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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열왕기상 1강 '힘써 대장부가 되라 '(열왕기상 1,2장)2018-10-05 23: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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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열왕기상 1강


힘써 대장부가 되라


 

말씀 / 열왕기상 1,2장

요절 / 열왕기상 2:2-3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열왕기서가 기록된 당시 백성들은 왜 하나님의 백성이 망했는가, 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저리 무참히 훼파되었는가 하는 깊은 실존적, 신앙적 회의와 질문 가운데 있었습니다. 열왕기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동시에 열왕기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지는 실존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열왕기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삶에 대한 자세가 한 단계 더 진지해지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을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을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블레셋의 이마를 향해 힘차게 물매돌을 날리던 소년 영웅 다윗, 광야의 밤하늘 사울에게 좇기던 중 소리엘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다윗, 밧세바 사건 앞에서 눈물을 샘처럼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애통히 회개하던 다윗 - 그 다윗이 벌써 늙어 이제는 아무리 이불을 덮어주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신하들이 당시 귀인들에게 쓰던 치료법인 동녀가 그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요법을 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수넴 여자 아비삭을 왕께 데려왔습니다. 그 처녀는 심히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나라의 역사서라면 이런 경우 다윗의 비참해 보이는 말년에 대한 기록은 생략하고 위대한 왕 솔로몬의 등극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마지막을 아무런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는 반드시 그 마지막이 있고 그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에도 이런 마지막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지, 사랑하는 나의 자녀에게, 또 믿음의 계승자에게 어떤 유언적인 메시지를 남겨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다윗의 삶의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때 다윗이 학깃이라는 부인을 통해 낳은 아들 아도니야가 자기를 스스로 높여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역대상 22:9-10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미 다윗을 통해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다른 고대 근동 국가와 달리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런데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는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아도 선왕인 다윗에 대한 역모였고, 그뿐 아니라 이 나라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행위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6절은 그가 왜 스스로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근거를 보여주고 았습니다. 먼저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압살롬을 포함하여 그 위의 형들이 사망하고 없는 상태였으므로 넷째인 그가 서열상 왕자들 중 가장 장자였습니다. 또 그는 용모가 심히 준수하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아이돌 스타급이었습니다. 진한 눈썹은 그린 것 같았고 눈은 영롱한 보석을 박아놓은 것 같았으며 코는 조각한 것 같았고 피부에서는 광채가 났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가 한 번도 그에게 왜 이렇게 했느냐 하면서 그를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아도니야가 느낄 때 아버지도 그를 매우 존중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 이런 점들을 들어 자기가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아도니야는 비록 아버지가 솔로몬을 왕세자로 내정하였으나 현재 아버지가 기력을 완전히 잃고 수넴 여자 아비삭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 - 오늘날로 치자면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군대 실세인 군대장관(국방장관) 요압과 종교계 실세인 대제사장 아비아달만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반란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요압과 아비아들을 차례로 만나 모의를 하였습니다.


먼저 요압은 용맹스러운 장수 출신이었으며 평생 다윗을 도와 다윗 왕국을 건설하는데 큰 힘을 보태었습니다. 이런 그가 왜 다윗을 배신하고 쿠데타 모의에 합류했을까요? 사무엘상하에 기록된 그의 성정을 보면 그가 참된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야심도 있습니다. 그는 약 19세 정도 나이인 솔로몬이 왕이 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다윗과 불륜 관계로 시작된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은 추후 여러가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는 서열상 장자이고 또 인물도 출중하고 야심과 능력도 있는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이 더 좋아보였을 것입니다.


