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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여름특강 제 4강 '묵상하는 자의 복 ' (시편 1:1-6 )2017-07-24 08: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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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특강 4



묵상하는 자의 복



말씀 시편 1:1-6

요절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복이란 말은 ‘잘됨’, ‘행운’ 이란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시간 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최고로 복된 삶인지 배우고 그 삶을 확신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원어나 영어에 보면 감탄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복되도다! ~~ 하는 사람이여!” 그러니까 본문의 복 있는 사람은 그냥 복정도가 아니라 감탄할 정도의 최고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렇게 복이 있단 말입니까? 


우선 소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피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들입니다.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악인은 하나님을 부정하며 온갖 사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선악의 관념이 없으며 도덕적으로 부패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무엇을 믿고 삽니까? 자신의 꾀를 의지합니다. 잔머리를 굴리며 여러 가지 요령을 피웁니다. 결코 손해 보는 삶을 살려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작당하고 음모를 꾸미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이런 악인들의 꾀를 따라 살지 않습니다.   


둘째,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죄인들은 죄에 탐닉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죄에 사로잡혀 있고 기회만 되면 죄의 길로 달려갑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가는 길이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것을 알지만 그 길로 달려갑니다. 잠언에서는 이런 자들의 삶을 함정에 빠진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번 죄의 함정에 빠지면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해골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는 달콤해 보이지만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자신에게 잡힌 자의 생명을 요구합니다. 복 있는 사람들은 이런 죄의 길로 가지 않습니다. 


끝으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만이란 단어는 ‘조롱하다’란 말에서 나왔습니다.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부정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합니다. 이런 오만한 자들은 높은 자리에서 거들먹거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며 그 영광을 취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을 견고하게 세운 후에 자기도취에 빠졌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궁 옥상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아니다!” 라고 말했으면 되는 데 “아니냐!”라고 한 단어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그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내가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1) 느부갓네살 왕은 오만한 말을 했을 때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수광증에 걸려 7년간 소 행세를 하며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겸손하게 되었을 때 다시 왕으로 복귀했습니다. 헤롯 왕도 연설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아 주의 사자의 침으로 벌레 먹혀 죽게 되었습니다.(행 12:21-23) 신은 죽었다고 하며 초인철학을 주장했던 니체는 정신분열에 걸려 자신이 유명하게 된 것도 알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오만한 자를 낮추시며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일입니다. 구약 미가서 6: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원하는 것이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행할 때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삶을 삽니다. 부침이 있는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삽니다.


