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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누가복음 제 30 강 '장사하라' (누가복음 19:11-27)2017-09-17 1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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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누가복음 30강 


장사하라 


말씀 누가복음 19:11-27 

요절 누가복음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오늘 말씀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써야 할 한 가지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푯대와 같은 분명한 한 가지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현재 예수님이 계신 여리고와 예루살렘은 불과 27km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이 로마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선포하시고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체험한 후 우리도 당장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곧바로 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또 당시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 말씀 주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당시는 로마 제국이 온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로마 지배하에 있던 각 나라 왕족 및 귀족들은 왕이 되기 위해 반드시 로마로 가서 황제로부터 왕권을 인준받아야 했습니다. 이때 그의 정치적인 정적들이 비밀리에 사절단을 로마로 보내 그 사람이 왕이 되면 절대로 안된다고 로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포악한 사람이고, 만약 그 사람이 왕이 되면 그 지역에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로마 황제에게 협박성 발언을 하였습니다. 비유에서 왕위를 받으러 가는 귀인에게도 그가 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 정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먼 나라로 떠나기 전 귀인은 그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종 열 명을 불렀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각각 은화 한 므나씩을 주었습니다. 한 므나는 노동자의 석달 열흘 월급으로 약 천만원 가량 됩니다. 귀인, 그러니까 주인은 종들에게 천만원씩을 주면서 이 돈으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는 방향을 주었습니다. 


장사란 밑천을 가지고 상업적인 활동을 하여서 이윤(profit)을 남기는 것입니다. 장사는 그 어떤 활동보다 생생한 현장성,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빨리 달려나가는 민첩함과 성실함, 시장의 흐름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관찰력,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개척정신과 도전정신, 아울러 창의성과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스스로를 개혁하여 다시 태어나는 혁신성이 요구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예로부터 장사하여 돈을 버는 상인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장사야말로 한 사람이 가진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CEO 출신 중에서도 밑바닥 세일즈부터 경험하며 올라온 사람이 실제적으로 경영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합니다. 주인은 종들을 먼 나라로 유학보내거나 나중에 큰 일을 하려면 사람을 알아야한다며 고위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사교 및 외교 활동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밑바닥 장사부터 시작해보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얼핏보면 주인은 종들이 자기가 없는 동안 노는 꼴을 보지 못하고 큰 돈을 주면 가지고 튈 수 있으니까(먹튀), 적당한 액수의 종잣돈을 주어서 어찌하든 이익을 보려는 돈만 밝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주인에게는 종들의 역량을 키워 장차 그들을 통치의 중요한 동역자들로 쓰고자 하는 복안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주인은 그릇이 크고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훌륭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가는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당시 제자들과 무리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곧바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복음을 완성하셔야 합니다. 그 후 먼 나라인 하나님의 보좌 옆으로 가셔서 왕위를 받으십니다. 그 이후 그 왕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십니다. 그러면 그 기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흰 옷을 입고 산에 올라가 구름 사이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니면 각자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님재림하시면 그때 가서 주님을 맞이하면 됩니까? 


