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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신년 2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사야 54:1-17)2018-01-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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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년 2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말씀/ 이사야 54:1-17 

요절/ 이사야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는 남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 BC 739년 경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약 60년간 요담-아하스-히스기야 왕 때 선지자로 사역하였고 므낫세 왕 때인 BC 680년경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가 본문을 기록한 당시 남유다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차 멸망당하여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할 것을 내다보고 그 때 어떤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신년 2강으로 잡게 된 배경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날로 어려워져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하는지 배우기 위함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려운 시대 환경을 믿음과 소망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본문에서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여인은 ‘시온’을 가리킵니다(49:14, 52:1,2). 시온(요새라는 뜻)은 예루살렘 성이 세워진 산의 이름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모리아 산이라 불리웠으며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곳이 바로 이 곳 시온 산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으나 다윗이 이곳을 점령하여 성곽을 쌓고 다윗 성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법궤를 이곳으로 가져왔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이후 시온은 하나님의 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기도 하였고,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과거 시온 곧 예루살렘 성은 많은 자녀들을 잉태하는 여인과 같았습니다. 성 안에는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이곳에 여러가지 죄문제, 내면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염소나 양, (가난한 사람의 경우) 비둘기를 들고 제사장에게 찾아왔습니다. 제사장은 그들의 죄문제, 내면문제를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제사드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추수감사절이 되면 전국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이 기간 예루살렘 주민들은 대문앞에 흰 수건을 걸어두어 자기 집에 순례객을 맞이할 빈방이 있음을 알렸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순례객을 가능한 많이 모시기 위해 집을 지을 때 크게 짓고 빈방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습니다. 시온 성 예루살렘 방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식었던 신앙의 감격이 새롭게 뜨거워지고 하나님을 만난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와같이 시온 성 예루살렘은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믿음의 자녀들을 쑥쑥 낳는 여인과 같았습니다. 종갓집 맏며느리 집처럼, 예루살렘 성은 늘 많은 성도들로 북적북적하였고 제사장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런 성도들을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바벨론의 침입으로 인해 성전이 크게 훼파되었습니다.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나마 남은 사람들은 신앙을 잃고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더 이상 십일조와 헌금을 내지 않으므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전부 직장을 잡게 되었고 성전 재건을 비롯한 제사장 직무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추수 감사절이 되어도 사람들은 차비가 없다, 바쁘다, 가정에 일이 생겼다, 내년에는 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보겠다 등의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아 썰렁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도시로서의 활력을 완전히 잃고 작은 시골 마을로 전락하였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형편이 마치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여인, 더 이상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았습니다. 


한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역시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물론 포로로 잡혀간 그들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오늘날 뉴욕과 같은 바벨론에 살면서 처음에는 정착하느라 고생도 했지만 그중에는 성공하여 바벨론 영주권, 또 시민권까지 받는 이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신앙을 가진 영적인 자녀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적응하고 먹고 살기에 바빠 이들에게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2세들은 바벨론의 우상숭배와 황금 만능주의, 육신주의, 쾌락주의의 용광로에 녹아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더 이상 영적인 자녀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과 같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1절을 보십시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당시 사회에서 여인이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사회적 수치와 멸시를 의미했습니다. 이런 여인은 눈물과 한숨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야 상황상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여인에게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NIV 영어성경을 보면 3개의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노래하라(sing), 노래를 터뜨리라(burst into song), 기쁨으로 외치라(shout for joy). 