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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가을수양회 제 1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태복음 6:5-15)2018-10-3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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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수양회 제 1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 마태복음 6:5-15
요절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신앙생활의 중심은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소홀이 여기기 쉽고, 많은 시간을 할애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기도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우리의 이러한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1장 본받지 말아야 할 기도

예수님은 먼저 5~8절을 통해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기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5절을 형제님들이 읽어주십시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기도는 연극배우와 같이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하는 모든 기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런 기도에는 능력도 없고 하나님께서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은밀한 곳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둘째,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7,8 전반절을 보십시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이방인은 자기 신에게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언부언은 ‘말더듬다’, ‘지루하게 재잘거리다’, ‘공연히 반복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말을 반복하여 많이 하는 것입니다. 헬라인들과 중국인들이 자기 신들의 호칭을 최대한 많이 열거하거나 반복하여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신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여깁니다. 신자들 가운데도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올바른 기도를 하기 원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아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여기 있는 아버지 중에 자기 자녀에 대해 얼마나 잘 아십니까? 제가 몇가지 질문을 통해 자녀를 얼마나 잘 아는가 테스트해 보겠습니다. 내 자녀가 몇 학년 몇 반입니까? 학교에서 친한 친구, 세 명의 이름을 말할 수 있나요? 더 물어보면 내가 얼마나 자녀를 잘 모르는가를 깨닫게 되니까 여기서 질문을 멈추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늘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자녀인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필요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필요를 느끼기 전에 먼저 아십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대책과 해결책을 갖고 있습니다. 해결할 능력까지 있습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 완전한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러한 하늘 아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니 알아서 주시는데 구태여 기도할 이유가 있는가’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인격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더욱 깊어집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깊이 사귀고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러면 신자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9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해야 할 모범적인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 대상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라고 하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는 기도의 대상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그 첫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는 아무리 장엄하고 진실된 기도를 한다 해도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계신’ 이라는 말은 하늘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계신 분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어 계시는 초월적인 분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원어로 보면 ‘하늘’이 복수로 표기된 ‘하늘들’ 이라는 단어로 씌여졌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다르시고 그 권능이 무한하시며 무소 부재하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천지의 주재이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바로 이러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막연히 말도 하지 못하는 우상에게 기도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전능하신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자애로운 눈으로 지켜보시는 아버지를 깊이 인식하고 믿으며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모든 내용보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 가운데 드리는 기도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릴 첫 번째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은 그의 본성, 그의 성격들 그 분의 전인격을 가리킵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모든 세속과 사악으로 부터 구별되신 절대 무흠의 지존자시요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거룩하신 분으로 사람이 그의 거룩함을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기도 제목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로 부터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즉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을 거룩한 존재로 경배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자 하기보다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한 것입니다. 신자의 첫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곧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두 번째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10a 를 보십시오. “나라가 임하시오며”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괴로운 세상 어서 빨리 하늘나라에 가기를 바랍니다. “나를 빨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 빨리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세 번 째 기도 제목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여기서 ‘뜻’ 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말합니다(롬12:2). 그러한 뜻이 하늘에서는 이루어졌습니다. 이 땅을 제외한 하나님의 영역에서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타락한 이 세상에서 그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세계 선교 명령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세상 사람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러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됩니다. 우리가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까지 간절히 기도하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를 기도합니다. 믿어 순종케 하는 제자 삼는 역사를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제3장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한 세 가지 기도 제목 이후에 우리 자신을 위한 세 가지 기도 제목을 주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우리 자신을 위한 첫 번째 기도는 그날 하루 먹을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매일 매일, 날마다 양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오늘 하루치의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을 양식을 사소하게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육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날 물질이 풍부하고 동네 슈퍼에만 가도 먹을 것이 쌓여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잘 실감이 가지 않습니다. 자고 나면 아침에 압력 밥솥에 밥이 있고 냉장고 안에 각종 반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모든 사람의 실상이 아닙니다. 몇 년전만 해도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먹을 것을 구하러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살았습니다. 혹여 몸이라도 아프면 그날 먹을 것을 벌 수 없었고 꼼짝없이 굶어야 되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참으로 간절하고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함으로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구할 것은 일용할 양식이지 주용할 양식이나 월용할 양식이 아닙니다. 