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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여름수양회 4강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지체' (고린도전서 12:1-31)2017-07-27 09: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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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여름수양회 4강 / 강창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지체 



말씀 / 고린도전서 12:1-31

요절 / 고린도전서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어떤 사람은 UBF는 선교단체지, 교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UBF는 교회 맞습니까? 교회 맞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께 경배드리는 신앙공동체를 말합니다. 우리 UBF는 한 주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드리는 모임입니다. UBF에서 30년 가까이 신앙생활한 저는, 예수님 외에 다른 대상을 경배하라고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군인교회와 같이 특수교회인 캠퍼스 지성인 교회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교회입니다. 특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6:18절은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 UBF 종로2부를 세우신 창설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이 지키시기에 음부의 권세조차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로 동역하고 사랑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그릇을 든든히 이루어 캠퍼스 사명을 잘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제1장 은사의 다양성과 일치성(1~11, 28~31)


 1절로 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엇이 성령의 역사입니까? 이전에는 성도들이 말 못하는 우상에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하는 것은 개인의 지적인 능력도 아니고 사람의 행위 공로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성령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이십니다. 


 이어서 은사, 직분, 사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4절로 7절을 자매님들이 보십시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 안에는 여러 은사, 직분, 사역이 많고 다양합니다.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은사는 똑같이 성령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직분이 다르지만 같은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역 역시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은사, 직분, 사역을 주신 목적 역시 교회 공동의 유익을 위해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교회의 은사를 능력별 은사와 직분별 은사 두가지로 나누어 말씀하십니다. 먼저 능력별 은사는 무엇입니까? 8절에서 11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 9가지의 능력별 은사는 초이성적, 초능력적인 은사들입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대부분 흔치 않습니다. 사람들의 내적 능력인 부분으로 옆에서 쉽게 알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특정인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사들입니다. 


 교회에는 직분별 은사도 있습니다. 28절로 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이 직분별 은사는 유심히 관찰하면, 자신이 무슨 직분의 은사가 있는지? 다른 사람이 무슨 직분의 은사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8가지 직분별 은사가 나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도의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는 개척자의 은사입니다. Staff목자나 지부장 선교사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둘째, 선지자 직분이 있습니다. 이는 지혜의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교회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 줍니다. 셋째, 교사의 직분이 있습니다. 이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입니다. 사람은 가르침을 받아 말씀을 들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는 복음의 지식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교사의 지식의 은사가 있는 성경선생은 복음을 지식적으로 잘 풀어 깨닫게 합니다. 우리 모임에는 성경교사의 직분자가 아주 많습니다. 넷째, 능력을 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는 큰 믿음의 능력이 있는 은사입니다. 그는 외부로부터 큰 일을 당하여도 믿음이 반석 같아 흔들리지 않습니다. 암이나 질병도, 강도의 위협도, 교회의 환란도 이런 믿음의 사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믿음의 그루터기로 삼아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어가십니다. 다섯째, 병고치는 직분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못고치는 불치병을 기적과 같이 고칩니다. 여섯째, 서로 돕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들의 기를 잘 살려주며 동역을 자연스럽게 잘합니다. 일곱째, 다스리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영적지도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을 실제적인 문제에서 잘 카운슬링 합니다. 믿음의 용기를 북돋아 주며, 힘들 때 신앙이 굳건하도록 지도합니다. 여덟째, 방언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다른 은사들이 있습니다. 음악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예배 반주와 오케스트라, 특송으로 예배를 아름답게 하고, 모임을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양들과 운동을 하며, 팀웍을 이루며, 신앙을 격려하고 단합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 사업가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물질을 잘 벌고, 물질로 잘 섬깁니다. 청지기로서 맡은 물질을 형제들의 형편을 돌보고,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데,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드림으로, 교회를 세우는 데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다양한 모든 은사는 같은 한 성령의 역사이시며, 성령께서 성령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교회의 유익을 구하는 데, 자신의 은사를 적극적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교회에는 여러 직분들이 있으나, 이 직분의 은사보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하십니다. 이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를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성경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는 은사가 있거나, 직분별 은사가 있어 적극적으로 그 은사를 드릴지라도, 큰 능력과 믿음의 역사를 행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랑을 행해야 합니까?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족으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가족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영접한 우리가 형제, 자매라는 뜻입니다. 현재 일가친척, 혈육의 형제, 자매 관계는 이 땅에서 모두 끝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는 어떻습니까? 말만 형제, 자매가 아니라 그 형제, 자매의 관계가 영속적으로 하늘나라까지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입니다. 여러분, 하늘나라 천국에 가면 예수님이 마련해 주신 제 맨션에, 형제, 자매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형제, 자매들입니다. 가족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옆에 계신 분이 얼마나 소중한 분입니까? 옆사람은 나의 적이나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동역자요, 진정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는 근본적으로 착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회 있는 대로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착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발을 씻기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34, 35절에서 새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제자의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제2장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지체(12~27)


 12, 13절을 보십시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하나의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오직 주님도 한분 그리스도에 많은 성도가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인종과 신분이 다른 성도들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예수님을 믿었으며, 함께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함께 교회의 한 몸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 함께 성찬식에 참여하여 함께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 역시 영호남, 충청, 강원, 서울경기, 제주 출신지역이 다르며, 성향, 신분이 다 다르지만 어떠합니까?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함께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함께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한 몸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남이 아닙니다. 각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UBF 종로2부, 캠퍼스 지성인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UBF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까요? 