이상은 소극적인 면에서 복 있는 사람이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면 적극적인 면에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여기서 오직에 해당하는 ‘임’이라는 히브리어는 “~일 때” 라는 말로, ‘이 조건을 갖출 때’ 의뜻입니다. 다른 것이 다 있더라도 이것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가장 복 있는 사람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좁은 뜻으로는 ‘모세오경 혹은 율법서’에 국한되지만 넓게 보면 ‘하나님의 법’ 곧 ‘성경’입니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성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계시된 것으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최고로 복된 사람은 이 성경을 접한 사람입니다. 돈 많은 사람, 높은 권력을 차지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무원이 된 사람, 공기업에 들어간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친, 여친을 많이 달고 다니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단순히 접하기만 하면 복을 온전히 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성경을 구입한 사람, 좋은 성경어플을 깐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고 대학생성경읽기 선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묵상한다고 할 때 묵상이란 뭘까요? 묵상이란 단어는 원어로는 ‘하가’입니다. 이 뜻은 ‘깊이 생각하다’, ‘신음하다’, ‘슬퍼하다’, ‘으르렁거리다’ 의 의미도 있습니다. 마술사가 신접할 때도 쓰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한자의 뜻으로 보면 묵상(默想)이란, 성경말씀을 잠잠히 생각하여 그 가운데 깊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영어 'meditation'은 라틴어 '메디켈루스'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약'(medicine)이란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즉 묵상이란 약이 몸 안으로 들어와 온 몸에 퍼져 약효를 내는 것처럼 어떤 생각이나 주제가 사람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단지 성경을 읽는 수준에 그치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묵상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좋아하여 밤에도 낮에도 시간만나면 묵상합니다. 아까 묵상의 뜻에 ‘신음하다’, ‘슬퍼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신음할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그것이 좋은 약처럼 내 온 몸에 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는 것은 그가 성경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의 반증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묵상하되 억지로 하지 않고 정말 좋아서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묵상하는 사람, 할 수 없이 묵상하는 사람, 숙제처럼 묵상하는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즐거운 사람의 특징은 그 일을 힘들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에게 테니스는 노동이 아닙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에게 등산은 고역이 아닙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공부는 최고의 취미이며 피서방법입니다. 말씀묵상은 그와 같아야 합니다. 즉 그것의 가치와 재미와 맛을 알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묵상은 어느 정도로 즐거운 것입니까? 테니스, 등산, 게임, 웹툰보기, 맛집기행, 연애, 공부를 능가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렇게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를 피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떻다고 되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어떻지요? 그 나무 중심 곧 물관에 시원한 물이 충만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 잎사귀가 메마르지 않고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결국 쭉쭉 성장하여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내면이 절대로 사막화되지 않습니다. 항상 내면에 생명수가 흐릅니다. 그리고 번성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사람은 내면에 기쁨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삽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결국 형통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형통이란 잘된다는 의미로 자신이 하는 일을 잘하며, 결국 일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형통이란 시련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이들에게도 시련이 옵니다. 요셉도 구덩이에도 던져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련을 감당할 할 만한 힘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말씀묵상은 우리가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어떤 사람은 시련을 당하면 픽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말씀묵상이 영혼의 시냇가로 자리하고 있는 사람은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그 내면세계의 저력을 드러냅니다. 아시다시피 나무는 한 번에 자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악인들의 길을 피하고 말씀에 뿌리내리는 삶을 살 때 한 번에 형통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론 시련도 겪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큰 영향력을 미치고 수많은 열매를 맺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이 행운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영혼에게 힘을 주는 영혼의 시냇가인 말씀천변에 심어진 복 받은 나무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 은혜를 잘 감당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말씀묵상을 깊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메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소위 우물곁에서도 목말라 죽는 격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말씀이 잘 공급되지 않는 곳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말씀묵상을 깊이 합니다. 그는 마치 지하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와 같습니다. 중동에 조각목이란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는 사막에서 유일하게 잘 자라는 나무중 하나입니다. 그 나무는 지하 약 30미터에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지하 30미터 에는 항상 물이 흐릅니다. 지하 시냇가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이곳에 뿌리를 내려 물을 빨아들여 메마른 사막에서 견딥니다. 결국 자기의 몸집을 키워서 성막의 기구들을 만드는 데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그러면 말씀묵상이 중요한데, 우리가 구체적으로 말씀묵상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아가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어떤 분은 미디어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정확하게 생각하기 위해 말씀을 곰씹어 보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말씀을 더 깊이, 더 정확히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곰씹어 보는 것은 소로 하면 되새김질과 같습니다. 