염려와 걱정이 많은 현대인들은 앞날을 미리 당겨서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필요한 양식을 구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물질이 너무 풍요하면 배불러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그날 그날 공급해 주시는 것을 감사하고 그날 그날 주님을 위한 삶을 충성되이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위한 두 번째 기도제목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무조건적으로 죄사함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는 죄에 대한 근본적 사죄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일반적 사죄 곧 우리가 생활하면서 짓는 죄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먼저 남의 죄를 용서해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에 대해 미움의 감정을 품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에게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일만 달란트 오늘날 금전으로 환산하면 약 6조원이나 되는 큰 금액을 빚진 자와 같습니다. 그러한 빚을 탕감을 받았습니다. 형제의 나에 대한 죄는 그에 비하면 백 데나리온 빚진 것에 불과합니다. 백 데나리온은 약 1000만원 정도로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60만분에 1에 해당됩니다. 그 정도 작은 죄를 지었는데 그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실로 우리가 얼마나 큰 죄를 사함 받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 18:23-28) 나의 죄를 먼저 사해 주신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를 기억하고, 형제의 조그만 죄를 내가 먼저 용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통로가 막히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위한 세 번째 기도제목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입니다. 여기서 시험은 타락의 결과를 가져오는 유혹 (temptation)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약 1:13b). 이 시험은 사단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시험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사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깊이 자각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시험이 닥쳐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아주 그러한 시험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시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도록 하는 송영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이 주기도문은 간결하지만 기도에 관한 가장 심오한 가르침을 주시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기도문의 뜻과 정신을 생각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반복함으로 인해 주기도문은 신자들의 생활에서 최대의 순교자가 되고 있습니다(Luther). 우리가 주기도문의 깊은 뜻을 날마다 새기며 이 기도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면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이 자주 흘러나옵니다. 저의 육신의 아버지는 두 집 살이를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무뚝뚝하고 엄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가 무서워 아버지라고 조차 부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제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은 대학생 때 과 친구를 통해 이곳 UBF로 인도해 주시고 나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저는 믿음 있고 현숙한 애란 목자님과 가정교회를 이루고 충신동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녀도 세 명이나 두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특출나게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던 저는 많은 직장을 전전하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했습니다. 늘 물질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직할 때마다 저와 동역자는 마 18장 19, 20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으로 합심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은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문밖에 먹을 것과 격려의 편지를 놔두고 가 저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의 삶을 되돌아 볼 때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공급자요 보호자요 사랑의 아버지이셨습니다. 지난 8월 16일은 8년 이상의 반지하 생활에서 벗어나 지상의 집으로 이사하게 된 출지하 기념일이었습니다. 저희 가정은 출애굽기 20장 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말씀으로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정은 반지하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가정예배 때마다 기도하였으나 저의 재력으로는 이사비용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둘째 누님의 뜻하지 않은 도움으로 지하방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희 집을 방문한 이 아브라함 목자님은 행 28:2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며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다’는 말씀으로 우리 가정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저희 가정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이 됩니다. 저희 가정이 많은 이들을 기쁨으로 영접하여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가정 교회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큰 아들 기드온은 2세들의 기둥처럼 중심을 지키며 하나님 역사에 동역하고 있음을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 여호수아는 연약한 가운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소감을 통해 간증하여 많은 은혜를 끼침을 감사드립니다. 셋째 수산나는 어릴 적에 우울증 증세가 있었으나, JBF에서 영어로 성경암송을 하면서부터 심령에 말씀 역사가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수산나는 세상 노래보다 복음성가가 좋다며 CCM 듣기를 좋아합니다. 엄마에게 “엄마! 우리 집은 잘 살지 못하지만 난 행복해~!” 고백하여 엄마까지 덩달아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를 더욱 깊이 깨닫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립니다.

저에게는 현재 회장님에 대한 용서 문제가 있습니다. 회장님의 수행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현재의 직장은 아내와 목자님들의 중보기도로 취업한 곳입니다. 첫 출근 때 저는 수행기사들이 자주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장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주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정들기 전에 그만 두리라 생각하고서 다음날 회장님께 ‘그만 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신자가 그래서는 안되지~!’하며 회유하였습니다. 저는 바이블하우스에서 ‘주님!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의 뜻이라면 이 잔을 마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였습니다. 아내에게 이를 알리고 의견을 물었을 때 동역자는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죠’ 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말에 힘을 얻어 계속 근무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 “회장님, 제가 5년 9개월을 근무했던 그 기사의 최고 기록을 깨보겠습니다.”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매일 매일 해프닝이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회장님은 철거전문 건설회사의 오너답게 험악한 표정으로 저에게 폭언을 쏟아냈고 심지어 폭행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갑질 넘버 쓰리에 들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언행을 참다 못해 몇 번 그만 두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회장님은 “너는 입이 뚤렸다고 말을 함부로 내뱉냐! 너는 참 신자가 아니야. 너는 남자도 아니야”하며 오히려 저를 공격하였습니다. 진짜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이 노예로 팔려 총리가 되기까지 하나님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말씀과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말씀이 저에게 힘을 주었고 아직은 인내하며 계속 근무하자는 방향을 잡고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사건으로 인해 회장님의 폭행이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 두겠다고 회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회장님은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12월쯤에 친적 중의 하나를 수행기사로 채용하려고 해. 이젠 더 이상 외부사람은 안 써. 그러니 12월 아니면 2월까지만 근무해.’ 저는 하나님께서 나의 형편을 아시고 피할 길을 주신 것으로 받아드리고 도리어 감사기도하고 남은 기간 성실히 일하고자 합니다. 제가 까다로운 회장을 모시면서 어떠한 죄인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깊이 배우게 됩니다. 제가 때마다 회장님의 폭언과 갑질을 당하면서 그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다시 맞닥뜨리면 또 다시 미움감정이 올라오고 용서를 하지 못합니다. 제가 일곱 번에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회장님을 용서하고자 합니다. 그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참된 모형인 주기도문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위해, 우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