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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요한계시록 6강 `회개를 거부한 사람들 `(요한계시록 8:1-9:21)2019-11-25 0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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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요한계시록 6강

 

회개를 거부한 사람들

 

말씀/ 요한계시록 8:1-9:21

요절/ 요한계시록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제가 예전에 본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해외출국을 위해 공항을 갔는데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준비하지 못함으로 큰 낭패를 당한 분들의 경우입니다. 어떤 분은 여권을 깜빡 잊고 챙기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여권은 챙겼는데 여권 유효기간이 반드시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을 체크하지 못하여 큰 낭패를 당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제 3세계권을 여행하는데 반드시 받아야 하는 황열병 예방접종과 같은 기본접종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출국 직전 급하게 맞고 접종 후 증상인 고열, 근육통, 오한 등으로 고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은 말세지말의 때, 곧 성도들이 천국에 입성하기 전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말세지말의 때에 성도들이 가장 힘써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처럼 살다가 천국에 입성해야 할 그 때에 허둥지둥대거나 큰 낭패를 당하지 않고 미리 준비되어 평안한 마음으로 천국에 입성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서론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의 큰 줄기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가져오는 재앙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전부 있은 후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가 영원히 거할 새 예루살렘 성이 임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여섯 인을 떼었고 이제 일곱째 인을 떼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늘이 반 시간쯤 그러니까 30분 정도 고요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가만히 보니 그 고요한 시간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습니다.

 

