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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가을수양회 주제1강 `주는 그리스도`(마16:13~19)2019-10-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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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수양회 1강

주는 그리스도

말씀/마16:13~19

요절/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의 마지막 절이 무엇으로 끝나는 줄 아시나요?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로 끝납니다. 성경의 기록목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의 은혜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고백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이 시간 우리 신앙을 돌아보고, 주님께 올바르게 신앙고백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빌립보 가이샤라는 갈릴리 호수로부터 50Km 북쪽에 위치한 한적하고 아름다운 휴양지입니다. 그러나, 바알 예배의 중심지, 우상숭배지로, 현재도 지명이 바니야스(baniyas)로 바알의 영향력을 받는 곳입니다. 빌립헤롯왕은 로마 황제 가이사랴에게 잘 보이기위해 이곳에 흰 대리석 신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황제인 가이사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예수님은 황제 숭배를 강요받고 있는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관한 유명한 두 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질문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세례요한은 타락한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평탄하게 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선지자와 갈멜산에서 정면대결하여 승리하여 우상숭배 선지자들을 몰살한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보지않고 불병거로 하늘로 올리웠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운명앞에 회개를 촉구한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예수님을 단편적으로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폭력주의자, 사대성인중 한 분, 인류의 스승 등 존경하는 정도에서 머뭅니다. 신자중에 예수님을 악세사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인격적, 신앙적 관계성이 없이 주일에만 교회에 눈도장 찍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합니다. 어떤 신자는 예수님을 복을 주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여깁니다. 이것 저것 해달라며 예수님을 종처럼 부립니다. 필요할 때만, 아쉬울 때만 찾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요, 진실된 신앙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헬라어에는 ‘너희는’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상관없이 바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과 관련이 있다(요 17: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생명과 사망, 천국과 지옥으로 갈립니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천하를 다 얻은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때 수제자 베드로가 나서서 답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주님께 대해 간결하게 답했지만 모범답안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칭찬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16절 상반부를 다시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①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인간이 타락한 순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사 인류를 구속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2000년전 예수님은 이땅에 그리스도로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② 예수님은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들은 죄를 스스로 해결하려 합니다. 세상에서 죄 지으면 형무소에 가 처벌받듯이 스스로 죄의 형벌을 받으면 그 죄가 청산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산을 무릎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삼보일배를 하기도 하고, 숯불을 피워 그 위를 밟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인도사람들은 몸을 씻으면 죄가 씻겨 나간다고 믿고서 수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겐지스강에 목욕을 다녀옵니다. 불교의 유명한 성철스님은 면벽수행을 한다며 눕지 않고 앉아서 벽만 보는 수행을 수년 동안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진짜로 죄가 씻어질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인간의 노력으로 결코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선포하였습니다(롬3:10).


그러면 어떻게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는 말씀 하십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a) 오직 예수님의 피, 십자가 공로로만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구속의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헬라어로 ‘텔레스타이’인데, ‘다 지불했다’, ‘다 청산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가장 큰 죄 문제, 우리의 죄 값을 그의 피로 청산해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게 되었습니다.


③ 예수님은 죽음에서 구원해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인류 역사상 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이후의 영원한 생명,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도 사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이 수양관 온 사방에서 불이 나서 출입구와 창문이 다 막히고, 한치 앞도 안보이고, 연기와 불길이 거세질 때 우리 스스로는 결코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방차가 와서 순식간에 불을 끄고 소방관들이 들어와 우리를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 죽음에서의 구원도 이와같습니다.


구원자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천국으로의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즉, 천국을 만드신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출입증도 주시는 데, 그 발급기준은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복음은 절대 불변입니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라도 멸망할래야 멸망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다른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것은 현세와 내세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기에 죄문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다만 때마다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은혜를 덧입으면 됩니다. 천국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내가 자부심이 가득하고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당당하고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천해 보이고, 세상과 비교해서 가진 게 없고, 때로는 오해와 모함을 받아도 슬프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나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감사로, 찬송으로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 다 아시죠? 사소한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지요. 내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면, 현재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장차 천국이 주어지니 세상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지요. 대세에 지장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행복관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다 가졌고, 못 가진 것은 부분이 됩니다. 못 가졌지만 행복할 요소를 다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기쁘지 않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6절 하반부를 읽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the Son of the living God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냅니다. 어떤 존재가 하나님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섯가지 속성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섯가지 속성은 전지, 전능, 무소부재, 영원, 불변입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다섯가지 신성을 가지신 the Son of the living God입니다.