눈물과 한숨과 탄식으로 살아야 할 여인이 이렇게 노래하고 막 아무데서나 노래가 터지고 기쁨이 넘쳐서 큰 소리로 외친다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과 너무 안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저 여자 드디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고 수근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노래하라, 노래를 터뜨리라, 기쁨으로 외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여인의 자식보다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녀가 남편이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남편 있는 이웃집 여자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침부터 와서 호호호 글쎄 우리 남편이 어떻고 저떻고 수다를 떨고 또 “이번에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어요, 거기에다가 장학금까지 받았어요 호호호” 하고 자랑을 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겉으로는 “네 참 좋으시겠어요” 말하지만 속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그녀에게 장차 너의 자녀가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와서 성전도 없고 제사장도 없는데 바벨론의 석학보다 더 뛰어난 다니엘과 같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을 가르쳐주는 제사장도 없는 탁월한 성경학자인 에스라가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영적인 지도자의 롤모델도 없는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탁월한 영적인 지도자인 느헤미야가 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 이와같은 사람들은 바벨론 인재 1만명보다, 아니 바벨론 민족을 다 합한 것보다 인류역사에 더 위대한 영향력을 끼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 포로로 잡혀간 그들 중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위대한 분입니다. 그의 탄생을 기점으로 역사는 BC(Before Christ, 주전)와 AD(Anno Domini, 주후)로 나뉘어집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식 자랑하고, 세상 자랑하는 바벨론 아줌마들 앞에서 기죽지 말라고 하십니다. 믿음 안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늘 어둡고 침울한 모습, Depressed 된 얼굴을 하지 말고 밝은 모습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휴, 어휴, 아이고 하는 슬픔과 탄식의 한숨을 내쉬지 말고 할렐루야 기쁨과 찬양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 어렵다고 어둡고 침울한 마음, Depressed 된 마음을 가지면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을 내지 못하고 점점 더 어둠과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마치 한 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됩니다. 또 이런 마음, 이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좋지 않은 상황이 더 악화되고 또 될 수 있는 일도 안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가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밥맛이 떨어져 다른 식당으로 옮기게 됩니다. 목자도 그렇습니다. 양이 없다고 어둡고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양이 더 안옵니다. 양 편에서 생각해보면 자기도 사는 것이 힘들고 우울한데 목자까지 어둡고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그에게 가고 싶겠습니까? 


우리가 상황이 어렵지만 밝고 환한 얼굴을 하는 것, 또 노래를 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지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방법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지금 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생명의 열매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밝은 얼굴은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단지 기분이 좋아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믿음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같은 믿음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 노래 소리를 들으시고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 우리의 태를 통해 남편있는 자, 큰 문제가 없이 살아가는 자보다 더 많은 생명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신 것을 드러내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노래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황, 잘 나가는 인생을 살면서는 결코 부를 수 없습니다. 이 노래는 오직 출산하지 못한 여인이 당하는 수치와 아픔과 눈물과 탄식 가운데서만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별다른 문제가 없이 살아가는 분도 있지만 본문의 여인처럼 아픔과 슬픔과 탄식의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도 많이 있을 줄로 압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아픔으로 인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나 2018년에는 그런 아픔 속에서 믿음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밝고 환한 모습으로 가정과 캠퍼스에 나타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부르는 나의 노래 소리를 들으시고 잉태하지 못했던 나의 배를 통해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당시 광야에서 이동하면서 장막을 철거하고 설치하는 일은 주로 여인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사사기에도 보면 한 여인이 평소 장막 말뚝을 박던 실력으로 자고 있던 적군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편을 잃고 자녀도 없는 여인은 당연히 장막터를 좁게 잡게 됩니다. 시장에 가서 휘장도 조금만, 줄도 짧은 것으로, 말뚝도 가장 작은 것으로 삽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경제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그녀에게 장막터를 넓히라, 휘장도 아끼지 말고 충분히 사라, 줄도 길게 준비하고 말뚝도 초대형으로 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여인이 처한 상황과 너무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본문의 말씀이 시온 성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시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고 대다수의 주민들이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남은 예루살렘 거주민들은 도시의 규모를 시골마을 급으로 대폭 축소하고 집도 조그맣게 짓는 것이 상황에 맞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도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득하게 될 것이니, 유월절이 되면 100만명에 육박하는 순례객들이 올 것이니 성전으로 가는 길의 폭을 넓게 하고, 성전 주변의 집에 방을 많이 만들라고 하십니다. 지금 당장 돈이 없더라도 있는 돈을 가지고 건물을 짓되 터를 넓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서울의 강남을 개발할 때 도로를 넓게 잡았습니다. 주변이 온통 논두렁이인 땅에 도로를 그렇게 넓게 잡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또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그 넓은 도로가 결코 넓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지금은 유월절이 되어도 성전으로 가는 사람이 너무 적어 샛길로도 충분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장막터를 넓혀 길을 크게 낼 생각을 하고 건물도 추후 증축하여 방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나라가 망했다고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나라가 망했다고 바벨론에 동화되어 꼬부랑말로 ‘Do I look like Jewish? No, I am not Jewish. I am Babylonian.’