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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열왕기상 3강 '솔로몬의 성전건축 '(열왕기상 5-7장)2018-10-1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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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열왕기상 3강



솔로몬의 성전건축



말씀/ 열왕기상 5-7장

요절/ 열왕기상 6: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오늘 말씀은 솔로몬의 성전건축입니다. 솔로몬의 성전건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참되고 영원한 성전 건축에서 나 한 사람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는 귀한 은혜의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다윗은 생전에 성전건축을 위해 필요한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이때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히람은 다윗의 인격과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사절단을 보내왔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히람에게 성전 건축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정중하게 설명했습니다. 본래 다윗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쟁을 하면서 성전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매일 매일 생계유지를 위해 일해야 하는 백성을 전쟁을 위해 군사훈련시키면서 동시에 역군으로 부린다면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성전을 반 혹은 거의 다 지어놓은 상황에서 적군의 침입으로 인해 불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가져오는 평화의 집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를 많이 손에 묻힌 다윗이 성전건축을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적절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건축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통해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는 성전건축을 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일생의 사명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제 건축을 시작할 것인지 그 때를 살폈습니다. 만약 주변에 원수가 있고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면 성전건축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전쟁 뿐만 아니라 흉년이나 홍수 지진 사고 등 큰 국가적 재난이 발생해도 성전건축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기술문명이 발전하여 이런 사고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건축을 할 수 있지만 솔로몬 당시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당기간 전쟁의 기운도 전혀 없었고 재난도 없었고 풍년이 지속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볼 때 이것은 틀림없이 성전건축을 시작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성전 건축에 꼭 필요한 레바논 목재와 또 벌목 관련한 전문기술을 소유한 기술자들을 많이 보유한 두로 왕 히람이 때마침 축하사절단을 보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바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성전건축 개시 명령과 같았습니다.



본문의 솔로몬을 통해 자신의 평생을 다해 감당해야 할 한 가지 분명한 사명(mission)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이라는 한 가지 사명을 받았고 그 한 가지 사명에 그가 가진 모든 시간과 젊음과 역량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랬을 때 성공적으로 사명을 완수한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시간과 젊음과 열정을 다 바쳐 집중할 한 가지 사명이 무엇입니까?



