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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누가복음 제 15 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누가복음 9:1-17)2017-05-23 08: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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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 누가복음 9:1-17
요절 누가복음 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도명령을 주신 것과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 믿음의 기도를 훈련시킨 내용입니다. 특히 우리가 목자의 심정과 절대적인 책임감, 그리고 믿음의 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영적 전쟁에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가 자기 힘과권위로 싸우라고 하지 않으시고 어떤 귀신도 제어할 수 있으며 어떤 병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은 장난감 총같은 것으로 이것으로 결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일발필살의 영적무기를 사용할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아직 어린 제자들도 세상에 내보내신 것입니까? 첫째로 그만큼 하나님나라 전파가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나갈 때 훈련받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면허증을 따고 장롱 속에 넣어두면 그 사람은 절대로 운전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독일속담에 ‘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묶어두기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field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실제로 하나님나라 일군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들이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다 죽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뭘까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하나님의 통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사탄의 꾀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고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잃었을 때 우리 인간은 불안, 염려, 혼돈, 방황, 흑암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 그리고 마귀의 다스림을 받아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이름을 믿을 때 하나님과 관계와 통치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어떤 상황과 조건가운데서도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삽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우리가 타인과 인류를 위해 봉사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봉사는 하나님나라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밖에 없는 인생, 반복되는 걸레질 봉사가아니라 수도꼭지를 잠그는 참 봉사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차피 죽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것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봉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병을 고쳐야 하는 이유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요 고통이 심하면 하나님 나라 메시지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때 사람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합니다. 우리가 의사도 아니지만 주님의 능력과 권위를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양들의 내외적 질병을 고치게 하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스틱, 배낭, 양식, 비상금, 여벌 옷 등을 꼭 챙기십시오.” 이 말은 우리가 여행 떠날 때 가이드에게 듣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라도 더 챙길 때 마음이 든든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정반대 였습니다. 왜 이런 명령을 주십니까?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해주시고 잠잘 곳을 마련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뭔가 의지할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그것을 의지하게 되고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이 전도여행에서 제자들은 기본적인 것마저 가지지 않음으로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도 전도여행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거처를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은 Faith life, Faith mission 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여러 안전장치를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믿음을 배울 수 없으며 믿음을 배우지 못한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이 말씀을 보면 누군가 제자들을 환대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메시지를 영접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귀히 여기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기꺼히 제공합니다. 제자는 이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어떻게 대접받느냐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밥만 먹여주고 재워준다면 감사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좀 더 나은 대접을 해주는 집이 어디있나 찾으며 집을 옮기면 안 됩니다. 복음전파자는 물질적 대접이 아니라 영적인 보람과 만족으로 일하기 때문이며 그런 행동을 할 때 양들이 복음의 영적 가치에 대한 혼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지만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도 반드시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거부당할 때 내가 전하는 복음이 뭐 문제가 있진 않는 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위축되고 계속 복음하는 것을 주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복음이 거부당할 때 그 곳을 떠나며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 땅을 밟으며 수고하며 분명히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러니 이제 나에게 책임이 없다. 복음을 영접하지 않아 받게 되는 무서운 심판은 고스란히 너희들의 몫이다” 라는 의미의 전달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도 좋으면 좋겠지만 좋지 않아도 그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전도자로서 할 일을 다 했으면 감사하고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가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결과가 아니라 순종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전도명령에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예이, 저는 너무 어려요” “저는 너무 말씀을 몰라요” “저는 너무 소심해요” 이런 말을 하면서 거부하는 이는 1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는 병사들처럼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번지점프대에서 용감히 뛰어내리는 사람들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반면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복음전파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영혼이 허무와 무기력, 정욕가운데 거합니다. 말씀을 배우기만 하고 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영적 비만과 콜레스테롤, 심장질환에 걸리고 영적 생명이 위험해 질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어린아이처럼 순종하여 나갔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7-10절 말씀은 분봉왕 헤롯이 제자들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듣고 매우 놀라고 당황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고 승천한 엘리야가 왔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옛 선지자중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뒤의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평가와 일치합니다(19) 열두 제자들의 활동으로 예수님의 존재감이 사방에 드러났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쫒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단순하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하나님나라가 힘차게 확장됩니다. 세상을 놀라게 하며 구중궁궐에 숨어있는 세속의 왕도 떨게 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 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사도들은 신나게 전도 여행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어렵지만 순종했고 순종했을 때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 가를 침튀겨 가며 보고했습니다. 아예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 치밀하게 보고하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수고를 인정하시고 그들에게 잠깐 휴식을 주고자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 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무리들이 어떻게 알고 제자들의 1박 2일 휴양회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매우 기뻐하며 영적 소원 있는 양들을 맞이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양이 별로 없는 시대라 이런 반응도 있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비유하자면 어떤 목자님이 하루 종일 피곤하게 양을 섬기고 12시에 집에 와서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양이 찾아 옵니다. 