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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열왕기상 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열왕기상 17-18장)2018-12-03 10: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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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열왕기상 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말씀/ 열왕기상 17-18장

요절/ 열왕기상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오늘 말씀은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홀홀단신으로 그 시대와 맞서 싸운 위대한 믿음의 용사입니다. 그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의 용사들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17:1절을 보십시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그가 역사에 등장하던 때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당시 북이스라엘은 아합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이전 모든 왕들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더욱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은 철저한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그녀는 온 이스라엘에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는 전부 다 색출하여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그 시대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는지는 오늘날 북한 김정은 정권 아래에서 비밀리에 신앙생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이세벨은 마치 사탄의 화신처럼 여호와를 미워하고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 가운데 디셉 사람 엘리야가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그는 아합 왕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지 않으시는 이상 이스라엘에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는 건기입니다. 건기 기간에는 6개월간 한 방울의 비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0월 중순이 되어 우기가 되면 4월 중순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비를 내리는 신인 바알이 건기가 되면 죽음의 신인 모트에게 지하세계로 사로잡혀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알의 누이인 아낫 여신이 그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바알이 아내인 아세라와 합방하여 사랑을 나누면 비로소 비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비가 오지 않는 기간 바알이 부활하여 아세라와 사랑을 나누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음란한 의식을 행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이 비를 내려준다는 신앙이 가득한 시대 분위기 가운데 분연히 일어서서 비와 이슬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아합 왕에서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김정은 앞에 나타나 개인 신격화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은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악녀 이세벨이 있었다면 저 자를 당장 추포하라 명령함으로 엘리야는 체포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마 그때 이세벨은 볼 일이 있어서 그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말씀을 선포한 후 엘리야는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하나님은 악녀 이세벨이 반드시 그를 찾아 죽이려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비가 오지 않는 기간 숨어있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요단 앞 그릿 시냇가 근처에 은신해 있으면서 그 시냇물을 마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그를 먹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까마귀는 평소에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여 바위 틈같은 곳에 숨겨놓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흉년의 때에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열심히 찾아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엘리야에게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 두번씩 배달해 주었습니다.


본문의 저자는 까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흉년에 자기와 자기 새끼 먹을 것 구하기도 힘든데 말씀에 순종하여 매일 하루 두 번씩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통해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그 시대 사람들이 까마귀에게 배워야 함을 은연 중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아무 근심걱정없이 하나님을 믿고 잘 사는 까마귀를 보고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눅 12:24)


한편 이 기간 엘리야는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을까요? 엘리야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스마트폰도 없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무료함을 달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기간 하루하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알 숭배가 가득한 이 땅에 다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처럼 충만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다 마치면 까마귀가 그에게 아침식사를 배달해 주었습니다. 낮 시간에는 선배 선지자들의 삶이 기록된 성경을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또 까마귀가 식사를 배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날 하루 감사제목을 찾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기간은 엘리야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훈련을 받는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간절히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영적인 내공을 쌓는 기간이었습니다.


신앙인물 연구를 해 보면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받은 종들은 공통적으로 반드시 엘리야처럼 기도하는 훈련을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선포하고 난 후 박해자들을 피하여 은신하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루터의 내면은 강해졌고 그의 영성은 무르익어갔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다보면 뭔가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별로 할 일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님께서 희한하게 먹고 사는 문제는 잘 도와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아 지금이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하기 원하시는구나, 까마귀를 통해 주시는 것을 잘 먹고 힘을 내서 기도하기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때에 더욱 귀하게 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때가 오면 잘 분별하여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평소보다 더욱 깨어 기도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간이 지나 그릿 시냇가의 물마저 다 말랐습니다. 시냇가의 물이 말라가는 것은 더 이상 마실 물이 없으므로 엘리야에게 고통이 되었지만 비를 주관하는 신이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였습니다. 엘리야의 신앙은 고통 가운데서도 더욱 깊어져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 미리 명령해 두었으니 그에게 가서 음식을 얻어먹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뒤에 나오지만 과부는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자입니다. 돌봄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또 그녀는 바알 숭배가 가장 충만한 시돈에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 외국인입니다. 이런 그가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섬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그 과부도 순종하여 엘리야를 섬길 것입니다. 본문의 저자는 이를 통해 장차 본문을 읽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르밧 과부로부터 순종을 배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은연 중에 밝히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시돈에 이르니 과연 한 과부가 성문 앞에서 땔감에 쓸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마실 물을 한 그릇 떠다 주시오 청하였습니다. 그가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할 때 엘리야는 시장하니 밥도 한 상 차려 주시오 청하였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우리 집에 더 이상 쌀이 없소. 항아리에 쌀이 조금 남아있고 기름병에 참기름 조금 있는데 땔감을 주워 내 아들하고 마지막으로 밥을 지어 참기름에 비벼먹고 죽으려고 하고 있었소.”