다음으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뜻과 계획과 생각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잘 살폈습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알았고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움직였습니다. 이는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영적이면서 지혜가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지혜가 많으시냐고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문제 앞에서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놓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민감하게 캐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이룹니다. 그 때 여러가지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 척척 성사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젊은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비밀을 체험하여 솔로몬과 같은 지혜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솔로몬의 요청을 들은 히람은 크게 기뻐하며 오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그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였습니다. 그가 온전한 신앙심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했는지, 아니면 솔로몬과의 무역이 그에게도 큰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그는 크게 기뻐하며 솔로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이 필요한만큼 백향목과 잣나무를 전문 기술자를 동원해 벌목한 후 뗏목을 이용하여 바다로 보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두로는 좁은 해안지역으로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니 그 대가로 곡물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히람에게 해마다 밀 약 4,400킬로리터, 또 맑은 올리브 기름 약 440킬로리터를 주었습니다. 솔로몬과 히람 사이의 무역은 성전 건축 7년, 왕궁 건축 13년 합하여 2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매년 이와같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곡물을 두로에게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간 매년 큰 풍년으로 이스라엘 땅을 복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직장생활에 복을 주시고 많은 물질을 주심은 그것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선한 사업에 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가난할 때에는 가난하시지만 행복하셨던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절제를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심령의 가난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편 주님께서 예기치 못한 풍요로운 물질을 주실 때에는 거기에 어떤 뜻이 있는지 분별하는 지혜를 덧입고 주님의 뜻에 맞게 그 물질을 잘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성전 건축에 필요한 일꾼 3만명을 모집하였습니다. 그리고 3교대 근무를 하도록 했습니다. 곧 만명씩 한달간 레바논에 가서 일하도록 했고 나머지 2만명은 각자 가정에서 자기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1년에 4번 넉달간 해외파견근무를 하면 됩니다. 솔로몬은 이 건축역사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을 내다보고 20여년에 걸친 오랜 기간 일하더라도 백성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행정의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늘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영적인 종들은 자칫 행정적인 지혜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도 모세는 백성들을 재판하기 위해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매일 격로에 시달리며 재판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장인 이드로는 백성들 중 지혜있는 사람을 세워서 일을 나눠하도록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 조언을 받아들였을 때 모세는 훨씬 더 안정감있게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행정적인 지혜를 등한시하면 팔로워들이 여러모로 고생하게 됩니다. 전요한 박사님은 행정적인 지혜가 탁월하여 수양회를 하든 무엇을 하든 사람들이 편안한 가운데 은혜를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할 때 행정적인 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정적인 면에서도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5절을 보면 솔로몬에게는 짐을 운반하는 사람이 무려 70,000명이나 있었습니다. 또 산에서 채석하는 사람이 80,000명이 있었습니다. 또 이들을 감독하는 감독자가 3,300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레바논에서 뗏목으로 목재를 보내오면 욥바에서 그 목재를 건져 올려 예루살렘까지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욥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56km의 가파르고 굴곡진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려 70,000명이나 되는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또 예루살렘 근처에 대규모 채석장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성전에 필요한 돌을 채석하였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이에 왕이 명령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성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왕은 특별히 크고 귀한 돌을 잘 채석하여 다듬어 성전의 기초석으로 놓도록 하였습니다. 이 돌은 7:10절에 나오는 솔로몬 왕궁의 기초석을 참조해 볼 때 가로 세로 4미터 정도 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큰 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정사각형으로 잘 다듬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레바논의 백향목 재목과 여러 돌들을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성전에 필요한 기초석과 백향목 재목과 여러 돌들은 수많은 이들은 수고와 헌신을 통해 준비되었음을 배우게 됩니다. 백향목의 경우 운반이 큰 문제였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레바논에서 욥바까지는 뗏목을 이용하여 비교적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으나 항구 욥바에서 해발 800미터 고지의 예루살렘까지 운반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운반을 위해 무려 70,000명이나 되는 많은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 뒤따랐습니다. 또한 성전의 기초석과 기타 여러 필요한 돌들이 준비되기 위해 80,000명이나 되는 많은 이들이 돌을 깎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성전의 본질적인 의미는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는 장소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과 화목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기 위하여 오랜 세월 수많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이 이 예수님이 오실 것을 전파하는 수고를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은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고난의 수고를 감당하셨습니다.



성전의 그 다음 의미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하였습니다. (벧전 2:4) 곧 예수님은 성전의 기초석이 되시고 우리 신자들은 그 위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돌처럼 연합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물을 볼 때 중간에 중요한 돌 하나가 빠지면 건물 전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고 심지어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겉보기에 중요해보이지 않는 돌이라 할지라도 전체 성전 편에서 보면 반드시 필요한 돌입니다. 이와같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전체 성전 편에서 볼 때 없어서는 안될, 반드시 있어야 성전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귀한 하나의 살아있는 돌과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돌이라니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그 돌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이르기 전 반드시 채석장에서 무수히 깨지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만약 그 돌이 살아있는 돌이기 때문에 말을 하면서 반항하며 깨지고 다듬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 돌은 성전에 연합될 수 없습니다. 돌편에서 보면 그와 같이 정과 망치를 맞으며 자기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큰 아픔과 고통의 과정입니다. 정을 맞으며 자신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갈 때 아픔 가운데 눈물 흘리지 않는 돌이 어디에 있을까요. 망치질을 당할 때 고통 가운데 아파하지 않는 돌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서 완벽하게 다듬어져 머릿돌되시며 산돌되신 예수님께 연합되어 있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다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시는 연단을 받고 정과 망치질을 당하여 자신의 모난 부분, 강한 인간성, 이기심, 정욕, 세상 소망이 다 떨어져 나간 연단된 돌, 다듬어진 돌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연단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 부분에 꼭 들어맞지 않아 쓸모없는 돌이 될 뻔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받았던 그 연단과 그로 인한 자기 부서짐, 자기 깨어짐이 얼마나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요, 귀한 시간들이었는지 깨닫게 되고 눈물로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가 당하는 삶의 고난과 어려움은 내 안에 있는 내가 깨어지는 시간, 내가 부서지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연단을 당할 때 내 자아를 상실한 것 같은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순물이 다 떨어져 나갈 때 정금같은 믿음만이 남게 되고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산 돌로 빚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연단을 감사함과 인내함으로 잘 받아 주님의 성전에 꼭 필요한 산 돌들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6: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저자는 성전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하기 이전에 이 성전 건축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그 역사적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성전 건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셨던 가나안 땅이 이제 완전히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처음 믿은 지 30년 후, 50년 후, 70년 후 언젠가는 드디어 하나님 나라 성전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돌로 완성될 것입니다.



