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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창세기 24강 `꿈꾸는 자가 받는 연단`(창세기 39:1-41:57)2019-09-16 01: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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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세기 24강


꿈꾸는 자가 받는 연단


말씀/ 창세기 39:1-41:57

요절/ 창세기 39:8,9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오늘 말씀은 지난 말씀에 이어 요셉이 당하는 환난과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환난과 고난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39: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37장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은 하나님이 그를 많은 사람들 위에 높이시고 그를 위대하게 쓰시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받은 요셉은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는 꿈으로 인해 미움을 받았고 분노한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NIV 성경은 “Now Joseph had been taken down to Egypt.”로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 이집트는 남쪽에 위치해 있고 저지대이기 때문에 내려갔다(Down)는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려갔다는 것은 현재 요셉의 처지를 한 마디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받는 아들에서 노예의 신세로 내려갔습니다. 오늘날 고가의 브랜드와 같은 채색옷을 입던데서 냄새나는 노예의 옷을 입는 처지로 내려갔습니다. 요셉의 발에는 도망하지 못하도록 쇠고랑이 채워져있었습니다. 노예들을 실은 달구지 안에서 머나먼 남쪽으로 내려가며 변해가는 풍경들, 듣도보도 못한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의 눈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 라헬에게서 태어난 그의 동생 베냐민이 죽도록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설마 이 모든 것이 다 꿈이겠지, 자고 나면 내일 아침이면 꿈에서 깨어나겠지, 그 때 베냐민이 ‘형 빨리 일어나, 뭐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 추석준비해야지.’하고 나를 흔들어 깨우겠지. 그때 아 악몽을 꾸었구나 생각하겠지 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그를 깨우는 것은 동생 베냐민이 아니라 노예상의 기상 나팔 소리였습니다. 마침내 이집트 노예 시장에 도착한 요셉은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하는 일마다 결과가 좋고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된 비결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셨던 꿈을 붙들도록 도우셨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요셉과 함께 보디발의 집에 팔렸던 여러 노예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노예가 되었다는 현실에 압도되었습니다. 그 결과 노예의 마음과 노예의 정신(slave mentality)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말하자면 극단적으로 낮은 자존감, 늘 어떤 한계를 그어놓고 스스로를 그 한계 안에 가두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때로는 이런 자신을 스스로 불쌍하다고 여기며 자기 연민에 빠지고, 때로는 이런 별 볼 일 없는 자신을 스스로 경멸하고 멸시하였습니다. 이런 노예 멘탈을 가진 이들은 그저 주인이 시킨 일만 하고 기회만 생기면 그저 양지바른 곳에서 누워 쉬거나 졸았습니다.


이에 비해 요셉은 어떤 일을 맡았을 때 주인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시켰는지를 생각하였고 주인의 의도했던대로 일이 잘 되도록 머리와 마음을 다 써서 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요셉이 마음을 다해 하는 그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신약시대의 크리스챤들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꿈은 모든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는 꿈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세상을 왕처럼 다스리는 사람들이 되는 꿈입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받은 직후 당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셉처럼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높아졌던 자아가 죽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또한 삶의 현장에서 겸손함으로 옷입고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 중 어떤 이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명문대에 가서 이 사회의 엘리트가 되고 지도자가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대입 실패로 인해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여전히 학벌 사회인데 내 인생은 이제 이류 혹은 삼류가 되었다며 마음으로 자포자기하고 대학생활을 대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직장인들 가운데는 일년 연봉이 곧 내 실력이고 내 능력이고 자존심의 지표인데 연봉이 낮은 직장을 다닌다고 생각하는 경우 직장생활을 대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생활에서도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배우자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가정생활을 대충할 수 있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자녀역시 대충 키울 수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감정과 혈기로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의 경우 젊은 시절 위대한 선교사, 위대한 목자가 되리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노예가 된 요셉처럼 비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자칫 목자생활을 형식적으로 대충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잃어버린 삶이요, 그 결과 현실의 감옥에 매이고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 가운데 한 번뿐인 인생을 대충 사는 것입니다. 설령 기대에 못미치는 대학에 왔다 하더라도 기대에 못미치는 직장에 다닌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위대한 사람으로 빚으시고 나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귀하게 쓰실 것이라는 꿈을 내려놓아서는 안됩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교수님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경하고 수업을 잘 듣고 리포트를 잘 쓰고 대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삶이요, 형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때가 되면 그를 높여주십니다. 목자님들의 경우 설령 부족해 보이더라도 한 사람의 양을 마음을 다해 돌보는 것, 한 팀의 일대일을 마음을 다해 준비해서 감당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자생활이요, 형통한 목자생활임을 믿습니다.


