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글보기
제목2019년 창세기 4강 `여자의 후손 `2019-04-02 11:53:35
작성자


2019 창세기 4강


여자의 후손


말씀/ 창세기 3:1-24

요절/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오늘 말씀은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는 슬픈 내용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의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구원의 소망을 품게 되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였습니다. 간교하다는 것은 매우 지혜롭고 꾀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계시록 12:9절을 보면 뱀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자로서 뱀을 조종하여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뱀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냐,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물었습니다. 뱀은 간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대해 짐짓 전혀 몰랐던 것처럼 묻습니다. 또 하나님이 탐나보이는 각종 과일을 만들어놓고 먹지 못하도록 금하시는 인색하신 하나님이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본문에서 여자의 대답은 여자가 가진 모든 생각들을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여자는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원문상 이는 “We are eating fruit from the trees…”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나무에서 난 열매들을 우리가 현재 먹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15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두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경작한다는 것은 밭을 일군다는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밭에 여러가지 곡물을 재배하며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난 후 먹는 과일은 꿀맛이었습니다. 오늘날 운영 예산이 빠듯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사과 하나를 수십 쪽으로 잘라 겨우 한쪽씩 먹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군대 같은 곳에서는 몰래 하나 더 집어먹다가 고참으로부터 온갖 욕설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런 스트레스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과 시선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나무들을 떠나 동산 중앙에 위치한 하나님이 금지하신 한 나무에게로 향하였습니다.


로마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것, 금하신 것으로 인해 불평과 불만의 마음을 갖는 것이 곧 타락의 시작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이 결혼 제도에 의하면 사람이 결혼하는 순간 결혼한 베필 외에 다른 모든 이성은 선악과 나무와 같이 금지됩니다. 이 금지된 선을 넘는 순간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 안에서 온갖 풍성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선을 넘으려는 마음이 바로 타락의 시작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주권 가운데 허락하지 않으신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돌 스타와 비교해 볼 때 외모가 딸리거나 영재와 비교해 볼 때 능력이 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권 가운데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저는 과거 젊은 날 배우처럼 멋있게 생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배우처럼 생겼다면 결코 오늘날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또 더 좋은 명문대를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명문대를 갔다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결코 오늘날과 같은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에 가장 적합한 외모와 조건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언젠가는 주시지만 지금 현재 주지 않으신 것들이 있습니다.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모진 겨울이 있어야 합니다. 모진 겨울을 지나며 병충해가 다 얼어죽고 땅이 기운을 축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봄이 되어 씨를 뿌리고 뙤약볕으로 모든 것이 타버릴 것같은 여름과 세차게 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이 와야 합니다. 그리고도 열매가 충분히 무르익기까지 가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지금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주지 않으신 것으로 인해 마음에 감사함이 사라지고 쓴뿌리를 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곧 행복한 마음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조급함으로 인해 감사가 사라지고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하와는 이와같이 하나님이 지금 현재 주신 것, 허락하신 것들에 감사하지 못함으로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여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곧 그 나무의 열매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신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하나님이 설명하신 이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금하신 것에는 단지 선과 악을 아는 것이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말고 또다른 더 깊은, 더 심오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동상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표현을 바꾸었습니다.


