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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 에베소서 7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5-24)2019-03-04 0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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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에베소서 7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 에베소서 6:5-24

요절/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말씀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책걸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화살이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병사의 비유를 통해 에베소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권면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8절을 보십시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 앎이라”


지금까지 바울 사도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이는 종과 상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종과 상전의 관계라면 오늘날은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경우 알바를 하게 될 때 알바 사장과 알바생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알바생이 그리스도인인데 사장이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는 척 하고 그렇지 않을 때 빈둥거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장은 모르는 것 같아도 알바생이 어떤 자세로 일하는지 훤히 다 보고 있습니다. 만약 그 알바생이 사적으로 식사하면서 자기가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고 또 사장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사장은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제 8대 UN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과 외무고시 동기였던 미국 시카고의 안요셉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외무고시 동기들 중 가장 진급이 빨랐습니다. 그런데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너무 이동이 잦고 안정적으로 선교하는 데 지장이 많이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되기로 결단하고 사직서를 내고 미국 선교사로 정착했습니다. 이 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분이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당시 대사가 자리를 비우면 대사관 직원들이 몰래 골프를 치러갔다고 합니다. 안요셉 선교사님에게도 같이 가지고 꼬드겼는데 선교사님은 안된다며 자리를 지키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였습니다. 한번은 자리를 비웠던 대사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는 안요셉 선교사 외에 모든 직원들이 다 골프치러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노한 그는 전부 호출하여 크게 혼을 내고 안요셉 선교사는 칭찬했습니다. 안요셉 선교사님의 이러한 삶의 자세가 대사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우리가 어떤 직분을 맡아 일을 할 때면 그 일을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맡겨주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비범함입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영향력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할 때 눈가림하듯 편하게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알바로 잠간 일할 때면 어떻게든 대충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큰 오명을 남기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과 알바 전선에서 모든 일을 그리스도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상전들도 종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도록, 하늘 상전인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비롭게 대해 주시는 것처럼 대하도록 권면합니다.


10-17절에서 바울은 병사의 비유를 통해 에베소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전쟁에 나서는 병사는 그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강건해야 합니다. 마음이 강건하지 못하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오금이 저리고 팔다리에 마비 증상이 오게 됩니다. 공황장애가 발생하여 전투 참여는 커녕 앰뷸런스에 실려가게 됨으로 다른 병사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러면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가 어떻게 그 마음이 강건해질 수 있습니까?


