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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종로II_북악 여름수양회 2강 `세상의 빛 예수님` (요한복음 8:1-12)2019-07-04 13: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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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종로II/북악 여름수양회 주제 2강


세상의 빛 예수님


말씀 / 요한복음 8:1-12

요절 /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과거 골목길은 범죄의 온상이었습니다. 저도 어릴적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삥을 뜯겨본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골목길에 등불을 많이 설치하였습니다. 그러자 획기적으로 범죄율이 줄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어두움은 빛 앞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 죽음 앞에 이른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에겐 생명의 빛이 간절히 필요 해 보입니다.

1,2 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은 이른 아침 성전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


예수님이 말씀을 한참 가르치시던 중 종교 지도자들이 한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웠습니다. 이 여인은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였고, 콧물 눈물 다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4,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간음이 무엇입니까? 간음은 죄입니다. 간음이란 배우자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하십니다. 그 만큼 간음은 크고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게 하셨는데, 간음 죄는 가정을 파괴시키기에 무서운 죄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죽을 줄 알면서도 왜 간음을 하였을까요?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지언정 간음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전직 유명 정치인은 유부남인데, 자신의 수행 비서와 수차례 부적절 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비록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가족과 수많은 지지자들은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하루 20시간을 게임을 하였습니다. 게임을 밤새 하고 다음 날 수업을 빼먹었습니다. 학사 경고까지 받아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절망감을 위로 받고자 다시 게임을 하였습니다. 게임으로 인해 그의 소중한 대학생활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당사자들은 이런 문제가 자신의 삶을 좀 먹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심지어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폭망 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를 끊지 못합니다. 그들에겐 이와 같은 어둠을 해결 해 줄 빛이 필요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 여자를 현행범으로 잡아왔습니다. 간음 죄는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현행 범으로 잡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남자는 어디에 가고 여인만 잡혀 왔습니까? 남자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스트리킹을 하며 도망 갔는지, 종교 지도자들이 여자를 잡기 위해 사전에 남자와 모종의 거래를 하였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어찌됐든 그들은 여인을 미끼로 이용하여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6절을 상반부를 보십시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에는 그들의 간교 한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보면 이러한 경우 반드시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율법대로, 만약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럴 경우 예수님은 로마의 현행 법을 어기고 살인을 지시 했다고 로마 정부에 고발 당할 것입니다. 또 이럴 경우, 예수님이 지금까지 가르치신 죄인들을 향한 사랑과 은혜의 메시지와도 충돌하게 됩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돌로 치지 말고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어긴 자로서 종교 재판에 회부 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처럼 함정을 만들어 놓고, 예수님이 함정에 빠져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6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님은 몸을 굽히신 다음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 해 볼 수는 있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쳐 다짜고짜 따지듯이 몰아붙이면, 나도 기분이 상하고 함께 감정적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현재 무리들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동요 되어 매우 감정적이고 흥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감정을 가라앉히시고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에 쓰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들은 예수님께 대답을 재촉하였습니다. “예수 선생~ 말해 보시오.”, “왜 아무 말이 없소~”, “치리이까? 말리이까?”. 예수님은 얼마 간의 침묵을 깨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돌로 치라’ 하십니다. 간음죄는 돌에 맞아 죽기에 마땅한 죄라 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에 대해 무한히 관대하시고 항상 용서만 하신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한 마디는 사람들의 잠자는 양심을 깨웠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여자가 간음했다는 것, 그리고 간음 죄는 돌에 맞아 죽을 죄라는 것 만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마음 속으로 그 여자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고, 그들은 각자 자기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인과 자기를 비교해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도 그 여자와 다를 바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인과 차이가 있다면 자기들의 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다 자리를 떠났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님은 다 나가고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오직 예수님과 간음 중에 잡힌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10절과 11절 상반부 ‘없나이다’ 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은 여인이 주변을 둘러보게 하시고, 정죄감에서 벗어나게 도우십니다. 이제 남은 분은 여인의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11절 하반부 ‘예수께서’ 부터 읽어보겠습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녀에게 용서의 사랑을 베푸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셔서 사랑을 여러 가지로 나타내십니다. 어떤 사람은 징계하심으로 사랑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래 참으심으로 사랑하십니다. 본문의 여인은 이미 사람들 앞에서 죄가 낱낱이 드러나, 죽음의 고통을 맛 보았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책망하지 않으시고, 죄를 용서하심으로 그 분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아무 근거 없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면, 간음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세상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율법을 거스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도 살리고, 율법의 요구도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정죄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정죄 당하는 길을 선택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씨씨엠 가수 강연희씨가 부른 ‘그저 사랑했기 때문에...’ 곡에는 이런 예수님의 사랑이 잘 표현 되어 있습니다.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왜 십자가를 지셨나 하늘 귀한 영광 버리고

