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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누가복음 제 18 강 '칠십 인을 보내신 예수님' (누가복음 10:1-24)2017-06-11 0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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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강



칠십 인을 보내신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10:1-24

요절 누가복음 10:1,2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오늘 본문은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70인을 세워 보내신 예수님(1-16), 다음 돌아온 70인의 보고(17-20), 마지막 예수님의 감사기도(21-24)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전도의 중요성과 예수님을 아는 축복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친히 전도하러 다니셨고 그것도 부족하셔서 70인을 세워 전도사역에 내보내셨습니다. 그들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2) 예수님이 보실 때 세상은 추수할 곡식이 너무 많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추수 때를 넘기면 어떻게 됩니까? 곡식이 땅에 떨어져 곯아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추수 때를 놓치지 않고자 군인이나 공무원, 학생들이 동원되어 대민 봉사를 하였습니다. 영혼의 추수는 곡식추수보다 더 심각합니다. 추수할 일군이 부족하여 영혼이 떨어져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전도하고 전도일군들을 세워서 영혼의 추수들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더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70인을 향하여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도다”(3) 70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랫동안 배운 관록 있는 70대 노인들이 아닙니다. 12제자도 어린 데 그들은 그보다 더 어리고 약한 이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들을 향해서 추수할 영혼의 들녘을 향해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얼마나 영혼구원이 긴급하고 절박한 가를 보여줍니다. 또한 아직 부족하지만 나가라고 하는 것은 훈련을 받아 성장하도록 함입니다. 사람은 필드에서 훈련을 받을 때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어떤 목자님은 이름이 박필드입니다. 이론이 강하고 말을 잘하지만 실제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필드에 나가서 부딪히며 배울 때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성장합니다. 


4-9절은 70인 제자들이 가져야 할 분명한 믿음과 그들이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본적인 것들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 대신에 오직 예수님과 복음의 권세를 의지하도록 함입니다. 그들이 주님과 복음권세를 믿고 어느 집에 들어가 평안을 빌면 영접하여 먹을 것과 처소를 제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전도일군들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십니다. 감사하지만 너무 몸 둘 바를 몰라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7b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품삯을 주지 않는 주인을 정죄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일을 시키시고 그 삯을 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인 전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요새 직장 중에서 가장 안정된 직장이 공무원인데 그 이유는 국가와 대통령이 그 삶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는 이는 하늘나라 공무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이것을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7b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당당함과 자부심을 가져야 함을 배웁니다. 미국에서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군인, 생명을 살리는 의사 등이 존경을 받고 자기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받는 보수로 일을 평가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도선사입니다. 배도선사는 배를 파킹하는 전문 기술을 소유한 사람들인데 월 1000만 원 이상은 가볍게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하는 일을 저평가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위축된 마음, 쭈뼛거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전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9) 첫째로 병자를 고칩니다. 병자는 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현실문제입니다. 실제적으로 고통 하는 문제인데 그것을 해결해줄 때 그들이 하나님나라 메시지를 들을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들이 힘들어하는 문제를 먼저,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해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전파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그 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회복됩니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나라를 누립니다. 이것이 70인 제자들이 전해야 할 궁극적 메시지입니다. 병을 고치는 현실문제 해결도 이것을 향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써 전해져야 하고 복된 메시지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힘써 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양들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16절은 복음전도자가 배척받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동네에서 그 동네를 나올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11) 먼지를 떨어버린다는 것은 그 땅을 밟은 것을 확증하며 그 땅에서의 안 좋은 기억을 떨쳐내는 퍼포먼스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자들은 그 동네가 받는 심판과 무관하며 책임이 없습니다. 이제 임하는 심판의 날에 그들은 오직 자신만을 원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까? 소돔보다 더한 심판을 받습니다. 소돔은 불과 유황이 비 오듯 내렸습니다. 창세기 19:24,25절을 보면 그 성뿐아니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서 난 것을 다 엎어 멸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게 광범위하게, 어디에도 숨을 수 없게 땅을 뒤엎는, 철저한 심판이었습니다. 이 심판에 대한 경고는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지 않는 모든 동네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특별히 당시 세 도시를 지목하여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곳은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입니다. 이 세 도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말씀전파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선교본부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들이 전도자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치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적은 계시와 이적에도 전도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 도시는 반대였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가중처벌을 받습니다. 우리도 다른 일반교회 사람들과 비교하여 나는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받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책임도 큽니다. 많이 알고도 행치 않는 이들은 많이 맞을 것입니다.(눅 12:47,48) 


복음전도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행위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복음 전도자는 예수님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신하기에 복음전도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것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전도자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음전도자의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자를 배척한 것은 그보다 더 심각한 죄가 없습니다.  


