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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편 136:1-26)2017-11-19 09: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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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말씀 / 시편 136:1-26

요절 / 시편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시편 136편을 전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편136편은 다른 시편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이는 본문 전체가 26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절 앞부분에 "OO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로 되어 있고, 이어서 후렴구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가 따릅니다. 그래서 "감사하라"는 말이 26번 나오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가 26번 반복이 됩니다. 


이 시편의 저자 및 저작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반복되는 후렴구가 있는 것을 보아 이스라엘 회중이 예배를 드릴 때 사용된 시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나 예배 사회자 또는 찬양대가 먼저 "하나님께 감사라라" 선창을 하면, 회중은 후렴구로 화답한 것으로 봅니다. 


이 시편이 특별히 어떤 예배에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월절 예배라고 봅니다. 이는 10절 이하 여러 절에 걸쳐 출애굽 사건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견해는 한 해의 소출을 감사하는 초막절 예배라고도 봅니다. 이는 특히 25절의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여하튼 어떤 목적으로 이 시편이 지어졌고 사용되었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근거, 그들의 존재와 행복의 근거에 대해 그들의 과거를 생각해 볼 때, 창조주 하나님,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근거, 존재의 근거, 행복의 근거가 무엇일까요? 오늘 시편 말씀을 통해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NIV-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추수감사절을 맞아 우리는 여러 가지 감사제목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요회 목자님이 30가지를 적어 보라고 하시니 여러 가지를 찾아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30가지가 생각이 나지 않으니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감사제목까지 찾게 됩니다. 지난 해 학교 시험 잘 본 것 감사, 나에게 건강 주신 것 감사, 부모님에게 건강 주신 것 감사, 동생에게 건강 주신 것 감사 등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시인은 가장 먼저 무엇을 감사합니까?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명합니다. 


‘선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이라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던진 질문입니다. 최초 인간 아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선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선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성경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성 가운데 선하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악하게가 아니라 선하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유익과 잘됨, 우리의 행복을 원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 하나님의 이러한 선한 성품을 첫째 감사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직후에 쓰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이방 땅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은 선하신가?” 그에 대해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축복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에 빠졌고, 이방민족들과 결혼하며 여호와 신앙을 상실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멀리 바벨론으로 보내셔서 용광로 같은 고난 속에서 민족의 순수성을 새롭게 하시며 연단하셨습니다. 그들을 계속 쓰실만한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자주 나 자신이 처해진 현실에 따라 하나님은 선한 분이라는 생각도 들고, 선하지 않은 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은 선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호라시오 스패포드(Horatio Spaffod)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서 성공한 변호사요 시카고 대학 교수였습니다. D.L. Moody 와 절친한 사이로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42세 때 전염병이 돌아 첫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871년 43세 때 시카고 대화재로 자신의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엄청난 시련 앞에서 자기의 아내와 네 명의 딸을 데리고 잠시 휴식을 얻고자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배가 떠나기 전에 자신은 급한 사정이 생겨 내리고 아내와 네 딸만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대서양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였습니다. 200여명이 죽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아내와 딸들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에게 영국에서 아내로부터 전보가 왔습니다. "Saved alone." 네 딸은 죽고 아내만 겨우 구조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데리러 오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며 자기의 네 딸이 잠긴 바다 위를 건널 때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 바다가 자기도 삼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가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가 지은 시가 "내 영혼 평안해"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굳게 의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 하나님의 경륜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판단할 만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크신 분이십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큽니까? 


