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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요한계시록 7강 `두 증인`(요한계시록 10:1-11:19)2019-12-02 01:12:05
작성자
요한계시록 7강


두 증인


말씀 요한계시록 10:1-11:19
요절 요한계시록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10장은 사도요한이 늦은 나이에 다시 선지자로 위임받는 내용입니다. 11장은 사도요한을 이어 ‘두 증인’이 마지막 시대를 섬기는 내용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이나 이단들은 두 증인을 어떤 특별한 사람들로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가 두 증인임을 알고 두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는 펴 놓은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그 천사가 천상적 존재임을 뜻합니다. 머리위에 있는 무지개는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취하는 분임을 뜻합니다. 천사의 얼굴이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다는 것은 그가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자임을 뜻합니다. 그 손에 펴 놓은 작은 두루마리는 종말시대 계시를 담은 책으로 공개될 것을 뜻합니다. 그의 오른 발은 바다를, 그의 왼 발은 땅을 밟고 있는 것은 그가 장대한 자요 그가 전할 메시지는 온 세상에 해당함을 뜻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 장대한 천사가 사자가 부르짖는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온 천하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큰 소리였습니다.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천둥이 소리를 내어 말했습니다. 그 소리는 장대한 천사의 소리에 대한 반응이며 호응이었습니다. 단지 쿵쾅거리지 않고 내용이 담긴 우렛소리였습니다. 요한이 그 소리를 기록하려고 했는데 하늘에서 “Off the record”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공개해서는 안 될 내용이거나 속히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에 굳이 기록할 필요가 없어서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그 장대한 천사는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심판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창조주께 드린 맹세의 내용은 지금 계시되는 종말사건들이 곧 시행될 것과 구체적으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 시행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주님은 사도요한에게 천사의 손에 펴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고 하였는데 천사는 아예 그것을 ‘먹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먹어버리라’는 것은 그 계시를 완전히 소화하여 자기 것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으로 될 일을 미리 알게 되면 기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전해야 할 괴로운 책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이 말씀은 사도요한을 다시 선지자요 예언자로 위임하시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젊은 날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90세입니다. 쉬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에게 다시 말씀을 전하라니요?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우리도 그동안 말씀을 전할만큼 전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다시 예언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소원을 받들어 때마다 모멘텀을 만들어 심령을 새롭게 하여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사도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 곧 잣대를 주시며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바깥마당은 내버려 두라고 하였습니다. 측량은 구별하고 보존하는 것을 의미하고 측량하지 않는 것은 버려두는 것을 뜻합니다. 에스겔 40장 이하에 보면 천사가 회복될 완전한 성전을 측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완전한 성전은 예수님입니다. 또 당시는 성전은 무너지고 없었습니다. 때문에 성전에서 경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주님은 자신 안에 거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고 그들을 보존하십니다. 특히 성전 안 마당은 측량되고 바깥마당은 버려졌습니다. 이것은 주님안에 깊이 거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귀히 여기고 보존하심을 뜻합니다. 성전 바깥마당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유린되는 데 이것은 세상이 불신자들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 기간은 42달입니다. 42달은 햇수로 3년 반이고 날짜로 하면 1260일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 그들이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예언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예언은 말씀을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1260일은 42달로 불신자들이 세상을 장악한 기간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두 증인이 예언을 하는 기간입니다. 여기서 두 증인은 누구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그들은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입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올리브 나무입니다. 스가랴서 4장에 보면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촛대는 불을 밝히는 기구로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정리하면, 두 증인은 복음전파에 힘쓰는 충성된 소수의 교회를 뜻합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일까요? 5,6절에서 두 증인을 보면 엘리야와 모세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종말시대에 모세와 엘리야가 강림하여 활동할 것을 말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다시 와서 활동하지 않습니다. 말라기서에도 주님이 오시기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하였지만 엘리야가 다시 온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세례요한이 왔고 예수님은 그가 오리라한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재림한 모세와 엘리야가 아닙니다. 세대주의자들이나 이단들은 감람나무에 해당하는 두 사람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2명의 특별한 사람이 활약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이단단체들은 모두 감람나무에 해당하는 두 사람을 다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증인은 문자적으로 두명이 아니라 소수의 충성된 증인들, 충성된 교회를 뜻합니다. 증인이 둘인 것은 율법에서 두 명이 증거할 때 그 증거가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둘이라는 것은 그들이 소수임을 뜻합니다. 세상은 다수의 불신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소수입니다. 그들은 골리앗 같은 세상에 대해 다윗처럼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나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둘씩 세상에 내보내졌습니다. 

