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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요한계시록 10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요한계시록 15:1-16:21)2020-01-28 02: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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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요한계시록 10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


말씀/ 요한계시록 15~16장

요절/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시록 14장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탄을 경배하는 악의 세력이 받을 최후의 심판에 대해 개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받을 심판은 15~20장에 걸쳐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 가운데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고 자기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15~16장은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받음으로 악의 세력이 받을 심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러한 심판 가운데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바른 신앙의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15장을 보겠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계시록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노는 먼저 일곱 인, 다음으로 일곱 나팔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 일곱 재앙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마지막 재앙입니다. 이 마지막 재앙이 끝나면 더 이상 재앙은 없습니다.


출애굽기에는 10가지 재앙이 나옵니다. 첫째 재앙은 이집트의 젖줄이요 나일 강의 여신이 거하는 그 나일 강이 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재앙은 다산의 신을 상징하는 개구리가 온 이집트와 바로의 침상에까지 기어올라온 것이었습니다. 셋째 재앙은 이 재앙, 넷째 재앙은 파리 재앙, 다섯 째 재앙은 가축의 죽음, 여섯 째 재앙은 악성 종기 재앙, 일곱 째 재앙은 우박 재앙, 여덟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 아홉째 재앙은 바로가 태양신의 아들인데 바로 그 태양이 빛을 잃고 캄캄해지는 흑암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 아홉가지 재앙을 받고도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그 마지막 재앙은 바로 바로의 큰 아들을 포함하여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는 장자 재앙입니다. 이 마지막 재앙을 받고서야 바로는 비로소 항복을 선언합니다.


이 하나님은 말세의 때에 다시 한 번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출애굽 때에는 10개의 재앙이었는데 종말의 때의 재앙은 한 세트에 일곱 재앙 씩 총 3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곱 재앙이 마지막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2~4절은 짐승의 탄압과 박해를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이 일 후 사도 요한이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이 성전은 하늘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 일곱 천사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어 이전에 언급되었던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천사들에게 주었습니다. 이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하여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이 모습은 출애굽기에 기록된 성막과 그 성막 안에서 세마포 옷을 입고 봉사하던 제사장들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출애굽기 40:34~3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15장은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꼼짝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 때 바로는 온갖 재앙을 당하고도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어떤 일이 있어도 태양신의 아들로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개구리가 침상에 올라오고 국가 경제가 망하고 수도와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도 지독하게 버텼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일격, 곧 그의 장자와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었을 때 그는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은 바로처럼 완악하고 강해 보입니다. SNS 세계에 들어가보면 기독교와 하나님을 싸잡아서 욕하고 비난하는 세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곳에 들어가 기독교와 하나님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면 감당할 수 없는 악성 댓글이 무수하게 달립니다. 물론 교회가 잘못함으로 비난받을만한 근거를 만들어주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에 대한 상식적이고 건강한 비판을 넘어서는, 악의가 가득한 비난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저의 큰 아들 에스라는 고등학교 시절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욕설로 하나님과 교회를 모독하는 급우들로 인해 많은 마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이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할 때 마음이 위축되기 쉽습니다. 또 그들의 눈치를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대적하고 비방하는 이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원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이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둘째,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입니다. 하늘 성전에는 천사들이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은 거룩하고 성결한 마음과 행실을 의미합니다. 금 띠는 고귀한 가치를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불가마에 일곱 번 단련하고 제련한 정금처럼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가만히 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네 생물 중 하나로부터 일곱 대접을 받아 16장을 보면 그 대접을 땅에 쏟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와같이 성전에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이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연기가 가득찼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증거 장막은 하늘 성전을 본 따 만들어졌습니다. 하늘 성전에서는 천사들이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땅에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늘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성전에 연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구름이 성막을 덮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하늘 성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섬기는 이들은 마치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과 같습니다. 천사들이 말할 것입니다. “어, 나랑 하는 일이 똑같네.” 또한 하늘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땅에 존재하는 교회에도 동일하게 가득합니다. 물론 교회에는 아직 온전히 성화되지 못한 죄인들이 모여 있으므로 때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가득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 그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언제든지 지상의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다시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교회에 가득할 때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됩니다.


2020년 우리 종로 센터 교회의 모든 분들이 하늘의 천사들처럼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주의 일을 열심히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종로 센터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넘치는 가운데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나타남으로 거룩한 연기가 가득 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장은 천사들이 일곱 대접을 땅에 쏟았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 대접의 재앙들은 역시 출애굽기 때 10가지 재앙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았을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습니다.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았을 때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었습니다.