성전의 규모는 길이 약 27미터, 넓이 약 9미터, 높이 약 13.5미터입니다. 6:2:3으로 길다란 모습입니다. 성전은 모든 백성이 다 모이는 대형 집회지가 아니라 제사장들만 들어가 제사드리는 곳이었으므로 그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성전 앞에는 성전의 넓이와 같은 크기의 현관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일종의 대기실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또 움푹 들어간 틀이 있는 재광창을 두었습니다. 성전 벽에는 연접하여 3개의 골방을 지었는데 3층으로 지어졌고 벽 위에 마루가 얹혀진 형태로 지어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간이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또 각 층마다 칸막이를 하여 골방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골방은 제사장들이 제물을 먹는 장소, 제물을 보관하는 장소, 옷을 갈아입는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각 층은 나사 모양의 사다리로 연결되어 오르내리도록 하였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성전은 이미 돌을 정확하게 다듬은 다음 가져왔기 때문에 성전 안에서는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철 연장은 사용할 때 큰 소리가 납니다. 또 전쟁시 무기의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하는 곳이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시끄러운 철 연장의 소리가 나서는 안됩니다. 장차 연단받은 산돌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시 사람을 다듬기 위해 나는 시끄러운 연장의 소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성품이 온전히 연단된 거룩한 성도들의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실존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철 연장의 소리가 나서는 안됩니다. 자기 중심성과 시기심, 정욕, 세상 욕심 등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전에 각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실하게 소감을 쓰는 가운데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이상에서 성전의 외부 공사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라 살면 그의 아버지 다윗에 주신 약속을 확실히 이룰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시점에서 솔로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을까요? 이는 자칫 솔로몬과 그의 백성들이 외적인 성전을 건축한 후 이제 할 일을 다 했다 하는 마음을 갖게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성전은 내적인 신앙의 모습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사를 살펴보아도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지은 후 내적인 참 신앙의 모습을 잃고 오히려 쇠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 교회도 대형화되면서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는 외적으로는 교회 부흥의 징조로 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교회 건물이 없어 허름한 곳에 세들어 있을 때가 더 영적으로 살아있었다고 간증하는 원로 목사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웅장한 건물보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참 신앙의 모습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성령으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우리도 외적으로 모임 가운데 사람의 숫자,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수, 풍성한 재정, 건물 등을 자랑하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사는 참 신앙의 모습입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가 없을 때 아무리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는 빨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뭔가 외적인 것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인생의 집을 반석 위가 아닌 모래 위에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신앙의 내면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참 신앙의 반석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세상의 종말이 오고 심판의 날이 올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 그 견고함이 온 천하에 드러나며 주님의 영원한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성전 내부는 돌로 된 벽을 백향목을 입혀 돌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백향목 위에 금을 입혔습니다. 바닥은 잣나무로 깔고 다시 금을 입혔습니다. 지성소는 가로 세로 높이 9미터 크기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언약궤 양편의 두 거대한 황금 그룹들은 그 크기가 각각 4.6미터 키에 날개폭이 4.6미터나 되었습니다. 성막 시절에 두 그룹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으나 솔로몬 성전에서 두 그룹은 앞을 보고 있으며 날개가 이 벽에서 저 벽 끝을 닿도록 되어있습니다. 큰 날개를 가진 그룹의 존재의미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 그룹 사이에는 십계명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 언약궤는 성전이 다 완성된 후 옮겨오게 됩니다. 성막 시절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나뉘었는데 솔로몬 성전은 벽의 오분의 일 크기만큼 감람나무로 만들고 금을 입혔으며 그룹과 종려와 핀꽃을 아로새긴 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소는 길이 18미터 높이 9미터로 되어 잇으며 이 안에는 금분향단, 진설병용 금탁자, 5개의 금촛대가 있었습니다. 분향단은 기도를 상징하며 진설병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이 됨을 의미하며 금촛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습니다. 활짝 핀 꽃은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시는 곳에 청년들이 활짝 핀 꽃처럼 피어나게 됩니다. 한편 성전 내부는 전부 금을 입혔습니다. 금은 태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며 그 안에 불순한 것이 없이 순결하며 몇 천 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고 그 원형이 보존됩니다. 이러한 금은 빛 되시며 그 안에 거짓이 없으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상징합니다. 성전은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째 되던 해 2월에 시작하여 11년 8월에 완공되었습니다. 총 7년이 걸렸으며 세밀한 부분까지 다윗의 설계도대로 정확하게 지어졌습니다.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13년에 걸쳐 자신의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왕궁의 규모는 길이 약 45미터, 넓이 약 22.5미터, 높이 약 13.5미터로 성전과 비교해보면 높이는 비슷하지만 길이와 넓이는 약 2배 정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은 7년동안 하고 자기가 살 왕궁은 13년에 걸쳐 건축한 것이 그의 마음이 성전건축보다 자기 집 건축에 더 가 있었다는 증거라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왕궁의 공사 규모가 성전에 비해 2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기간이 오래 걸렸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왕궁 한편에는 주랑, 곧 기둥들이 늘어선 현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곳을 재판소로 사용하였습니다. 재판소의 온 마루는 백향목으로 덮었고 그곳에 왕의 보좌를 만들었습니다. 역대기를 보면 솔로몬은 이곳을 왕의 주된 집무실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재판하여 판결하는 것을 왕의 가장 주된 업무로 생각했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거할 왕궁은 주랑 뒤에 있는 뜰에 세웠습니다. 솔로몬은 이집트의 공주 출신인 부인을 위해 자기 숙소와 똑같은 모양으로 궁을 하나 더 지었습니다. 왕궁의 건축 방식은 성전 건축 방식과 유사합니다. 미리 치수를 재어서 정확하게 다듬어 온 돌로 기초석을 놓고 벽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백향목으로 내부를 장식하였습니다.



