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글보기
제목2019년 창세기 11강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창세기 15-16장)2019-06-02 17:30:50
작성자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15장 - 16장
요절 / 창세기 15:5, 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제 1장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15장)
14장에서는 왕들의 전쟁이 나옵니다. 당시 중동지역의 패권국이었던 엘람왕 (지금의 이란)이 동맹국 군대를 이끌고 조공을 거부한 소돔등 다섯나라의 정벌에 나섰습니다. 엘람 동맹군은 쉽게 소돔연합군을 격파하고 모든 재물과 양식을 약탈했습니다. 그곳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전쟁포로가 되어서 잡혀갔습니다. 사랑하는 조카며 양인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맹렬한 목자의 분노가 불타 올랐습니다. 양을 물어간 사자를 향한 다윗의 분노가 그랬을 것입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평소 집에서 길리던 318명의 작은 병력을 끌고 아브람은 대군을 200 km 넘게 추격해갔습니다. 평양보다 더 먼 거리입니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과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야간 기습작전으로 대승을 거두고 롯과 빼앗긴 모든 것을 찾아 왔습니다. 목숨을 건 전쟁 끝에 롯을 구했지만 롯은 삼촌의 장막에 동거하려 하지 않고 편리한 도시생활을 사랑하여 또다시 소돔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The word of the Lord came. 하나님의 말씀에서 아브람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본문을 아브람의 입장에서 표현해 보겠습니다. 두려워하지말라 - 두렵습니다. 네 방패요 - 사방에서 날 죽이려고 합니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 (your very great reward)이니라 - 난 폭망했어요. 나의 상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좁고 어두운 장막에서 고개를 떨구고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엄청난 전리품을 손에 쥐었는데 살렘왕 멜기세덱이 축복하는 바람에 기분이 업 Up 되어서 십일조를 드리고 나머지는 소돔왕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아들처럼 같이 살고싶었던 롯도 또다시 떠나버렸습니다. 전쟁비용만 많이 쓰고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게다가 전에는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살아왔는데 전쟁으로 모든 사람에게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열강이 먹고 먹히는 소용돌이에서 몇백명의 군대로 살아남기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요행히 야간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백주에 수십만이 정공법으로 쳐들어 온다면 그때는 끝일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신앙생활 10년이 지났는데 이게 뭔가…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신다는 바람에 친척아비집을 떠났는데 그게 한 순간의 판단미쓰였습니다. 난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차라리 그때 떠나지 말고 그냥 주저 앉을 걸… 어쩐지 많이 익숙한 Situation 처럼 들립니다. 그 때 목자님이 그 벤치에서 성경공부 하자고 할때 따라 오지 말걸…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읽겠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말씀은 아브람의 두려움에 대한 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방패시면 그 누가 나를 해칠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시면 그 무엇이 내게 부족합니까?

그러나 아브람은 계산법이 달랐습니다. 하나님 말고 뭐좀 눈에 보이는 것을 달라고 손에 잡히는 것을 달라고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자매읽기.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What can you give me? 아브람의 속마음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할말은 해야겠어요. 땅의 티끌보다 많은 자손을 주신다하셨는데 어디 있어요. 자식도 다 때가 있는 법인데… 나이만 열살이나 더 먹어서 이제 85세가 되었는데… 딸자식 하나 없는 거잖아요. 양과 소가 많으면 뭐해요. 물려줄 사람이 없는데… 언제 뺏길지도 모르구요. 그는 덧붙여서 한마디 더합니다. 3절 자매읽기.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하나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약속만 하시고 안주시니 어쩌겠냐는 겁니다. 이제 그만 체념하고 똑똑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 사이에 엇박자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으실텐데… 하나님이 내 박자를 안 맞춰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출발했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기쁨은 잠시 물질문제 자녀문제가 찾아 옵니다. 물질문제에서 풀리는가 싶으면 아이들이 내마음 같지않게 엇나갑니다. 좀 여유있게 살면서 양들이 잘 자라고 자녀들이 모범적인 2세로 자라면 어때서 인생이 꼬이고 고달픕니다. 이만큼 따라 왔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팍팍 밀어 주실 만 한데 하나님이 내 박자를 안 맞춰 주십니다. 이 나이에 바닥을 치고 있으니 아브람의 투정이 120% 이해가 갑니다. 아니 아브람이 차라리 나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투정을 반발과 오기어린 대꾸라기보다 하나님과의 허심탄회한 기도로 받아 주셨습니다. 꾸짖지 않으시고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네 살과 피 DNA를 물려 받을 상속자 곧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작고 답답한 장막에서 밖으로 끌고 나가셨습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바라본 하늘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찬란한 별들이 쏟아질듯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별하나 아들하나 별둘 아들둘 별셋 딸셋 별넷 손자넷…. 너무나 많아서 셀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옛날에 그 많던 별들이 모두 어디로 갔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 있습니다. 단지 불빛과 대기의 공해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하늘에 별이 몇개나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의 별 수는 약1000억 개인데 우주에는 약 1000억 개가 넘는 은하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0을 22개 그려야 합니다.