한편 제사장 아비아달은 왜 이 쿠데타에 가담하였을까요? 그는 다윗이 사울에게 좇기던 시절 배고픈 다윗에게 진설병을 주었다는 죄목으로 모든 가족이 다 목숨을 잃는 와중에 유일하게 도망쳐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그는 사울 편에서 넘어온 사독과 함께 공동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쿠데타에 가담한 것은 사독 가문과의 경쟁심과 시기심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압과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확보한 아도니야는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솔로몬 측 사람인 제사장 사독, 선지자 나단, 또 다윗의 근위대 용사들을 제외한 모든 동생과 신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이 잔치에 초대장을 받은 다윗의 동생들과 신하들은 큰 고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 초청장을 무시할 것인가? 무시하는 것은 아도니야를 무시한 것이 되는데 만약 그가 왕이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뼈도 못 추리겠지? 아니면 다윗 근위대에 신고할 것인가? 신고했다가 쿠데타가 성공하면 어떻게 되지? 솔로몬과 함께 끔찍하게 처형당하겠지?’ 이런 생각을 할 때에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깊은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예정된 잔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몰래 다윗 성을 떠나 약속 장소인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쪽으로 갔습니다. 잔치 자리에 와 보니 대부분의 신하들과 왕자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안심하였습니다. 이 쿠데타가 성공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이런 긴박한 상황 가운데 깨어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단이었습니다. 사무엘서에서 나단은 다윗의 범죄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단은 그 사건 이후 다윗에게 연약한 점이 있는 것을 알고 더욱 깨어서 다윗을 위해, 또 다윗의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도하던 중 그는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잔치가 끝나면 곧바로 무서운 학살이 시작될 것을 예감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먼저 밧세바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한다는 사실과 이것이 솔로몬과 밧세바에게 얼마나 무서운 죽음의 소식인지 일깨웠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전에 다윗 왕은 밧세바 앞에서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맹세한 적이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에게 그와 그의 아들 솔로몬을 죽음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은 전에 다윗이 한 이 ‘맹세’라고 말합니다. 사실 밧세바라는 이름의 의미가 ‘맹세의 딸’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에게 그녀의 이름의 의미 그대로 이 맹세를 붙들고 왕 앞에 나아가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러면 때를 봐서 자기도 그 자리에 들아가 밧세바를 돕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다윗 왕의 약속을 붙들고 왕께 나아가는 밧세바는 오늘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현재 밧세바는 젊은 날 다윗 왕의 마음을 움직였던 미모도 사라졌습니다. 밧세바보다 수넴 여자 아비삭이 훨씬 미인이고 늙은 밧세바는 더 이상 미모로 그녀와 경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왕이 주었던 약속,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밧세바는 그 맹세의 약속을 붙들고 왕께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밧세바와 같이 주님 앞에 무슨 내세울 것이나 자랑할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해 무슨 큰 일을 한 것도 없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내세울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에,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날마다의 삶에서 기도로 주님께 나아갈 때 역시 주님 앞에서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우리가 밧세바와 같이 담대하게 맹세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밧세바가 왕께 말을 마쳤을 때 곧바로 나단 선지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어 다윗 왕께 절하였습니다. 그는 최고의 예를 다하여 왕에게 깊은 존경심과 사랑을 표현함으로 다윗 왕이 마음 상하지 않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의 특유의 신랄한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그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사령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그들이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냐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사오니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나단 선지자는 내 주 왕이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합니다. 내 주 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도니 멜레흐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도니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야)께서 주님이시다는 의미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발음을 이용하여 다윗이 이 나라의 진정한 왕인가, 아도니야가 왕인가 내 주 왕(아도니 멜렉흐)는 아도니야가 멜렉흐(왕)가 되려는 이런 음모를 알고는 계신가, 진짜로 아도니야를 왕으로 내정하셨다면 왜 선지자인 나에게는 연락하지 않으셨는가 무슨 다른 생각이 있으신가 신랄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무례하게 들릴 정도로 이렇게 신랄한 표현으로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다윗 왕이 혹시라도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 편에서 보면 어찌되었든 아도니야도 다윗 왕의 몸에서 난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혈육이요, 학깃과의 사랑의 열매였습니다. 왕이 한 번도 그를 섭섭한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을 볼 때 다윗은 그를 정말 특별히 사랑했던 것 같고 특히 압살롬을 잃은 후 장자가 된 그를 또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는 역모를 주도한 장본인입니다. 이 역모가 성공한다면 궁에는 피바람이 몰려올 것입니다. 솔로몬과 그의 어머니 밧세바는 죽임을 당하고 사독 제사장은 파면될 것이며 다윗의 근위대는 몰살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다윗 왕국은 더 이상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이 주인이시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아도니야가 주인인 나라가 될 것입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왕이 이르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밧세바와 나단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들은 다윗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때에 그를 잃는 아픔으로 인해 눈에서 눈물이 그칠 줄 몰랐던 사랑많고 인정많은 다윗 왕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또다시 큰 아들 아도니야를 잃게 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의 분명한 메시지를 통해 다윗은 인간적인 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이행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다윗과 불륜관계로 시작한 밧세바가 낳은 첫 아들은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습니다. 그 이후 밧세바를 정식 아내로 삼고 다시 낳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다윗의 여러 아들들을 제쳐놓고 하필 밧세바가 낳은 솔로몬을 왕으로 택하셨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태어났을 때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하나님이 친히 이름을 주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다윗 왕이 흘린 진실한 회개의 눈물을 받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회개의 열매인 솔로몬을 왕으로 택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적으로 똑똑하거나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회개한 자들,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나라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와 함께 제사장 사독, 근위대장 브나야를 불러 기혼 샘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선포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근위대장 브나야는 신이 나서 아멘, 여호와께서 솔로몬과 함께 하셔서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외치고 달려나갔습니다. 그는 용맹스러우면서도 성격이 우직하고 단순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제사장 사독과 나단 선지자, 근위대장 브나야는 다윗이 명한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기쁨으로 솔로몬 왕 만세를 부르자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습니다.


