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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부활절 제2강 '부활의 영광과 승리' (고린도전서 15:35-58)2018-04-08 2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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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활절 특강 제 

 

 

부활의 영광과 승리

 

말씀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고린도전서 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뭐든지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맹신할 때 오래가지 못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받으면 무너집니다부활신앙은 콘크리이트처럼 단단하고 견고해야 합니다바울은 본문에서 부활이 없다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하며 부활의 필연성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부활의 영광과 승리를 노래합니다본문을 통해서 부활신앙위에 굳게 서서 흔들림없이 그 영광과 승리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35절을 보십시오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이 질문은 부활에 대한 궁금증에서 나온 진지한 질문이 아닙니다부활이 불가능하며 불합리하다는 의미로 비아냥대는 말입니다. “부활이 실화냐?” 그런 말입니다왜 그들은 부활을 믿는 것을 어리석게 여겼을 까요?

 

첫째로 부활은 불가능하기에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죽음의 강은 넘사벽 입니다그래서 부활이란 태평양을 다시 헤엄쳐 오는 처럼 불가능해 보입니다혹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 시간 후에며칠 안에 살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몇 달 전에몇 년 전에심지어 수 백 년 전에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도 부활한다니 믿기에 힘듭니다제가 가족묘 이장하면서 저의 증조할아버지의 뼈를 보았습니다이런 분이 다시 살아난다고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구나 생각하니 내가 가진 부활신앙을 점검하게 되었습니다요새는 화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더더욱 부활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이런 면에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면 부활의 역사를 못 믿을 것은 없습니다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이루어졌습니다그에 비하면 부활은 그래도 재료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화장한 경우도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아이슈타인은 E=MC공식을 통해서 질량은 에너지로 바뀌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되어지지만 부활은 어딘가에 있는 재료에 기초해서 재창조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쉽습니다어떤 분은 창조는 믿지만 부활은 못믿겠다고 하는 분이 있는데 일관성 없는 이상한 논리입니다.

두 번째로 부활이 현재 삶의 반복이기에 불합리하다고 보았습니다당시 근동과 로마지배의 세계에는 헬라의 이원론이 퍼져있었습니다이원론에서 육체나 물질은 악하고 나쁜 것입니다그들은 육체를 영혼의 무덤으로 보았고 반면에 죽음은 참된 자유와 해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바울의 전한 복음은 그런 영혼이 육체를 다시 덧입는다고 하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우리들 가운데도 나의 몸이 다시 부활한다고 생각하면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신체에 콤플렉스나 장애를 가진 경우에 그렇습니다또 다시 병들고 죽을 텐데 하며이런 삶은 한번이면 족하다며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정말 타당하고 합리적인 주장이네요” “그 말 듣고 보니 나도 확신이 없어지네요라고 대답하였습니까?

 

36a 절 보십시오바울은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서 곧 바로 어리석은 자라고 반격하고 있습니다이것은 그 만큼 몸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체계와 논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면 바울은 타당해 보이는 그들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합니까?

 

첫째로 죽음은 부활의 장애가 아닙니다. 36절을 보십시오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부활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로만 생각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씨의 비유를 통해서 오히려 죽음이야말로 부활을 가져오는 전제조건이라고 말합니다씨는 장래형체를 가져오는데 있어서 죽음이라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씨의 죽음은 배젖이 분해되면서 배에게 양분을 전이하는 작업입니다그러니까 죽음은 멸절이 아니라 해체이며 새로운 존재로 존재양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그러니 죽음은 부활의 장애가 아니라 필수조건이며 그로 인해서 부활의 영광이 더 드러납니다죽음은 씨를 심는 것이라 했으니 우리가 앞으로 무덤에 묻히는 분들을 보면, “아 부활의 씨앗이 심겨지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두 번째로 몸의 부활이 현재 삶의 반복이라는 견해에 대한 바울의 답입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이제 바울은 우리가 어떤 형체로 부활하는 가를 말씀합니다밀이나 다른 식물의 알맹이가 땅에 심겨집니다씨는 작고 보잘것없습니다그러나 그 씨가 어떻게 바뀝니까그 씨와 비교가 안되는 장래형체로 다시 태어납니다그 장래형체는 씨에 비해서 너무나 크고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씨앗에게 새 삶에 알맞은 적절한 형체를 주십니다인간의 부활의 몸도 그렇습니다하나님이 각자에게 현재의 몸과 비교하여 그 아름다움과 그 기능과 퀄리티 면에서 비교불가의 새 몸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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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시간 하나님이 창조시에 각 피조물에게 이 세상에서 살기에 가장 합당한 몸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재창조인 부활의 몸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39-41절을 읽어 봅시다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사람의 육체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기에 가장 적절한 형체로 주어졌습니다짐승의 육체도새의 육체도 그러합니다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태초에 새들이 창조주에게 가서 항의를 했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두 손 대신에 어깨 양쪽에 거추장스런 두 짐을 붙여 주셨습니까?” 창조주가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짐이 아니라 날개라고 한다너희는 그것으로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될 것이다” 물고기에게는 물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아가미부레지느러미비늘을 주셨습니다부레 같은 경우는 공기주머니로 공기의 양으로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정하는 기관입니다물고기는 아가미와 부레와 지느러미로 높낮이와 방향을 결정하면서 물속을 헤엄쳐 다닙니다너무나 적절한 기관들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유스럽습니다정말로 하나님은 물고기에 가장 합당한 몸을 주셨습니다새에게는 창공을 날아 다니기에 합당한 날개를 주셨습니다우주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있습니다제 각각 위치에서 가장 합당한 크기와 중력과 빛을 가지고 운행하고 있습니다이 우주에 1000억 개  1000억 개의 별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 모든 별들에게 각자에게 알맞은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무엇을 말합니까창조 시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피조물들에게 이 세상을 누리기에 가장 적절한 형체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부활의 몸도 그처럼 합당하게 재창조하여 주실 것을 믿으라는 메시지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어떤 몸을 덧입을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42,43절입니다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첫째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삽니다현재의 몸은 썩을 몸입니다썩을 몸이기 때문에 우리 몸은 노화됩니다. 40대 초반이 되면 노안이 찾아옵니다. 50대가 되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쳐집니다흰머리도 납니다몸이 썩어가다가 결국 죽습니다썩을 놈썩을 여자 분이라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노화와 죽음은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를 줍니다그러나 다시 덧입을 부활의 몸은 이런 썩음이 없습니다노화가 없고 죽음이 없습니다죽지 않게 되다니 우리가 얼마나 담대하고 자유로울까요?

