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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열왕기상 5강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열왕기상 9:10-11:43)2018-11-05 09: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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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 열왕기상 5강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말씀/ 열왕기상 9:10-11:43

요절/ 열왕기상 11:9,10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비유할 때 소우주와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비한 영역들이 차고 넘칩니다. 무한에 가까울만큼 크고 광활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60 평생을 가지고 살아도 내가 내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연인과 한 순간에 헤어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어느 순간 그토록 신뢰하고 믿고 사랑했던 하나님을 한 순간 완전히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4:23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총 20년의 세월에 거쳐 솔로몬은 성전과 왕궁을 마침내 완공하였습니다. 그때 솔로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웅장한 성전과 왕궁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은 성취감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기획하고 만들어낸 IT 제품을 출시된 후 사람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해한 것과 유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를 보면 그는 잠시 성취감이 주는 행복을 맛보았으나 얼마 지나지 못하여 깊은 공허감을 느꼈습니다. 성전과 왕궁 - 저 두 건물이 나의 존재 가치 전부와 같단 말인가, 저 두 건물을 짓기 위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단 말인가 생각할 때 왠지 공허하였습니다. 사실 그 때 솔로몬은 이제 일을 좀 쉬고 대신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했습니다. 요즘같이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이면 평소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신앙서적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소감을 깊이있게 쓰거나 성경일독을 하거나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중독에 빠진 솔로몬은 그러한 한가한 삶의 여백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전국에 수많은 건축을 하여 자기 존재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기 원하였습니다.


11-14절을 보십시오. 끝없는 건축 공사로 인해 두로 왕 히람은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곡물을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북부 갈릴리 지역의 성읍 스무 곳을 내주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산악지대로 당시 농경사회에서 별 쓸모가 없는 땅이었습니다. 히람은 그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솔로몬에게 다소간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아무 쓸모 없다는 의미의 ‘가불’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거래를 중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볼 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솔로몬은 기존의 예루살렘 성벽을 크게 확장하는 공사와 지방 도시 건축, 곡식 저장소 건축, 전차 및 기병대를 위한 건축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벌렸습니다. 가히 온 나라가 뚝딱뚝딱 쿵쾅쿵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사천지가 되었습니다.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백성들은 참으로 심란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공사는 분명 당시 이스라엘이 가진 국력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뭔가를 끊임없이 성취해 냄으로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원하는 욕구는 일종의 솔로몬 증후군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훌륭한 건축물, 그 어떤 세계적인 논문, 그 어떤 놀라운 IT 제품도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이는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소우주와 같이 넓고 광활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마음을 채울 수 없고 그 마음의 가치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전국을 뒤덮은 그 많고 화려한 건축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마음에는 참된 만족이 없었습니다.


10:1절을 보십시오.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스바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최소한 2,0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이렇게 먼 곳에서 스바의 여왕이 포르세 자가용도 아닌 낙타를 타고 왔습니다. 그녀가 온 목적은 솔로몬이 지혜가 충만하다는 소문을 듣고 정말 그러한지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준비하여 솔로몬이 정말 그렇게 지혜로운지 알아보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본문의 스바의 여왕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마 12:42) 곧 솔로몬이 가진 하나님의 지혜가 어떤 것인지 알기 원하여 그 먼 거리를 여인의 몸으로 낙타를 타고 온 구도자의 열정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자리에도 이러한 구도자의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주중에 시험보고 리포트쓰고 피곤하지만 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이 자리에까지 왔습니다. 이러한 구도자의 열정을 가진 여러분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많은 은혜 주실 것을 믿습니다.