이상에서 다윗은 그의 삶 가운데 밧세바 사건으로 인한 큰 과오가 있었으나 삶의 마지막 순간 나단 선지자의 도움을 받아 인간적인 생각,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마라톤을 아무리 잘 해도 마지막 골인점 직전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면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을 수 없고 지금까지 달려온 모든 수고의 의미가 퇴색하게 됩니다. 다윗이 마지막 순간 자칫 그의 판단이 흔들릴 수 있었던 때에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날부터 자기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훈련이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부터 훈련받지 않은 청년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젊고 근육이 많을 때에 한 번도 역기드는 훈련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나이들어 근육이 다 빠진 다음에 갑자기 무거운 역기를 들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청년들도 다윗처럼 젊었을 때부터 자기 뜻을 내려놓고, 자기 생각 자기 감정을 내려놓고 주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잘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아도니야가 잔치에 참여한 이들과 만찬을 마칠 무렵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요압이 성중에서 왜 이리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물을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숨을 헉헉거리며 달려와 자초지종을 알렸습니다. 요나단으로부터 자세한 소식을 들은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휴대폰을 챙긴 뒤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후 남들의 눈에 뛰지 않는 숲속 샛길로 튀었습니다. 쿠데타의 주모자 아도니야는 왕이 된 솔로몬을 심히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 죄를 지은 자가 제단 뿔을 잡는 제도는 정식 재판을 받기 전 사적인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쿠데타가 성공하는 즉시 솔로몬을 죽이려고 마음을 품었던 아도니야는 전세가 역전되어 그가 이제는 꼼짝없이 솔로몬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솔로몬은 섣불리 국가 대통합을 위해 그를 사면하겠다는 식의 선심성 공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선한 사람이면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지금은 그에게 죄값을 물지 않지만 만약 여전히 쿠데타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 앞에 끌려온 아도니야는 솔로몬에게 신하의 예를 표하며 절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그에게 집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외모와 자기 능력을 믿고 인간적인 술수로 스스로를 높여 왕이 되려 한 아도니야는 우리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죄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첫 사람 아담에게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오르도록 유혹하였습니다. 이 아담의 죄성을 가진 우리 모두의 내면 안에는 아도니야가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아도니야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고 그때 우리는 아도니야가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에게 대적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어떤 왕이 나아가 다른 나라 왕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이 전쟁에 승산이 있는지 계산해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생각없이 강한 적과 전쟁을 벌였다가는 죽음만이 있을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아도니야는 결코 승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내 안에 있는 아도니야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잘 제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다윗은 이제 그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남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요, 왕인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남긴 유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원문상 이 말씀은 “너는 강하라, 그리하여 남자다움을 보이라”라는 의미입니다. (“Be strong, therefore, and show yourself a man”: NASB)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역시 다윗은 고대 사람이기 때문에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를 가진 것이 아닌가, 남자만 강할 수 있는가 여자는 강할 수 없는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남성 우월주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하실 때 주신 남자 본연의 모습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하실 때 여자보다 강한 힘과 근육을 주셨습니다. 숫사자에게는 암사자에게 없는 갈기가 있고 그 갈기가 더욱 사자의 힘과 위엄을 나타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남자에게는 수염을 주심으로 남자로서 위엄과 권위를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강하다, 남자답다 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자답다, 보스 기질이 있다 하면 김두한처럼 카리스마가 있고 운동신경도 뛰어나며 배짱과 배포도 큰 그런 청년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김두한같은 그런 카리스마있는 왕이 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까?