지금부터 40년 전 1977년에 미국 NASA에서는 우주탐사선 보이저1호를 발사했습니다. 지금도 지구로부터 약 210억 Km 떨어진, 인류가 만든 모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먼 지점에서 시속 62,000 Km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칼 세이건’이라는 유명한 과학자는,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탐사선을 뒤로 돌아서게 하여 지구의 모습을 찍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제안은 많은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우주선을 잘못 작동시켰다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태양 빛을 보게 하면 우주선 카메라가 고장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그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관철시켰습니다. --> 그림 1 그 한 장의 사진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알갱이 같은 지구 위에서 인간의 모든 전쟁과 다툼, 영욕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하였고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함입니다. 지구가 먼지와 같이 보이는 것도 겨우 태양계를 벗어난 정도 입니다. 태양계의 지름이 100억 Km 정도이고 우리가 속한 은하계의 지름이 13만 광년이니, 보이저1호가 아직도 4억 배를 더 가야 은하계를 벗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은하계가 얼마나 큽니까? 이 우주에는 그러한 갤럭시가 확인된 것 만해도 1,000억 개가 되니 우주의 크기를 우리가 상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편 8:3에 보면 그러한 우주를 하나님은 그의 ‘손가락’으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손으로 하신 것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 마다 불러서 써 먹는 상담사가 아닙니다. 나의 조수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이 계시하여 알려주신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그를 믿을 뿐입니다.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을 믿을 뿐입니다. 


우리도 지난 한해 돌아볼 때 마치 폭풍이 부는 바다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이 가운데 힘들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나 자신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것 같고 폭풍 가운데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방안의 먼지 하나의 움직임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사 나를 위해 그 아들까지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다 아시고 허락하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구약의 욥은 심지어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 (Though he slay me, yet will I hope in him)(욥13:15)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당장 이것저것을 주셔서가 아니라 그 분의 거역할 수 없는 우리에 대한 선한 속성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만유의 주인이시요 통치자시요 전능한 분이신 것은 생각할 때 우리는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선하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서 '인자'는 원어로 'hesed'인데 우리가 지난번 룻기 공부하면서 배운 단어입니다. 'Hesed'는 번역하기 어려운 말인데,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 대한 확고부동하고 한결같은 ‘사랑’, 그 맺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시는 ‘신실하심’,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기는 ‘긍휼’을 의미합니다. 우리말에 가장 근접한 단어는 '인자', 또는 '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헤세드의 최고의 표현이며 실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죄의 짐을 지고, 정죄를 받고 멸망해가는 우리를 심히 불쌍히 여기사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습니다(고후5:21). 이를 통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이 하나님, 곧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이가 무엇을 더 아끼시겠습니까? 더 이상 무엇을 주지 않고자 하시겠습니까? 죄인된 우리를 위해 자기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아무 것도 아끼지 않고 무엇이든지 우리의 유익을 위해 내어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 ‘영원’은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동안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His love endures forever). 


또한 그 인자하심은 중단이 없습니다. 1분 1초도 중단이 없습니다. 사탄 마귀는 언제나 우리 신자들을 공격하고자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장에 불화살을 쏘려고 화살이 뚫고 들어올 수 있는 0.01초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중단 없이 계속되어 0.0000001초도 빈틈을 주지 않으십니다. Non-stop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치열한 영적 싸움의 인생을 살면서 이를 확신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


1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기자는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의 문제입니다. 의지가 발동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Feel이 꽂히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Think and thank!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시50:23). 감사 자체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미국 워싱턴에서 책임목자 이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이임하시는 분이나 취임하시는 분이나 얼마나 감사를 많이 하시는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습니다. --> 그림 2,3 특히 Sarah Wang Brown 선교사님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감사한 분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계속하여 감사를 하였습니다. 한 20번 “Thank you!”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스피치는 짧았지만 그가 드린 감사로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보면서 사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우리가 늘 감사하는 가운데 행복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사람들이 신들로 섬기는 여러 신들, 여러 주들이 있지만 그런 것에 비해 단연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유일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감사와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4-9절을 보십시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지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홀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홀로’ 하셨다는 것은 누구의 자문이나 조력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홀로 생각하시고 홀로 결정하시고 혼자의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로 하늘을 지으셨습니다. 요즘 가을 하늘이 얼마나 맑고 아름답습니까? 지구를 덮은 약 10km 정도의 대기권은 그 안에서 공기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할 뿐 아니라 태양에서 오는 모든 유해 광선을 차단합니다.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합니다. 대기권이 없다면 지구는 낮에는 영상 180도, 밤에는 영하 180도까지 되어 생물이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물 위에 펴셨습니다. 지구 표면을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면 온 지구 표면은 약 3,000미터 깊이의 바닷물에 잠길 것입니다. 이러한 지구 표면에 땅이 드러나게 하사 인간과 육지 생물들이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바다의 경계를 정해 더 이상 넘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 목자님이 동해안에 가 보았는데 강풍이 불어 파도가 사납게 해변에 몰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서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올라올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결코 일정한 선 이상 까지는 물이 올라오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못 올라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큰 별들을 만드시고 태양을 지으셨습니다. 태양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원천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은 무엇을 먹든 결국 다 배설하고 태양 에너지만 취하게 됩니다. 태양 복사열의 2억분의 1을 지구가 받습니다. 이것이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지탱합니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또는 조금만 더 멀어져도 지구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거리에 지구가 위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셔서 밤에도 길을 다니며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구상에 편히 살 수 있도록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태양을 보고 빛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숨 쉬고 걷고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취하여 그 은혜의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가장 평범한 것을 잃을 때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 먹을 수 있다는 것, 내 힘으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것, 걷는다는 것, 일상의 하나하나가 기적이요 감사제목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길 기도합니다!


