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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4강 (계시록 4장)2017-03-14 08: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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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4강

3장까지는 그래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4장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상징, 은유, 비유가 등장합니다. 무엇이 사실적인 묘사이고 무엇이 상징적인 묘사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지면서 전체적인 이해도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계시록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을 먼저 배경 지식으로 해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용하는 그림언어나 숫자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요 구약의 내용이나 사상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철저하게 구약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이 매우 신비스럽고 새로운 것 같지만 구약을 잘 알고 있던 유대인들이 본다면 다니엘서, 에스겔서를 비롯한 구약 묵시 문학으로부터 재인용되고 재해석되었음을 금방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계시록 공부를 위해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를 다시 한 번 정독할 것을 권합니다. 

4장과 5장은 6-16장까지의 본론을 향한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4,5장을 서론으로 놓는 학자도 있고 본론으로 놓는 학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4장은 창조주 하나님을, 5장은 구속자 예수님을 다루고 있습니다. 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시점에서 논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된 종말은 환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권투선수가 상대방에게 너무 많이 맞아서 공이 울린 것도 모르고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헤매는 모습을 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도 연속적으로 환란을 당하다보면 정신줄을 놓고 헤맬 수 있습니다. 이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종말이 움직여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4,5장에서 분명히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말한다고 말씀합니다. 1:10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리는데 그 음성이 들려준 대로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썼었습니다. 이제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끝나고 다른 차원의 내용 전개를 위해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다시 들리고 있습니다. 그 음성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이라’ 였습니다. ‘마땅히 일어날 일들’은 1:1에서 언급했던 ‘속히 일어날 일들’과 같은 의미의 문장입니다. 마땅히 되어져야만 하는 일들이란 것입니다. 환란은 재수가 없어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요, 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 가운데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형통과 기적과 승리에만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다”고 소리칩니다. 주님은 예언과 증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요한에게 하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하나님을 먼저 보이십니다. 요한이 하나님을 본 첫 번째 사람은 아닙니다. 모세도 뵈었고 에스겔도 겔1장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고, 이사야도 사명을 감당하기 힘들던 그 시절 눈을 들어 하늘 위로 높이 들린 보좌 위에 계신 만군의 주 여호와를 뵈었다고 사6장에서 말합니다. 보좌는 통치를 상징합니다. 보좌 위에 앉으셨다는 것은 통치자로서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을 보는 게 왜 중요합니까? 당시 세계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는 통치자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황제 티베리우스의 얼굴을 조각한 그 당시 은화에는 ‘티베리우스, 그는 우리의 주와 신’이라 새겨져 있었습니다. 황제는 주님이며 하나님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무소불휘의 권력이 있었습니다. 보좌에서 엄지손가락을 내리면 그 어떤 자도 죽었고 엄지손가락을 올리면 그 어떤 자도 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그와 같습니다. 서열 2인자인 아버지뻘 되는 사람도 그 보좌 아래 내려가 무릎을 꿇고 담화하는 사진이 인터넷 기사에 실렸습니다. 세계가 로마 황제의 보좌를 바라보고 그의 음성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소아시아 교회가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도 인간적으로 보면 황제가 유대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해주고 기독교는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것을 잘 알면서도 민란이 일어나 황제에게 밉보일 것이 염려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요한이 가장 먼저 본 것은 하늘 보좌였으며 그 위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세상을 오바마가 움직이는가, 푸틴이 움직이는가? 삼성과 현대 가문이 움직이는가? 금수저를 몇 개씩 문 사람들이 움직이는가? 아닙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십니다. 

3절은 그의 앉으신 모양을 설명하는데 온갖 진귀한 보석으로 묘사합니다. 아마도 그 이상의 단어를 생각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것을 얘기할 때 보석으로 이야기 해야지 무슨 김태희 얼굴처럼 화려하고 원빈처럼 휘황찬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창2장을 보면 에덴동산을 설명할 때도 금과 보석이 등장합니다. 보좌의 사방에서는 무지개가 아우라처럼 빛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4절을 보면 보좌 양 옆으로는 이십사 보좌들이 있는데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다고 말씀합니다. 드디어 골치가 아픈 숫자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24’는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24반차를 생각나게 합니다. 성전에서 섬기는 그 24반차의 제사장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24장로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합니다. 성전에서 섬기는 24명의 제사장을 늘 봤던 요한은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이 땅의 성전은 바로 저 하늘성전의 모형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히브리서와도 연관시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성전은 하늘 성소의 그림자이며 예수님은 하늘성소에서 섬기시는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땅의 성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투영하는 모형이었습니다. 

그 장로들은 승리한 자로서의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금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왕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합니다.  

5절을 보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을 나타날 때의 이미지입니다. 출애굽 할 때 시내산에서, 그리고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도 이런 그림이 등장합니다. 그 엄청난 소리 앞에 누가 당당히 설 수 있겠습니까? 보좌 앞에는 일곱 개의 등불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그의 무소부재하심을 나타내는 것이요 하나님의 전 우주적 통치와 간섭하심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그로부터 숨거나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6절을 보면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피조세계의 충만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집니다. 7절에서 그 생물들이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같고 독수리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네 생물과 눈은 에스겔 1장에서도 그대로 나오는 표현이며 여섯 날개는 사6장의 스랍천사를 묘사할 때 등장했습니다. 요한이 본 환상은 이미 구약의 선진들이 본 환상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계획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네 생물은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의 대표며 원형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거룩하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합니다. 3은 완전수입니다. 하나님만이 거룩 그 자체이시며 하나님만이 완전하시다는 말입니다. 그는 전능하신 이며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찬양합니다. 1장에서도 나왔지만 이는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별칭입니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전능하셔서 스스로 결정하시고 스스로 만유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누가 여기에 반기를 들 수 없습니다. 

그 생물들이 하나님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 드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은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그 보좌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며 자기의 금관을 보좌 앞에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찬양하기를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자격이 안 되는 자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는다면 그것은 재앙일 것입니다. 죄와 연약에 쌓여있는 로마 황제가 어떻게 그런 경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만이 합당하십니까?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만물은 주의 뜻대로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뜻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몇 몇 힘 있는 정치가들이 자기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오너가 자기 뜻대로 사업을 추진하고 사람을 세우고 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욥기에서 우리는 사탄의 유혹과 시험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배웠습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것이 환란과 재앙일지라도 하늘에서 먼저 계획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신자의 소망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원어로 다시 풀이해보면 “아버지의 이름이 하늘에서 거룩하게 여겨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거룩하게 돌려지고, 하늘에서 나라가 임한 것처럼 이 땅에서도 임하며,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온 것이 하늘 보좌에서 계획되고 완성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한 것임을 잘 아셨기에 이 기도문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오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세례요한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메시지를 전하신 것입니다. 천국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시작한 그때부터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종말이란 시간적인 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신 그의 뜻이 이 피조세계에 온전하게 실현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과 비전을 요한에게 심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모든 재앙은 다 사탄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앙 때문에 힘든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과 뜻에서 왔음을 믿지 못하기에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믿을 때 눈에 보이는 황제가 두렵지 않고 어떤 핍박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외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늘 보좌 위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들은 그 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드렸습니다. 원어로는 관을 보좌를 향해 던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존귀도 나의 명예도 나의 승리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그를 향해 아낌없이 던지며 그를 환영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뜻 가운데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삼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쉬지 않고 돌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