한편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이런 요셉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그를 가정 총무로 삼고 그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집이 더욱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은 어머니 라헬을 닮아 꽃미남이었습니다. 꽃미남인데다 신앙으로 인해 마음까지 청결하고 강직하니 여인들이 보기에 너무 멋져 보였을 것입니다. 이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유혹은 요셉의 삶에 무서운 시험이 되었습니다. 현재 요셉의 나이가 20대 초중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년의 정욕이 끓어오를 때입니다. 더더군다나 요셉은 머나먼 객지에서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외롭고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보통 청년이라면 이런 무서운 시험과 유혹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못이기는 척 주인의 유혹에 넘어가 정욕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이 무서운 시험 앞에서 어떻게 대응하였습니까?


8-10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요셉이 한 말을 정리해보면 만약 그가 지금 보디발 여사의 말을 들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중 범죄(double crime)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이 누군가의 신뢰를 이용하여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입니다. 또한 남의 부인과 동침하여 간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이 그를 믿고 부인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맡긴 주인의 신뢰를 배신하고 그녀와 동침한다면 요셉은 각각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동시에 저지르게 되는 셈이 됩니다. 둘 중 하나만 범하여도 사형에 해당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 두 가지 중범죄를 동시에 범한다면 과연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무서운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될까요? 요셉은 그것을 생각할 때 이 유혹을 물리침으로 어떤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유혹에 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을 통해 특히 청년들이 청년의 정욕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이 범죄의 결과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섭고 중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한 전도유망한 정치인이 성범죄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한 방송인이 평소 자신이 그토록 비난했던 지하철에서 몰카찍는 행위를 자신이 하여서 평생토록 쌓아올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 이런 것이 다 드러나서 수치를 받고 형벌을 당할지라도 만약 하나님 앞에서 그 범죄를 진실되게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게 될 죄에 대한 용서함이 없는 형벌입니다.


잠언 7:21-23절은 청년의 정욕에 넘어진 젊은이가 받게 될 무서운 형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또한 25-27절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일단의 여대생들이 하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친구의 남친이 그 친구가 가장 친했던 여학생과 몰래 바람을 피웠다며 정말 역겹고 구역질이 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대화를 들으며 이 시대의 젊은이들도 그런 배신과 정욕의 범죄에 대해 역겹고 구역질을 느낀다는 사실이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하물며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어떨까요? 하나님은 신뢰한 이의 신뢰를 배신한 것과 정욕이 함께 오는 그런 범죄에 대해서 결단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 넣으심으로 그 죄에 대해 보응하여 주십니다. 우리 청년들이 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듣고 그 경고의 말씀을 기억함으로 청년의 정욕의 유혹과 시험 앞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분명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밝힘증이 있는 보디발 여사는 요셉의 의사를 무시하고 어느 날 아무도 없을 때 그의 옷을 잡고 침실로 그를 데려가려 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은 자기 옷을 벗고 그 장소를 벗어나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순간 보디발 여사는 견딜 수 없는 수모와 굴욕감을 참지 못하고 아악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그녀는 요셉에게 강간 미수범의 혐의를 덮어씌웠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0-23절을 보십시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자기를 믿어준 주인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디찬 감옥에 갇히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생활은 그에게 또다른 고난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비록 노예였지만 집안에 어떤 엘레강스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지금까지 생전 듣도보도 못한 욕설이 난무했습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쾌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주인의 부인을 강간하려 했다는 죄명을 뒤집어 쓴 요셉은 동료 죄수들로부터도 심한 굴욕과 놀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제 이 감옥에서 평생 썩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였습니다. 이 가운데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사실 그도 인간인 이상 어느 정도 크게 낙심하고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감옥에 갇힌 첫날부터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고 “주님 이 감옥에서 저를 또 어떻게 쓰시려고 하시나요?”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그는 우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퍼맨같은 믿음의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도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상당 기간 낙심하고 절망하고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가 아무 하는 일 없이 감옥에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만 보내는 상황이었다면 그는 더욱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우셨습니다. 곧 간수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옥중 사무를 다 그가 처리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당장 매일 매일 해야 할 일을 맡게 된 요셉은 그저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을 추스리고 맡겨진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보디발의 집안에서 훈련받으며 쌓았던 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옥중 사무의 전과정을 완전 자동화하고 체계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일이 착착 돌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 40장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힌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왕 앞에서 죄를 범하였습니다. 분노한 왕은 둘을 감옥에 가두라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은 곧 요셉이 갇혀서 사무 일을 보던 바로 그 감옥이었습니다. 친위대장은 요셉에게 명하여 그들의 수발을 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갇힌 지 여러 날이 지난 후였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요셉이 아침에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가득했습니다. 요셉은 왜 오늘은 근심 빛이 있는지 물어습니다. 그들은 꿈을 꾸었으나 해석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은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하였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꿈의 내용을 말하였는데 그의 앞에 포도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어 바로의 잔에 포도즙을 담아 드렸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였습니다. 요셉의 해석에 의하면 세 가지는 사흘이었습니다. 사흘 안에 바로가 그를 복직시킬 것입니다. 해석을 마친 요셉은 만약 해석대로 되면 그의 사정을 바로에게 말해주어 자기를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한편 길한 해석을 들은 떡굽는 관원장은 자기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머리에 있고 맨 윗광주리에 음식이 있었는데 새들이 그것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꿈을 들은 요셉은 세 광주리는 사흘이며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그를 나무에 매달리니 새들이 그의 고기를 뜯어먹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삼일 하루는 바로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신하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때 정확히 요셉이 꿈을 해석한 그대로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시키고 떡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이때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사정에 대해 탄원해달라는 그의 부탁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41장으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 2년 후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그 뒤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살진 소를 잡아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바로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식은 땀을 흘리다가 다시 잠이 든 바로는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그 가늘고 마른 이삭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다 삼켜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꿈에서 깬 바로는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다 불러 꿈을 해석하도록 하였으나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술맡은 관원장이 감옥에서 꿈을 해석하던 요셉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바로에게 아뢰었습니다. 바로는 즉시로 요셉을 그의 앞에 대령하도록 하였습니다. 감옥에 있던 요셉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말하였습니다. 이에 요셉은 해석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답하였습니다. 바로는 마른 침을 삼킨 후 그가 꾼 두 개의 꿈을 다 이야기하였습니다. 꿈이 내용을 들은 요셉은 거침없이 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가 꾼 두 개의 꿈은 사실 하나입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장차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일곱 좋은 암소는 7년 풍년을 의미하고 일곱 좋은 이삭도 칠년 풍년을 의미합니다. 반면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7년 흉년이고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7년 흉년입니다. 이제 곧 온 애굽 땅에 7년 동안 큰 풍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7년간 큰 흉년이 있을 것입니다. 그 흉년이 너무 심하여 이전의 풍년을 다 잊어버리고 온 땅이 기근으로 망할 것입니다. 바로가 꿈을 두 번 겹쳐 꾼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고 속히 시행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이제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총리로 세워 온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7년 풍년의 기간 동안 수확물의 20%를 세금으로 바치는 정책을 취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요셉의 해석을 들은 바로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말하고 요셉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그리고 그의 인장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버금수레에 그를 테웠습니다. 이와같이 요셉이 온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니 온 무리들이 모두 요셉 앞에 엎드렸습니다. 바로는 그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 곧 은밀한 것을 열어보이는 자라 짓고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 때 요셉의 나이 30세였습니다. 그는 즉각 온 애굽 땅을 순찰하였고 7년의 풍년의 기간동안 수확의 20%를 세금으로 거두었습니다. 그때 쌓아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많아 더 이상 셀 수가 없었습니다.


