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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누가복음 제 25 강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26:1-31)2017-08-20 23: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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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5강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말씀 누가복음 26:1-31

요절 누가복음 2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열심히 궁리합니다. 그에 비하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현저히 부족한 편입니다. 돈을 어디에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돈을 잘 못 벌고 벌어도 죄 짓는 데만 쓰는 것같습니다. 이시간 우리가 돈을 버는 법을 배우기 전에 돈을 쓰는 법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재물사용의 신앙고백적 의미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 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청지기를 고용하여 자신의 물질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청지기가 주인의 물질을 낭비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주인은 이 청지기를 계속 고용하였다가는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낭비할 것같아서 그를 불러다가 추궁하고 정리해고를 엄중하게 통보하였습니다. 이 때 청지기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는 해고된 후에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궁리했습니다. 그는 육체노동을 하기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구걸하는 삶을 살자니 창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는 직분을 빼앗긴 후에도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냈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한 사람씩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갚을 빚을 줄여주었습니다. 기름 빚진 자와 밀 빚진 자에게 각각 오늘날로 하면 5000만원에 해당되는 금액을 줄여 주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몇 십명에게 이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청지기는 며칠 남지 않은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여 선심을 쓰므로 해고 후에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럼 이 청지기의 행한 일을 들은 주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또 옳지 않는 일을 하였구나!” 개탄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은 이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약삭빠르게 대처했다고 표현되었지만 새번역에는 일을 슬기롭게 처리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칭찬의 포인트는 불의함이 아니고, 재빨리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였습니다. 주인이 생각하기에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같다고 판단한 것같습니다. 아마 자신도 그런 정신으로 부자가 된 것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코멘트 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예수님은 평소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래를 발빠르게 대처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계셨던 것같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발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고자 발빠르게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사람들의 발빠른 대응을 배우기 원하셨습니다. 


특히 어떤 면에서 그러하셨을 까요?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의 미래에 대한 발빠른 대처를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확실한 미래를 발빠르게 준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대비해야 할 가장 확실한 미래는 무엇입니까? 영원한 처소로 가는 것, 곧 영원한 삶에 대한 대비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취업을 준비하고 은퇴 후의 노후를 준비합니다. 이것을 최대한 철저히 준비합니다. 취업을 위해서 대학 1학년때부터 놀러 가지도 않고 학점을 따기위해서 노력합니다. 어학연수를 갔다 오려고 하고 자격증을 따려 하는 등 얼마나 많은 스펙을 쌓습니까? 그리고 최후에 면접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합니까? 얼굴화장, 표정, 옷입는 것,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을 연습합니다. 선배들의 면접지도를 받습니다. 노후에 대해서도 연금, 보험, 저축, 한 가지 기술익히기 등으로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비하면 사후 세계는 철저히 대비하지 않습니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거처와 영원한 삶에 대해서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우리가 준비해야 할 가장 확실하며 중대한 미래는 영원한 거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생이 꽤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훌쩍 갑니다. 어떤 사람은 예상치 못하게 빨리 그곳에 갑니다. 결국 사람은 시간차가 있지만 영원한 삶의 문턱에 곧 서게 됩니다. 그리고 70-80년이 0.001초보다 짧게 여겨지는 영원한 삶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 영원한 거처에서 환영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불의하며, 결국은 없어질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불의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물은 중립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이라 단정지어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중립적인 것인데 불의의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돈을 사랑함울 일만 악의 뿌리, 즉 온갖 불의의 온상이라 했습니다.(딤전 6:10a) 돈이 얼마나 사람을 불의하게 만드는지 예수님은 차라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눅 6:20)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8:24,25) 돈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돈으로 인해 많은 옳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컨데 군대가는 형제들을 보면 돈이 없는 사병들은 별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장교들은 죄를 많이 짓습니다. 돈이 불의의 도구가 된 셈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불의한 재물을 어찌하든지 가지고 있으려고 하기보다는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방향을 주십니다.