둘째로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삽니다현재의 몸은 욕된 몸입니다욕되다는 것은 우리 몸이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죄성은 우리를 때마다 비참하게 만듭니다거룩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지만 죄의 소욕에 시달리게 합니다결심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미 거기에 붙들려 있습니다사도바울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이런 죄의 소욕에 끌려 다니는 자신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4) 죄의 소욕은 우리를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듭니다어떤 사람은 너무나 자신이 욕되게 느껴져서 그만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그러나 그날에는 더 이상 죄의 소욕에 시달리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됩니다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그것은 마치 거미줄에 걸렸던 나비가 훨훨 나는 것같은 자유함일 것입니다.

 

셋째로 강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약한 몸은 병들기 쉬운 몸을 말합니다사람은 강한 척해도 실상은 약한 존재입니다한 태권도 사범은 자신의 강함을 믿고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결국 말라리아 한방에 죽고 말았습니다사람은 독감만 걸려도 거의 죽을 것같은 고통을 겪습니다사람이 얼마나 약한 지병원에 가면 항상 병원주차장은 만차입니다인간은 수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생합니다우리 한 자매님은 지난주에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입원했는데 검사를 위해 피를 뽑는데 무려 6번이나 주사를 꽂았습니다마지막 6번째는 손등에 꽂았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만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저도 어머니 간호할 때 병원에 갈 때 마다 피를 뽑기 위해 주사바늘을 꽂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병원심방갔을 때 한분은 주사바늘을 6개를 꽂고 7개월 이상 누워 계셨습니다이렇게 우리는 모두 병들거나 병들 가능성이 있어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불안합니다그러나 부활의 날에 우리의 몸은 더 이상 병들지 않는 몸을 갖게 됩니다그러니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병원이 사라지고 의대가 사라질 것입니다의사 목자님들은 모두 실업자가 됩니다참고로 부활의 날에는 의사뿐 아니라 검사경찰교도소병원군대 등이 사라질 것입니다.

 

44절을 보십시오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현재의 몸은 한마디로 육의 몸입니다영어성경에는 ‘natural body’(자연의 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몸이 부활의 날에 신령한 몸’(spiritual body)로 부활합니니다신령한 몸이란 위에서 말한 썩지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을 말합니다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반문을 합니다우리가 죽어서 영혼이 그대로 천국에서 살면 안됩니까복잡하게 부활의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그 답은 하나님이 정하신 인간의 존재양식은 반드시 몸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또 몸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과 기쁨이 많습니다그래서 우리인간은 반드시 다시 몸을 덧입어야 하는데 현재의 몸과 다른 영의 몸을 덧입습니다어떤 학자는 그 신령한 몸을 비물질적인 물질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45-49절은 신령한 몸에 대한 보충설명입니다창세기 2:7b을 보면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습니다생령이란 살아있는 영적 존재라는 뜻입니다반면에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습니다아담은 자신의 생명만 유지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는 분이십니다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였습니다그러나 둘째 사람인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습니다이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증명되었습니다우리가 아담에게만 속했다면 우리는 이 지상에 합당한 몸만을 덧입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부활의 주님께 속하였기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 곧 부활의 몸을 덧입을 것입니다.