흉년이 들기 전 요셉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장남의 이름은 므낫세라 하였습니다. 이는 잊어버렸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둘째의 이름은 에브라임인데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드디어 요셉이 말했던 것처럼 7년 풍년이 그치고 7년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온 땅의 백성들은 먹을 양식을 구해 요셉 앞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한 가지 최종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도하셨음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두신 목표는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온 세상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뒤에 나오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형들의 죄문제를 다루고 회개하도록 돕는 일에 쓰십니다. 이것은 다음 강의에서 다루고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도록 인도하셨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로서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왕실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에서 일하는 가운데 왕실 일들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감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왕실 사람들의 사람됨됨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밟기 위해서 요셉은 노예가 되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밟아 나가는 가운데 요셉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의 마음이 낙심과 절망과 열등감과 슬픔으로 무너진다면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끝까지 완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그의 마음에 꿈을 주셨습니다. 그 꿈을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이 모든 과정 가운데 그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의 요셉은 신약시대의 모든 크리스챤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크리스챤의 가슴에 그가 예수님을 믿을 때 꿈을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크고 원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그가 이 모든 과정을 마칠 때 천사들도 부러워할 영광스러운 면류관과 주 예수와 함께 온 세상을 다스릴 왕권을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를 먼저 낮은 곳으로 보내시고 여러가지 연단과 훈련을 통해 그의 내면을 빚어나가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자꾸 낮아지는 것 같습니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기가 막힌 상황들이 찾아오는 것을 경험하십니까? 그때 그러한 상황이 아니면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십시오. 가장 좋지 못한 것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내세우며 그러한 상황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낮추실 때에는 낮아지십시오. 밑바닥을 기십시오. 그 가운데 오직 밑바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하나도 빼뜨리지 말고 다 배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밑바닥에 있을 때 각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그가 가진 숨은 야심과 욕망이 무엇인지 다 보이게 됩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사람이 가진 죄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됩니다. 그때 각 사람의 죄문제를 도울 수 있게 되고 그를 회개하도록 도와 의의 길로 인도하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귀하게 쓰고자 하시는 자를 반드시 먼저 밑바닥으로 낮아지도록 하십니다. 낮아질 때 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생각하고 인내함으로 그러한 연단을 잘 받아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