또한 여자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만지지도 말라는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지키기 위한 좋은 의도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법조문에 약간의 변화만 주어도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여기에 만지지도 말라는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이것은 만지기만 해도 죽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 실제 만져 보았는데 죽지 않았다면 더 나아가 먹어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여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강한 강조형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두고 선언하노니 그 선악과를 먹을 경우 반드시 죽게 된다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You will surely die(NASB)” 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이것을 죽을까 하노라(or you will die)로 그 표현을 매우 약화시켰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 안 그러면 맞는다 말해놓고 실제로는 때리지 않는 것 같은 뉘앙스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이 설마 선악과를 먹었다고 사람을 죽이시겠어, 짐짓 엄하게 말해놓고 실제로는 봐주지 않을까 하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고 분명합니다.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사람이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명쾌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속이 시원하도록 100%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100%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람과 하나님은 동등한 수준이 될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음악의 거장에게서 배울 때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지만 순종하며 배우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 때에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의미가 속시원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 절대적이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대적인 말씀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의 말을 들은 뱀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악과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선을 넘을 경우 인간은 죽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실은 인간이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뱀의 말의 요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이 두려워 거짓말로 사람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뱀의 설명은 여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는 하나님을 매우 좋은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땅과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아침이 되면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 상큼한 풀내음, 꽃향기, 밤이 되면 밤하늘을 보석처럼 수놓은 별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좋은 분으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실상은 뭔가를 감추고 거짓말하는 분이었다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뱀의 설명은 왜 하나님이 선악과 계명의 말씀을 주셨는지 100% 이해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100% 이해가 된다는 것은 그 설명이 맞는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선악과처럼 금지된 영역들이 있습니다. 영원히 금지된 영역이 있고 언젠가 주시지만 지금은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부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를 아이돌 가수처럼 멋있게, 재주도 많이 갖고 태어나도록 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나에게 풍성한 부와 성공, 명예를 허락하지 않으실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런 고난과 질병과 사고가 있는 것일까, 나를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도록 하실까 하는 의문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뱀은 바로 이런 부분을 파고 들어와 설명을 해 줍니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야. 너가 그렇게 태어난 것은 열등한 유전자의 우연한 조합일 뿐이야. 운이 없었던 것이지. 뭐?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그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치자. 그 하나님이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좋으신 하나님이실까? 하나님이 그렇게 좋으신 분인데 세상에 대해, 또 너에게 그런 끔찍한 고통을 주시는 걸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너가 힘들어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가학적인 신임이 분명해.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 아니야. 설령 좋으신 분이라고 쳐. 그 분은 좋으신 분이시지만 너는 싫어해. 너가 이렇게 찌질하게 살고 있는게 그 증거야. 저기 봐. 저기 아주 잘 나가는 분 있잖아. 하나님은 저 사람을 좋아하셔. 너는 거울도 안보냐? 너 자신의 모습과 삶을 보라고. 하나님이 너를 싫어하신다는 증거가 네 주변에 널려 있잖아.’


이런 사탄의 설명을 들으면 세상에 왜 이런 고난이 많은지,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지 너무 선명하게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되어 속이 후련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 마치 5미터 뿌리를 내린 쓴뿌리 나무처럼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아무리 말씀을 주고 믿음을 심어도 쓴뿌리 나무가 그 믿음의 씨를 다 죽이고 맙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믿지 않고 하나님은 결국 나에게 인색하신 하나님이고,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하나님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뱀의 말을 듣고 난 후 여자가 나무를 보았을 때 정말 자기를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였습니다. 여자는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남편도 먹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선과 악을 아는 자식의 열매를 먹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뱀의 말처럼 정말 눈이 밝아졌습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에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자기들이 벗은 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습니다.