광대무변한 창조주 하나님의 우주를 본 아브람의 영적 눈이 떠졌습니다. 이 찬란한 우주를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도우셨을 때  318명의 소수로 수만 대군을 대파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온갖 역경을 이기도록 도우시고 실수와 허물만 드렀는데도 오히려 그것들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6절 말씀 함께 읽기.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 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사실 장막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려워 떨 때나 지금이나 인간적인 형편이 달라진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손에 쥔것이  없습니다. 자손도 땅도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내면의 공포를 몰아 냈습니다. 믿음이 손해의식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차고 넘치게 주실 것을 믿을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소망이 넘쳤습니다.  믿음이 이 차이를 만듭니다. 믿느냐 안믿느냐의 차이는 똑같은 환경인데 두려움과 자기연민에 빠져 우느냐 어두운 방을 박차고 나와 도전과 소망의 삶을 사느냐 입니다. 내 생각을 떨쳐 버리고 하늘을 우러러 별을 바라보는 삶.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멋있지 않습니까? 이런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합니다. 또 믿을 때 의롭다 하십니다. 그것은 아브람의 불신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뜻입니다. 죄인이 아니면 의롭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Righteousness 는 Right relationship with God 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을 때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면 믿는다고 할때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첫째는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죄를 씻겨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은 덤으로 주시는 축복입니다.

제가 가끔 엉뚱한 데가 있습니다. 55세 되던 2003년 1월에 선교사로 미국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이 많은 나를 써주지 않으니 백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거금은 아니었지만 저축한 돈으로 생활하면서 여기저기 직장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와중에 동역자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에 갈 엄두를 못냈습니다. 수술비가 4만불이라고 했습니다. 거기다 아들 바울이까지 발에 물혹이 생겨 제거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이거는 만오천불 이라고 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빈털털이 되는 게 시간문제였습니다. 직장을 주시라고 매달렸지만 이력서 내는 곳마다 딱지를 맞았습니다. 십일조를 드려야하는데 버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드리냐고 좀 벌게 해주시라고 하나님께 부탁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Job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말라기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0) 한데 하나님을 시험하려해도 벌어야 시험할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어찌하던 축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분인것을 저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장차 직장을 잡으면 벌고 싶은 금액의 십일조를 먼저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백수가 마치 월급을 받는 것처럼 매래에 받을 월급의 십일조를 미리 드린 것입니다. 날마다 줄어들어가는 통장잔액을 보면 쉽지 않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음해에 보험회사에 세일즈맨으로 취직이 되었는데 미국 본토박이들을 제치고 단연 1등의 실적을 냈습니다. 4년간의 신입사원 기록을 깼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해 수입으로 정확히 내가 미리 드린 십일조의 열배를 주신 것입니다. 그 후 은행 문턱도 안 가본 사람을 미국은행의 지점장으로 세우시고 12년간 계속 주셨으니까 120배를 주신 것이죠. 두배를 미리 드렸더라면 대박이 났을 걸… 믿음이 작아서 120배 밖에 못 받았네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우리가 원하는 것 주시기를 늦추십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것이 모두 내것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자녀, 명예, 육체의 영광은 풀의 꽃같이 쇠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시는 보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죽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를 믿는자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요3:16) 상급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투정부리고 섭섭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과 구원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 주시고 함께 손 굳게 잡고 하나님 나라로 갈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음으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소유하기를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은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먼저 땅입니다. 하나님은 에굽의 강에서부터 큰강 유브라데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땅은 약 천년이 지난 훗날 솔로몬 왕때 이루어 졌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25배 쯤 됩니다. 그러나 당시 아브람은 땅 한평도 없이 떠도는 유목민이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눈을 빛내며 물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전에는 양도 소도 시시하더니 상속자 주실 것을 믿고나니 땅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9-12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을 확증시켜주시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흘려 언약식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왕들이 우호조약이나우정을 맹세할 때 피로써 그 약속을 굳게 했습니다.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입이 간질간질한  또 다른 요구사항이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후손은 어떻게 되는데요.. ?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13-17절 을 돌아가며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은 그때부터 630년 후의 일까지 구체적으로 아브람과 자손에게 일어날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증손자 요셉을 통해 후손 70명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그후 400년 만에 이스라엘을 200만 대민족으로 만드셔서 다시 아브람과 언약식을 치른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4000 여년이 지난 오늘 하늘의 뭇별과 같은 믿음의 후손들을 아브람은 하늘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 별 중에 우리가 여기 있네요.

