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가복음 1강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 마가복음 1:1-15 요절/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올해 새 봄학기는 마가복음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입니다. 작년에 사도행전 공부할 때 그가 바울과 함께 1차전도여행을 할 때 힘들어서 사역을 중단하고 혼자 돌아왔고, 이 일로 2차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 바울은 ‘안된다’하며 크게 싸우고서 갈라서게 했던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베 홑이불을 두르고 따라가다가 발각되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간 사람이 있었다고 본문에 나오는데, 그 청년이 마가로 추청됩니다. 마가는 이처럼 연약하고 힘들면 도망간 사람이었습니다. 이랬던 그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베드로에게서 신앙의 양육을 받고서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어 로마에 가서 함께 사역을 합니다. 통역관 역할을 했습니다. 벧전5:13에서 베드로는 ‘내 아들 마가’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베드로에게서 자료를 받아 기록했다고 해서 ‘베드로복음’이라는 별명을 갖습니다. 마가는 나중에 바울과도 화해합니다. 로마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은 ‘마가를 데려오라. 마가가 내게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가는 오랜기간 연단을 받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어 주와 복음에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의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로마에서 박해 받는 성도입니다. 그러기에 헬라어로 기록이 되었겠죠. 중간중간에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공용어였던 아람어를 사용하였는데,(예, ‘에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는 현장감을 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기록 시기는 67-68년으로 봅니다.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도표참조) 64년 7월 18일에 로마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이 네로황제가 이 일을 벌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방화를 했다’며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대대적인 박해를 합니다. 65년 베드로 순교, 67년 바울 순교, 교회의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잡아 고문하고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게 하고, 기둥에 묶어 밤에 불을 붙여 거리의 등불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기독교인들에게는 엄청난 신앙의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성도들이 오해받고, 죄인 취급당하고, 붙들려 죽임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대체 지금 뭐하고 계시는가? 왜 안 도와주신단 말인가?” 회의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복음 안에 거할 것인가? 아니면 고난을 회피하기 위해 복음을 버릴 것인가?” 마가는 고난받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 알게 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의 요절은 10장 45절 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장1절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요절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가르켜 ‘인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은 그가 누구인가(Who)를 말해줍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본체로서, 그 분의 존재와 권위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면 ‘인자(the Son of Man)’는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서 무엇을(what)을 하셨는가를 말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구성은 ‘1-10장 일하시는 종, 11-15장 고난받는 종, 16장 승리의 종’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첫 일성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새 봄학기를 시작한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고, 이 말씀대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원문에는 제일 먼저 ‘시작이라’(in the beginning)로 시작합니다. 저자 마가가 감격스럽게 ‘시작이라’ 선포합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태초에 (in the beginning)’로 시작되는 말씀과 똑 같습니다. 천지창조에 참여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재창조 역사를 시작하신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함으로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인류역사상 가장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뱀의 머리를 여자의 후손이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후손이 이제 등장하였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불행으로 빠뜨렸던 죄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제 인류의 비극이 종식되고 새 창조 역사가 시작되었다” 선포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입니다. 저자 누가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로마제국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왕이 탄생하거나 왕으로 등극할 때 쓰여졌습니다. B.C.9년 경에 쓰여진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달력 비문에 이런 글귀가 써 있습니다. “신의 탄생일은 그를 위하여 세상에 선포된 기쁜 소식이었다”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저자 마가가 말하고자 하는 유앙겔리온, 즉 복음의 본질적인 내용은 세상을 향하여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것이 역사적 사건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역사를 기록할 때 느부갓네살왕 제 7년, 네로왕 통치 10년, 이런 식으로 왕이 등극한 날을 기준 삼아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인류 역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재편이 됩니다. 역사를 영어로 무엇이라 합니까? History (his + story)라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이 시작됨으로 인류의 역사가 세상 왕이 기준이던 데에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더불어서 어떤 상황이 펼쳐집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새로운 왕이 오셨다. 새 시대가 열렸다’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면 기쁜 소식일까요? 그를 왕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여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하면,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옛날 방식 그대로 살겠다. 내가 왜 예수의 통치를 받느냐? 차라리 마귀의 통치를 받겠다’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그들에게 복음이 아닙니다. 임박한 심판입니다. 그들의 머리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요3:36)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 왕, 사탄의 통치가 힘을 잃고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시작됐네~’ 노래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왕이 오면 기존의 왕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단 마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의 시작’은 또한 치열한 영적 싸움이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8절은 세례 요한의 활동과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 내용입니다. 특별히 세례 요한의 등장은 구약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예언한 대로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온 것이 아니라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따라 오셨음을 알려줍니다. 세례요한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촉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4절). 요한이 선택한 도구는 세례였습니다. 세례는 대개 이방 종교를 믿다가 개종한 사람들이 우상을 섬겼던 과거의 잘못을 정결케 씻는다는 표시로 행하였던 의식입니다. 요한은 유대인들까지도 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의 후손이지만 그것으로 참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UBF목자이니~ 당연히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UBF 2세와 같습니다. “너희도 회개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어~” 이런 말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새로운 왕, 하나님 나라의 왕을 맞이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여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돕습니다.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는 굽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당시 히브리 노예가 주인의 신발을 벗기는 일은 가장 하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나를 예수님과 비교한다면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신분이야” 그만큼 예수님이 지극히 존귀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셔~”라고 증거합니다.
