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글보기
제목2019년 창세기 22강 `벧엘로 올라가라`(창세기 34-36장)2019-08-26 01:25:58
작성자

2019 창세기 22강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 창세기 34-36장

요절/ 창세기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오늘 말씀은 성경은 동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투영해주는 거울과 같은 책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고통과 재난, 허물과 죄가 있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재난과 죄로 인해 큰 실패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4:1-2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야곱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무사히 형 에서를 만난 후 거주한 땅은 신약 시대 때 사마리아에 해당하는 세겜 땅이었습니다. 야곱은 세겜 사람들의 족장을 통해 그 땅의 일부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날도 좋고 너무 심심하기도 하여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이며 그 땅의 추장인 세겜을 디나를 보고 자기 집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무력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집에 정말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집에 들어와서 구경도 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디나는 젊고 멋지게 생긴 오빠가 집에 들어오라고 하니 별 의심없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어느 순간 젊은 오빠는 야수로 변신하여 디나의 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본문에서 연연했다는 것은 오늘날 젊은이들 표현으로 하자면 완전히 꽂혔다는 뜻입니다. 세겜은 사고를 친 후 슬피 울고 있는 디나를 말로 위로하고 아버지에게 청하여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고를 친 후 그녀와 결혼함으로 내가 친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그의 태도를 보면 그래도 그가 책임감있는 청년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무력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하며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야 할 범죄에 해당합니다. 이는 그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더군다나 디나는 다른 부족의 딸이었으며 더더군다나 족장의 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범한 사고의 엄중함을 잘 모르고 있으며 젊은 추장으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조금도 기다릴 수 없고 지금 바로 가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아버지에게 자기가 친 사고를 해결해 주고 더 나아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달라고 철없는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였습니까? 17절을 보면 하몰은 디나를 야곱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 집에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 국가 간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외교관이 되면 가장 섬세하게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상대 국가의 주요 지도자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이는 수천년 전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흔히 우리는 수천년 전이면 모든 것이 원시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천년 전의 문서들을 발굴해서 해독하여 읽어보면 얼마나 정신세계의 수준이 높고 예절과 법도의 수준이 높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하몰은 이 사건 앞에서 우선 디나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야곱을 찾아가 정중히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혹 디나와 자기 아들이 결혼하도록 할 수 있는지 그 의사를 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몰은 사고 이후 디나를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디나를 자기 집에 데리고 있으므로 디나를 지렛대로 이용하여 협상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디나를 자기 집에 데리고 있다는 것은 협상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역할을 할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야곱은 하몰의 아들이 그의 딸 디나를 더렵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 그는 아버지로서 마땅히 반응을 보여야 했습니다. 분노하든지, 격렬한 항의를 하든지, 슬픔과 고통 가운데 옷을 찢든지 하여간 뭔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버지로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야곱은 잠잠하였습니다. 거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단은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을 하기 때문에 아들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 침묵을 지켰습니다. 얼핏 보면 그가 이 문제의 중대함을 생각하고 아들들이 다 돌아오면 가족회의를 열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방향을 잡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이 되어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차분하게 또 냉정하게 대응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디나의 아버지로서 당연히 가장 먼저 보여할 할 분노와 고통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2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에게 아버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의외로 그 아버지가 무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다른 아버지들에 비해 훌륭합니다. 아니 어떤 경우는 너무 훌륭합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의 원인은 많은 경우 ‘공감’이었습니다. 자녀들은 어떤 문제로 인해 아파합니다. 너무 아파서 마음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이 아픈 문제를 아버지에게 어렵게 용기를 내서 말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너무도 간단한 답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별로 싶어하지 않습니다. 사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자녀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아 정말 아프겠구나, 너가 그렇게 아픈 것이 정말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는 그 반응입니다. 그 반응을 통해서 자녀는 아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이 내가 이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구나, 아빠도 내가 이렇게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주시는구나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감을 통해서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서 디나 편에서 볼 때 또 디나와 같은 어머니인 레아를 통해 태어난 시므온과 레위 편에서 볼 때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기대되는 것은 아버지로서 디나가 당한 고통에 대한 공감이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옷을 잡아 뜯는 슬픔과 고통의 표현이었습니다. 딸을 안아주고 울어주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가 볼 때 아버지의 눈에서 그런 눈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보였습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하물과 세겜의 말은 매우 정중하고 경우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정황을 잘 생각해보면서 읽어보면 사실은 그들이 매우 무례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디나를 돌려보내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서 내 아들이 디나를 연연하여 하니 아내로 삼게 하라고 방향을 주고 있습니다. 사과도 하지 않고 결혼을 시키라고 말합니다. 대신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요구하는대로 다 주겠다고 말합니다.