부활하신 주님은 왕권을 가지고 돌아오시기 전에 우리 각자에게 한 므나씩을 주시고 그 므나로 장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 므나는 무엇입니까? 먼저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단 한 번뿐인 이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두 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 태어나 단 한 번 살다가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다음으로 복음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동일한 복음과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목자님의 성경이 나보다 두 배 두꺼운 것이 아닙니다. 설령 두껍더라도 그것은 목자님에게 노안이 와서 글자가 큰 성경을 구입하신 것뿐입니다. 또 성령과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또 재능입니다. 재능에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고 그 재능이 다 각자 고유한 쓰임새가 있다고 볼 때 한 므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와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주신 한 므나로 장사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 장사하라 하시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이는 분명한 사명(life for mission)과 목적이 있는 삶(purpose-driven life)을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이란 정처없이 흘러와서 정처없이 흘러가는 저 하늘의 구름과 같다고 말합니다. 헤르만 헷세는 인생이란 구름처럼 내 뜻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고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떠밀려 구름처럼 떠밀려가다가 잠시 후 하늘에서 사라지는 덧없고 허무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삶의 애환 가운데 울고 웃다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삶을 보면서 인생은 한바탕 놀이라고 정의합니다. 동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신랑신부 놀이를 하면서 진흙으로 아이를 빚어 가지고 놀면서 서로 웃고 울다가 싸우다가 엄마가 부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갑자기 머리를 밀고 절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 부활의 복음으로 구원한 그의 사랑하는 종들이 이처럼 허무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순간적인 만족감이나 쾌락을 위해 불나방처럼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도착해야 할 항구를 몰라 망망대해를 정처없이 떠도는 배처럼 의미도 없이 목적도 없이 살기 원치 않으십니다.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오실 예수님만 기다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이 도착해야 항구가 분명하고 그 항구를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둘째, 장사하라는 말씀은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장사는 한 사람의 종합적인 역량을 키워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생각이 깊은 회장님이 그의 사업을 물려주기 원하는 후계자에게 밑바닥 세일즈부터 시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장사는 그 어떤 활동보다 더 위험요소가 많습니다. 한 순간의 판단의 잘못으로 실패할 위험이 높습니다. 급변하는 현장에서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장사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므로 우주에서 가장 복잡미묘하다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른 것은 실패해도 마음에 큰 상처가 남지 않으나 사람 장사는 실패할 경우 사람으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팔고자 할 때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활동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다른 어떤 활동보다 더 많은 상처를 경험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밑천으로 주시고 캠퍼스와 직장과 더 나아가 온 세계를 상대로 장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노는 꼴을 보지 못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별 근심걱정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꼴도 보지 못하시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의 종합적인 역량을 키워주시기 위함입니다. 장사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소망을 배우고 참 사랑을 배우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 장사하라는 말씀은 영혼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장사꾼은 돈을 벌 때 가장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죄로 죽을 영혼을 그의 핏값으로 사서 구원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장사할 때 그 장사가 잘 되는만큼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가장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열매맺는 일입니다. 이 일이 보람있고 가치있는만큼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10년 이상 인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캠퍼스를 개척하기 위해 오랜 기간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는 가운데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평생의 복음 장사 가운데 단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본문에서 귀인은 매우 훌륭하고 왕다운 내면성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몰래 사자를 보내 그가 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로비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왕권을 받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누구든 왕권을 받아와서 자기들이 산 삶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평가하고 상을 주거나 벌을 준다는 개념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귀인은 정적들의 모든 음모를 물리치고 왕위를 받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정적들을 체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종들을 가장 먼저 불렀습니다. 그의 마음은 대적한 이들에 대한 분노보다 종들이 장사한 결과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첫 번째 종은 승리의 기쁨에 찬 보고를 올렸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그는 주인이 준 한 므나로 장사를 시작하여 무려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그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 그는 장사를 했습니다. 그의 승리의 비결은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는 ‘장사를 꼭 해야 할까? 장사를 하라고 한 주인의 저의가 무엇일까? 주인은 내가 놀고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만약 장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장사대신 공부를 하면 어떨까?’ 등 복잡하고 꼬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내가 과연 장사를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장사체질이 아닌데. 섣불리 장사하다가 한 므나를 다 날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자기가 충분히 장사를 잘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 므나를 맡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두려움, 잡생각, 헛생각을 다 떨쳐버리고 곧바로 장사할 아이템을 정하기 위해 현장에 나갔습니다. 주인이 장사를 하라니까 한 것 - 이것이 바로 그의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얼마 전 양식 말씀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니까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가도 되니까 들어가라고 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비해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가나안에는 거인들도 많고 철병거도 있는데 섣불리 들어갔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40년 후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전부 다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복음 장사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는데 아무런 결과나 열매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양들로부터 거절당하고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여 장사체질이 아닌데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장사하지 않는 삶에 아무런 이윤도 없습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한 므나가 소진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므로 모든 잡생각, 헛생각, 막연한 두려움을 다 떨쳐버리고 지금 인생의 시장에 나가, 캠퍼스 시장에 나아가 장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그는 장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열심히 장사한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사를 잘 한 사람은 공통적으로 다 열심히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장사에 온 마음과 진심과 열정을 드리며 장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워커홀릭처럼 일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지혜로운 그는 잠시의 쉼이 더 큰 효율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쉴 때에는 마음껏 푹 쉬었습니다. 또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것을 알고 무리하게 밤을 새거나 식사를 부실하게 하지 않고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잘 하였습니다. 대신 일할 때에는 120% 집중하여 일하였습니다. 


셋째, 그는 주인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가 장사할 때에 중요한 판단과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판매하는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그는 슬쩍 눈가림하고 넘어가느냐, 아니면 정직하게 그것을 공개함으로 큰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 대신 소비자 신뢰를 얻느냐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과거 주인이 이런 경우 어떻게 했는지 떠올렸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상술(商術)보다 상도(商道)가 더 우선이며 눈에 보이는 금전적 이득보다 보이지 않는 소비자 신뢰가 훨씬 더 소중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큰 손해를 감수하고 문제가 있는 제품을 전량 리콜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종이 판매하는 제품을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감을 갖게 되었고 그가 판매하는 제품은 전국적으로 유명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시장, 캠퍼스 시장에 나아가 장사할 때에 필요한 것들을 상술(商術)과 상도(商道)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술-하면 사실 어감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상술에 당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상술만큼 실제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요즘 외대 주변을 보면 제가 보기에도 정말 상술이 없어 보이는 가게들이 많이 있습니다. 커피집이 그렇게 많은데 또 커피집을 여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커피 가게가 많은데 열려면 무언가 독특하고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가게는 곧 문을 닫습니다. 