세례요한의 인생 마지막은 어떻게 됩니까? 14절을 보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다가 붙잡힙니다.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좋은 소식을 최초로 선포한 승리자입니다.
9-11절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니 회개를 하거나 정결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회개의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즉 침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물속에 잠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속에서 나와 하나님 중심의 새 인생을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죄악된 우리와 동일시 합니다. 우리와 연합하여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순종하여 요한의 세례를 받습니다. 이 예수님을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하였고, 세례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19)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새 이스라엘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에 대한 참된 순종을 완벽하게 구현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늘에서 응답이 왔습니다. 첫 번째로,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알려줍니다. 두 번째로,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무슨 성령이 필요하시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실 때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포기하시고 제한하셨습니다. 그 분은 참 하나님이시지만 그 영광을 내려놓고 참 인간,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세포 속에 오셔서 잉태되고 세포분열하여 자라고 갓난아기로 태어나 부모의 돌봄 가운데 음식을 먹고 성장하여 성인이 되셨습니다. 죄는 없으시지만 우리와 똑같이 성장 과정을 거쳤고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였습니다. 참 인간 예수님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령이 임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여 사명을 감당하십니다. 세 번째로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유일한 자기 아들인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연합하여 세례받으신 예수님께서 새 이스라엘의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이스라엘의 백성인 우리에게도 동일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려줍니다. 세례, 즉 회개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성령은 어디로 데리고 갑니까? 12,13절입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우리가 보통 회개하고 거듭나고 성령을 받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길 기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영적 전쟁터로 내몹니다.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한마디로 ‘살기 힘든 곳’입니다. ‘유혹’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드러나기 쉬운 곳입니다. 광야로 간 예수님에게 4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옛날 첫 사람 아담이 사탄에게 받았던 그와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습니다. 들짐승이 함께 했습니다. 이는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을 의탁하셨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을 수종들었습니다. 천사들이 양식과 물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였음을 알려줍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면 그때부터 세상은 광야가 됩니다. 예수 믿으면 꽃길 갈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은 광야같은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들짐승과 같이 우리를 해하려는 악한 사람들 속에 둡니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시험 당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한 감당할 힘을 주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천사들이 돕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연단이 됩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복을 받습니다. 사명자로 빚어집니다.
14절,15절을 읽겠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리스도께서 이제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그 때를 언제로 잡으셨나요? ‘요한이 잡힌 후’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잡히신 때를 공생애의 D-day로 잡으셨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사역이 주님의 사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명이 완수된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항상 때를 따라 일하십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야 할 때 씨를 뿌리지 않는다거나, 추수해야 때 추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중국 고서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 붕어를 발견했습니다. 붕어는 얕은 물에서 파닥이면서 애처롭게 “제발 빨리 물을 부어서 저를 살려주세요”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붕어를 보면서 “나는 지금 먼 지방으로 유세하러 떠나고 있는데, 그곳에 있는 양쯔강의 물을 떠 가지고 와서 너를 살려주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붕어가 쏘아붙이며 말하죠. “에이~ 그때는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나 찾으시오.”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15절에서 주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십니다. 다른 것은 좀 때를 놓칠수도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제대로 못해서 이번 학기에 학점이 부족하면 다음 학기에 더 수강신청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때를 놓쳐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나에게 주신 구원의 기회를 꼭 붙들어야겠습니다.
총선이 4월 10일에 있죠. 지금 국회의원을 공천하면서 시끌 시끌합니다.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날,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각 당 대표가 처음 하는 말을 아마 톱 뉴스로 다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그 중에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제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 ‘회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그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분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와 믿음은 표현은 두 가지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입니다. 찰스 스펄전목사님이 ‘회개는 믿음과 불가분의 동반자’라고 하였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고, 또한 믿음없는 회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회개는 동시에 발생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선포는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입니다. 이후에 기록된 마가복음의 내용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제적으로 구현하신 그런 내용들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이 떠나가고, 나병환자가 깨끗하여지고,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고, 손 마른 자가 낫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눈 먼 자가 보게 됩니다. 심지어 죄 사함이 선포됩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사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복음은 도전입니다. 마가는 이 글을 듣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갖으라’ 도전합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긴박함이 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에서 ‘곧’이란 접속사를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복음에 우리의 생사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꼭 붙잡도록 촉구합니다. 또한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복음은 모욕과 소란없이는 참으로 전파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복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다면 ‘내가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고 있구나’, ‘사명자로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해야겠습니다. 결론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이 나라를 소유하고 날마다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길 기도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믿음으로 증거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