 

이상에서 바울은 왜 부활은 가능한지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지 설명했습니다.

 

50-58절은 부활을 확신하는 바울과 죽음에 대한 바울의 승리의 찬가그리고 당부의 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0절을 보십시오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반드시 부활의 새 몸을 입어야 할 이유를 말씀합니다혈과 육은 우리의 현재의 몸을 의미합니다이 육의 몸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받을 수 없습니다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나라는 현재의 하늘과 땅과 다릅니다그러니 현재의 몸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혹 들어가더라도 그 나라를 누릴 수 없습니다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고 새가 물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부적절하고 불가능합니다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걸맞은 불멸의 몸을 필연적으로 덧입을 것입니다.

 

51절을 보십시오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바울은 모두가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바울이 연구한 것이 아니고 주의 말씀이라고 데살로니가 전서 4:15절에 되어 있습니다.(마 24:31) 그럼 온 인류가 관심갖고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입니까일순간에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나고 산 자들이 변화되는 우주적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그 우주적 사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먼저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납니다죽음은 잠과 같습니다우리가 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깨어나기 때문입니다둘째로우리 살아있는 자들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는 사람들은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으니 이게 최고입니다!! 이렇게 불멸의 몸을 덧입는 그 순간이 우리가 바라봐야 할 최대 관심사요 소망입니다.

 

그러면언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때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4: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인류역사의 마지막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납니다빰빠라빰빰빠라빰그때 죽은 신자들의 다시 살아나고 살아있는 이들이 변화되는 그 놀라운 사건이 순식간에 일어납니다여기서 순식간에 라는 말은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인데 과학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는 0.04초라고 합니다원어로는 아토모스’ 란 말로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시간단위를 말하는 데현재 가장 짧은 시간단위는 소수점 아래 열여덟번째 자리에 1이 오는 아토초로서 100경분의 1입니다주님이 재림할 때 회개할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쉽지 않음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53절을 보십시오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바울은 반드시’ ‘must’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위의 논리로 볼 때 우리가 불멸의 몸을 덧입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54절을 보십시오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우리가 불멸의 몸을 덧입을 때 이사야 25:8절에 기록된 말씀이 성취됩니다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날은 어떤 날입니까인류의 대적인류의 원수 사망이 없어지는 날입니다사망은 지금껏 인류위에 왕노릇하면서 인류를 지배해 왔습니다우리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며 우리를 근본적으로 슬픔의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이런 사망의 지배하에 있는 우리 인생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이 죽음의 세력을 누구도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영웅호걸도 두손두발 들고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가야 했습니다그러나 잔인한 독재자 사망이 그 날에 없어집니다이것을 생각할 때 사도바울은 감격하여 외칩니다.

55절을 보십시오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바울은 사망의 무력함을 비웃고 사망에 대한 우리의 승리와 자유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망에 대한 이 승리의 선언은 그날에만 외칠 것이 아닙니다물론 부활의 그날에 우리가 참 자유와 해방을 온전히 누릴 것이지만 지금도 누립니다믿음으로 누립니다우리가 죽긴 죽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잠에 불과하고 반드시 부활합니다이것을 믿으면 우리에게 죽음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죽음은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발톱 빠진 호랑이입니다아니 종이 호랑이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사망아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심지어 죽음을 두팔 벌려 환영합니다요한웨슬리는 모든 것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안녕히안녕히라는 말을 남기고 기대감가운데 하나님께로 갔습니다구드윈이라는 사람은 이것이 죽음인가나는 얼마나 미소짓는 친구를 적으로 두려워해 왔던 가!” 라고 말한 후 평안히 죽었습니다에베레트는 영광!, 영광!, 영광!” 이 말을 25분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이처럼 분명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영광이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은 우리에게 독침을 날렸습니다그것은 죄의 독침입니다사망은 우리에게 허무주의쾌락주의 독침을 날렸습니다우리는 허무한 인생죄나 짓자 하며 수많은 죄들을 지었습니다그러나 죄는 달콤하고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권능이 있습니다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사람에게는 성문불문 율법이 있습니다그래서 죄를 지으면 정죄의식수치심자괴감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해서도 승리를 선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7,58절을 보십시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의 첫 열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죄에 대해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부활의 날 평가와 심판이 있습니다때문에 우리는 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종종 우리에게 주안에서 하는 수고가 헛되게 느껴집니다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우리의 평가의 기준은 내가 정한 때나이 땅에서 어느 시점이 아닙니다부활의 그날입니다그 날에 나의 수고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온전한 평가가 있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힘쓸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우리가 부활에 대한 견고한 믿음가운데 그 영광과 승리를 바라보며 죄에 흔들리지 않고주의 일에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자기 일만 힘쓰지 않고 주의 일에 더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