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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새봄맞이 특강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디모데후서 3:1-17)2020-02-24 23: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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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맞이 특강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말씀 / 딤후 3:1-17 

요절 /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변화 무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5년뒤, 10년 뒤 대기업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살아 남고자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복음역사를 감당하는 교회나 선교단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의 요구에 발 맞추어 카페 분위기가 나는 공간을 교회 내에 만들기도 하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애씁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베조스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5년후나 10년후 무엇이 변할 것인지에 대해 묻지만, 정작 중요한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10년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대 흐름을 읽고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도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관심을 갖고 핵심 역량을 투자하여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올해 초 옛적 일을 잊고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말씀으로 새해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 공동체와 우리 각자가 변해야 합니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복음진리와 성경의 가르침을 굳게 해야 합니다. 오히려 약화되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복음역사와 제자양성 역사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거나 약화된 것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쓸 당시 상황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바울은 네로의 박해로 인해 로마 지하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교회 내부는 거짓 선생들의 미혹으로 복음 진리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죽음을 앞둔 바울이 영적 아들 디모데를 격려하면서 말세의 고통하는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것인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내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방향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된 성경의 가치를 재 발견하고 새 봄학기를 잘 준비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고 하면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말세인데, 이 시대는 말세 중에 말세인 말세지말입니다. 고통하는 때란 무섭고도 소름끼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기 힘든 시대란 뜻입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합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해집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해져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남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동설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인다는 말로서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나에게 유익이 될때만 움직입니다. 내가 관심있는 부분만 관여하고 그렇지 않으면 관심을 꺼버립니다. 나만 좋으면 됐지 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실속있고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기만을 사랑할 때 정말로 행복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사랑에 얽매여 목말라하고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슬퍼하게 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화가 나고 미움감정이 듭니다. 비교의식으로 고통하게 됩니다.

 

또 말세에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물질 만능주의가 판을 치게 됩니다.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둡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연봉이 얼마인가로 평가합니다. 영적인 것, 신령한 것, 순수한 것은 점점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돈앞에서는 도덕 윤리나 가족관계 조차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대기업 오너들이 죽고 나서 그 자녀들이 돈 때문에 서로 싸우고 비방하고 법정까지 가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금호그룹, 롯데그룹, 대한항공)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러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즐길 거리가 많아질수록 생명이 연장될수록 사람들은 돈에 더욱 예속되어 갈 것입니다.

 

말세에는 자랑하며 남을 비방하여 헐뜯습니다. 악성 댓글로 인격 살인하는 것을 죄의식 없이 합니다. 은혜를 베풀어 준 부모를 거역합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지 않습니다.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워집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합니다. 마침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됩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말세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조금 있지만 쾌락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터넷 서핑으로 1시간의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양식 말씀 보는 10분의 시간을 아까워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쾌락을 즐기기 위해 엄청난 물질과 시간을 쓰는 것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드리는 물질과 시간은 몹시 아까워합니다. 세상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도와야 할 양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할까 하는 생각 대신에 오늘 뭐 재미있는 것 없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합니다. 점점 더 영적인 문제에 무관심해지고 무디어집니다. 신앙은 박제된 동물처럼 생명력이 없고 형식만 남습니다. 5a절을 보십시오. 결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게 됩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벧후1:3,4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성령께서 역사하여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가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정욕으로 말미암아 썩어질 세상의 것을 추구하던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신성한 성품, 즉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내면과 삶에 열매로써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삶의 변화와 열매가 맺혀지지 않고 형식만이 남는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독일 쾰른 성당은 엄청나게 큰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일이 되면 할머니들 수십 명만이 앉아서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 중에는 평생 두 번 교회에 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은 결혼할 때 또 한번은 장례식 때 간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지 말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말세에 명목상 신자는 많은데 실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경건의 모습은 어느 정도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종교적 외형은 가지고 있지만 신앙생활을 통해 얻게 되는 내면의 기쁨이나 변화된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면 자신조차도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말세에 디모데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합니까? 5b절을 보십시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내가 돌아서라” ‘돌아서라고 합니다. 180도 방향전환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양식을 본받지 말고 과감하게 돌아서서 주님의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경건한 삶을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게 되고 이웃도 사랑하게 됩니다. 디모데는 특히 양들을 악한 세상에서 보호하고 그들을 지키고 올바르게 양육해야 할 책임을 맡은 목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분명하게 세상에서 돌아서서 경건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교만하게 행해도 주의 종은 겸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여도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해 우리의 물질과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며 선한 일에 호주머니를 열어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절제하며 친절하며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쾌락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을 갖출 뿐 아니라 능력을 덧입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6-9절은 거짓선생, 이단에 대해 알도록 가르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 가운데 거짓 교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합니다. 그들은 떳떳하지 못하기에 은밀하고 비공개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접근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분별력 없는 어리석은 여자들입니다. 미혹에 빠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린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중에서 신천지에 미혹된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서 미혹된 경우가 많습니다. 목자님이 가르쳐주는 말씀공부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고 뭔가 새롭고 쇼킹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찾다가 미혹됩니다. 요즈음 가짜 뉴스들이 범람합니다. 진짜보다도 더 진짜처럼 보이고 그럴싸하게 보이고 재미있고 자극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클릭 수도 많습니다. 이런 가짜뉴스를 분별력없이 받아들이고 자기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왜곡된 뉴스만을 접하다보면 어느새 왜곡된 가치관이 형성되게 됩니다.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 해석하는 이단의 가르침을 계속 받다보면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왜곡된 가짜 복음을 맹신하게 되어 항상 배우나 결국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울 때 실천하고자 하는 자세로 배워야지 단지 지식만 쌓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럴 때 이단에 빠집니다.