다시 한 번 10절을 보십시오. “…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성경(NIV)을 보면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성도가 주 안에 있을 때 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거듭난 성도는 언제나 주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주 안에 있는 것과 주의 사랑과 은혜의 강물 안에 푹 잠겨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부부가 그냥 사는 것과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에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에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날마다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시민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함으로 그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이 주시는 큰 힘과 능력을 덧입고 마음이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바울 사도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간계란 상대를 속이기 위한 간사한 술책을 의미합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을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에 대해 천로역정의 저자인 잔 번연은 그의 또다른 저서인 ‘영적 전쟁’을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한 사람의 마음이 한 마을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견고한 성벽과 성문이 있습니다. 마귀 곧 디아볼로스는 이 성문을 뚫고 들어가 마을의 주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곧 한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기 원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하더라도 이 성문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결코 그 성문을 열 수 없습니다. 마귀가 그 성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성문 사람들을 설득하여 스스로 문을 열도록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에 마귀는 설득력있는 온갖 화술과 거짓말을 다 동원하여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시작합니다. 특히 그 마을에서 유력인사인 자유의지 경에게 만약 그 마을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자기가 그 마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만 해준다면 자유의지 경을 그 마을의 새로운 통치자로 세워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자기는 그 마을의 운영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처럼 이런 저런 참견을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을 자유의지 경의 뜻대로 하도록 도와줌으로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만 마을 중앙부에 세워진 하나님의 형상을 깨부수고 자기 형상을 세우는 그 한 가지만 해 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성벽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양심 서기관이 갑자기 천둥과 같은 소리로 경고를 하였습니다. 마귀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주면 모든 마을 주민에게 재앙과 파멸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양심 서기관의 외침에 모든 마을 주민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심지어 마귀도 움찔하였습니다. 양심 서기관의 외침이 끝나자 마귀는 양심 서기관이 간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헛소리를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심 서기관이 외칠 때는 귀를 막고 잠간만 참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자유의지 경을 비롯한 모든 마을 사람들은 마귀와 계약을 맺고 성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마을 불량배들을 중요한 직분을 맡은 시의원들로 세웠습니다. 반면 고귀한 뜻, 희생, 사랑과 같은 고매한 인사들은 반정부 인사들로 규정하고 전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존 번연이 그의 책을 통해 명쾌하게 보여준 것처럼 마귀의 공격은 철저히 말과 설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너무 상황에 맞고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들리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속고 자발적인 자기 의지로 자기의 마음문을 열어주고 마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봄학기 배우게 될 창세기에서도 이러한 마귀의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귀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공격할 때에도 뱀의 혀를 통해 말로 공격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때로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내 귀에 속삭임으로 그것이 내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도록 하면서 우리를 설득하고 속이려 합니다. 또 때로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입을 통해 나를 설득하고 속이려 합니다. 이와같이 마귀의 공격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고 또 그 단 한 번의 공격에 심장 끝까지 칼날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러한 마귀의 간계에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전신갑주란 로마 시대 때 병사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보호하는 전투장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전투장비를 갖추고 있으면 병사는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언제든지 사탄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바울 사도는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마귀는 고질라처럼 눈먼 괴물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마귀는 생각이 있습니다.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한 전술을 세웁니다. 마치 한 나라의 정부 조직처럼 여러 부서를 만들고 담당자들을 세웁니다. 21세기 마귀의 전략은 청년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노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분하지만 어떨 수 없다, 한 명 잃었다 생각하고 끝내지만 청년 한 사람이 회개하면 자칫하면 한 캠퍼스가 변화될 수 있고 한 시대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SNS의 발전으로 변화된 한 청년의 폭발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므로 마귀 본부의 최대 관심사는 청년들입니다. 마귀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보다 아니 미국정부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24시간 마귀 정부 청사에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잠도 자지 않고 밤샘근무를 하며 어떻게 하면 몇몇 청년들의 가슴에 붙은 복음의 불을 끌 수 있을까 세부 계획을 세우고 리포트를 쓰며 상사에게 보고합니다. 청년 한 사람이 청년의 정욕에 넘어졌다는 뉴스가 올라오면 온 마귀 정부 청사가 잠시 일을 멈추고 환호성 가운데 축하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랬다가 다시 그 청년이 회개하고 회복됨으로 교회에 큰 은혜를 끼쳤다는 뉴스가 올라오면 그 청년을 담당했던 부서는 책임자는 특별 교화소에 보내고 나머지 부서원들은 월급을 절반으로 줄이는 감봉조치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치열한 일들이 영적인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전신갑주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당시 로마 병사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 먼저 허리 띠를 띠었습니다. 이 허리 띠는 하반신을 보호해주는 보호장구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허리 띠를 견고하게 매면 병사는 온 몸에 안정감이 생기고 허리를 중심으로 전신의 기운을 모아 힘을 내 싸울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진리가 곧 허리 띠와 같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길이 무엇인지 묻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세상에는 왜 죄와 질병과 죽음의 고통이 있는가, 신은 과연 존재하며 존재한다면 그는 어떤 분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진리의 허리띠를 맨 병사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이 확신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강한 허리띠를 맴으로 힘을 내 싸울 수 있는 준비를 갖춘 병사입니다.