이차 대전 때 연합군과 독일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한 전투 사이 간혹 서로 죽은 듯이 고요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요하다고 해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고요한 시간 다음 전투를 위해 치열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사를 살펴보면 전쟁 때의 고요한 적막과 같이 주님께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 기도에 잘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때는 주님께서 고요한 가운데 다음 하실 일을 준비하시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주님께는 반 시간, 즉 30분에 해당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우리 편에서 볼 때는 매우 긴 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이 기다림의 시간, 이 인내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기도하기를 중단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때가 가장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 기다림의 시간에 한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이 향로를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려 하였습니다. 향로에서 나오는 향기로운 연기가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천사는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았습니다. 이 때 땅에서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천사의 이 모습은 구약 시대 때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도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때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분향단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셨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그 시간 하늘을 향해 드려지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당시 유대 시대는 유대 역사상 가장 암울한 때였습니다. 나라를 잃고 로마 황제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그들이 로마 황제를 섬기도록 압력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시대 가운데 제사장 사가랴는 그 직무를 충성스럽게 이행하였고 제사 때에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향을 피워 분향하였습니다. 또 그곳에 모인 백성들은 그 시대를 위해 기도했고 메시야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둡고 암울한 시대 가운데 그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사가랴를 통해 메시야가 오실 것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일어났던 이러한 일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다시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죄가 가장 깊었을 때, 죄의 밤이 가장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그 때 다시 오실 준비를 하십니다. 이 준비는 주님의 다시 오실 것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사장 사가랴 때에도 제사에 기도로 동참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여 분향하는 곳으로 올라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유대인,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시대를 탓하며 낙심하는 마음, 체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자녀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시대에도 동일합니다.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죄의 밤이 깊은 때입니다. 인본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 자유주의의 목소리가 인류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하게 울려퍼지는 시대입니다. 복음은 구태의연하며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밤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어떤 성도들은 주님 앞에 나아와 사가랴처럼 주님 앞에 향기로운 기도를 올려드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성도들은 기도해보았자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며 낙심과 절망의 잠을 자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 계시록의 말씀은 이와같이 잠든 성도들에게 깨어서 일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따르릉 울리는 영적 알람 시계와 같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알람을 많이 이용하는데 아름다운 음악소리 알람도 있고 대포소리 같은 요란한 알람도 있습니다. 제 아들이 수능 준비를 하면서 제때 일어나지 않으면 욕을 퍼붓는 알람소리를 이용했습니다. 수능 강사가 경상도 사투리로 녹음한 것을 틀어주는 알람인데 빨리 인나라 소리지르고 화를 내고, 그래도 안일어나면 니 그 따위로 퍼자다가 인생 망한다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아이 씨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계시록은 어떻게 보면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를 일깨우는 영적 알람과 같은 말씀입니다. 들으면 정신이 번쩍번쩍 나고 바짝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를 겁을 주거나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지금 현재 어둔 시대 가운데도 낙심하지 않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계십니까? 참으로 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는 향기로운 향연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 주무시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계시록을 통해 주시는 영적 알람소리를 듣고 즉각 일어나 이 기도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8장과 9장은 나팔 소리가 울린 후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8:6-13절은 환경의 재난을 통한 사건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9장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핵전쟁이나 혜성 충돌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재난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예수님의 재림 직전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시대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8:7절을 보십시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이 말씀은 출애굽기 때 완악하고 교만한 바로를 심판하기 위해 온 애굽에 내렸던 우박 재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지구 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브라질에서는 아마존 개발을 공약한 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지난 2017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무려 서울시 면적의 16배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강대국들은 각자 자국의 이익을 따라 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지구는 점차 폐기능을 상실한 환자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도 기후가 점차 동남아 지역과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8-11절을 보십시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이 말씀 역시 나일 강의 젖줄이 피가 되게 하신 출애굽기의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이 말씀은 혜성 충돌같은 큰 환경적 재난으로 인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 없이도 이미 일본의 방사능 유출로 인해 태평양 바다가 오염될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생선요리를 마음놓고 먹을 수 없고 초밥은 입에 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돼지고기를 먹자니 돼지 무슨 열병이 염려가 되고, 그렇다고 소고기를 먹자니 광우병이 염려가 됩니다. 풀만 먹자 결심했는데 얼마 전 사람들이 몰래 공장 폐기물을 오랜기간 밭에 파묻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습니다. 발암 물질이 가득한 폐기물 위에 자란 벼에서 나온 쌀을 먹은 사람은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이 역시 출애굽기의 흑암재앙을 연상시킵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면 낙진으로 인해 하늘이 어두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아도 이미 미세 먼지로 인해 하늘은 뿌옇게 되었고 1년 중 3분의 일은 밖으로 외출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9:1-2절을 보십시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그는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무저갱이란 바닥이 없는 구덩이(bottomless pit)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위까지 올라가 하나님과 겨루려 했던 사탄은 저주를 받아 끝이 없는 구덩이로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것은 함께 무저갱에 던져진 타락한 천사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괴롭힐 권세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그 열쇠를 사용하여 무저갱을 여니 무저갱에서 큰 화덕의 연기같은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향기로운 향과 같은 반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는 혼돈과 절망,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악취나는 연기였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연기 가운데 황충이 땅 위로 나왔습니다. 