엘리야는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먼저 그 쌀로 나를 위해 한 상 차려주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비가 올 때가 그 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하셨소.” 과부 편에서 보면 이 쌀은 세상을 하직하기 전 아들과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는 쌀이었습니다. 만약 엘리야의 말이 틀린다면 과부 입장에서는 너무도 원통한 일이었습니다. 과부가 엘리야의 말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과부는 믿음의 용기를 내어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엘리야의 말대로 정말 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과부는 이로 인해 믿음을 체험하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과부는 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고 엘리야를 극진히 섬겼습니다. 그가 차려준 밥상에는 엘리야를 향한 사랑과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집주인과 좋은 관계성 가운데 편안한 마음으로 집 주인의 2층 다락방에서 말씀연구와 기도에 전심전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증세가 점점 나빠지더니 그만 과부의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과부는 생떼같은 자식이 죽어 망연자실하였습니다. 남편잃고 과부로 사는 것도 서럽고 한이 되었는데 생떼같은 자식까지 죽으니 이제는 어찌살까 싶었습니다. 슬픔으로 눈에서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가슴은 바늘로 찔러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목자님으로 만나서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사르밧에서 제일 복받은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하나님이 너무 가까이 오셔서 젊은 날 지었던 자기 죄로 인해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과부가 구체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과부는 젊었을 때 지었던 그 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이제 아들의 죽음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녀에게 온 것이 복이 아니라 화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슬픔과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한편 엘리야도 망연자실한 마음은 과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과부에게 얹혀사는 것도 심히 미안한데 자기가 와서 아들이 죽었다고 하니 마음이 참 (전라도 말로) 거시기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일단 죽은 아들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시신을 자기가 거하는 다락방 침상에 누였습니다. 사실 그가 의사도 아니고 설령 의사라 하더라도 시신 앞에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엘리야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주로 조용히 묵상기도를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조용히 묵상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시신 위에 몸을 세 번 포개져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르짖어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과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마음, 하나님을 생명처럼 의지하는 마음이 절절히 담겨져 있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은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기도는 오랜 시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비몽사몽간에 졸면서 10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짧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마음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응답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깊은 사귐을 갖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좋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러한 기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기도제목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과부는 이 사건을 통해 엘리야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마침내 과부 한 사람의 인정을 받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사탄의 화신인 이세벨과 싸우고 그 시대 정신을 장악한 바알 숭배 사상과 싸우는 것은 결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야가 무슨 무술을 배우거나 어떤 능력을 갖추는데 시간을 쓰기보다, 다른 무엇보다 간절한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또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심정을 가진 목자가 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과부는 당시 그 사회에서 최고 약자에 속했습니다. 과부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도 대단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삶의 고난을 겪으면서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난받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과부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한 영혼의 목자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그 시대에 도전하는 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한 영혼의 목자가 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이는 한 영혼을 사랑하여 살리는 것과 그 시대에 도전하여 그 시대를 일깨우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마음에 그 나라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난받는 백성 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지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과 같습니다. 가장 소외된 백성 한 사람에 대한 뜨거운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가진 왕이라면 능히 한 나라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일을 하기 전에 여러모로 돌봄과 사랑이 필요한 한 영혼을 우리에게 맡겨주십니다. 그 영혼을 섬기는 과정에서 믿음을 배우고 심정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마침내 그 양으로부터 당신은 진정한 주님의 종이십니다. 당신은 진정한 나의 목자님이십니다라는 인정을 받기까지 배우고 성장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나의 돌봄이 필요한 한 영혼을 섬김으로 능히 큰 일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1절을 보십시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마침내 훈련의 때가 끝나고 바알에게 도전하는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아합은 총리대신 오바댜를 데리고 물 근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 그는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먹을 것을 공급했습니다. 매일 백 명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기 위해서 김밥 한줄씩만 준다 해도 한 끼에 20만원 이상 필요했습니다. 매일 최소한 40만원 이상 지출되었고 한 달이면 1,200만이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악녀 이세벨에게 발각되면 뼈도 못추릴 판이었습니다. 오바댜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에게 이세벨에게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뒤에 그가 엘리야에게 자기가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말을 매우 장황하게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볼 때 아마 그는 이세벨을 두려워하는 마음 49%,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51%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세벨 몰래 여호와의 종들을 돌봐주다가 이 악녀에게 걸려 온갖 고문을 당하고 펜치로 이를 하나씩 뽑히고 거꾸로 매달아 후춧가루가 가득한 물을 코에 들이붓는 악명높은 이세벨 고문을 당하는 것이 심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실제 그런 고문을 받는 사람을 보면 온 몸이 후덜거렸습니다. 그러나 한편 장차 하나님의 심판 대 앞에 섰을 때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주의 종들이 고문받고 죽어갈 때 너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너는 나보다 악녀 이세벨을 더 두려워했단 말이냐? 물으실 것이 두려웠습니다. 오바댜의 마음에 이세벨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 더 컸습니다. 조금의 차이이지만 이 조금의 차이가 그의 행동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여호와의 종들을 굴에 숨겨 섬겼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권력자들을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이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그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몹시 두렵지만 그보다 하나님을 조금 더 두려워할 때 지금 현재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부끄러움으로 기억될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에 오바댜와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아합과 길을 나누어 물 근원을 찾던 오바댜는 선지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알아보고 엎드려 인사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고하라 하였습니다. 오바댜는 엘리야 선지자의 특기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인데 혹시 사라지시면 내 목이 달아난다고, 내가 얼마나 여호와를 경외하여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숨기고 섬겼는가 라이프 테스티모니를 발표했습니다. 그의 간증을 다 들은 엘리야는 하나님께 맹세하고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마침내 엘리야를 만나 아합은 대뜸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은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이스라엘이 심한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아합에게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아합 왕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섬김으로 이런 고난이 찾아왔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아합은 그의 도전을 받아들여 바알의 선지자들을 갈멜 산에 집결시켰습니다. 또 이 엄청난 시대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갈멜 산에 모여들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추억이 있었습니다. 어렸을적 아버지로부터 이 하나님에 대해 듣고 배운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 드렸던 찬양의 곡조가 아직도 입가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나 악녀 이세벨이 이렇게 기세등등한 것을 볼 때 정말 바알이 참 신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회의도 가득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그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어느 때까지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이제 결단하라. 여호와가 만일 참 신이시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약 참 신이라면 그를 따르라.”