그들은 어떤 자세로 말씀을 전합니까? 굵은 베옷을 입고 전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베옷은 사람이 죽거나 나라가 망할 때 입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심판받을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말씀을 전합니다. 

1260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2달이라고 할 수 있는 데요. 하루하루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1260일은 충분히 긴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끝이 납니다. 그러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면 안되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사용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두 증인에게 주님은 어떤 권능을 부여하셨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복음의 증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들을 삼켜버립니다. 여기서 불을 뿜는 것은 입의 권능 곧 말씀과 기도의 권능입니다. 그들은 말씀과 기도의 권능으로 원수들을 제압합니다. 그들은 하늘을 닫기도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도 합니다. 회개치 않는 이들에게 재앙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권능이 없으면 힘듭니다. 그러나 권능이 있으면 쉽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사역할 때 권능을 주셔 출애굽역사를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사역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복음의 증인들에게도 이런 권능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윤모세 목자님은 영국 개척시 이안 형제님이 예배에 커미트하도록 도우실 때, 그가 마침 팔이 아파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목자님이 기도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팔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 말에 순종하여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의 팔이 나았고 그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예배에 커미트하게 되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간 김동완 선교사도 가출한 동생 문제, 학점문제 대해 기도의 능력을 배우고 가장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기적적으로 동생을 찾고 학점도 4.0을 받았습니다. 그때 거인같은 그가 예배에 커미트하고 그날부터 제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연약하여 자기 하나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전파명령에 순종할 때 주님의 약속대로 여러 가지 표적들이 일어났고 그들이 전한 말씀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이방인들까지 믿어 순종시키는 권능 있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임에도 많은 권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냉전시대에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던 러시아의 문이 열리고 선교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내면의 열등감과 우울증이 있던 사람이 치유되어 송아지처럼 뛰며 기뻐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열등생이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우수한 논문을 쓰고 박사들이 되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던 이들도 해외에 나가서 교수목자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았던 불신가족들이 변화되었습니다. 

불을 뿜는 입의 권능은 말씀과 기도의 권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불을 품는 기도라는 복음전파자들로서 마땅히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1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불을 품는 기도란 그저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7절에도 중요한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과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 안에 거하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선교명령앞에 연약하였지만 전혀 기도에 힘쓰므로  능히 세계선교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약속하신 권능을 사용하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두 증인들이 최선을 다해 말씀을 증거하자 원수들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무저갱에서 짐승을 내보내 그들과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입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상권력을 뜻합니다. 다니엘서에서 짐승은 제국을 뜻했습니다. 그들은 크고 잔인하며 주위나라들을 집어 삼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당시상황에서는 로마가 짐승입니다. 그들은 복음전파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폭력과 무력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죽입니다. 

복음전파자들의 시체가 소돔, 애굽,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에 버려집니다. 여기서 소돔, 애굽,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 어디입니까? 소돔은 무법천지로서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사는 곳, 애굽은 나일 강이 있어서 하나님이 없어도 풍요롭게 사는 곳으로, 둘 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도  단지 골고다가 아니라 이 세상전체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이 그를 거부하고 죽였습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는 세상권세는 예수님처럼 두 증인을 죽입니다. 두 증인은 예수님처럼 죽임당합니다. 세상은 자신들을 향해 심판의 복음을 전하던 두 증인을 몹시 싫어했는데 그들이 죽자 아주 기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두 증인을 이긴 줄 알고 기뻐하며 승리를 자축합니다. 