 

바울은 거짓 선생들을 얀네와 얌브레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흉내 내었던 애굽의 마술사들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흉내 내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로서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이단 사상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그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요즈음 신천지가 뉴스에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신천지 교주인 이만희와 함께 십 수년간 함께 살았던 그의 부인이요 2인자인 김남희씨가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만희는 구원자도 아기고, 이긴 자도 아니다. 이만희는 돈 밖에 모르는 고도의 사기꾼이다라고 말했고, 그녀는 신천지에 대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종교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생들과 이단은 언제가 그들의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디모데를 이제까지 가르쳐온 바울은 어떠한 삶을 살아 왔다고 합니까? 그는 거짓 교사들과 달리 참 교사로써 살아 왔습니다. 삶으로써 본을 보였습니다. 10,11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바울의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며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얻는다는 복음 진리였습니다. 거듭난 자는 경건에 이르도록 힘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실은 무엇입니까? 그는 돈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텐트메이커로 자비량하며 선교역사를 섬겼습니다. 말과 행실이 일치된 삶을 추구하였기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의향은 어떻습니까? 그가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그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그는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는 어떠하였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이 그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며 반발할 때 그는 눈물로 고린도교인들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편지를 써서 책망도 하고 설득도 함으로써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코자 애썼습니다. 그의 박해 받음과 고난은 어떠하였습니까?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옥에 갇히기를 여러번 하였습니다. 특히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떤 박해를 받았는가를 디모데도 친히 보고 알았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질하여 돌로 바울을 쳐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다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바울이 이를 통해 상기시키는 바가 무엇입니까? 11주께서부터 12절까지 청년들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바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고난과 박해를 받으면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바울을 건져주셨습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면 반드시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께서 친히 구원자가 되셔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복음의 일군은 사명을 다 완수하기까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하였는데 무릇이란 말은 모든이란 뜻입니다. 바울처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박해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바울시대와 같은 극심한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되게 살고자 하면 박해를 받습니다. 예전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회식 자리에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음으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제사에 참석하지 않거나 집안 행사와 주일예배가 겹쳐 가지 못함으로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런 박해는 별로 없습니다. 대신에 다른 유형의 박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거나 죄를 죄라고 말함으로써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JBF학생이 학교 수업시간에 동성애가 죄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가 교사로부터 차별적 발언이라고 소리를 듣고 반 학생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심지어 기독학생들로부터도 소외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눈물나고 속상해하며 부모와 상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박해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하게 세상에 나타내 보일 때 보이지 않는 조롱과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고자 하면 박해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거절과 냉소를 반드시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난과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해야 합니다. 하늘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디모데가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13,14a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말세가 되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살벌해지고 더욱 이기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거하라는 말은 계속하여 머물라, 굳게 붙들라는 말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신자들은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 확고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다 거짓되게 살더라도 믿음의 사람은 진실되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처세술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 꾀를 좇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이익을 좇아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있어 배우고 확실한 일이란 바울이 전해 준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내게서 배운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딤후1:13)”고 했으며,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딤후2:2)” 했습니다. 바울이 전해 준 그 복음 진리가 건전한 구원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해 준 복음 진리는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구약 성경을 배웠습니다. 이 성경이 디모데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해 준 복음진리와 그가 구약 성경을 통해 배운 내용과 일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대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이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이 복음 진리를 믿고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짓교사인 영지주의자들은 온갖 감언 이설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고 신령한 지식을 깨달아야만 구원얻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만 구원얻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때부터 배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이러한 복음 진리를 굳게 붙들고 조금도 흔들리거나 타협하거나 변질시켜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기록된 책이며, 신자들의 삶에 어떤 유익을 줍니까? 16,17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약 1600년에 걸쳐 40여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저자의 신분과 직업과 세대가 다 다르지만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주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기록한 것이기에 성경의 원 저자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절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경외심과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교훈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책망은 우리가 잘못 길을 들어섰을 때 이를 알게 해 줍니다. 바르게 함은 잘못된 길에서 속히 바른 길로 가도록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의로 교육함은 올바른 길을 지속적으로 가도록 인도합니다. 이처럼 성경대로 우리가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D.L.무디는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지식을 증가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성경은 거듭난 우리에게 경건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혹시 여기에 아직도 구원을 얻지 못하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책에는 길이 있다고 하였는데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삶에 적용해 보시길 권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말씀을 통하여 그의 내면에 임하면 생명의 빛이 그 내면에 비추이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해결책이 성경에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보면 해답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한번 뿐인 인생을 가치있고 보람있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까? 한 말씀을 굳게 붙들고 실천해 보십시오. 위대한 인생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말세의 현상들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새 봄학기를 맞이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나라가 뒤숭숭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상 조류를 따라 살지 않고 말씀의 교훈대로 살아야 합니다. 온갖 거짓 사상들과 싸워 바울이 전하여 준 진리의 복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어떤 고난과 박해가 있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경건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생명을 살리는 일에 계속하여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