엘리야는 머뭇머뭇하지 말고 지금 이 시간 결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여호와가 참 신인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돈과 권력, 쾌락이 참 신인가 나는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 이 결단은 참으로 중대한 삶의 결단입니다. 여호와를 참 신으로 인정하고 섬기자니 세상의 돈과 부와 명예, 성공, 쾌락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건전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할 수 있으나 돈과 쾌락으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 쾌락으로 폭주하자니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할 때 뒤가 영 찜찜합니다. 둘 중 하나를 결단하는 것은 뒤가 없기 때문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치명적인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끝날까지 결단을 못하고 삶을 마치는 위험입니다. 머뭇머뭇하는 사람은 둘 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결코 하나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결국 끝까지 둘 다 붙잡고 있다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결단할 수 있는 기회가 매일 매순간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할 수 있는 기회의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임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는 누구를 참 신으로 섬길 것인가 물어보실 때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엘리야가 지금 이 시간 불을 내뿜으며 토해내는 이 말씀을 듣는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 마음에 인생을 건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누구를 참 신으로 섬길 것인가?” 오늘은 생각만 해보고 다음에 결단할게요. 안됩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질문 앞에 결단하고 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질문 앞에 결단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나의 참 신으로 섬기겠다고 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야는 송아지 둘을 가져와서 그 중 한 마리를 바알의 선지자들이 각을 떠 나무 위에 놓고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들게 그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라 하였습니다. 나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다라고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이에 그 동안 한 마디도 않고 침묵하던 백성들이 그 말이 옳다고 큰 소리로 일치하여 말하였습니다.


엘리야의 도전장을 받은 바알의 선지자들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더 큰 소리로 불러봐라. 그가 정말 신이라면 지금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잠시 외출 중인지 아니면 해외 출장을 갔는지 여행을 갔는지, 아니면 잠들어 있으니까 큰 소리로 깨워야 하는지…” 엘리야의 이 조롱은 참으로 담대한 믿음에서 나온 배포였습니다.


엘리야의 조롱을 듣고 자극받은 바알의 선지자들은 엘리야가 준 방향대로 더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오후 3시 저녁 소제 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미친 듯 날뛰었으나 여전히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내게로 가까이 오라 하였습니다. 백성이 가까이 오자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의 12 지파의 수대로 돌을 12개 취하였습니다. 그는 이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 주변으로 작은 도랑을 팠습니다. 그리고 항아리 네 통에 물을 가득 담아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도록 지시했습니다. 이것을 세 번 반복했습니다. 이에 온 제단에 물이 철철 흐르고 도랑에까지 물이 가득찼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엘리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이 백성들이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시는 분임을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이 기도는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렸을 때 바로 그 때 심정과 동일하였습니다.


이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은 엎드려 여호와 그가 하나님시다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전부 다 죽이도록 명하였습니다. 일견 이는 잔혹해보이지만 그들을 살려놓을 경우 다시 백성들의 마음을 바알에게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그러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큰 승리 이후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을 예고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바다쪽에 뭐가 있는지 보도록 하였습니다. 사환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반복했을 때 마침내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잠시 후 구름가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아합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내려갔습니다. 엘리야는 큰 승리를 체험하고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그에게 여호와의 능력이 임하여 그는 마차보다 빠른 속도로 아합 왕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이상에서 엘리야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기도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5:17-1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하나님은 엘리야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를 3년 반동안 훈련하셨습니다. 마침내 과부 한 사람의 인정을 받기까지 간절한 기도의 사람으로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 시대와 맞서 싸우는 믿음의 용사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각자도 먼저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예비하시고 연단하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먼저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대를 위해 기도하지만 동시에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