10-22절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나타난 내용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곧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애굽왕 바로에게 그의 백성을 내 보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자 아홉 가지 징계를 차례로 내리심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려주시고 순종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은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셨습니다. 바로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이스라엘을 나가게 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홍해가 그들의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기병대가 먼지를 흩날리며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사 그들로 마른 땅을 밟으며 바다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추격하는 애굽 군사들을 모두 물속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바다도 가르시고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2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40년간이나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주셔서 그들을 먹이셨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사 그들로 마시게 하셨습니다. 나침반이나 GPS가 없었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강력한 왕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물리치셨습니다.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애굽의 종살이 하던 데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난관 가운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하시고 마침내 그 약속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삶이 가장 안전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믿고 사는 바가 있습니다. 돈을 믿기도 하고 자기 실력을 믿기도 합니다. 학벌이나 자격증을 믿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나중에 가면 다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사는 자도 썩고 소멸됩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비천한 인생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말씀을 믿고 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대상이 된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과거 사탄 마귀의 종이 되어 비천한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장자 되신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손아귀에서 구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에 들이셨습니다. 그 아들의 사랑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드립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난 한해를 돌아볼 때 우리의 대적이 많았습니다. 현실적으로도 북한의 핵개발로 남북 관계, 북미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외국 자본이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온 세계가 제2차 한국전쟁을 우려하였습니다. 9월 23일 미군 B-1B 편대가 NLL을 넘어 원산 앞바다까지 비행한 순간은 6.25 전쟁 이후 핵단추가 눌러질 수 있던 가장 근접한 순간이었습니다. 


지진 안전지대라고 믿었던 우리나라에도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치르려던 수능이 일주간 연기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책상이 흔들리고 찻잔이 움직였습니다. 세상에 안전한 곳이라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앤티 기독교 분위기는 더욱 심해졌고, 사상 최저의 출생률로 캠퍼스 어장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졸업해도 취직을 하기 힘든 시대, 결혼하기 힘든 시대, 5포, 7포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증가로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도 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통해 원수 마귀 대적은 우리에게 순간순간 절망과 두려움을 심고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을 밝히시고 눈동자와 같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셨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지만 우리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보면 염려와 두려움이 몰려오지만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큰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도리어 그런 어려움도 쓰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사람들로 연단하심을 믿게 됩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21세기 과학은 인공지능을 만듭니다. 그러나 22, 23세기가 되어도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은 양식을 만드는 일입니다. 양식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씨가 심기어 곡식이 자라고 이 곡식이 모든 생명체의 1차 식품이 되어 food chain을 이룹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먹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모든 생명체를 먹이십니다. 곡식은 땅에서 나는 것 같지만 실상 하늘에서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신실하게 양식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그 인자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금까지 시인은 주로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 초월자시요 만유를 주관하시는 분,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우리의 선하신, 자비로우신,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감사 찬양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선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친히 그 걸음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사 모든 대적의 손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굳게 믿음으로 늘 감사와 찬양을 돌리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