그러나 삼일 반이 지나고 하나님의 생기가 그 두 증인에게 들어갑니다. 그러자 두 증인이 일어납니다. 하늘의 부름을 받아서 구름을 타고 승천합니다. 원수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 큰 지진이 나며 두 증인을 죽였던 성 곧 세상의 1/10이 무너지고 7000명이 죽습니다. 7000명이면 한 성의 인구치고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는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이상의 두 증인 환상은 마지막 시대에 충성된 교회의 활동과 그들이 당한 억압과 패배, 재기와 승리를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종말시대 참된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가를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교회는 복음의 등불, 진리의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즉 말씀을 어떻게든지 전해야 합니다.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닮았습니다. 그리스도처럼 고난당하고 그리스도처럼 부활합니다. 세대주의적 해석에 하나님의 인 맞는 14만 4천명은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바코드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인 표식으로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인됨 여부가 갈리겠습니까? 종말시대 구원받은 진정한 14만 4천은 누구입니까? 그 삶에 그리스도의 삶의 흔적과 패턴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에 그리스도를 닮음이 보일 때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마지막 시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부활이란 삶의 패턴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고난을 다 감당하셨지만 남기신 고난이 있습니다(골 1:24). 그것은 복음전파의 고난입니다. 복음전파사명은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육체적 순교를 하지 않아도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증인이란 말은 순교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전파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안의 교제에 머무르며 평안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등불을 말 아래나 평상아래에 두고 사는 것으로 크나큰 직무유기입니다. 또 그렇게 살 때 우리에게 화가 있습니다(고전 9:16). 

왜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전파사명을 주셔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까? 그 괴로움이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닮게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전파 명령을 회피하면 우리는 결코 배척받으신 예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전파를 하지 않으면 쓰디쓴 고난이 없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을 닮음도 없을 것이며 예수님의 승리와 영광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전파를 위해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우리의 복음증거를 마치게 하는 것은 오직 죽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 마치는 날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후에 24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송합니다. 그 내용은 드디어 세상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이 세세토록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회복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십니다. 천군천사들과 24 장로들은 드디어 그때가 왔음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며 감추어졌던 언약궤가 등장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임을 뜻합니다.

저는 작년 이 맘때에 매주 목요일 밤 혼자 캠퍼스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혼자 하다가 요한 형제님이 변화되어 같이 가서 둘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실 이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랑하고 함께 전도하던 형제님을 잃고 마음이 상하여 복음역사에 대한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마냥 그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밤에 야간 전도를 했습니다. 요한 형제님이 두 증인처럼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혼자 로스쿨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대를 받았습니다. 그날 센터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불신자들에게도 박대를 받아 힘들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버림받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속으로 거의 울면서 학교를 걷고 있는 데 그때 한 전화가 왔습니다. 지방에 있던 로스쿨 출신 양이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찾아뵙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그 양이 찾아와서 제게 밥을 사주고 말씀을 공부하고 갔습니다. 이분이 서울에 집을 얻었고 내년 초에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제가 복음전파를 통해서 배척받으신 예수님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저를 위로해주시는 살아계신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야간 전도를 6개월쯤 하고 2019학번을 초청하는 신입생전도에 나갔습니다. 그때 단 1명에게 전도했는데 하나님은 양을 붙여주셔서 한 해 동안 신실하게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최근 느헤미야 일용할 양식을 통해 밤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너진 성을 돌아본 느헤미야를 배우고자 다시 야간 전도를 시작했고 10여명의 목자들이 참여해주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좋은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학과에 들어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2연속 학사경고를 받고 지금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방황하는 잃어버린 별과 같은 형제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계속 말을 해주기를 바랐고 금주에 세 번 동아리 방에 방문하고 황재민 목자님과 성경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먼저 수고하고 헌신한 동역자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대외적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죽는 날까지 불신자 전도를 감당하며 배척받으신 주님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많이 수고했지만, 다시 일어나 ‘두 증인’의 삶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