첫째,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14절로 20절을 보십시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몸은 하나이나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일 발이 손이 싫어서 우리 서로 분리하자. 나는 너와는 같은 몸이 아니야.하여도 한 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귀가 눈과 함께 있는 것이 싫어 서로 떨어지자. 하여도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는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손과 발 같은 많은 지체들이 다양하게 존재하여, 각각 다른 역할을 휼륭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도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성이 강한 사람, 열정이 많은 사람, 잘 부딪치는 모난 사람, 개인주의가 강한 사람, 잘 삐치는 사람, 우유부단한 사람, 소극적인 사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 게으른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 등 다양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일일이 싫다고 하고, 떨어지자고 하며, 자신에게 안 맞는다고, 비방해야 합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나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나만 있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들의 약점은 주님이 훈련하실 것입니다. 서로 좀 안 맞고 다르다며, 무시하고, 배척한다면 교회 공동체가 올바로 서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인정하며, 함께 사도신경을 고백했다면 성격이 달라도, 일하는 스타일이 차이가 나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이때 나와 다른 성도의 은사, 직분, 사역이 잘 계발될 수 있으며, 그들이 능력있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 교회가 동역이 잘 되어 성령의 그릇을 든든히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허물과 죄를 덮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1절로 24절을 보십시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우리는 천성이 남이 잘하는 것은 안보이고, 못하는 것은 잘 보입니다. 눈이 볼 때 손은 하루종일 앞뒤로 흔들고만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이 손에게 너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라고 한다면 불화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동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모임은 몇가지 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사자의 허물과 죄를 더 이상 책망하지 말고, 덮어주며,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할례나 무할례 같은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연필 꼭대기에 지우개가 있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한 허물과 죄를, 우리 인간이 용서 못하고 오래 오래 기억하고 헐뜯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나의 죄와 허물을 잊어 버려 주기 바란다면 우리들은 남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고 잊어버려 주는 것이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잠언 10장 12절은 말씀하십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우리 몸의 약하고 부끄러운 부분들을 옷으로 다 가려주듯이, 동역자들의 모든 허물을 사랑으로 가리어 주라고 하십니다. 이때,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능력을 잘 발휘하여, 요긴해지고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셋째, 우리 종로2부는 동역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5절로 27절을 보십시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께서는 몸 가운데 분쟁을 없이하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어느정도 돌보아야 합니까? 만일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나머지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나머지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듯 하라 하십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 말씀은 교회론의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 지체가 떨어져 나가려 하면 지체이기에 몸이 아프고 떼어지지가 않습니다. 물고기가 의식하지 못해도 물 속에서 살듯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교회의 지체 즉, 교회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Part of the body of Christ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없거나 내가 없으면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교회의 일부로 서로 돕고, 동역하며,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목적인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저는 어느날 제 자신에 대해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눈과 왼손은 스마트폰을 보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오른손은 노트에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피부신경은 왼쪽 목 솜털위에 모기로 추정되는 물체가 앉은 것을 감지하여 대뇌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대뇌는 한발 늦으면 피를 다 뜯긴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적 퇴치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뇌는 즉각 눈과 신경에게 모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라 했습니다. 목과 폐에게는 가만히 숨도 쉬지 말고 꼼짝말고 있어라. 오른손에게는 볼펜을 놓고 잽싸게 적을 퇴치하라. 명령하였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오른손이 순종하여 피를 빨고있던 모기를 납작하게 눌려 주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0.5초만에 처리되었습니다. 저는 이 순간 그동안의 모든 열등감이 사라지고 제가 0.5초만에 이렇게 똑똑하게 많은 일을 해내는 능력있는 사람인 줄 깨달았습니다. 


 이를 통해 동역을 어떻게 하는 지 배울 수 있습니다. 동역은 우리 몸과 같이 해야 합니다. 어느 때 동역은, 0.5초만에 끝내야 합니다. 당신이 옳니 내가 옳니 따지면 적은 순식간에 식사를 하고 이사 가버립니다. 동역은 이토록 많은 지체들이 긴밀하게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동역을 하려면 일심동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합니다. 긴밀하고, 일사분란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동역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동역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각자는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먼저 나와 다른 지체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동역자들의 지난날의 허물과 죄를 온전히 덮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 동역하며,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각 지체들이 맡은 분야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동역할 때 주일예배도, 여름수양회도, JBF도, EBF도, 캠퍼스 bible cafe도, 요회도, 세계선교도, 제자양성도 잘 부흥되고, 교회는 끊임없이 부흥할 것입니다. 기도로, 물질로, 몸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이 캠퍼스 선교가운데, 종로2부를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