소와 돼지는 가격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육질의 차이이고 이것은 되새김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는 4개의 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 제 1위를 반추위라고 하는 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섬유질로 소화가 곤란한 식물은 제 1위와 제 2위 내에서 대량으로 공생하고 있는 반추위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아 예비소화를 하여 다시 입으로 되올립니다. 그리고 입에서 다시 씹어 다시 다른 위에 저장시킵니다. 이런 동작을 되새김질이라 하는데 소나 양을 가만히 보면 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입으로 씹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반추동물인 소나 사슴은 반추(되새김질)를 통해서 완전소화를 이룹니다. 반면에 돼지는 아무생각없이 후르르 마시고 맙니다. 소가 힘을 쓰며 그 고기 육질이 좋고 값이 비싼 이유는 반추 곧 되새김질과 관련 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왜? 라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세대입니다. feel과 감정을 중시합니다. 이런 경향은 신앙생활에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과 감정에 좌우됩니다. 기분이 좋으면 엄청 헌신했다가 기분이 나쁘면 다운됩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나에게 대해서 뭐라고 했는가 에는 깊은 관심을 갖고 그런 말들 하나하나를 깊이깊이 곰씹어 봅니다. 그래서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까지 창작해 내서 절망, 좌절, 미움과 분노의 이유로 삼습니다. 우리가 기분과 감정에 따라 혹은 사람들의 말에 따라서 신앙 생활할 때 우리는 업 앤 다운이 심하고 비참한 삶을 삽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말이나 시류나 대세에 따라 살지 않고 말씀에 깊이 뿌리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말씀반추 곧 말씀되새김질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구체적으로 양식과 소감쓰기를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시대는 천박함과 몰입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일은 피상적으로 감당하고 별로 가치 없는 일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죄에 중독되면 사람은 점점 자기 하는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인생에서 루저가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은 삶이 잘 정돈되고 우선순위가 분명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뒤로 미루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형통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묵상에 몰입하여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바람에 나는 겨처럼 삽니다. 겨는 조금만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까불리며 심하게 요동칩니다. 바람 한번 세게 불면 존재자체가 위협을 당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영적 경량급이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말씀에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뿌리내지 않는 사람이 결국 악인이 됩니다. 말씀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감정과 정욕, 시류와 대세에 따라 살기 때문에 결국 악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삶의 마지막은 어떻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겨는 바람과 심판의 불을 견디지 못합니다. 반면에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 생명수가 충만히 흐르는 사람들은 바람과 불을 이깁니다. 의인의 삶이란 구체적으로 말씀에 뿌리내리고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좋아요 100만 개를 날렸다 한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악성댓글 만개가 달려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양회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최고의 만족도의 수양회였습니다. 그러나 수양회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년 수양회를 기다리면서 산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양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의 삶입니다. 평소의 삶을 잘 살기위해 수양회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평소에도 최고 만족도의 삶을 사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날마다 수양회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오래된 이야기, 진부한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매일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따끈따끈한 뉴스입니다. 오늘 주시는 주님의 사랑고백, 연애편지입니다. 가장 신선한 유머와 개그가 성경에 있습니다. 오늘을 승리할 수 있는 형통의 비결과 은혜가 성경에 있습니다. 만 가지 꼬인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말씀 묵상하는 삶은 다 좋은데 무척 재미없을 것이라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가장 재미있고 가장 즐거우며 가장 유익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아주 재미없이 사는 것 같아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묵상의 재미를 아는 사람들은 도대체 말씀묵상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중동의 나라들은 자신들 발밑에 무엇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 발밑에 검은 보석인 석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열심히 석유를 채굴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부자들이 되었습니다. 카타르에 갔을 때 사막위에 세워진 빌딩숲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부유한 나라인 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카타르는 축구장도 돔식으로 만들어서 축구장 전체를 에어컨으로 시원하게 한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발밑에 숨겨진 석유를 발견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발밑에 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우리 집 새장에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요새 재미가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장 가까이 행복한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성경이 발밑의 석유이며 행복의 파랑새입니다. 우리가 이 검은 보석과 행복의 파랑새를 놓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매일 일용할 양식을 쓰면서 양식말씀의 깊은 맛과 재미를 조금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진실로 양식 쓰는 시간이 제일 재밌고 보람 있습니다. 저는 사실 새벽기도인도를 매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인도하며 매일 광고로 참여하는데 너무 교만해질까봐 광고하는 것은 하루를 양보했습니다. 양식말씀을 매일 쓰면서 하루하루가 기다려지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이길 지혜와 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일말씀을 숙제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주일말씀도 양식말씀처럼 즐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일말씀에 공동체의 기쁨과 형통이 달려 있습니다. 제가 주일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양식을 위해서 하루 30분 투자하듯 메시지위해서 30시간을 투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풍성하고 깊은 메시지를 찾아내어 증거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란 최고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양식과 소감쓰기를 통해서 말씀묵상의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여름방학을 잘 활용하여 특강공부를 하면서 말씀의 깊은 맛을 경험하고 말씀에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