왜 십자가를 지셨나 하나님의 아들임을 버리고

왜 물과 피 쏟으셨나 아무 죄 없으신 어린양

왜 물과 피를 쏟았나 조롱 멸시하는 나를 위해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토록 못난 날 이토록 약한 날 위하여 십자가를 택하셨네

예수님은 죄인들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시려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예수님은 여인에게 새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여인의 새 삶은 ‘예수님의 생명’이라는 큰 대가를 치름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생명에 빚진 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새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는 지금까지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캄캄한 어둠 가운데 있던 여인의 빛이 되어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죽음에 이르는 어둠 가운데서 건지시고, 생명의 빛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빛, 곧 세상의 빛이십니다.

저는 1980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으셔서, 제가 8살 때 당시 고가였던 8비트 컴퓨터를 사주셨습니다. 형과 저는 이것을 가지고 열심히 게임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에 때 인생의 먹구름이 찾아왔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음란물과 정욕행위를 알게 되었고, 이후 습관적으로 즐기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 음란서적과 비디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깊은 자의식과 수치심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알까 두려웠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중교통도 이용하는 것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어둠의 세력은 저의 잠재 의식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잠을 자면 환청과 악몽에 시달리고, 가위에 눌려 하루도 편하게 자는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심각하게 어둡고, 소심해진 성격을 생각하며, 일치감치 결혼과 자식, 사회생활을 포기하였습니다. 저는 삼포의 원조였습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만화가가 되어 골방에서 그림을 그려며 돈을 벌면 되겠다 생각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게임과 성적인 쾌락을 마음 껏 누리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재수 끝에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음란과 정욕, 게임 중독으로 인해 내면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성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게 김순정 목자님을 보내어 주시고, 성경 공부로 초청 해 주셨습니다. 성경 공부와 선배님들의 간증을 들으며, 나도 빨리 예수님을 만나 소심한 성격에서 변화 되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모범생으로 착하게 살아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성경 공부 중 간음에 대하여 알게 되었는데, 저는 그때까지 여자 손 한번 잡아 본 적이 없었기에, 깨끗하다 여겼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들을 때, 제 자신이 수 없이 간음 한 죄인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떨게 되었고, 성경책을 펴서 보아도 심판과 관련 된 말씀만 눈에 들어와 괴로웠습니다. 2000년 여름 수양회를 통해 저의 음란과 정욕, 이기심의 죄를 하나님께 들고 나갔을 때, 예수님은 빛으로 역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저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장막 생활을 하게 되었고, 수십년 만에 평안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장막에서 선배 목자님들과 사랑의 교제를 하고 약 한달 정도 후에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형은 오래간 만에 사랑하는 동생이 왔다며 최근에 다운 받은 야동을 친히 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야동을 이상하게 도저히 마음이 괴로워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밤에 형과 함께 피시 방에 가서 평소 즐겨하던 게임을 밤새 하려는데, 이상하게 너무 재미가 없어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전에 즐겨 듣던 락 음악을 듣고자 이어폰을 귀에 꽂았는데, 너무 괴로워 들을 수 없어 모아 둔 시디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동되어 예수님을 따랐을 뿐인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얻은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학부시절 귀중한 20대를, 캠퍼스 복음 역사를 동역하는데 귀하게 사용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홍수산나 목자를 아내로 주셨습니다. 아멘, 그리고 2 자녀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가족을 나이지리아 선교사 가정으로 파송하시고, 지난 8년 간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증거하는데 귀하게 사용 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생각할 때 큰 기대가 됩니다. 저의 인생 요절은 벧전 2:9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 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곳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이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를 캄캄한 어둠 가운데서 불어내시고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고, 이 시간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결론입니다. 세상의 빛 예수님은 어둠에 거하던 한 여인의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둠에 거하던 제 인생에도 찾아 오셔서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번 수양회를 통해 모든 분들이 세상의 빛 예수님을 만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2절 같이 읽고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