신혼여행에 왔는데 양이 제주도까지 찾아와 반나절쯤 시간을 내어 자기와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제자들은 속으로 대박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무리들을 영접하셨다고 했는 데 이 단어는 영어성경에 “welcomed”(NIV) 으로 ‘환영하다’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자기시간과 휴식을 반납하며 양들을 섬길 자세가 되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주고자 하셨기에 휴가반납 정도는 경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8:30을 보면 사도바울이 셋집에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했는데 그 단어도 본문의 ‘영접하다’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로 알고 귀히 여기고 온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X국의 요안나 박 선교사님은 지난번 눈물로 간증하기를 고졸에 불과한 자신을 세상 어디서도 환영하지 않았으나 UBF에만 오면 어찌나 귀하게 여겨주든지 자신의 처지도 잊고 늘 이곳에 오게 되었고 어느새 목자요 선교사가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환영하는 것은 상대방을 귀히 여겨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자의 기본마인드요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베이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사 무엇을 하셨나요? 하나님 나라 일을 이야기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주신 두 가지 방향과 같습니다. 예수님에게 언제나 첫째는 하나님 나라 일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아무리 다른 행복의 조건들을 얻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 일을 알지 못하면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전달됩니까?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즉 ‘Talk’입니다. 그냥 이야기가 아니니 'Bible Talk' 입니다. 우리 집 아이 중 하나는 엄마보고 “학생들이나 이모들 데리고 무의미한 수다 떨지 마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종종 우리도 스스로 우리가 하는 'Bible Talk' 를 폄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영적 수다, ‘Bible Talk’ 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이처럼 이야기가 하나님나라를 선물하는 주님의 방법이기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계속 ‘Bible Talk’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육체의 아픔문제인 병 고치는 것을 도외시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로서 전인적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들이니이다 예수님의 Bible Talk는 계속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자들이 시계를 보니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남자만 5천 명 합치면 1만 명 넘는 인원들을 보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먹을 것과 숙박문제가 염려되었습니다. 그들은 재빨리 대책회의를 했고 예수님께 빨리 무리들을 해산시켜 각자 먹을 것을 구하도록 하라고 건의했습니다. 제자들의 제안은 합리적이었고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의적절하게 좋은 제안을 했다고 제자들을 칭찬하셨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은 “그래보시겠어요?” 권유형으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명령형으로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즉각 주님께 “우리 형편 다 아시면서 뭔 말씀이십니까” 항변했습니다. 오병이어밖에 없는데 무슨 농담 같은 말씀을 하시냐는 반박이었습니다. “할 수 없나이다” 그들은 형편과 처지가 안되므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면서 왜 이런 명령을 주신 것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12제자들은 새로운 영적 지도자들로 세움 받았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양무리들에 대한 심정과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멋진 옷을 입고 자기를 먹이고 살찌우는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남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백성은 굶주리는 데 궁중에서 초호화연회를 열었습니다. 이런 지도자, 목자를 둔 양무리들은 불행했습니다. 귀신과 병에 시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런 지도자들과 달리 절대적인 심정과 책임감으로 양들을 돌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심정과 책임감이 있는 목자들이 있을 때 양들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절대적 책임감과 심정은 어떠하셨나요? 예수님은 이리와 같은 사탄의 밥이 될 인생들을 구원하시기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 자기의 고귀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은 절대적 책임감과 목자의 심정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예수님은 자신을 이어 양무리들의 목자가 될 제자들도 그러한 절대적인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을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믿음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빈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십니다. 빈들만 바라보는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병이어밖에 없어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절망스런 아이 모습에 “할 수 있거든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조지뮬러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3000명의 고아를 30년간 먹일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먹이는 삶을 삽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캠퍼스영혼들을 먹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며 캠퍼스 영혼들을 먹이는 목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 번은 제가 전세금 중 1400만원이 부족해서 길바닥에 나 앉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발동했습니다. 어떻게서든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센터 지하 2층에서 기도했습니다. 이때 새벽기도시간 후에 한 통의 전화가 왔고 그 전화의 주인공을 만났는 데 그에게서 백지수표를 받고 1400만원이라고 쓰고 약속시간 10분 전에 그것을 들고 계약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것은 어찌하든지 가족을 책임지고자 했던 책임감과 목자의 심정에서 나온 믿음의 기적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해외여행 보내달라는 큰 아이에게 “너는 할 수 없다” 고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였고, 특히 돈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일용할 양식이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민11:23)는 말씀이었습니다. 위대한 종 모세도 육지의 가축을 다 모으고 바다의 물고기를 다 모은 들 200만 명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느냐고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하늘에서 반쯤 구운 메추라기를 무더기로 내려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부정적이고 한계적인 생각을 회개했습니다. 그날 저는 어떤 분을 돕기 위해 만났고 그분과 함께 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분과 대화중 아이 이야기를 했는 데 그분은 청소년이 해외여행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저의 가방에 거의 200만원을 쏟아 부어 주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한번도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없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물질을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서 가족을 섬기고 양들을 섬기는 데 얼마나 지레 한계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심정이 있고 책임감이 있고 기도한다면 얼마든지 가족과 양들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근에 양들이 없자 캠퍼스 양들을 먹이는 것에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생수양회 이후 우연챦게 기도특강을 수차례 이곳저곳에서 감당하면서 어려운 현실보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자 제가 다시 믿음이 생기고 간절한 심정, 절대적 책임감,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제가 전세금 때문에 철야기도 했던 그 책임감, 그 믿음으로 다시 주님이 주신 사명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절대적인 책임감으로 다시 기도할 때 캠퍼스 양무리를 먹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앉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를 놓고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결과 5천명이 다 배불리 먹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임도 이사무엘 배사라 선교사님의 절대적인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 그리고 믿음의 기도로 5천명, 만 명의 대학생들을 먹인 기적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다시 제 2의 이 사무엘, 마더배리, 조지뮬러와 같은 종들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심정과 책임감과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양무리를 먹이는 역사에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