이와같이 주님께서 명하신 복음장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좋은 의미에서의 상술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장사의 대상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어제 전국 JBF 교사 모임에서 100년 전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들이 어떻게 조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잘 팔기 위해 애썼는가 배우고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옆에 있는 연동교회의 초대 목사입니다. 그는 조선 사람들이 공부를 좋아하는 것을 관찰하고 조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책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에 김준근이라는 사람의 동역을 받아 43개의 한국화 삽화를 실었습니다. 크리스챤과 등장인물들은 갓을 쓴 영락없는 조선인이었습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세브란스 병원을 건립한 선교사입니다. 그는 조선인들이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안식년 때 세브란스라는 철강회사 회장을 만나 후원을 받아 근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조선사람들의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도와줌으로 복음이 효과적으로 팔리도록 하였습니다. 


많은 청년 사역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캠퍼스 젊은이들은 같은 한국말을 한다고 해서 더 이상 같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도 다르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청소년 아이가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니까 ‘아이 짜증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버릇이 없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짜증나니까 짜증난다고 자기 감정을 표현한 것 뿐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짜증난다는 말로도 자기 감정이충분히 표현되지 않으면 더 강한 표현을 써서 표현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표현합니다. 그만큼 감정 표현이 중요하고 또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이해가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에게 복음을 팔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캠퍼스 선교사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심지어 같은 청년들이라 하더라도 1-2년 후배의 생각이 또 다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청년을 잘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해야 합니다. 늘 공부하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투쟁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장사에 중요한 상도가 있습니다. 상도는 대상이 누구든, 시대가 어떻든 변치 않는 원칙입니다. 그것은 장사에서 생긴 이윤을 내가 취하지 않고 전부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순수하고 충성된 자세, 거짓됨이 없이 진실하고 정직한 자세, 내게 맡겨진 영혼들에 대한 진실하고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도는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또 성경을 통해 변치 않는 상도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선교사 정신을 가지고 전도의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가운데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주인은 종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충성했다는 것은 종이 주인이 명한대로 잘 이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이것을 통해 종에게 더 큰 일도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 중 열 고을을 그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10개의 큰 도시를 가진 한 도를 책임진 도지사로 임명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 말씀대로 우리의 삶과 재능과 복음을 가지고 충성하면 장차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직분을 맡기실 것을 의미합니다. 


18-19절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 대해 동일한 칭찬을 하시고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이제 문제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주인이 준 므나를 수건으로 싸 두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무서워했다고 했습니다. 또 그가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2-33절에서 주인이 한 말을 기초로 볼 때 그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의 변명이 사실이라면 그는 그 돈을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아 주인에게 이윤을 돌려드렸을 것입니다. 사실 그도 한 므나를 받은 열 명의 종에 속한 것을 볼 때 평소 주인의 신임을 받던 종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주인이 먼 나라로 떠난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이제 좀 편안히 쉬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딱 한 달만 쉬고 장사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쉬다보니 쉬는 것이 너무 좋고 주인이 올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은 것 같아 딱 한 달만 더 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사이 그는 술 친구, 노름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어느 날 술에 취해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주인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눈에 보이는 주인이 있을 때는 충성스러운 종처럼 보였으나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주인을 향한 충성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의 말을 멸시하였고 주인의 말보다 본성적인 자기 욕구와 욕망을 더 앞세웠습니다. 


24절을 보면 주인은 그의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종들은 이미 그에게 열 므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면 주님은 착한 분이시니까, 이 세상에서 별로 한 것이 없어서 매우 빈곤한 크리스챤들을 위해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한 분이 받은 엄청난 상급으로부터 조금씩 떼어서 나눠 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충성한 자에게 이미 그가 받은 것에 더하여 더욱 넘치도록 주십니다. 반면 불충한 자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던 것까지 전부 환수해 가십니다. 


결론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단 한 번 삶, 단 한 권의 책인 성경, 동일한 복음, 동일한 성령을 장사 밑천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가서 장사하라 명하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일어나 장사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른 상술과 상도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하여 많은 이윤을 주님께 돌려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