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았을 때 피가 되었습니다. 천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말합니다. 이는 대적자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자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태워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자 그 나라가 어두워졌습니다. 또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 정도로 고통했습니다. 그들은 아픔 가운데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습니다. 실제 당시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제국은 유브라데 강을 경계로 하고 있었는데 그 강물이 마를 경우 적군이 강물 길을 타고 쳐들오기에 매우 용이해졌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개구리는 습한 곳에 사는 부정한 동물로 더러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대접을 쏟아붓자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 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이 더러운 세 영이 나왔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들은 총동원령을 내리고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집결시켰습니다.


다시 출애굽기를 보면 장자 재앙으로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로서의 모든 명예와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는 노예의 신이었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항복을 선언했다는 소식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는 수치심과 치욕으로 인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갇히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곧 길을 잃고 헤매다가 광야와 홍해 바다 사이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는 곧 총 동원령을 발동하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병거를 총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키기 위해 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유인 작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완전히 멸절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해 바로의 군대를 유인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한 바로의 군대는 홍해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의 마지막 때에도 그와 동일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마치 총 궐기대회를 하는 것처럼 힘을 합칩니다. 정치 세력, 경제 세력, 여러 종교 세력들이 온 힘을 다해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합니다. 이참에 이 세상에서 교회를 아주 멸절시키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정치, 경제, 종교 세력들이 힘을 합해 오직 자기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독선적인 종교는 법적으로 금지시키자는 법안을 통과시킬지 모릅니다. 혹은 다른 방법으로 힘을 합해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하나님의 유인 정책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한꺼번에 다 멸절시키십니다. 그들이 전부 모인 곳에 큰 지진이 일어나게 하시고 무게가 60킬로그램이나 되는 우박을 쏟아 부으심으로 그들이 멸망하게 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5절은 짧지만 분명하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때에 성도들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도들은 주께서 도둑같이 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도둑은 사람들이 가장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옵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도둑처럼 다시 오십니다. 일전에 스탭 목자님들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강의 도중 독일에서 공부하던 일화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독일은 전철 값이 한국에 비해 매우 비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철 티켓을 체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분이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의 경우 티켓을 사지 않고 전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도둑처럼 직원이 나타나 정당한 전철 티켓이 있는지 검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걸리면 벌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범법 행위 기록이 주 정부에 남게 됩니다. 이외에도 당시 한국 유학생들이 종종 걸리는 것에 신호등 무단 횡단, 무단 쓰레기 투기 등이 있는데 역시 범법 행위로 기록이 주 정부에 남게 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겠지 생각하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하는데 저기 2층 창문으로 독일 할머니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신고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독일 할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범법 행위가 한 번은 괜찮다고 합니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생각하고 봐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걸리면 그것은 평소 늘 습관처럼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 기록을 연방 정부에 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방 정부에 그 기록이 올라갈 경우 절대 학위통과가 되지 않으므로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도둑처럼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옷을 지키고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입어야 할 옷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드림으로 피값을 주고 사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옷입니다. 의의 옷은 곧 성도로서 합당한 행실입니다. 거룩한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때로는 죄에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가끔 옛 죄악된 본성이 살아나 의의 옷을 홀라당 벗고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한 때에 사랑의 주님은 여러 경로를 통해 그렇게 하지 않도록 싸인을 주십니다. 말씀을 주기도 하시고 사건 등을 통해 자기 발견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만 천하에 그 수치를 드러내버리십니다. 사람들은 그가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랑의 주님께서 극약처방을 통해 그가 회개하도록 돕고 계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의 수치스러운 모습이 끝까지 비밀로 남겨져 있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발견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온 천하에 공개되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 행위 가운데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상습적이고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최근 재판 참석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세상 법정에서도 판사는 그 행위가 상습적이고 고의적인 것인지를 매우 주의깊게 살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판사는 연약하여 실수한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하고 다시 재기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상습적이고 고의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면 매우 엄한 처벌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그러한 엄한 처벌에도 전혀 뉘우치지 않을 경우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형벌을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하여 범죄한 자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악용하여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성도는 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역사의 종말이 곧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은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고자 하는 소극적 투쟁을 하는 것보다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이전보다 더 주님의 말씀 묵상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이전보다 더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의 목록을 적어놓고 그것을 하지 않도록 애쓰기보다 서로를 더 사랑하기에 힘쓰는 것이 훨씬 쉽지 않겠습니까.


올 한 해 저희가 작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즐거워하고 주께서 주신 사명을 더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무가 자라듯 우리의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더욱 자라는 복되고 귀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