31절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라고 아버지에게 항의하였습니다. 8-12절은 겉으로는 매우 정중한 말처럼 들리지만 시므온과 레위가 들을 때에는 너무도 무례하고 그들의 누이를 창녀처럼 대우하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경우 돈많은 집안의 아들이 딸을 욕되게 한 후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 한다면 어떻게 느낄까요? 아무리 황금만능주의의 현대 시대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액이 담긴 봉투를 던져버리고 먼저 가슴에서 나오는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 편에서 볼 때 그들은 먼저 사과를 해야 했으며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그 결정권은 야곱 집안 측에서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이 누이의 아버지로서 정당하게 항의할 것은 항의하고 사과받을 것은 사과받고 결정권을 뺏으려 하는 그 무례함에 대해서 정당한 항의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냉정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사로잡혀 더 이상 이 사건이 확대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과연 아버지의 마음에 우리 누이인 디나를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30절에서 야곱이 그들에게 한 말을 토대로 보면 시므온과 레위가 아버지에게서 느낀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가 느꼈던 정도로 그 정도로 무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곱도 사실 표현을 하지 않았을뿐 딸이 당한 수치와 아픔으로 인해 분노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에게서 낳은 딸이 그런 수치를 당하였는데 아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야곱의 잘못은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습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자녀들이 다 알아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함께 사는 가족이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과 실제적으로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그림 속의 만찬과도 같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인출하여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거액의 통장을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야곱은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므로 실제적으로 딸을 사랑하지 않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13-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시므온과 레위는 무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세겜 부족을 속여서 할례를 받도록 한 후 그들을 기습 공격하여 몰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18-24절에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속은 하몰은 그의 부족 사람들을 설득하여 할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25-29절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를 시행한지 제 삼일 가장 고통이 극에 달해있을 때 기습공격을 통해 세겜 부족의 모든 남자를 죽고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도 죽인 후 디나를 데려왔습니다. 또 그들의 재산과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아왔습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30절의 말씀은 야곱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를 통해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야곱이 참된 신앙인이라면 그들의 행위가 신앙적으로 얼마나 잘못된 행위인지를 먼저 말해야 했습니다. 신앙인으로 거짓말로 상대 부족을 속인 죄,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많은 무고한 생명을 살인한 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인지를 지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건으로 인해 그와 그의 집안이 당할 피해만을 말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세겜에 거주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얼마나 신앙적인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종합해 보면 야곱의 말은 어떤 신앙적인 원칙도 없고 도덕적인 기준도 없습니다. 이에 비해 야곱의 말에 대한 시므온과 레위의 답변은 오히려 나름대로 원칙과 기준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겜과 하몰이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하였으니 이에 대해 보응을 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딸 디나라고 표현하는대신 우리 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시니 우리가 오라비로서 그 역할을 대신 하였다고 항변합니다. 또 그들이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했다고 말합니다. 곧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 함으로 우리를 창녀를 통해 돈이나 벌려고 하는 포주같이 대우했으니 징벌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 역시 사과도 받지 않고 가해자가 주는 돈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려 한 아버지의 행동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 나름대로 어떤 이치와 원칙에 맞는 말을 하면 그 말 자체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야곱의 말은 어떤 원칙도 없고 공의로운 기준도 없이 그저 자신의 이익과 유익, 안전을 기준으로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가벼웠습니다. 