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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누가복음 제 19 강 '더 강한 예수님' (누가복음 11:14-32)2017-06-18 17: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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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누가복음 제 19 강


더 강한 자 예수님


말씀 / 누가복음 11:14-32

요절 / 누가복음 11:21,22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더 강한 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한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후 바리새인들을 가르치십니다. 이 가운데 예수님은 자신이 사탄보다 더 강한 자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더 강한 자 예수님을 의지하여 강한 자 사탄과 영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더 강한 자 예수님을 온전히 우리 마음에 모셔 들이길 기도합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요? 심히 답답해서 슬퍼하다가 화병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져 벙어리 냉가슴을 앓게 될 것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를 아시죠?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신라48대 경문왕 시절에 왕의 귀가 당나귀처럼 길었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워서 비밀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자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왕은 그 모자 만드는 사람에게 절대로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답답하여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대나무 숲속에 가서 소리를 쳤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너무나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런 말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귀신이 그를 말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말 못하는 장애가 귀신 때문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경우에는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너무 갑갑했는데 말을 하게 되니 참 시원하구먼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마태복음 12장에 의하면 ‘그 중에 더러’는 바리새인들을 말합니다. 말 못하던 자가 말하게 된 것은 fact입니다. 사실입니다.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예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의 왕의 능력이라고 비방을 하였습니다. 이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분명한 표적인데도 불구하고 16절을 보면 하늘로부터 오는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두 가지 면에서 반박하십니다. 17,18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첫째, 귀신의 왕 곧 사탄이 자기 졸개인 귀신을 몰아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영악한데 자기편을 공격하겠습니까? 그들의 말대로 사탄의 나라가 자중치란이 일어났다면 이미 예전에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예수님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 왜 그들의 말이 말이 안 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당시 바리새인들 중에서 그래도 순수하고 신령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도 가말리엘이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너희 아들들은’ 바리새인의 제자들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너희는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거지!’하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아니, 바리새 선배님들. 도대체 무슨 소릴 하십니까?’ ‘선배님들은 영적 능력도 없으면서 웬 중상모략입니까?’하며 도리어 판단할 것입니다. 


이제 20절에서 예수님은 무슨 능력으로 그런 일을 하시는가 말씀하십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무슨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죠?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NIV 성경에는 ‘the finger of God’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8편 3절에 보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늘을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주님의 능력, 권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쫓아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은 무슨 증거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문대통령에게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권한이 있습니다. 야당에서 반대해도 총리나 장관을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국세청장이나 차관급들은 말 한마디 하면 그냥 임명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청춘은 공시생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공시생인지 모릅니다. 몇 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죠? 약 70만 명입니다. 대부분 9급이나 7급이나 5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정부투자 기업체 임원 등 고위직을 몇 명이나 임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 아십니까? 8,500명입니다. 대통령 혼자의 권세로 8,500명의 고위 공무원을 임명할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대통령도 귀신을 쫓아낼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사 말 못하던 자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십니다. 18년 동안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인도 허리를 펴게 하십니다(눅 13:11). 죽은 자도 살리시고 지구상에 살았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영생과 영벌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권세자시요, 왕 중의 왕이십니다. 그 앞에 누구도 설 수 없는 막강한 분이십니다.


이렇게 막강하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21절 22절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여기서 강한 자는 귀신의 왕 사탄을 의미합니다. 또 더 강한 자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사탄은 예를 들어 14절에 나오는 사람을 자기 소유로 삼았습니다. 중무장을 하고 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했습니다. 찍소리도 못 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 강한 자 예수님이 오셔서 그 강한 자의 무장을 해제시키셨습니다. 그 강한 자를 굴복시켰습니다. 그가 사로잡은 자를 해방시키고 그 사람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때 당시 남한은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탱크가 단 한 대도 없었어요. 그런데 북한은 소련제 탱크 240여대가 있었고 이를 몰고 내려와 순식간에 낙동강 전선까지 점령을 해버렸습니다. 남한이 아무리 중무장을 하고 지키려 해도, 더 강한 자가 밀고 들어올 때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탄은 이 우주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막강합니다. 계시록 12장 3절에 의하면 사탄은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졌습니다. 이 사탄이 이 세상에 와서 공중 권세를 잡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말 안 들으면 죽인다고 협박하고 자기 종으로 삼았습니다. 히브리어 2장 15절은 말합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사람은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사탄의 종노릇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보다 더 강한 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그의 중무장인 죽음을 무력화시키셨습니다. 더 강한 자 예수님은 사탄을 굴복시키고 죽음의 종 된 모든 사람을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더 이상 죽음이 없게 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현재 사탄은 예수님에 의해서 그 머리를 짓밟힌 뱀과 같은 상태입니다. 사탄의 머리가 깨졌습니다. 그런데 뱀이 어때요? 머리가 깨져도 몸은 여전히 움직이죠. 파닥파닥 거립니다. 현재 세상에서 사탄은 그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로기 상태입니다. 우리를 위협하고 겁을 주고 방해하고 염려와 두려움을 심지만 이미 머리가 깨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위협적인 것은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더 강한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강한 자 사탄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 귀신 마귀는 사람의 설득이나 훈계나 책망으로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도 전혀 무력합니다. 무릎 꿇고 눈물로 “제발, 나가 주세요~” 호소해도 떠나가지 않습니다. 오직 더 강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시련을 겪으며 강한 사탄이 주는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에 잠시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강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굳게 의지하기를 기도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지해서 매사에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여름수양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권세 있게 선포하길 기도합니다. 그럼으로써 강한 자 사탄 마귀가 굴복하여 떠나가고 하나님 나라가 힘 있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내면에 벙어리 귀신, 더듬는 귀신, 침묵 귀신, 불신 귀신이 다 떠나감으로 입을 열어 주님을 뜨겁게 찬양하고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하는 성경 선생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사탄보다 더 강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소유에서 풀어 주시고 이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런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까? 23절을 보겠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영적 전쟁에서 예수님 편에 서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회색분자라는 말이 있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서 중립은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편도 아니고 사탄의 편도 아니다’, ‘나는 중립이다’ 선언하는 것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예수님 편에 서던지 아니면 사탄 편에 서야 됩니다. 더 강한 자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이 은혜 받은 우리의 마땅한 삶입니다. 이것이 또한 승리가 보장된 삶이요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삶인 것을 믿습니다. 