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시리라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그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언어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여호수아의 하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바벨론에서 번 돈을 아까워하지 말고 투자하여 신앙교육 기관을 세우고 신앙적인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오늘날 각자 삶의 여러가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그러면 장막터를 넓히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마음의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 시급한 현실적인 과제와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학업의 분량이 너무 많아, 어떤 분은 직장에서 짤리지 않고 일하며 먹고 사는 것이 절박한 현실 문제이므로, 어떤 분은 자녀를 돌보느라 다른 것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절박한 장래 문제, 결혼 문제, 물질 문제, 질병 문제 등 문제에 매여 다른 것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음의 장막터를 넓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우리 학생들은 교수님께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는 밤을 새워 작성하지만 주님께 제출해야 하는 주일 소감은 30분만에 작성하거나 심지어 스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출근시간을 어기지 않지만 주일예배는 피곤하다며 습관적으로 늦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고 마음을 넓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학업과 직장일에 충성하는 것은 현세에 그 상급이 있지만 영적인 일은 영원한 상급이 있으니 마음의 장막터를 넓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둘째, 비전의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학생이니까, 어떤 분은 나는 직장인이니까, 어떤 분은 나는 가정 주부이니까 딱 이 정도만 하면 된다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말씀 연구는 스탭 목자님이 하시니까 나는 잘 받아서 적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요회 목자님이, 또 요회 사모님이 다 알아서 하시겠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비전의 장막터를 넓혀 본래 평신도 출신이지만 세계적인 설교자가 된 로이드 존스나 찰스 스펄전같은 말씀의 종이 되고자 하는 영적인 비전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어짜피 양도 없으니 공부나 하자, 직장일이나 하자 생각하지 말고 비록 지금 양이 없어도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목자가 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셋째, 기도의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만을 위해서 기도하기 쉽습니다. 내 가정, 내 요회, 내 센터를 위해서만 기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의 장막터를 넓혀 다른 가정, 다른 요회, 다른 센터, 세계 선교지와 선교사님들, 이 시대 젊은이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넷째, 섬김의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섬김의 장막터를 넓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들뿐 아니라 관심과 섬김이 필요한 분들, 센터, 선교지도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장막터는 언제 넓혀야 합니까? 바로 지금 넓혀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사람이 오면 그때 넓히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때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장막을 보고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십니다. 지금 양이 없다고 말씀을 준비하지 않고 내면을 준비하지 않으면 때가 되어도 그를 쓰실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영어가 필요없다고 영어공부를 하지 않은 이에게 영어권 양을 보내주실 수 없습니다. 지금 기도하지 않는 이에게 하나님이 들어주실 기도제목은 없습니다. 준비는 미리 하는 것입니다. 일이 닥쳤을 때 준비하는 것은 준비가 아니라 허둥지둥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녀가 없고 사람이 없는 지금 미리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장막터를 넓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젊었을 때의 수치는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때의 수치를 말합니다. 과부 때의 치욕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치욕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에 크게 놀랐습니다. 두려움이 가득해졌습니다. 그 두려움의 근본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닌가 우리가 죄를 범하였다고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신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온 땅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시고 그들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잠시 그들을 버리셨으나 큰 긍휼로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 시편 30:4-5절은 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9-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리라 맹세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다시는 이스라엘에게 노하거나 그들을 책망하지 않기로 맹세하셨습니다. 설령 산들이 떠나고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11-17절에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아름답게 꾸미시고 그들을 지키고 보호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도성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들의 자녀는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고 자녀에게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공의로 서게 되며 학대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는 일도 없게 됩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패망하게 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바벨론도 사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징계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 도구가 자기 역할을 다했으므로 폐기 대상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상황에 때마다 매여 살아왔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좋으면 에너지가 샘솟고 상황이 나쁘면 삶의 종말이 온 것처럼 우울해 하였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2018년에는 눈에 보이는 상황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믿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말씀의 종으로서 큰 비전을 가지고 말씀에서 진보를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2018년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그런 어려움 가운데 믿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장막터를 넓히고 필요한 휘장과 줄과 말뚝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