2절에서 스바 여왕은 준비했던 질문을 솔로몬에게 하였습니다. 그 먼 거리를 하나님의 지혜를 듣기 위해 온 스바 여왕의 수준을 생각할 때 네이버 검색해보면 나올만한 그런 단편적인 지식에 관한 질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삶의 근원적인 것에 관한 질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이 만약 내 앞에 직접 나타나신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저를 그런 부모를 만나 그런 가정환경 가운데 자라게 하셨나요? 왜 그 때 내 인생에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 순간 막아주지 않으셨나요? 지켜주지 않으셨나요?” 스바의 여왕은 이처럼 평소 하나님께 물어보고 싶었던 그런 질문들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솔로몬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물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입에서 마치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과 같은 지혜의 말씀이 터져나왔습니다. 그 말씀들을 들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난 것과 같은 깊은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지혜가 충만한 왕과 그를 섬기는 신하들과 왕궁과 성전과 그 모든 것들을 볼 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마치 별세계에 온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녀는 사실 솔로몬에 대한 소문을 믿지 못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 소문은 절반도 되지 못한다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또 이런 왕의 입술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씀을 항상 들을 수 있는 신하들이 너무 부럽다고,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당신을 보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지, 당신을 통해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시는지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 120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솔로몬에게 예물로 주었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답례로 그녀가 요청한 것과 그 외에 여러가지 것들을 풍성한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동안 미켈란젤로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내던 솔로몬은 이제 아이돌 스타처럼 뭇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과 감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여러 고위층 인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이돌 스타가 되었으니 이제 진정한 행복을 느꼈을까요?


얼마 전 한 글을 보았는데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공황장애에 빠진다고 합니다. 공황장애란 진짜 심장이 당장 멎을 것 같고 죽을 것처럼 느끼는데 사실은 절대 죽지 않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몸은 멀쩡한데 마음은 내가 죽음 직전이라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스타들이 이런 공황장애에 자주 빠지는 이유는 대중이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와 욕구에 맞추어 자기를 바꾸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자기 스타일대로 살았는데 그것이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을 때라고 합니다. 둘 다 이것은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고 합니다. 마치 평소에 숨쉬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고통이 되는 것처럼 그냥 살았는데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을 때 그것이 의식이 되기 시작하고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한 스타는 츄리닝 차림으로 간식을 먹으며 자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드라마를 보았는데 드라마 속의 화려한 자기가 자기인지, 츄리닝 차림의 자기가 자기인지 순간 헷갈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끝없이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하고 그를 칭송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전도서를 보면 그는 사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하는 무지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참된 지혜는 고난의 밑바닥, 인생의 밑바닥, 겸손의 골짜기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지혜가 진짜 자기 것입니다. 모든 지위와 재산과 권력을 다 잃고 난 후라야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골짜기 사이에서 주님께 나아가는 경험이 있을 때라야 하나님이 생명의 주님이시요 나의 생명의 반석이라는 참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는 그러한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머리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입으로 말은 하지만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칭송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날마다 대하면서 솔로몬은 일종의 자아상실, 혹은 공황장애에 가까운 마음의 병을 앓았는지도 모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는 약 금 30톤 정도 됩니다. 순금 1kg에 현재 시세가 4천 4백만원 가량입니다. 그렇다면 금 30톤은 무려 1조 3천억원입니다. 이 돈은 무려 1만 3천명에게 1억원씩 나눠줄 수 있는 천문학적으로 큰 액수입니다. 솔로몬은 무역을 통한 세입금으로 들어온 이 돈을 가지고 큰 금 방패를 만들었습니다. 금방패 하나당 대략 3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런 방패를 200개 만들었으니까 600억 정도 들었습니다. 또 작은 방패 300개를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를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습니다. 솔로몬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외견상 솔로몬은 은행이 없던 시대에 그런 방식으로 부를 저축해 둔 것으로 보입니다. 또 금방패를 통해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혹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상아로 보좌를 만든 방식을 보면 그런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상아 자체가 은은한 빛을 발하는 귀한 원재료인데 거기에 또 정금을 입혔습니다. 정금을 입히면 물론 금이니까 화려해 보이지만 상아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 다 사라지는데 왜 이렇게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명품 가방을 산 다음 더 큰 명품 백팩을 다시 사서 명품 가방을 백팩 안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사람같은 기이한 느낌입니다. 수많은 대중의 환호 가운데 깊은 고독감에 빠진 그가 그의 공험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 외에 여러가지 장식으로 보좌를 꾸몄고 모든 그릇도 전부 금으로 했습니다. 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통해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왔습니다. 금, 은, 상아까지는 그런다고 쳐도 원숭이와 공작은 왜 실어왔을까요? 여러 후궁과 첩들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본인이 그런 것을 보면서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려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솔로몬이 하는 일들은 분명 평범한 사람이 다 헤아려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이 말씀은 얼핏 읽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순서가 이상합니다. 솔로몬 왕의 지혜와 재산이 아니라, 재산과 지혜가 그 어느 왕보다 크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정서상 솔로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금이 엄청많은 세계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그 다음이 지혜였습니다. 솔로몬이 이와같이 부자였는데 본문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가 그 부를 선한 사업을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때까지,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부를 쌓아두기만 하였습니다. 심지어 29절을 보면 이집트에서 최신형 고급 전차를 수입하여 헷 사람과 아람 왕들에게 되팔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평화 시대이지만 주변국인 헷과 아람은 관계가 악화될 경우 그가 판매한 최신형 전차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계속하여 금을 더 모으기 위해 이런 중개무역까지 하였습니다. 본문의 솔로몬은 강박적으로 금을 모으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또 26절을 보면 솔로몬은 전차와 기병을 모았습니다. 그에게 전차 1400대와 기병 12,000명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병거 한 대는 오늘날로 치면 K-9 자주포 탱크 한 대와 같습니다. 이런 탱크가 1400대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병력입니다. 또 전쟁시 말을 몰 수 있는 기병 한 명은 오늘날로 치면 특전사 한 명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로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이스라엘군의 경우 다른 나라를 침공할 것이 아니라면 이와같은 전차와 기병이 사실상 별 필요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왜 이렇게 많은 전차와 기병부대를 양성했을까요? 왕의 위엄과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였을까요? 실제 영화같은 것을 보면 전차부대와 기병부대가 있을 경우 굉장히 멋있어 보이고 왕의 위엄과 권위가 높아져 보입니다.