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돈이 주는 불의함을 극복하는 주님의 지혜요 방향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불의의 재물로 사귀어야 할 친구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구주 예수님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참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의 참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뿐 아니라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 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요 친구이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사귀는데 우리의 재물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돈을 가장 값진 곳에 쓰는 물질사용의 최고 Tip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돈을 어디에 씁니까? 먹고 마시는 데 씁니다. 좋은 옷과 장신구를 사고 머리 염색하는 데 씁니다. 좋은 차와 멋진 집을 사는 데 씁니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데 씁니다. 주로 자기만족, 이 세상에서의 만족을 위해 씁니다 그러나 그래서 아무리 멋지게 입고 다니고, 수천의 맛집을 탐방하고, 지구를 몇 바퀴를 도는 여행을 하였다 한들 만약, 그가 영원한 거처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그는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귀한 물질을 가장 값진 곳에 써야 하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천국행 티켓을 구입하는데 써야 합니다. 수양회 가는데 돈 써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가는 MT에 돈 써야 합니다. 양들 먹이는 데 돈 써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베이비시터 하는데 돈 써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합니다. 또한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돈을 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재물을 죄짓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구제를 위해 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에서 환영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맡기겠느냐" 이 말씀에서 지극히 작은 것, 불의한 재물, 남의 것은 이 세상에서 내가 소유한 물질을 말합니다. 반면에 큰 것, 참된 것, 너희의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것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받을 것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또한 주로 죄 짓는데 사용되니 불의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나의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런 것에 충성된 태도는 돈을 예수님을 사귀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쓰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의한 태도는 돈을 자기만을 위해, 현세적인 것만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극히 크고, 참되며, 진정한 자기의 것인 하늘나라의 것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재물의 위상과 힘을 가늠하게 해줍니다. 재물은 곧 하나님과 같은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처럼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고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투철한 영적 가치관을 훈련받은 사람외에는 대개 돈의 강한 지배를 받으며 삽니다. 돈의 종이 되어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씩 돈을 과감하게, 영적인 데 쓰는 연습을 해서 돈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돈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바리새 운동은 세속화, 이방화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경건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속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하며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속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그들의 귀에 예수님의 말씀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의 몇가지 점을 책망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우선, 자기 의와 우쭐한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 알고 계시며 그들이 자기를 속이고 자기 의로 포장되어 자기를 사람 앞에 높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사람들앞에 100점으로 인정받으면 하나님께 미움받는 점수가 100점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롯데타워처럼 높임을 받고 있으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미움의 표적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정받고 높임 받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가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자기 의를 쌓던 시대는 가고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직도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선지자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 자기 의에 속아 교만과 우쭐함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은 위선적인 자기 의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상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헛된 자기 의와 우쭐함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청중들이 혹 율법에 대해서 오해할 까봐 첨언하셨습니다. 율법의 시대가 갔다고 해서 율법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합니다. 율법은 인간의 의의 한계를 드러내주고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하는 가정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세속화된 것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18) 당시 바리새파 중에는 이혼에 대해서 관대한 힐렐 학파와 엄격한 샴마이 학파가 있었습니다. 