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종로 UBF 가을수양회 1강 오라, 여호와께 즐거이 외치자
말씀/ 시편 95:1-11 요절/ 시편 9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고 형형색색의 옷을 한껏 차려입은 나무들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인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시와 노래와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여기저기서 풍경을 즐기기 위한 축제가 열리고 우리를 오라고 초대합니다. 여러분은 최근 이런 축제에 초대받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 말씀에서 시편 기자는 우리를 축제와 같은 예배로 초대합니다. 그는 본문에서 예배의 자세와 그 이유 그리고 축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번 수양회 주제가 예배입니다. 예배에 대한 자세는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관계성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저자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왜 그를 예배하는지를 말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저희 모두가 참된 예배의 길로 나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여호와께 즐거이 외치자 (1-7b절)
다 같이 1절을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본문은 “오라”는 초대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시 6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께 무릎을 꿇자‘고 우리를 다시 한번 예배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어떤 초대를 받을 때 응하고 싶습니까? “오라”고 할 때 기쁜 초대도 있고 부담스러운 초대도 있고 마지못해 가야하는 초대도 있습니다. 또한 초대하는 사람의 태도나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나의 반응이 다르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는 기쁨과 감사와 주님의 은혜로 가득하여 “오라”고 반복하여 초대합니다. 그의 초대에는 “노래”, “외침”, “감사”, “경배”, “무릎을 끓자”, “그의 음성을 듣자”, “안식”등의 구절들이 나옵니다. 특히 노래를 2번 반복하며 즐거이 외치자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즐거이 외치고 너무나 감사하여 시를 지어 외치고 싶었습니다.
말씀을 읽었을 때 두 예배 장면이 떠 오릅니다. 하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온 회중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커스예배입니다. 다른 또 하나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드럼 소리에 맞춰 춤과 찬양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의 삶은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 자라는 잡초처럼 고단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1시간 남짓 춤과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고백하면 영혼이 회복됩니다. 어렵지만 예배를 드릴 때 영혼이 소생되고 평안을 얻으며 힘을 얻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기자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구원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1절 하반절 ’우리‘부터 읽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여러분은 반석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 오릅니까? 김반석, 이반석, 박반석, 반석치과’가 떠오르십니까? 반석하면 버티고 있는 요지부동의 큰 바위가 연상되십니까? 반석은 폭풍속에서도 요동치 않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인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크게 흔들리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시편 62:1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백성을 어떤 비바람과 폭풍속에서도 변함없이 구원하십니다. 다윗에게는 수많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사울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그에게 창을 던지고, 그를 추격하여 죽이고자 동굴까지 추격해 올 때, 그 외에도 수많은 전쟁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할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저라면 이 가운데 하나면 겪어도 트라우마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때마다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앞에, 그의 옆에, 그의 뒤에 계셨습니다. 그는 위기가운데서도 항상 안전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사무엘하 22:47절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우리 인생 광야에서도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환난이 찾아옵니다. 관계에서의 갈등, 크고 작은 질병, 학업과 취업 실패로 인한 좌절, 경제적 궁핍, 실직등은 우리를 염려와 두려움 공포로 빠트립니다. 이때 우리는 요동하며 흔들리며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위험가운데에서도 구원하시는 견고한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부터 5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오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을 만드셨습니다. 산들을 만드셨습니다. 바다와 육지도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모든 유무형의 생물과 무생물, 높은 산과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 그리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땅속 깊은 곳,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친히 그 백성을 돌보시며 인도하십니다. 양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양은 연약하여 잘 넘어집니다. 어리석어서 독초와 푸른 초장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무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와 함께 있으면 안전합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되며 보호받습니다. 양이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할때도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함과 돌봄을 받은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사울의 추적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에 보호해 주셨습니다. 밧세바와의 간음의 독초를 먹었을 때 독을 토해내도록 나담선지자를 보내셔서 도우셨습니다.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을 수많은 시로 수금으로 춤으로 찬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도 40년간 광야에서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발이 부르트지 않게 섬세하게 돌봐주셨습니다. 마침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지금도 목자로서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제 2장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7b~11절)
지금까지 시인은 구원의 반석, 크신 왕,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 하나님을 노래하고 굽혀 경배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의 음성을 듣자고 합니다. 7절 하반절과 8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너희가부터 읽겠습니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오늘 이시간 들려 주시는 음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돌아보면 때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귀기울여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듣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참다운 안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40년을 통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원인에 주목합니다. 므리바와 맛사 사건은 출애굽기 17장과 민수기 20장에 두 차례 나옵니다. 출애굽기 17장 사건은 출애굽 후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발생했습니다. 그들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갈증으로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가 순종하여 반석을 쳤을 때 물이 나와 백성들은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민수기 20장은 출애굽한지 40년째 되던 해 곧 가나안 입성을 바로 앞에 둔 시점에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광야의 가데스에 도착했습니다. 물이 없었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신앙 생활을 40년정도 했으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갔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악한 말을 하고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변함없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 갈증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초신자때나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 때나 결핍의 상황이 발생하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했습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 때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의 기적을 가장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하나님은 40년 광야훈련 기간 내내 변하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근심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귀가 막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굳어져 순종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들려 주시고 보여주시는 것들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하여 맹세하신 말씀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였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염두해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왜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정으로 주시기 원하셨던 것은 안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귀기울여 들었다면 하나님의 길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귀기울여 들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오늘 바로 이시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주 주일예배에 오실 때에 그 시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시나요? 우리는 예배를 드려도 형식적으로 율법적으로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크리스찬이니까, 2세이니까, 목자이니까, 주일이니까 와서 형식에 따라 말씀을 읽고 찬양을 부르고 하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듣는 시간에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문자에 답하거나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만 가득하여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는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릴 때에 그 시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하나님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십니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할 때 이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며 경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매주 그 시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듣고 하나님의 길을 깨달으므로 참되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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