반면 이러한 확신이 부족한 이는 결정적인 순간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싸우다가 바짓가랑이가 반쯤 벗겨진 사람처럼 힘을 낼 수 없고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봄학기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허리 띠를 맨 병사는 호심경을 붙여야 합니다. 호심경은 말 그대로 심장을 보호해주는 전투장비입니다. 호심경을 착용하면 적의 칼로부터 심장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주신 의가 곧 호심경이라 하였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는 율법을 지킨 인간의 의로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하게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의 전통과 규례, 우리나라로 치면 유교의 가르침으로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실제 조선시대 때 사대부들의 삶을 살펴보면 겉으로는 남녀 칠세 부동석하면서 고매하고 고상하게 보였으나 그 이면에는 여종 사이에 홍길동과 같은 서자를 두며 정욕과 탐욕이 가득한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으로부터 온 의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의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의를 받는 것입니다. 이 의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호심경을 착용한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의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의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격, 혹은 존재가치입니다. 어느날 우리가 식사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밥을 먹고 있지? 당신 밥먹을 자격이 있어?”라고 묻는다면 매우 당황할 것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거나 내가 모시는 지도 교수님일 경우 몹시 당황스럽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임이나 조직에 있든지 그곳에서 있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눈빛으로 느끼고 말없는 음성으로 느끼고 공기로 느낍니다. 사탄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너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기 있으며 하루하루 밥을 먹고 살아가는가 질문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의의 호심경을 예비하지 못한 사람은 가슴에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그래,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하며 자기도 모르게 숟가락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의의 호심경을 착용한 사람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의로 의롭게 되었어. 나의 자격과 나의 존재가치는 그리스도이셔. 그리스도께서 아무 자격없는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셨어.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 삼으셨어. 여기에 나의 가치가 있어. 나의 가치는 그리스도이셔.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야.” 이렇게 외칠 때 마귀는 물러가게 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다음으로 병사는 신을 신습니다. 당시 로마 병사의 신발은 전투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발을 지면에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장거리 이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신을 신는 것은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것입니다. 신발을 신은 병사는 나팔 소리가 나면 즉각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그 마음이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사람은 언제든지 기회가 찾아올 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본문에서 방패는 작은 손방패가 아니라 병사의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커다란 방패를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 병사들은 성을 공격할 때 이런 방패들을 연결하여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불화살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마귀가 사람들에게 불화살을 쏘는 방식은 설득력있는 말을 통해서입니다. 마귀는 가만히 있는 성도에게 다가가 불쑥 말합니다. “저 사람을 봐. 저렇게 젊은날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지금 늙고 병들었잖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비롯해 이런 저런 어려움 가운데 있잖아. 너도 생각 잘 해. 과연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하나님이 지켜주실까? 도와주실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오직 너만을 위해 살라고. 너를 책임져 줄 사람은 오직 너 자신밖에 없어.” 이런 마귀의 말을 들으면 너무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 불신의 불화살이 박혀 불이 타오르고 신앙의 집은 홀라당 타서 없어질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 청년들이 이런 마귀의 불화살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신앙은 점차 관념적 이론적 회의적이 되고 그의 삶은 자기 중심적, 물질적, 이기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탄의 불화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믿음의 방패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를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며 그가 하신 모든 약속을 하나도 빠뜨림없이 다 지키시는 믿을만한 분,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사랑의 확증을 하신 분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로마서 5: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증거를 얻을 때, 그리하여 다시 믿음이 회복될 때 사탄의 불화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때 믿음으로 살다가 어려움 가운데 처한 분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 크게 영광받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 어려움에도 불신 가운데 헤매는 이들에게 그들을 통해 믿음을 배우도록 돕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봄학기 사탄은 언제 갑자기 불신의 불화살을 우리의 심장을 향해 날릴지 모릅니다. 그때 우리가 이 믿음의 호심경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가난이나 질병이나 심지어 죽음도 나를 위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믿음의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는 구원의 확신, 구원의 소망입니다.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소망은 투구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호해 줍니다.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주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어용 무기였다면 성령의 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메시야도 먼저 먹고 살아야 메시야든 뭐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느니라”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무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할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강력한 힘으로 역사하십니다. 사탄이 꼼짝 못하도록 만드십니다.


사탄은 최근 저에게 계속하여 불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외대 동아리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15명 이상의 국내 재학생이 있어야 하는데 올해 무려 7명이 졸업을 하거나 해외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잘 될 수 있겠어, 더 나아가 올 한 해 학생 역사에 별다른 비전이 있겠어. 지금까지도 어려웠는데 점점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좋아지겠어?” 라며 저의 가슴에 불화살을 날렸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님은 빌립보서 4:6-7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제가 봄학기 이 말씀을 붙들고 동아리 등록과 봄학기 학생 역사에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모든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영적인 전쟁은 무릎으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전쟁은 혈과 씨름을 하지만 영적인 전쟁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영적 전쟁을 수행할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를 통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19-20)


마지막으로 바울은 특별히 두기고를 보내 그의 사정을 알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의 기도제목을 알리고 또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그들 가운데 있기를 기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에베소서 말씀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그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에베소 말씀을 통해 봄학기를 앞두고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봄학기 영적 전쟁에서 능히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