17절을 보면 70인의 제자들이 기뻐하며 돌아와 보고합니다. 어떤 분은 캠퍼스에 1달에 한번 올라가겠다는 결단을 매주 소감에 씁니다. 그러나 실지로 1년 동안 캠퍼스에 한 번도 가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겠다고 100번 결단하는 것보다 한번 나아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번지점프 동영상 100번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뛰는 것이 낫습니다. 전도자의 기쁨은 실지로 순종하여 나아간 사람만이 맛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권세는 대단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승리를 인정하셨습니다. 사탄의 세력이 떨어지는 것을 예수님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그들에게 사탄의 세력을 밟을 권세를 주셨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이 넘치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으로 진정 기뻐해야 하는 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20)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좋은 곳에서 자는 것, 좋은 곳을 여행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기쁨은 한 사람이 구원 받는 데 내가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많은 여행을 해도 이 기쁨보다 낫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이 없으면 허무합니다. 우리에게 영혼구원의 기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최고의 기쁨은 다른 사람이 구원받은 것보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특별히, 나의 구원은 나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잖습니까?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 정말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나의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으로 인한 진정한 기쁨이 이번 여름수양회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1-24절은 전도여행 결과를 놓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감사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감사하셨습니까? 구원역사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가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자들에게 나타내신 사실입니다. 자칭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는 교만하고 복잡하며 자기생각이 많고 판단을 많이 합니다. 단순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 같은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복음을 영접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에게 구원의 비밀을 보이십니다. 구원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알 때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요 17:3을 보면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므로 제자들의 영적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보기를 원했던, 다윗 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경건한 왕들이 보기 원했던, 언약의 완성자, 세계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고 몇 사람은 흑백 TV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올 칼라 TV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3D, 4D 입체 화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야 말로 최고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물질이나 권세나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해 슬픈 마음, 초라한 생각을 가진 분이 있습니까? 그러나 도선사의 월급을 매달 받고 집을 몇 채를 가지고 있고 캠핑카를 가지고 매주 주말여행을 떠난다 해도, 고위직 공무원 혹은 판검사일지라도 그는 표류하는 혼돈의 바다를 떠도는 자요, 멸망으로 가는 자일뿐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깊이 알며 그 복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항상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전도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전도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며,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전도명령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전도명령에 순종하려 할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군은 많되 추수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죠?.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면 그때 힘 좀 쓰겠다” 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의 말이 맞을까요? 주님의 말씀이 맞을 까요? 한번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여행할 때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혀 심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가 구원을 받을 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는 추수하려면 앞으로 넉 달이나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보는 사마리아의 들판은 생생한 파란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영적 들판이 추수 때가 되었고 심지어 때가 지나가고 있는 하얀색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는 이에 따라 같은 곳이 달리 보입니다. 실제로 사마리아 땅에서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며 목마름으로 죽어가던 한 여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부흥의 때와 장소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흥의 때가 지나간 것 같아 보이는 나라에서도 다시 부흥이 일어납니다. 엘까뮈노 UBF와 같은 곳이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a) 우리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추수할 때입니다. 우리가 밋밋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생생해 보이고 아무도 영적 소원이 없어 보입니다. 보는 이의 눈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익어있고 자칫 시기를 놓치면 떨어져 멸망할 영혼들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런 영혼들을 이번 여름수양회에 초청하기를 기도합니다. 


한 전도자가 말씀을 항상 전하는 자로 거듭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항공기를 타고 여행 중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스튜어디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는 이 성령의 음성을 외면했습니다. 비행기타고 여행하면서 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게다가 바빠 보이는 스튜어디스를 붙잡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오버이며 주위 승객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자꾸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예라 모르겠다”고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중간기착지인 미국에서 내렸는 좀 찜찜했습니다. 그 비행기는 종착지인 멕시코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그 비행기의 그 스튜어디스가 그 비행이 끝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 소식이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본 복음전도자는 정말 크게 회개의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중 비슷한 경험을 한 목자님도 있습니다. 한 양을 수양회에 초청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부하며 군대에 가야하기 때문에 경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온 후에 수양회에 갈 테니 양해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자님은 지금만 때인가 하며 그를 군대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대에서 사고사를 당했고 그에게 다음수양회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 복음전파에 있어서 때를 잘못 판단한 뼈아픈 실수가 있습니다. 저는 가족구원에 있어서 나이순서로 돌아가실 것으로 믿고 나이 드신 분만 신경 쓰고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에게는 안이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저의 아버지가 52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잃고 제가 복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던 것을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안이한 생각을 하지 않고 성령께서 마음 주실 때 어디서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 이후로는 다른 영혼을 잃지 않고 대부분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대 기숙사를 센터 근처에 두 개나 세워 주셨습니다. 저는 기숙사가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고 어찌하든지 전도의 문이 열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1-2번 가서 전도했습니다. 하지만 양들을 얻지 못했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처럼 “할 수 없습니다. 소원있는 양이 없군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지난주 말씀을 통해 빈들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하루에 5명의 양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중에 1명은 바이블 토크에 오고 2명은 테이블 1:1을 약속하고 다음주에 모두 왔습니다. 그중에서 황현수 형제님은 성대 글로벌리더학과 학생으로 겸손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성경공부에 임했습니다. 이번 주는 2강 공부를 하였는데 무신론적, 진화론적인 가치관에 물음표를 던지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창조론적 가치관을 받아들여야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분은 동아리방에 더 머물고 싶어 하고 자신의 수업자료를 꺼내어 말씀과 비교하면서 대화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분은 삼수를 해서 겸손합니다. 리더경험이 많아 예의바르고 비교적 적극적입니다. 지난 강의에서는 빈 그물 베드로의 심정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된 영혼을 보내어 주신 것으로 믿고 감사합니다. 더구나 이분은 그동안 계속 기도하던 기숙사 학생입니다. 저는 양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루에 5명의 양을 얻으면서 똑같은 성대기숙사와 성대 양들이 달라 보였습니다. 


영혼의 때는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열리면 준비된 영혼이 보입니다. 마음이 열리면 희어져 추수하게 된 들녘이 보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주소서 하라”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눈을 가지고 캠퍼스 영혼들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젊은이들로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청춘과 열정을 드려 힘써 해야 할 일은 고귀한 영혼을 추수하는 일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 이 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20, 30대의 뜨거운 청춘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기쁨을 성령 안에서 맛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가 이런 기쁨을 충만히 누리는 여름수양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