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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신년 제 2강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이사야 43:1-21) 2020-01-06 01: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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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년 2강 메시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 / 이사야 43:1-21

요절 /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신년쾌락! 2020년이 밝았습니다. 기대감은 새 해를 시작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대감이 없다면 새해는 어떤 의욕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기대감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대감은 하나님이 일하실 것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우리가 이시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지를 배우는 가운데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은 구약교회로 야곱이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조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먼저 알고 온 세상에 전파하기위해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이 현재 어떤 두려움가운데 있습니까? 자기 민족이 멸절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한지 70년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 절반인 35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는 데 처음에 독립운동하던 이들중 변절자들이 생긴 이유가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제국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는 데 왜냐하면 바벨론 제국은 과거 애굽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러낸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수한 어린 양의 피와 애굽 사람들을 희생시켜 구원해 내셨고 자기의 것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비록 아주 초라하고 약해졌지만 하나님은 자기 것인 그들을 결코 잊지 않고 계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기서 물과 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고난과 시련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련은 그 백성이 망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그 백성을 연단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련의 때에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나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실 것이다.” 이런 절대적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엄청난 광풍을 만났습니다. 광풍은 태풍을 넘어선 것으로 왜 부는 지, 어디로 부는 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주님,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그들은 수장되어 물귀신이 될 것같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던 광풍같은 시련을 만난 분들이 있습니다. 시련의 홍수가 나를 삼키고, 시련의 불꽃이 나를 다 살라버릴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다 망하게 할 것같은 두려움을 심습니다. 그러나 이러할 때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절대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근거없는 확신이 아닙니다. 3a절을 보십시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그 근거는 첫째로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엘로힘과 다르게 초월자가 아니라 인생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사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분입니다. 이 하나님은 그 백성을 책임지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요 구원자이십니다. 거룩한 분이란 구별된 분이란 뜻으로 특별히 우상과 다른 분이란 뜻입니다. 우상은 열심히 섬겨도 목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과 다르게 그 백성이 곤경에 처할 때 실제로 건져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십니까? 3b4절을 보십시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이 말씀은 고레스가 애급과 구스와 스바 정복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귀환시켜 예루살렘을 제국의 전진기지로 쓰고자 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을 위해서 당시 세 나라가 희생된 셈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랑하셔서 큰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그들을 구원해 내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아주 작고 초라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배롭고 존귀합니다. 데가볼리 지역에 한 귀신들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도, 집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만 일으키는 민폐남이었습니다.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처럼 보였습니다. 때로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여 자기 몸을 돌로 찧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쓸모없는 청년을 살리기위해 돼지 2000 마리(10)를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같으면 이 돼지만도 못한 놈, 죽어버려라욕하고 저주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온전하고 쓸모있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자기같은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가슴이 따뜻한 목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6.25 때 한 미군이 유난히도 추운 겨울 중공군에 밀려 급히 후퇴하다가 다리밑에서 아기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벌거벗은 여인이 자기의 옷을 다 벗어 아이를 감싸고 자신은 얼어죽어 있었습니다. 그 미군은 이 아이를 입양하여 미국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었을 때 그를 데리고 한국에 와서 그 다리 밑으로 가서 그의 엄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때 청년이 울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그 때 얼마나 추우셨나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은 이보다 더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때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안에서 우리의 가치를 재확인하여 자신을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7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살리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동서남북에서 그 백성들을 모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각 지방에 그 백성을 내놓으라 하시면 각 지방이 그들을 내놓습니다. 이스라엘의 귀환은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때 이루어지는 데 페르시아 제국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도의 광대한 나라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모으십니다. 하나님은 UBF 교회의 경우 팔도에서 모으시고 세계 233 개국에서 모아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계십니다. 교회는 구약교회든 신약교회든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그 백성을 모으십니다. 우리가 목자가 양을 모은다는 생각이전에 하나님이 그 백성을 모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의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부름받기 전 그들은 바벨론 왕의 영광을 위해 살거나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팔도의 젊은이들, 세계의 젊은이들이 무의미하고 헛된 삶을 살지 않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그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 누가 이 일을 알려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열방과 그 우상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과 과거의 일에 대해서 말해줄 수 없습니다. 우상들은 자신들의 증인을 세워 자신의 옳음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알고 믿고 증거하도록 함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2a를 보십시오.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계시와 구원과 표적입니다. 하나님이 참되고 유일한 신이심을 현현(顯現)과 말씀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또한 그와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어려울 때마다 구원해 주시며 이적(異蹟)들을 행하사 자신이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열방가운데 유일하신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의 영적 눈과 귀를 막은 것은 나라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였습니다. 그들중 대다수는 그것을 보면서 불신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어?”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는 불신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의 종이 되고 성전을 부적처럼 여기는 그들을 징계하심으로 그들을 회개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증인의 중요한 조건은 어떤 가운데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우주인은 우주여행을 하고 온 후 우주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고 말했고 러시아의 우주인은 어디를 봐도 신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안목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봅니까? 불신의 눈으로 봅니까? 과거에는 분명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좀 흐릿합니까? 영적인 백내장이 끼면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불신의 눈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자기가 불행해집니다. 불신의 눈을 가지면 그는 결국 회의와 방황가운데 살다가 열매없는 사람들로 살다 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부터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영적 안목을 기르기를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성은 철옹성과 같았기에 고관대작들은 뱃놀이를 하며 안이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메대-페르시아 연합군의 수장 고레스를 이곳에 보내사 함락시키십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출애급 때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구원하셨는 지에 대한 회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최대의 장애물인 홍해바다를 가르셨습니다. 바다가운데 지름 길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세계최강의 애굽군대를 소멸하는 등불처럼 만드셨습니다. 이를 보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막을 장애물은 없습니다.

