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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창세기 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창세기 27:1-45)2019-07-29 0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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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세기 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말씀/ 창세기 27:1-45

요절/ 창세기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쌍동이 동생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비밀리에 공모하여 형 에서를 비열한 사기극으로 속이고 본래 형에게 가야 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그 내용이 매우 놀랍고 우리가 여기에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칫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의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각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운명론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각자의 나름대로의 도덕적인 관점이나 개인적인 생각의 관점에서 보기보다 성경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에서 어떤 부자의 전 재산을 관리하는 한 재산관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땅히 부자의 재산을 정직하게 잘 관리하고 또 안정적으로 이윤이 발생하도록 잘 경영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인의 재산을 함부로 운용했습니다.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고 장래가 불투명한 사업에 거금을 투자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은 그를 불러 경영보고를 하도록 하고 만약 문제가 있을 경우 그를 짜르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그는 내가 짤린 다음에 어떻게 먹고 살지 생각하고 아 이렇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렀습니다. 기름 백 말을 빚진 사람은 오십 말로 삭감해 주었습니다. 밀 백 석 빚진 사람에게는 팔십으로 삭감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짤린 후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그 재산 관리인이 지혜롭다고 칭찬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짤리기 전에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빚진 사람들의 빚을 절반 혹은 20% 삭감해 준 재산관리인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를 통해서 도대체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돈이나 부나 명예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잠시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나에게 그것을 내 임의대로 처분할 권한이 있는 동안 그것에 대한 소유권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가장 지혜로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도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잠시 소유하고 있는, 그 근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는 나의 능력이나 은사, 기술, 명예, 돈 등을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줄 때를 대비하여 살아있는 동안 그러한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결론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단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기보다 본문을 기록한 성경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히 변치 않을 귀한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했습니다. 이에 그는 죽기 전에 장자에게 축복을 하기 원했습니다. 이에 큰 아들 에서를 불러 들어 나가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그로 하여금 먹게 하고 먹은 후 마음껏 그를 축복하게 하라 말하였습니다.