이에 비해 시므온과 레위의 말은 누이를 사랑하는 오라비로서의 책임감,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나름대로 정당한 항의가 실려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말에 힘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말보다 더 무게가 있는 아들들의 말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가 가진 성실함과 인간적인 능력을 통해 상당한 재산과 세력을 가진 부족의 족장이 되어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전혀 자녀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업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전문인이 되었지만 가정 생활에 실패하여 이혼당하고 자녀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는 아버지가 되어 실제적으로는 매우 불행하고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없었다면 그는 이런 실패와 절망 가운데 비참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35: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에 큰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의 허물과 부족함, 약점으로 인해 실패감과 상실감 가운데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런 문제로 인해 절망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벧엘로 올라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벧엘에서 20년 전 그를 만나주시고 소망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주셨던 그 하나님을 다시 붙들고 의지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젊은 시절 야곱은 정처 없는 나그네 길 가운데 그와 함께 하여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벧엘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하여 서원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야곱의 신앙은 하나님 한 분을 간절히 의지하고 붙드는 순수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겜에서의 삶은 그러한 신앙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재산을 불리고 수를 불려 근방의 어떤 부족에도 꿀리지 않는 큰 부족이 되고 그 지역에서 정치적 발언권이 있는 세력을 갖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의 목표대로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디나 사건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가 젊은 날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던 그 서원 기도를 기억하고 붙들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붙들며 기도했던 그 마음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나의 부족함과 허물, 약점, 죄문제로 인해 큰 낭패와 실패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 신뢰와 지지와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그 아픔과 상실감이 너무 클 때가 있습니다. 너무 큰 실패를 하여 이제는 다시 재기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간절히 의지하며 기도했던 그 벧엘의 신앙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힌 이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 마음, 어린 아이처럼 어리고 연약하고 부족하오니 나를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떼쓰고 울며 매달려 기도하던 그 마음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경륜이 쌓일수록 어른의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내가 한 잘못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어른으로서 이 세상에서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재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으면 그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어른의 마인드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결국은 자포자기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위기의 때에 이러한 어른의 마인드를 버리고 신앙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가 자기를 도울 힘과 능력이 있고, 자기를 근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울고 떼쓰며 자기의 필요를 말하는 것처럼, 신앙적으로 어린 아이가 되어 하나님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수십년 전 벧엘에서 하나님을 어린 아이처럼 간절히 의지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나의 허물과 약점으로 인해 큰 실패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십니까?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큰 두려움 가운데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야곱이 기도하던 그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하나님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어린아이처럼 울며 하나님 한 분, 나의 아버지 한 분만을 의지하던 그 야곱의 신앙으로 올라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조금씩 조금씩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았을 때 마치 누가복음 15장에서 돼지 우리에서 구르던 탕자가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왔던 것처럼 야곱에게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안정과 성공만을 추구하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그 순수했던 벧엘의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단했던 것처럼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안 사람들 가운데 알게 모르게 섬기던 모든 이방 신상들을 다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의복을 바꾸어 입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지금까지 야곱이 자기의 유익과 감정을 좋아 말했을 때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야곱의 말을 무시하고 그를 무시했습니다. 저렇게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며 서로 수근대며 욕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에 기초한 말을 하였을 때 그의 말에 큰 영적인 무게와 힘이 실렸습니다. 사람들은 야곱의 말에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하여 그들이 섬기던 모든 이방 신상들과 부적처럼 사용하던 귀고리를 버렸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전부 모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벧엘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정황상 충분히 보복을 위해 그들을 추격하는 부족이 있을 법 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큰 두려움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에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섬기던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벧엘을 향하는 야곱과 그의 가족들의 발걸음은 참으로 힘찼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밝은 소망의 땅을 향해 찬양을 부르며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에서 나오는 소망과 찬양을 가슴에 가득 안고 가을학기 나의 벧엘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