 

이렇게 과거 구원역사를 언급하신 하나님은 이제 뭐라고 하십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이렇게 말씀하심은 옛날 일을 초라하고 무색케 하는 놀라운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보라라는 말은 감탄사입니다. 정말 주목하고 감탄할 말한 새 일을 하나님이 이제 행하십니다. 그것은 광야와 사막에 길과 강을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어리석고 하챦은 동물들마저도 감탄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찬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새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출바벨론입니다. 출바벨론의 장애물은 광야와 사막입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1500km는 광야이고 사막입니다. 이곳에 길을 내고 강을 낸다는 것은 그 출바벨론이 순적하고 여유있게 이루어진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출바벨론은 출애굽에 비해 규모가 훨씬 적습니다. 그러니 규모로만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놀랍습니다. 출애굽은 바로왕이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고자 해서 끝까지 추격을 하는 가운데 정말 천신만고끝에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기억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바벨론도 그런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바벨론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그렇게 힘들게 탈출할 바에는 차라리 눌러앉아 사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바벨론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고레스 왕이 자신의 정복계획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포로들의 귀환을 추진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왕이 물질과 비자와 필요한 것들을 후원합니다. 왕이 추격하는 게 아니라 선도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가고자하는 마음만 가지면 큰 어려움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출바벨론은 예상치 못한 방식, 상식파괴, 역발상으로 이루어지기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사실상 본문이 말하는 새 일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는 너무나 놀랍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놀라운 일입니다. 감탄하고 또 감탄하고 칭송하고 또 칭송할 일입니다(15:3).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능력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의를 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인간의 의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의만 붙드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구원패턴이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는 천사들도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놀라워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감격하며 보라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홍해보다 더 넓어 어떤 인간도 건널 수 없었던 죄와 사망의 바다가 갈라지고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10:20).

 

이상에서 우리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과거에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새 일을 행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가시적으로 아무 일도 안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죄의 찌꺼기가 아직 빠지지 않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궁무진한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때문에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역발상으로, 상식파괴적으로 고정관념과 전통을 넘어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존중하고 불들지만 또 거기에 매여서도 안됩니다. 새로운 가죽부대가 되어 하나님이 이뤄 가시는 파격적인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지난 60년동안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해 학생들이 변화되고 제자로 성장하여 목자가 되고 선교사로 나가는 역사는 우리는 당연히 여겼지만 객관적으로 정말 놀라운 일들이었습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14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철옹성같던 러시아가 문을 열고 러시아선교가 이루어진 것도 놀랍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과거처럼 왕성한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신 것입니까?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징계도 중요한 하나님의 일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노역의 때가 차고 충분히 회개한 후에 하나님께서 출바벨론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가 더 회개하고 성장해야 하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회개하면 강력하게 역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현재적으로 어떻게 일하시는지 봐야 합니다. 영적인 맹인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깊은 어둠과 절망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일하고 계십니까?

 

그동안 2세들을 잘 돌보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았는 데 2세들을 영육간에 잘 키워서 훌륭한 주님의 종이요 신앙의 계승자가 되도록 하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같습니다. 이미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이렇게 2세들을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로 키우는 본을 보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10,11일에 하는 종로센터 2세 대학생 MT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기도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양들을 섬기기가 쉽지 않는데 너무 양만 잡으러 다니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4차산업시대에는 플랫품선교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쩔수없이 필요에 의해 올 수밖에 없는 곳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시대에 양들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득템합니다. 그러면에서 우리가 먼저 양들이 올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메시지나 찬양이나 예배도 수준높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정말 수준있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동역자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감동이 될 정도로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양들이 실망하고 왔다가도 다 떠나게 됩니다.

 

과거 저의 목자님은 캠퍼스에 별로 가지 않았지만 항상 양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은혜받은 양이 친구를 데려오고, 그 친구가 동생을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생중에 한 사람이 과친구를 데려오고 그 과친구가 학원에서 한 자매님을 데려왔고 그 자매님이 많은 목자들을 세웠습니다. 또 동생중에 다른 사람은 제자양성을 했습니다. 동생이 총 3명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실력있는 목자, 신뢰할 수 있는 목자가 되는 것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력있는 목자, 신뢰할만한 목자들이 되면 하나님이 양을 붙여주실 수 있습니다. 떼로 양을 몰아다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도를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사정상 낮에 캠퍼스에 가는 것이 어렵다면 밤에 갈 수 있습니다. 낮에는 경계심으로 우리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을 수 있지만 밤에는 오히려 자유롭게 전도할 수도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목자생활을 힘들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어떤 고레스를 사용하여, 어떻게 일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는 항상 방법이 있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안에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2020년을 기대감가운데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