1) 예수님은 전지 (omniscient)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 앉아 있는 키 작은 세리의 이름이‘삭개오’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나다나엘안에 간사한 것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다섯명의 남편을 두었던 사마리아여인의 과거의 비밀을 다 아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시에 나귀새끼, 물고기 뱃속의 동전, 베드로가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면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일을 아십니다.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도,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장점과 단점,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능히 도와주시되 가장 베스트로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전능(omnipotent)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질병과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여 걷게 하셨고,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치료하셨고, 맹인, 귀머거리, 문둥병자, 각색병자들을 고치지 못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죽은지 사흘이 되어 냄새나는 시체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하심으로 죽은자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계와 영계를 다스리셨습니다. 성난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라’ 명령하니 바다가 순종하였습니다. 귀신을 꾸짖으니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심으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죄사함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무소부재 (omnipresent)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마28:18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온 우주와 영적 세계까지 그의 통치와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 계신 곳이 없으십니다. 이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아프리카 야바텍에도 계시고, 캐나다 험버에도 계십니다. 여기, 이 자리에도 계십니다. 시편 139편9~10절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4) 예수님은 영원(eternal)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자 예수님은 창조 이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요8:58)고 스스로를 증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7:2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알파와 오메가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5) 예수님은 불변(immutable)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히13장8절은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기준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 진리이신 분이십니다. 변함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상으로 예수님의 다섯가지 신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와!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크신 성자 예수님을 작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모십니까? 형편에 따라, 환경에 따라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따르는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이곳에도 계신,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도우실 수 있는,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성자 예수님을 우리가 의지하고 따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의 지식이나 능력이나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 고백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신 성부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집에서 아침부터 짜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거울속의 제 얼굴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습니다. 인상파가 따로 없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짜증도 다반사였습니다. 저 직원은 저 것도 못하나? 왜 똑같은 일을 응용을 못할까? 서류를 보면 뚜껑이 열릴 때도 많았습니다. 강퍅한 모습, 세상 사람과 다름없는 모습, 도덕적, 신앙적으로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저는 오체불만족, 만사불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다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마치 예수님을 장사 보낸 제자들처럼 사는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내가 그 의미를 아는 것인지? 현세와 내세에 별 지장이 없다면서, 무얼 이렇게 아옹다옹 사는 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제 내면에는 장래염려, 자식염려, 건강염려, 물질염려, 눈만 뜨면 염려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제 인생 제가 책임지고 살아야 된다는 의식으로 주님을 근본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따로, 나 따로, 주님은 주님 일하시고, 나는 내 일하고, 내 삶과 가정도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습니다. 제가 인생의 주도권을 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었기에 아옹다옹 사는 것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이 문자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이 말씀이 나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으로 들어와 있는가? 나의 삶속, 신앙 속으로 깊이 받아졌는가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였습니다.

저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부패한 본성으로 예수님 없이 얼마든지 종교생활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그 중심에는 주님과의 교제의 부족, 주님 앞의 진정성 부족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을 때 제가 책임지고 치열하게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의 예수님은 속 좁고 강팍한 죄인을 위해 그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바다와 바람을 잔잔케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주님께 제 인생의 주권을 내려놓겠습니다. 영원한 왕으로 나의 그리스도로, 저를 통치하시고 다스려 주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베드로 같은 신앙고백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 것을 발견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제가 날마다 마음문을 열어 주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만나고, 주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길 기도합니다.


18, 19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 하십니다.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 곧 죽음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께 진실된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어떤 환난과 박해에도 망하지 않습니다. 천국열쇠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권세를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면 구원역사가 있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 역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우리의 전도의 미련한 것을 사용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는 신앙생활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평안이 없고 슬픔과 수고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어떤 의미가 되십니까? 이시간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신앙고백 드리는 참된 신앙인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