정리하겠습니다. 아브람이 현실에 압도되어 회의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첫째. 말씀으로 위로하셨습니다. 둘째. 약속을 주셨습니다. 셋째. 비젼을 보이시고 믿음과 소망을 굳게하셨습니다.


제 2 장 아브람의 가정문제를 도우신 하나님 (16장)
1-3절. 하나님께서 뭇별과 같은 후손을 주시겠다고약속하셨지만 사래의 배는 불러오지 않았습니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미안하고 애를 갖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래는 아브람을 사랑했고 또 그가 얼마나 자식을 원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사래는 여인으로 하기 힘든 일이지만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합니다. 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어 후사문제를 해결하자고 아브람에게 귀띰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 하셨으니' (2) 라고 핑계를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결심은 기도나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운명주의와 불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브람도 사래의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그는 기도해야 했습니다. 사래의 말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조급했습니다. 또 내 몸에서 날 자라고 하셨지 사라의 몸이라고 특정하신 것은 아니지 않아? 합리화 하면서 하갈과 동침했습니다.  누군가의 비복음적인 충고나 지혜롭지 못한 권면을 따라 행동을 취했을지라도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주니까 먹었다 하더라도 책임은 아담에게 있습니다.

4-6절. 하갈이 임신했습니다. 어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기쁨보다 슬픔이 찾아 왔습니다. 자식을 가졌다고 종이 자식없는 여주인을 멸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임신한 무수리가 소생없는 중전마마를 무시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아마 아브람도 일조했을 것입니다. 임신한 배를 만지면서 원하는 걸 다 해주니 하갈이 간이 부었다고 할까요? 사래가 격노해서 아브람에게 따집니다.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래는 이 때도 하나님을 문제에 끌어 들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결정은 자기가 하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가정의 영적 위계질서를 세웁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갈이 견디지 못하여 사막길로 도망을 쳤습니다. 이게 왠 비극입니까? 만약에 임신한 하갈이 사막에서 목말라 죽기라도 한다면 아브람의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

7-9절. 하나님께서 아무 책임도 없는 가정불화에 개입하셨습니다. 목이 타 죽을 아이와 그어미에게 샘물을 주시고 ‘ 여종 하갈아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고 가정의 질서를 세워 주셨습니다. 10-16절. 아브람을 생각하사 하나님은 책임도 없으신 가정불화를 수습하시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잉태된 자식에게도 그 미래를 축복하십니다. 그 고통을 들으셨다는 뜻으로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하갈은 아브람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순종해서 여주인께로 돌아갔습니다. ‘브에라헤로이'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물)는 하갈의 신앙고백입니다.  택하신 종의 실수도 선으로 바꾸시고 그의 여종까지 책임을 지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한 분이십니까.

이스마엘은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 긴장과 불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의 반복되는 실수를 인하여 그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약점을 감싸시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어리석은 아브람과 사래를 도우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은 감사로 넘칩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어리석은 충고를 했던고. 나의 죄짐을 예수님의 피로 씻기시고 실수조차 선으로 바꾸시고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살도록 지금까지 동행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람을 도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참 목자상을 배웁니다. 기다리시고 참으시고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선물로 주시기까지 믿음을 키우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참 목자이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 손을 잡고 좁고 어두운 자기 방에서 나갑시다. 고개를 들어 악속의 별들을 봅시다. 맡기신 양들을 도울 때 먼저 순수하게 하나님 한분을 만나도록 도웁시다. 우리가 모두 약속의 말씀을 통해 절망을 딛고 소망 가운데 굳게 서는 하나님의 사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