본문에서 다윗 왕이 의미하는 대장부의 모델은 다윗 왕 자신입니다. 다윗 왕은 당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대장부였습니다. 그가 대장부인 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거인 골리앗을 보았을 때 그는 그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자를 결코 살려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힘차게 물매돌을 들고 그를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또한 그가 대장부인 것은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밧세바로 인한 죄를 지적하는 서슬퍼런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곧바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죄를 자백하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압살롬의 반란 때에 왕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를 저주하는 시므이의 저주를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죄로 인해 그가 저런 말을 하도록 하신 것일 수 있다며 그의 저주를 참고 감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끝까지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을 남자다운 것, 대장부다운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잘못했는데 끝까지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다운 것이 아니라 그가 쫄장부라는 증거입니다. 진정한 대장부는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서 내가 정말 잘못한 부분이 발견될 때 진솔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 참된 대장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음으로 다윗은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과 행하라고 명합니다. 그의 모든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 지키라고 명합니다. 그리하면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형통하리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특히 청년들의 경우 그때그때 자기 감정을 따라 행합니다. 그러나 대장부는 그때 그때 자기 기분이나 감정, 주변 사람들의 요구, 혹은 자신의 유익에 따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라 쫄장부입니다. 참된 대장부는 자신의 유익이나, 감정, 주변 사람들의 요구와 상관없이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경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 이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마치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들이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때를 따라 잎을 내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쉼을 주고 기쁨을 줍니다. 이는 이 분들이 언제든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이와같은 믿음의 사람, 충성된 사람, 진실한 대장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유언의 근거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에 있음을 언급합니다. 이후 다윗은 여러가지 악행을 한 자들과 선행을 한 자들에게 합당한 벌과 상을 줌으로 공의를 세우도록 권면합니다. 구체적으로 요압이 무죄한 자들 곧 전임 군사령관 아브넬과 아마사를 잔혹하게 죽인 사건을 언급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를 갚도록 명합니다.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은 압살롬의 반란 때 그들이 베푼 은혜가 이으므로 선대하도록 명합니다. 또 베냐민 사람 시므이의 경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저주하였는데 그의 죄가 그의 머리에 돌아가도록 명합니다.


유언을 마친 다윗 왕은 왕이 된지 40년 되었을 때 곧 그의 나이 70이 되었을 때 죽어 다윗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다윗이 죽은 후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찾아와 본래 이 왕위는 내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로 인해 왕위가 솔로몬에게 갔으니 그 대가로 선왕을 모셨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의 말은 그가 본래 왕이 되는 것이 맞는데 하나님께서 방해하시는 바람에 아쉽게 놓쳤다는 그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런 작은 요구 정도는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 요구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선왕을 섬겼던 여인을 아내로 달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이 선왕의 장자인 것을 과시하는 것이 되고 솔로몬 왕이 자신의 요구를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사람들은 아도니야가 숨은 실세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점점 아도니야에게로 실제적인 권력이 이동할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밧세바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솔로몬은 그의 본심을 꿰뚫어보았습니다. 솔로몬은 전에 그에게 경고했던 것처럼 그가 자숙하지 않고 여전히 자고한 마음을 품고 악을 도모하는 것을 보고 군사령관 브나야를 보내 그를 죽였습니다. 또 이전 쿠데타의 주모자였던 요압과 아비아달 역시 각각 처형과 추방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또 주거지 제한 명령을 어긴 시므이도 그 책임을 물어 처형하였습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해졌다고 멘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솔로몬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관용과 포용의 마음으로 아도니야를 포함한 그의 측근들을 살려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솔로몬이 그들에게 공의의 벌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추후 훨씬 더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그들로 인해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열왕기에서 반복되어 강조되어 나오는 표현이 다윗의 길,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따라서 합니다. 만약 솔로몬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아도니야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이후 여러 왕자들도 아도니야의 길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무리를 징계함으로 많은 이들이 경고를 받고 그들의 길을 따라 걷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판단이나 계획이 아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다른 무엇보다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대장부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대장부가 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