것 같습니다. 

12절.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후에 둘이 이르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두 개나 더 남았습니다. 

13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한 음성이 하나님 앞 제단 네 뿔에서 나는데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 유브라데 강은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바데) 제국이 자웅을 겨루는 경계선이었습니다. 마치 한반도 휴전선을 경계로 중국과 미국이 자웅을 겨루듯이 말입니다. 구약에서 이민족이 침입해 오는 것을 유브라데 강물이 넘치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사8:7). 그러므로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풀려난다는 것을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생각하기에는 파르티아 제국이 유브라데강을 넘어 물밀 듯이 공격해 들어오는 모습으로 상상하기기 쉬웠을 것입니다. 로마제국과 파르티아제국의 싸움은 마치 미국과 중국의 싸움처럼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5절.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년 월 일 시’라 함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 홍수 심판도 노아 육백세 되던 해 2월 17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 시나리오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이제 삼분의 일이 죽을 것입니다. 앞에서는 죽지는 않고 괴롭기만 했고, 또 이전 재앙에서 삼분의 일이 재앙을 당했지만 그것이 꼭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의 삼분의 일입니다. 재앙의 강도가 심해진 것이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선 것입니다. 

16절.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마병대가 공격을 한다고 했는데 당시에 실제적으로 파르티아제국은 마병대가 강했고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병대의 수가 이만만이라고 했는데 이는 산술적으로 이억입니다. 과연 정말로 이억의 마병대가 유브라데를 건너 이스라엘로, 뒤에서 말하면 아마겟돈이란 평야로 모인단 말입니까? 세대주의자들은 여기서 기발한 해석을 내놓았었습니다. 당시에 세계인구가 2억이 안 되었으니 그것을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고 2억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중국밖에 없으니 중국이 세계를 정복하려고 2억의 군사를 화약고인 중동으로 집결시키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서를 보면 골리앗을 물리치고 오는 다윗을 향해 이스라엘의 처녀들이 노래를 부른 것이 나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은 자는 만만이로다(삼상18:7)”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존재감이 만만명의 군사들만큼이나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만만이라고 한 것은 그 만큼 존재감이 강력하고 숫자가 많다는 것이지 정확하게 2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황충을 전투기나 장갑차로 해석하였습니다. 앞에도 미사일이 있고 뒤로도 기관총이 발사되기 때문입니다. 17-19절엔 마병대를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만히 보면 현대식 무기 중에 비슷한 것이 떠오릅니다. 바로 탱크입니다. 2천 년 전 사람이 환상 중에 탱크를 봤다면 아마도 말들로 보고 기갑부대 운전병과 지휘관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헬멧과 고글을 썼을 테니 그것이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탱크의 머리를 사자 머리 같다고 봐줄 수도 있고 탱크의 포에서 포탄이 발사될 때 나오는 불과 화약연기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세대주의자들은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계시록을 보면서 그런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무장을 한 파르티아 제국의 마병대를 통해 사탄의 강력한 힘과 공격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제국과 제국이 충돌하여 한 지역을 전란이 휩쓸고 지나가면 거기에 남는 전흔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압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왜구가 지나간 마을에 많은 시신들이 널 부러져 있는데 한 어린아이가 이미 죽은 어미의 젖을 빨며 울고 있는 모습이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나옵니다. 이런 재앙을 당하면 사람들이 겸손해지고 하나님께로 나아올까요? 

20,21절.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말합니다. 아! 재앙을 당한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 것을 봅니다. 재앙으로 남은 사람들은 마음이 더 완악해졌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보다 여러 귀신, 악한 영을 찾아갑니다. 과거 사울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더 의지합니다. 더 허망하고 미련한 짓을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서 결코 그들이 행한 그 더러운 죄들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삼분의 일만 해하고 삼분의 이는 남겨두는 자비를 베풀었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생이 괴롭고 전란 속에서 고생했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재앙은 심판 받기로 예정된 자들을 더 심판을 당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판 받음이 하나님 탓이 아니요 자신들 문제임을 드러내십니다. 아! 우리를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9장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웁니다. 첫째는 종말론적 재앙은 근본적으로 멸망받기로 예정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둘째는 로마제국처럼 하나님을 대적하여 선 모든 세상의 세력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우리가 인을 맞은 것이나 환난의 때에 회개를 한다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더욱 극심한 재앙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키긴 커녕 더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비난을 할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주님께 감사하며 완악해지지 않으며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