오늘날 누구든지 부자가 되면 포르세같은 명품차를 구입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처럼 당시에는 누구든지 왕이 되면 적토마같은 세계 최고의 명마를 타고 다니고 싶은 욕구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는 안됩니다. 또 후궁이나 첩을 많이 두어서도 안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1장에서 다루겠습니다. 또 왕은 은과 금을 자기를 위해 많이 쌓아두서도 안됩니다. 이는 은과 금을 많이 쌓아두면 자동적으로 마음이 여기에 가기 때문입니다. 제가 메시지를 준비하다가 지금 딱 10억만 내 통장에 들어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중 몇 억은 여기에 쓰고 몇 억은 여기에 써야겠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는게 좋겠어 하면서 계속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그 생각에 빠져있다보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돈이 생기면 정말 내 마음이 변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우주와도 같지만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신선한 음식과도 같습니다. 신선한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고 덥고 습한 곳에 방치하면 금새 부패합니다. 부패한 음식은 심한 냄새가 나서 사람이 더 이상 먹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적당한 삶의 어려움과 문제들 가운데 있을 때 냉장고에 있는 음식처럼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고 심령의 가난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문제와 씨름하며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인격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돈과 권력이 생기면 마음에 교만과 탐욕이 세균과 곰팡이처럼 확 번식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교만과 탐욕은 온 마음 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게 만듭니다.