과거 귀신에 의해 지배당했던 우리가 적극적으로 ‘더 강한 자’ 예수님 편에 서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24-26절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사람에게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귀신이 자발적으로 나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비유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는 예수님에 의해서 쫓겨 나가게 된 경우일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나가서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쉼을 얻지 못했습니다. 한편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귀신이 나가자 말도 하고 옷도 제대로 입고 허리도 곧추 펴고 아주 멀쩡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데 자기에게 그런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을 예수님과 그의 말씀으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뭐죠? 무주공산(無主空山)으로 놔두었어요. 무주공산이 뭐죠? 전라도 무주에 있는 공산이 아니라 주인이 없는 빈 산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와서 보니 그 사람의 내면이 깨끗하고 살기 좋게 되어 있는데 주인이 없어요. ‘야,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들어가 거하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거짓말을 합니다. 첫째는, ‘나는 없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이런 것은 그냥 심리 상태야 정신적인 문제야’‘ 야, 21세기에 무슨 귀신이냐‘ 하며 자기는 없다고 사람을 속입니다. 두 번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따르되 적당히 따르는 게 좋아. 믿고 구원만 받고 그 다음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예수님께 헌신해? 그건 손해라고. 예수님은 너의 인생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너의 인생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 거야’. 이렇게 속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더 강한 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이요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아무리 잘 지은 새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 두면 온갖 벌레와 짐승이 들끓어 급속히 폐가가 되는 것 같이 우리 영혼의 집도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워두는 순간부터 강한 자 사탄마귀가 침투합니다. 우리 영혼을 더럽게 하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특히 여름 수양회 큰 역사를 섬긴 후에 안일을 허용하다가 영혼의 집을 비우는 어리석음을 미리 경계하고 잘 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섬긴 후에 더욱 주의 말씀을 사모하여 가까이 하고 묵상하며 암송함으로 우리 마음에 말씀을 채우길 기도합니다. 날마다 더 강한 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의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는 28절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먼저 27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권세 있게 증거하시는 것을 본 한 여인이 말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무슨 말이죠? ‘당신같은 아들을 둔 어머니는 참으로 복된 여인입니다. 아, 부럽습니다, 정말 부러워요’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도 그랬는데, 유대 사회에서는 아들이 아주 귀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큰 존경을 받죠? 중국에서는 맹모삼천으로 유명한 맹자의 어머니가 존경을 받습니다. 어머니들이 훌륭해서 아들이 위대하게 되기도 했지만 또한 훌륭한 아들로 인해서 그 어머니도 존경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맹자의 모친이 위장 전입의 창시자라고도 하는데, 그분은 실제로 거주지를 옮겨 살았기에 위장전입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여하튼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얼마나 정말 복된 분이십니까? 수많은 여인들의 흠모의 대상입니다. 아베 마리아(Ave Maria)는 ‘마리아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까? 28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와~ 성모 마리아보다 더 복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아서 빛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은 강한 자 사탄 마귀로부터의 구원과 자유이며,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으로 주어지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구합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복, 성모보다 더 귀한 복을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기보다 다른 것을 구합니다. 특히 그 당시에 무엇을 구했습니까?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9절입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는 악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조금 전에도 한 말 못하는 사람을 낫게 했습니다. 이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사람들이 믿어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또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표적을 보여주면 어떻게 됩니까? 호기심만 만족하고 마술 보듯이 즐기기만 하고 계속 믿지 않고 표적을 구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는다고 선언합니다(롬10:17) 표적을 보아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더 이상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원수 나라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어디로 갔습니까?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욥바로 갔는데 마침 뭐가 있었습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가 막 떠나기 직전이었습니다. ”야,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 보구나‘ 고 그 배를 탔습니다. 뭐가 잘 풀리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잘 풀리던 잘 안 풀리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배가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삼일 만에 육지에 토해져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표적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밖에 더 이상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복음은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메시지요 또 이것은 최고의 표적, 최후의 표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 22절 2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노라”. 어떤 시대에든 어느 곳이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귀신의 세력이 떠나가고 구원과 자유와 영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 자체에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로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죄와 사탄에서 구원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복음을 어떤 자세로 받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겸손한 마음으로 듣고 영접을 해야 됩니다. 31절을 보겠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솔로몬 시대에 남방 여왕은 무려 이천 킬로를 여행하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엄청난 예물을 들고 와서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더 간절한 심정,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에 힘써야 됩니다. 32절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요나는 마지못한 마음으로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에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짐승들까지 금식을 하며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전국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얼마나 더 회개하기에 힘써야 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죽음 권세를 파하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강한 자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표적, 최후의 표적입니다. 우리가 더 강한 자 예수님을 실제 삶에서 굳게 의지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이름 권세 의지하고 기도하며 명하여서 귀신의 세력을 이기며 이번 여름 수양회를 복음의 말씀으로 능력있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