이 사실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그 자체로는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을 왜곡하고 남용하는 것은 죄가 되고 악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을 왜곡하고 남용하여 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악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악을 실제로 행하게 될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C.S. Lewis의 ‘침묵의 행성 밖에서’라는 책을 보면 지구(The bent planet)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왜곡(bent)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총과 은혜가 전부 다 왜곡되고 남용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왜곡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왜곡된 상태를 정상으로 느끼고 왜곡된 것이 정상으로 되어 있는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성을 왜곡하고 남용하는 것이 보편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좋아하면 얼마든지 함께 잘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입니다. 결혼 제도 또한 오랜 인습과 관습의 산물일 뿐이며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돈을 왜곡하고 남용합니다. 돈은 인간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소산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곡물과 또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지구에 풍성하게 묻어두신 성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왜곡하고 남용하여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돼지 콧구멍에 만원자리를 집어넣은 후 절을 하고 제사를 드립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배와 찬양을 돼지머리와 그 안에 있는 만원짜리 돈에게 드린다니 참으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수치스러움을 느끼지만 그런 수치스러움을 참고 계속 반복하면 나중에는 뻔뻔해지게 됩니다. 그런 수치스러운 삶이 정상으로 느껴지게 되고 나중에는 정상인 삶으로 회복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게 됩니다. C.S. Lewis는 오늘날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이와같이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조상이 아담과 하와와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인간은 생득적으로 악에 대한 지식을 갖춘 존재가 되었습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을 보면 일단의 영국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른은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권력 투쟁, 음모와 살인, 다른 이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잔인한 본성 등을 다 표출하게 됩니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소년들 안에 아니 우리들 안에 이런 무서운 죄성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악에 대한 지식을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시스템으로 제어해주지 않으면 이런 악을 100% 표출하는 존재임을 윌리엄 골딩의 소설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나는 그래도 도덕적인 사람이야, 나는 그래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어.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큰 착각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매우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으며 자신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세상 조류를 따라 살지 않고 자기 본연의 직업 정신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그가 큰 권력을 가진 고위 공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정말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저 사람이 저럴 리가 없는데 미친 것 아니야 사람들이 말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또 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목회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목회가 성장을 거듭하여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도 역시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안에 그 자신도 몰랐던 생득적인 악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악이 표출될 환경이 전혀 아니었을 때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그 악을 표출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 그 지식이 나타났고 그 지식이 그의 마음과 그의 삶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악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 악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을 때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 악을 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악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영적 투쟁을 할 때에만 그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가오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이런 아담을 부르시며 그를 찾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너의 벗었음을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물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주어 먹었다고 핑계를 여자에게 대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여자를 주신 하나님 탓으로 돌렸습니다. 아담은 남탓, 환경탓, 하나님 탓을 하는 모든 죄인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는 뱀이 자기를 꾀어서 먹었다고 변명하였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느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여자를 꾀어 죄를 범하게 한 뱀을 저주하셨습니다. 평생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땅을 기어다니며 흙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또 여자와 뱀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 뱀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4-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부활의 복음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가진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사탄은 이에 대항하여 예수님과 그의 교회를 박해함으로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심으로 범죄한 인간을 향한 크신 사랑과 구원의 소망을 나타내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한편 하나님은 여자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셨습니다. 그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남편을 원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뱀은 저주하셨으나 여자는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저주의 말씀이 아니라 범죄함으로 죄악된 본성을 갖게 된 여자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임신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성숙한 어머니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 혼자 살지 않고 남편과 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가운데 믿음을 배우고 순종을 배워 성숙한 하나님의 여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담은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살 소산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하는 것 자체는 창세기 1장과 2장을 볼 때 하나님이 주신 복이며 사람의 삶을 가치있고 의미있게 하는 고귀한 것입니다. 문제는 땅이 저주를 받아 일하는 것에 비해 그 소산을 매우 적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도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열심히 일해도 그 결과가 너무 적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일을 해도 해도 남는 것이 없어보이는 이런 삶은 우리의 삶을 수고롭고 힘들게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수고롭게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게 될 경우 각종 범죄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지켜줍니다. 또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도록 돕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그의 아내를 하와를 불렀습니다. 이는 그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평생 고생하며 수고롭게 살아야 할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과 소망을 가졌습니다. 저는 본문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아담의 믿음과 소망에 대해 은혜받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도와도 때가 되면 자기 길을 찾아 떠나가는 양들을 보며 수고스럽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은 아담을 보며 존경하고 배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때로 수고스럽고 고난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언제든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질 그 날을 사모하며, 오늘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수고가 하나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든 무과과 나무 치마는 일시적이었고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가죽옷은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었습니다. 여기에는 짐승의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향해서도 변함없는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범죄한 사람이 영생하는 것은 지옥의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에덴 동산을 없애지 않으시고 천사를 두어 지키게 하심으로 영생에 대한 소망을 남겨두셨습니다.


결론입니다. 죄의 뿌리는 감사하지 않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수고스럽게 느껴지는 삶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