이번에 7부 가을 수양회에서 선교사 심포지움을 하였습니다. 그중 에비슨 선교사를 통해 세브란스 병원 건립에 헌금한 미국 기업인 세브란스는 많은 감동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는 당시 조선의 병원인 제중원으로는 한계가 있어 근대식 병원을 세워야 하는데 여기에 기금이 필요하다는 에비슨 선교사의 말을 듣고 1만 달러, 오늘날 가치로 20억원을 헌금하였습니다. 너무 감사하다는 에비슨 선교사의 말에 세브란스 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큽니다.” 이후로도 그는 부지건립을 위해 5,000달러, 의대 건립을 위해 추가로 3만 달러, 그러니까 60억을 헌금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했습니다: “재산을 쌓아두지 말아라. 반드시 필요한 곳에 정성을 다해 나눠주어야 한다.” 이 유지에 따라 그의 아들 존 세브란스도 1936년 일제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요청할 때까지 12만 4,500 달러, 대략 240억 정도를 헌금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이름으로 하지 않고 미국북장로교 이름을 하였습니다. 나중에야 한국 사람들이 기금의 뿌리를 추적한 끝에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넘치는 부가 있을 때 세브란스씨와 같은 자세를 가질 때에만 우리의 마음이 부패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물질의 복을 주실 때 그것을 다 쌓아두지 말고 필요한 곳에 정성을 다해 나눠줌으로 주는 자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전도서를 보면 지혜를 추구할 때 솔로몬은 더 큰 마음의 고난과 방황을 경험했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이성을 추구하는 삶에서 감성을 추구하는 삶으로 삶의 스타일을 180도 바꾸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왕의 부와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의 마음에 드는 여인들과 사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든다면 그 여자가 모압 여자이든 암몬 여자이든 가리지 않고 후궁과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렛 오하라와 렛 버틀러의 사랑 등 사랑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사랑의 감정을 다 체험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여인들이 솔로몬이 섬기는 하나님 대신 자기 민족의 우상을 섬기는 여인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시돈 사람이 섬기는 여신 아스다롯은 그 신을 섬기는 방식이 매우 음란하였습니다. 신전에는 창기들이 있었습니다. 또 암몬 사람이 섬기는 밀곰의 경우 자기 자식을 제물로 드리는 인신제사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 신을 섬기는 민족은 나라가 큰 위기에 처하면 장차 왕이 될 세자를 죽여 밀곰 신에게 제물로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솔로몬에게 자기가 어렸을 때 섬겼던 우상 신전을 만들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데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 맞냐고 밤마다 투정을 부렸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항복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참된 사랑의 완성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표적인 신들의 신전을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하나 둘씩 세웠습니다. 성전 바로 앞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인신제사를 드리는 가증한 그모스와 몰록의 신전이 세워졌고 그곳에서 제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또 음란한 아스다롯 여신께 드리는 제사의식이 행해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런 우상숭배를 그만두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그에게서 빼앗아 그의 신하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다만 그의 아버지 다윗을 보아 그의 아들의 때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또 택한 예루살렘을 위해 한 지파는 그의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이상에서 그토록 지혜로운 솔로몬이 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솔로몬이 왜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이는 그의 마음이 부패해졌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음식이 결코 제 맛을 낼 수 없는 것처럼 부패해진 마음은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썩어 악취를 풍기는 생각을 하고 생명을 죽이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결코 한 순간에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된 것이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주신 부와 명예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을 때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밑바닥에서부터 배운 참된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 했을 때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이 공허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와 묵상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그 공허함을 여러가지 외적인 일과 끝없는 연애로 채우려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같습니다. 학생 때 순수한 믿음의 열정이 타올랐다가 졸업하여 타락합니다. 목자 생활 초기에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였다가 시간이 지나 형식적이 됩니다. 이러한 부패의 징조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말씀을 공부하고 소감을 쓰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이 기쁨이 되는지 지루하고 지겹게 느껴지는지 진단해 보면 됩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이 기쁨을 주는지 아깝게 느껴지는지 통해서 진단해 볼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 때 말씀듣는 시간이 1주일 중 가장 기쁜 시간인지, 가장 졸린 시간인지 생각해보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마음의 건강진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여 내 마음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마음이 부패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순식간에 부패할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성공이 그 부패를 유발하거나 촉진할 수 있습니다. 부패한 마음은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부패하지 않은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주기적인 마음의 건강진단을 통해 내 마음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주님을 절대적으로 섬기며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 나라에 이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