황충은 메뚜기 떼를 가리킵니다. 출애굽기에서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애굽의 거의 모든 농작물이 해를 받은 것처럼 황충은 큰 해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때와 달리 이 황충은 땅의 풀이나 푸른 것, 수목을 해치는 대신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다만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할 수 있는데 그 괴롭게 함이 전갈이 사람을 쏠 때와 같습니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죽고 싶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7-10절을 보십시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황충의 모양이 어떠합니까? 먼저 황충은 전쟁을 위해 준비한 말 같습니다. 본문에서 황충은 온갖 악의 세력의 왕인 사탄이 다스리는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사복음에서 이들은 귀신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그들의 왕인 사탄은 그 이름이 히브리어로는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아볼루온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파괴자입니다. 귀신들은 전쟁을 선포한 사탄의 명을 받들어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가 전쟁을 준비한 말과 같다는 것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공격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전쟁시 적군은 상대방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마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나의 치명적인 단점을 찾아 치명적인 공격을 주저함 없이 가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사탄의 명을 받은 귀신은 바로 그러한 자세로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또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습니다. 이는 승리하여 금 면류관을 쓴 성도들을 흉내내어 자기들도 뭔가 이기고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귀신이 아무 생각없는 짐승처럼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이성을 가진 사람처럼 치밀한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여자의 머리털같은 머리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머리털은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사탄과 귀신의 말과 행동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음녀와 같이 고혹(蠱惑)적입니다. 蠱惑이라 할 때 고자를 보니까 벌레충자 세개에 그릇 명자로 되어 있습니다. 사탄과 귀신의 말과 행동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벌레들이 우글거립니다.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습니다. 사자의 이빨이 가진 악력은 강력하여 두꺼운 동물의 가죽을 뚫고 들어가 뼈까지 부스러뜨립니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탄과 귀신은 그가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진 사람을 갑자기 확 물어버립니다. 그러면 뼈가 부러집니다. 또 꼬리에는 전갈과 같은 쏘는 살이 있어 거기에 맞으면 다섯 달 동안 사경을 헤매며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청년 사역자로서 청년들을 접할 기회가 비교적 많은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잘 이해가 됩니다. 요즘 청년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유롭게 연애하고 자유롭게 성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장년 세대가 잘 알지 못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얼마 전 왕성하게 연예인 활동을 하던 이가 성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정에서 내내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 순간의 큰 실수가 많은 분께 큰 고통을 안겨준 사실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었다. 잠깐이라도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싶다. 제 자신이 너무나 밉고 스스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가 만약 전국이 널리 알려진 유명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혹 그가 당하는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유명했던만큼 그의 범죄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유명한 연예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SNS로 인해 요즘 청년들은 모두가 거의 연예인에 준하는 공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 좋지 않은 사건이나 소식에 연루되어 예컨대 헤어진 옛 연인에게서 SNS를 통한 공개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을 받으면 그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다섯 달 동안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공황 장애와 대인 기피증까지도 생깁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절대적인 기준없이 자유롭게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타부와 도덕, 규율, 예절, 예의, 윤리 등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이며 파괴하고 없애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싶은대로 원하는대로 살았습니다. 그러한 삶은 아름다운 머리털을 가진 것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 안에 전갈의 독과 같은 독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이들이 받는 화는 아직 둘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이 화로 인해 사람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0-21절을 보십시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이 이러한 재난을 허락하신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회개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의 낙을 누리고 살다가 지옥에 가는 것보다, 이 땅에서 많은 고통과 아픔을 당하더라도 이를 통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러한 재앙을 당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살인과 점치는 일과 음행과 도둑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한 청년은 성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와 함께 재판에 참석했는데 재판정에 들어가기 전 그는 두려워서 손을 벌벌 떨었습니다. 그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더니 우황청심원을 사들고 와서 먹었습니다. 이러한 재판의 과정이 거의 반년 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다행히 재판의 결과 법정에서 초범이라 하여 용서해 주었습니다. 국선 변호사 제도를 활용하여 비용도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가 이 사건을 계기로 확실히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는 약 1년 후 다시 동일한 사건으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훨씬 가혹한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수천만원이 넘는 비용도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번에야말로 그가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해 보니 여전히 회개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본문은 사람들이 죄로 인한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역자들을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도 한탄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절망인 것 같아 우울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죄를 죄로 깨닫고 자백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말세지말의 때에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이 회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날마다 자기 죄를 참회하고 회개하는 삶, 거룩한 삶을 살 때 이러한 영향력을 통해 회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도 선교사들이 먼저 회개하고, 몇몇 사람들이 숨은 부끄러운 죄를 회개했을 때 수많이 이들이 회개함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의지나 지혜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기가 막힌 방법으로 안되고 프로그램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말씀 앞에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내가 회개할 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화를 줄 수 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보실 때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집나갔던 탕자가 눈물흘리며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칠 때 아버지가 기쁨을 느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기뻐하십니다.

 

결론입니다.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은 기도와 회개하는 삶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