힐렐학파를 추종하는 바리새인들 중에 새 장가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수 있다는 모세의 율법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자신들의 이혼과 재혼을 합리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아내를 버리고 장가드는 자뿐 아니라  심지어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한 자도 간음한 것이라고 하심으로 이혼에 대해서 극도의 제한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부분에서 진보적이었지만 이혼문제만큼은 극보수의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속적인 이유로 이혼 또는 재혼하는 사람들을 살인죄와 동등한 간음죄로 단죄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이혼과 재혼이 세속적인 삶의 통로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가운데 경건주의 운동을 시작했던 바리새인들이 세속화된 것을 지적하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나라 소망가운데 경건하게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19-31절은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임금이나 입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연회를 베풀며 호화롭게 즐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나사로라 하는 거지는 곪은 상처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살았습니다. 그는 부자의 음식물 쓰레기로 배를 불리려 했습니다. 이런 그를 부자는 CCTV로나 출퇴근길에 분명히 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자신의 집 전속의사나 간호사를 보내 나사로를 치료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 하인들이 그 헌데를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섭게 생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음식인양 핥았습니다. 나사로란 이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인데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나사로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요 세상은 공평치 못합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삶에 어떤 반전이 있었습니까?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 곧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때가 되자 전도서 말씀처럼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아마 나사로는 장례식도 없이 어느 공동묘지에 겨우 묻혔을 것입니다. 반면에 부자는 성대한 장례식가운데 그의 육신은 화려하게 염이 되고 역시 화려한 수의에 둘러싸여 묻혔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 즉시 그의 영은 음부가운데 떨어져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23절을 보면 성경은 그의 영을 '그'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육신은 그를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했고 진정한 그는 그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음부에서 고통당하며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향해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 곧 자신의 조상으로 불렀습니다. 이를 보면 그는 정통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 부자는 짧은 세상을 사는 동안 물질적으로 좋은 것을 많이 누렸습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세상에서 거지로서 좀 불편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짧은 전반전은 갔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거지 나사로가 편하고 부유하게 살지 못했기에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사로를 위해 영원한 인생의 후반전을 예비해두셨습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으로 웃는 자다"라는 말처럼 이제 나사로는 진정으로 웃게 되었습니다. 


종료휫슬이 울리고 인생의 후반전인 영원한 삶이 시작될 때 아주 당황하는 사람과 승리의 미소를 띠며 V 자를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삶에서 웃을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구원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나의 가장 귀한 물질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내 집 앞에 있는, 내가 지나칠 때마다 내 눈에 띠는 ''나의 나사로'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의 헌데를 소독해주고 약을 발라주고 거즈와 붕대를 메주어야 합니다. 병원에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를 친구처럼 집으로 초대하여 집 한 칸도 내어주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나누어주고 그를 섬겨야 합니다. 이처럼 내가 쓰고 남은 물질은 바로 내가 나의 나사로에게 도움을 주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음부에서 고통당하는 전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 자기처럼 그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 간청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이 부자의 형제사랑하는 마음에 놀랍니다. "어떻게 지옥의 고통속에서도 형제를 생각하나?" 이 사람도 정말 양심이 살아있고 얼마든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 데 쾌락과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에 양심이 매몰되어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의 거듭된 요청을 끝내 거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 곧 구약성경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죽었다 살아난 이가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기적은 잠시 믿음을 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금방 다시 불신과 의심에 빠지게 합니다.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헛소리를 하는 것 아냐' 이렇게 치부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기적만 의존하는 신앙은 허술하고 부실합니다. 정말 확실하고 탄탄한 신앙은 성경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성경은 역사성 있게 쓰여져있고 서로 퍼즐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아주 탄탄하고 견고한 신앙이 생깁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에 기초할 때 가장 확실합니다. 부활과 내세도 성경에 기초해서 믿을 때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젊은 날 해야 할이 많지만 영원한 처소에 들어감을 준비하는 데 물질을 드린 것은 참 현명합니다. 우리가 소중한 물질과 시간을 드려 소중한 물질과 시간을 드려 영원한 삶을 예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 목자는 군대에서 유럽 여행을 가려고 차곡차곡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비행기티켓도 구입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럽선교사님 자녀중에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때 그는 그 아이를 위해서 유럽여행을 내려놓고 그 돈을 아이를 위해 송금했습니다. 이런 그에게는 하늘나라를 여행하는 기쁨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재물을 대하는 태도에 우리의 실질적인 신앙고백이 담겨있습니다. 물질사용은 신앙의 척도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물질을 예수님을 사귀고 가난한 자들을 친구삼는 데 쓰므로 하나님나라에서 환영받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