저자는 다시 성전으로 돌아와 두로에서 데려온 놋쇠 대장장이 하람이 만든 놋기둥에 대한 설명합니다. 놋 기둥은 성전 입구에 있으며 높이가 약 2.5미터이고 기둥 머리에는 일곱 개의 바둑판 모양의 그물과 일곱 개의 사슬 모양의 고리로 장식하였습니다. 한 기둥의 이름은 야긴 곧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의미이고 다른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 곧 하나님께 힘이 있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으로 들어갈 때마다 시편 127:1절 곧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는 말씀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놋바다는 지름 5미터, 높이 2.5미터, 둘레 15미터의 놋으로 만든 물통입니다. 이곳에는 무려 44,000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었는데 제사장들이 씻을 때 사용하였습니다. 이 놋바다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네 무리로 나뉜 놋황소 12마리인데 이 황소들은 각각 사방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10개의 바퀴달린 놋받침대는 그 위에 각각 커다란 대야를 싣고 있었습니다. 그 대야에는 번제용 짐승의 각 부위를 씻기 위한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상에서 솔로몬은 그의 젊음과 열정을 다하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또 실제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건축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건축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 화목하는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건설하신 이 성전에 들어갈 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성전을 건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성전 건설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기초석이요 머릿돌과 같습니다. 이 기초석 위에 수많은 돌들이 올라서야 합니다. 그 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올라설 때 비로소 성전은 완성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받은 우리 성도들이 바로 그 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성전에 딱 맞는 아름답고 존귀한 돌이 되도록 우리 안에 있는 모난 부분, 자기 중심적인 부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성령의 정과 망치로 깨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다소간의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아름답게 빚어져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돌로 영원토록 사용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잘 받아 성전의 귀한 하나의 돌로 빚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