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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년 가을 수양회 주제 2강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마태복음 12:1~8)2024-11-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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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종로 UBF 가을수양회 2강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말씀 / 마태복음 12:1~8

요절 : 마태복음 12:8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참된 예배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안식일”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쉬는날? 우리 강야곱 교수님은 “안식년”이 생각나실 것 같습니다. 맞나요? “안식”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는 아닙니다. 그래서 좀 생소할 수 있는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의 사전적 의미는 “그친다” 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6일에 걸쳐 세상을 창조하셨던 일을 마치고, 제 7일에는 안식하셨다” 하는데서 유래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이 이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특별한 날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고대에서는, 쉼은 신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인간을 안식으로 초대하시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럴 정도로 인간은 안식이 필요한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안식일의 의미를 알고 참된 안식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PART 1 - 성전보다 크신 예수님 


1절을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어느 안식일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밀밭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오기 전에 음식을 준비해 놓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전날 일정이 바빴는지,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섬김던 여인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날 때, 밀은 누렇게 익어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때다!” 싶어 밀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껍질을 “후~” 하고 날리며 한움큼 밀낱알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그런데 몇번 채 씹기도 전에 어디선가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남의 집 밀이삭을 훔쳐 먹은 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그후의 여러 규정을 준수하고 해석하는데 매우 엄격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안식일을 잘 지키고자 구전으로 내려오던 39개의 안식일 금지조항까지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 39개의 금지 조항 중 안식일에는 추수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곧 제자들이 손을 뻗어 밀이삭을 훑은것은 추수에 해당하는 노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대해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3, 4절을 보십시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은 성경 지식이 해박한 바리새인들에게 조상 다윗이 시장할 때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고 되묻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다윗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조상 중 한 사람입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여 자녀의 이름을 다윗이라 짓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데이빗이죠. 우리 종로2부에도 송다윗 목자님과 정다윗 목자님이 계십니다. 그 이름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아들 이름을 송다윗, 정다윗이라 각각 지으셨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다윗은 왕궁에서 경황 없이 도망나오느라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다윗은 도망하던 중 3일 거리인 놉 땅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찾아왔습니다. 이때 다윗을 맞이 한 사람은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인하여 당황했지만 그가 굶주린 것을 알고,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수중에는 일반 음식은 없었고, 하나님의 전에 올렸던 진설병, 즉 거룩한 떡만 있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에서 제사장이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율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굶주린 다윗에게 자기와 가족이 먹을 떡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그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굶주린 자에게 자비를 베풀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언급하시며, “봐라 다윗이 굶주린 때 성전에 와서 율법을 어기고 제사장 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받아 먹었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너 성경공부 한거 맞니?” 하시는 겁니다. 만일 다윗을 도왔던 제사장이 예수님 일행 앞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먹을게 없어 밀이삭을 잘라 먹는 예수님 일행에게 다가가 “안식일에 그런거 드시지 마시고, 저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 하시죠” 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한 가지 사례를 더 말씀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율법에서는 제사장에게 안식일에도 일하도록 했습니다. 제사장은 안식일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백성 간에 중보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안식일법도 중요하지만 제사장은 그보다 더 큰 법인 성전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성전의 크기보다 몸집이 더 크다는 뜻일까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전의 기능을 완성하셨다는 뜻 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참 성전이 되어 주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건물로서의 성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분이십니다.



PART2 -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는 예수님


  7절을 읽겠습니다.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의 마음보다 율법 조문 자체에 지나치게 메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십니다. 자비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을 언급하신 이유도 제사장 아히멜렉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이었지만 그보다도 배고픈 다윗을 더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그가 최근 부정한 일을 행한 적이 없었는지 확인한 후 과감하게 진설병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기 위해 많은 금지조항을 만들어놓고 철저하게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기특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자비를 더 원하십니다. 오늘날도 기독교 보수적인 교회들은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여러가지 금지조항을 만들어 놓고 성도들을 교육하는 곳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은 어렸을 때, 주일에 집에 놀러온 이모가 짜장면을 시켜먹던 중 한입 얻어 먹었는데, 어머니에게 주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며 혼쭐나게 맞았다고 합니다. 안식일 규정 뿐 아니라, 모든 신앙 생활의 규례에 있어서 근본정신은 자비 곧 사랑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규정 자체에 매이기 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덧입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PART3 -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8절을 읽겠습니다.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갑자기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성전법이 안식일보다 크고, 예수님이 성전보다 크신 분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자 곧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 안식일을 제정하신 장본인 곧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서 안식을 논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입니다. 제자들은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추수했네 안했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과 함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신경쓰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안식일의 주인과 함께 하는가 입니다. 생일 잔치를 하는데 주인공이 없이 생일잔치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안식일인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를 습관적으로 참석하기 쉽습니다. 예배에 빠지면 목자님이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예배 후에 친구들과의 교제가 좋아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예배는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하는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안식일을 완성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참된 안식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일주일의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고, 그 날 만큼은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쉬도록 정하셨습니다. 물론 하던 일을 멈추고 하루 푹 쉬는 것도 어느정도 안식이 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는 참다운 안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죄가 시키는대로 끌려다니고 시달리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식일에 일은 쉴 수 있지만 사단은 쉬지 않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일생 죄에 시달리다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안식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더 이상 경쟁에 치여 살 필요도 없고, 죄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마치 죽은 사람의 평온해 보이는 얼굴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곳에는 죽음도 없습니다. 영원히 고통을 맛보며 영원히 쉬지 못하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예수님께서 안식의 참된 의미를 완성하셨습니다. 어떻게 완성하셨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죽음이 없는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참된 안식은 바로 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골로세서 2장 16,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맛보고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한 주 동안 예수님의 안식을 누리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를 드리는 그 날 하루 만큼은 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했음에도 예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마음에 쉼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밥만 먹고 집에 돌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할 때 안식을 완성하신 분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안식을 빼앗아가는 죄짐을 모두 다 예수님 앞에 내려 놓고 죄 사함의 은혜와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일주일의 하루 곧 안식일 만큼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번 물질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라고 말라기서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의 하루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월,화,수,목,금,토는 우리 것입니다. 그 날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 곧 안식일만큼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치신 후 최초로 안식일을 만드실 때부터 정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절 상반부를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거룩’은 구별되다는 의미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또한 하나님이 복되게 하신 복된 날입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습관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주시고 그 날을 특별히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지켜야 하겠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곧 안식일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일주일에 하루 만큼은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 안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