이 축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과 모든 복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삭은 당시 질서에 따라 간발의 차이로 먼저 태어났지만 그래도 엄연히 장자인 형 에서에게 이 축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그의 아내 리브가는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의하면 장자의 축복은 동생인 야곱에게 가야 했습니다. 리브가는 이 문제를 놓고 오랜 기간 기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두 아들이 자라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과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런데 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 팔아버린 사건이었습니다. 둘째인 야곱을 통해 이 사건을 전해들은 리브가는 이 사건을 깊이 마음에 두며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26:34-35절을 보면 에서가 가나안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또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과 결혼하였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이 문제로 인해 마음에 크게 근심하였습니다. 그들이 느꼈을 충격과 당혹감은 오늘날로 치면 어떤 분이 한 청년을 그 교회의 후임 담임 목사님으로 세우고자 기도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불교 신자하고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당혹스럽고 놀라겠습니까! 이삭과 리브가가 느낀 당혹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래도 장자를 세우는 것이 맞지,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리브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 마음에 두고 새겨보면서 아무래도 동생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5-10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뭐든지 뭔가를 위해 마음을 드려 기도하면 그 사건과 결정적으로 관련된 중요한 정보가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려오기 마련입니다. 기도하던 리브가의 귀에 이삭과 에서 사이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에서가 사냥하려 나간 것을 확인한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얼른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면 그것으로 아버지를 위해 별미를 만들 터이니 아버지에게 드리고 아버지가 주는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리브가가 야곱에게 한 말은 상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라는 지시였고 방향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어느 순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형 에서 대신 동생을 세우는 것이 옳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남편 이삭은 원칙을 내세우며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녀는 남편을 속여 그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얻어내고자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본문 해석의 난관에 직면하게 됩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행위는 명백하게 사기와 기만에 해당합니다. 과연 성경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기와 기만의 방법을 써도 된다고 말씀하는 것인가, 목적이 정당하다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Do the ends justify the means?) 하는 의문을 가져옵니다. 누구든 본문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이르러 이러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론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부분 부분의 도덕적 판단보다 전체적인 성경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11-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야곱은 어머니가 계획한 수법이 과연 통할까 싶었습니다. 형 에서는 털이 많고 자기는 피부가 매끈매끈한데 아버지가 만져보고 모든 것이 들통나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지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저주는 내가 받을 터이니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지금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그저 시키는대로 하라고 야곱의 등을 떠밀이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하였고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의 옷 중 좋은 옷을 골라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별미와 떡을 야곱에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18-2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여기서부터는 야곱의 비범한 사기꾼 기질이 드러납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시켰다고는 하지만, 또 아버지의 눈이 침침하다고는 하지만 형의 옷을 입고 손과 목에 염소 털가죽을 걸친 후 아버지에게 담대하게 나아가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고 또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하는 질문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평소 정직을 신념으로 삼고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야곱은 이와같이 낯빛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아버지,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말하였습니다. 또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냥하였느냐” 하는 아버지의 질문에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습니다”하고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팔아가며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삭은 아무래도 미심쩍어 그를 한 번 만져보기 원했습니다. 이삭은 음성은 야곱의 음성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 하면서도 귀에 들려오는 소리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촉감을 더 믿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생 야곱을 형 에서로 여기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으로 그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복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또 만민이 그를 섬기고 열국이 그에게 굴복하며 그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어머니의 아들들이 그에게 굴복하며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복고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축복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계승하는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의 말씀을 계승하는 약속의 계승자요, 족장이요, 아브라함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편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고 난 후 에서가 사냥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깜짝 놀라 “너는 누구냐” 물으니 “그가 아, 아버지 누구긴요, 큰 아들 에서입니다.”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에서는 심히 크게 떨며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34-38절을 보십시오.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아버지의 말을 들은 에서는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말했습니다.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다시 말합니다.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가 나를 속인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 내게 빌 복을 남기지 않으셨습니까” 이삭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라” 에서는 다시 통곡하며 말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빌 복이 이것 하나 뿐입니까? 아버지 내게도 축복하소서 내게도 축복하소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9:21절에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우리가 만약 본문을 그냥 읽고 느끼는대로, 혹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해석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해석한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바울 사도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기 위하여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인물을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듯 만드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에서는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장차 받을 유업보다 지금 당장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것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였습니다. 곧 장자의 명분보다 한 그릇 팥죽을 맛있게 배불리 먹는 것을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에서와 같은 사람, 야곱과 같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야곱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뭔가 반응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임할 진노의 심판을 대비하라”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그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너희 죄를 진실하고 고백하고 회개하라”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의 이 부끄러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죄사함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묻어두고 갈 것인가 고민합니다. 또 지금 당장의 이 순간보다 앞으로 반드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합니다. 죽음의 때가 다가올 것을 생각하고 또 그 이후를 생각합니다. 그때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반면에 세상에는 안타깝게도 에서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에서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고 멸시합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학생들이 기본적인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셔도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서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학교에서 꼰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또 장차 다가올 영원한 세계에서 가치있는 것보다 지금 현재 이 순간 경험하며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더 가치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미리 주셨던 그 약속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하고 멸시했던 사람들은 그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겼던 사람들에게 다 돌아가게 됩니다. 나에게 주기로 예비되었던 복까지 그들에게 다 돌아가게 됩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사람들은 소리높여 울게 됩니다. 본문에서 슬퍼하며 소리높여 우는 에서의 대성통곡 소리는 장차 이 땅에서 에서와 같은 삶을 살던 이들이 마지막 날 뱉어낼 통곡의 소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아무리 대성통곡을 하여도 더 이상 복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2:16-17절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저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죄의 쾌락은 한 그릇 팥죽과도 같습니다. 그 한 그릇 팥죽을 먹으려고 영원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리는 자는 에서와 같이 망령(妄靈)된 자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마지막 날 아무리 슬퍼하고 후회하고 대성통곡을 하여도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또 한편 에서는 육신을 상징합니다. 같은 배에서 쌍동이로 나온 두 아들이 하나는 에서이고 하나는 야곱인 것처럼 같은 한 사람 안에도 야곱과 같이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에서와 같이 육신적이고 현세적이며 망령된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거나 물 좋은 곳으로 놀러가는 이 주일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것 자체가 우리 안에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귀한 마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에서와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한 그릇 팥죽을 사모한 에서처럼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는 죄의 쾌락,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더 사모하고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때마다 회개하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눈에 어른거리는 따끈하고 달콤한 팥죽보다 영원한 주님의 약속과 그 기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기업을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는 에서에게 이삭은 그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척박한 에돔 땅에서 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그의 아우를 섬길 것이며 그가 그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목에서 떨쳐버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에서의 후손이 이스라엘을 종처럼 섬기다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마침내 독립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그의 후손은 칼의 힘을 믿고 휘두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칼로 죽이려 했던 헤롯 왕이 바로 이 에서의 후예입니다.


한편 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 있도록 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여기는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내 안에 혹 에서와 같이 망령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살피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적 가치관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