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종로새봄맞이 수양회 주제2강 `대여섯 번을 치는 믿음`
대여섯 번을 치는 믿음
말씀 / 열왕기하 13:1~25
요절 / 열왕기하 13: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제가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봄맞이 수양회를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저희 안에 말씀의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제가 말씀을 전하고자 할
때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본문의 의미와 은혜를 잘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한 마디 말이 큰 무게를 갖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 직후에 국민들에게
보냈던 메시지입니다. 처음 전쟁이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를 예상했습니다. 우방인 미국조차 그에게 피신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 한복판에서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고 나라와 독립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찍어 공개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러시아와 싸울 용기를 주었고,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말이 이토록 큰 힘이 있다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큰 힘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저희가
말씀을 잘 듣고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 본문의 배경은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하던 시기의 북이스라엘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예후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합 왕가를 심판하기 위해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람과 이세벨을 포함한 아합 가문의 자손들을 처단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에 바알 우상과 신당을 헐고 바알 숭배자들을 처단하여 이스라엘을 개혁할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예후 역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 아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예후 왕이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은
아람의 침략을 받고 요단 동편 성읍들을 대부분 빼앗겼습니다. 그 후에도 북이스라엘은 아람의 침략에 계속
시달렸습니다.
열왕기하 13장은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예후가 죽고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성경은 여호아하스가 아버지인 예후와 같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갔다고
말합니다.
여로보암의 죄란 무엇입니까?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절기를 지내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을 여호와라 부르며 섬기게 했습니다. 레위인 대신 일반인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율법에서 정한 초막절 날짜를 멋대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이용한 것이 바로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우상숭배이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악하게 보십니다. 여로보암 이후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이 우상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여호아하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구절은 그가 우상숭배의 죄와 적극적으로 싸우거나 돌이키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가 하던 대로 따라갔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아람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3절에 '늘'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북이스라엘은 아람의 침략을 받고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왕이 된 뒤에도 침략은 계속됐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아람의 침략을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구원자는 앗수르 왕 아닷니라리 3세라고 합니다. 앗수르가 북쪽에서 아람을 공격하자 아람 군대는 앗수르와 싸우기 위해 철수했고 이스라엘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고통받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원받은 뒤에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마리아에 있는 아세라 목상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서도 전혀
회개할 뜻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아람의 침략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이스라엘 군대는 완전히 격파되어 기병 오십 기, 전차 열
대, 보병 만 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 시대에
이스라엘 군대가 80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80분의 1로 쪼그라든 셈입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았지만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10절입니다.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인 요아스가 북이스라엘 왕이 됐습니다. 왕은 바뀌었지만 이스라엘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요아스
역시 아버지 여호아하스의 죄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아버지가 하나님께 심판받는 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요아스를 볼 때, 이스라엘은
전혀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요아스 시대에 있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14절입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약 60년
동안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사역하며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민족의 침략을 받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몇
번이나 구원했습니다. 선지자 학교를 세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후를 왕으로 세워 아합 왕조를 심판하게 했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서 열방에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엘리사는 우상숭배로 타락한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지자요
목자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마지막 등불이 꺼져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체면도 잊고 눈물을 쏟으며 엘리사의 죽음을 애통해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요아스는 엘리사를
병거와 마병처럼 크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람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이 때에, 엘리사마저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슬퍼하는 요아스를 돕고자 했습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또 무엇을 말합니까?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선지자는 왕에게 활을 잡으라고 한 뒤,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왕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왕의 손을 잡아주고 안수함으로
자신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권능이 요아스 왕에게 전해지기 원했습니다.
1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당시 북이스라엘의 동쪽 영토는 아람 군대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아람을 향해 활을 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셨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 왕이 아벡에서 아람 군대를 멸절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아스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아람 군대 앞에서 크게 위축됐습니다. 남은 기병
오십 기, 전차 열 대, 보병 만 명으로는 아람을 물리치기는커녕
남은 영토를 보존하기도 벅찼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두려워하는 요아스가 활과 화살을 잡고 아람을 향해
쏘게 함으로 그에게 도전정신과 믿음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요아스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직접 아람과
싸워 승리한다면,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믿음의 사람이요 지도자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엘리사 선지자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선지자가 죽고 없어도 요아스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18절입니다. '하는지라'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엘리사 선지자가 이번에는
요아스 왕에게 화살들을 손에 잡고 그것으로 땅을 치라고 명합니다. 화살들로 땅을 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화살은 하나님께서 아람에 대한 승리를 약속하신 증표입니다. 그 화살로 땅을 치는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 왕이 화살을 잡고 땅을 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아스
왕은 세 번만 치고 멈췄습니다. 그는 화살로 땅을 치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분명하게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화살로 땅을 치라니까 치기는 치는데 왜 이런 걸 시키는
거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런 태도로 세
번만 치고 엘리사를 쳐다봤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본 엘리사 선지자가 요아스 왕에게 크게 화를 냈습니다. 19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라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요아스가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으니 대적 아람을 반드시 진멸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땅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만 치고 멈춘 요아스 왕의 믿음없는 태도는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아람과의 전쟁에서 세 번의 승리를 주실 것이지만,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는 없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에 믿음으로 뜨겁게 반응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갈렙 장군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험준한 헤브론 산지에 올라가 싸움으로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영접하고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확실하면 그 믿음에 합당한 반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아스가 당신의 약속을 믿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시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마다 구원의 때와 방식은 다를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저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대신 지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사흘 만에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약속을 받은 자로서 믿음을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보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믿음의 삶을 살고자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모든 자리가 하나님께 믿음을 보이는 자리입니다.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믿음을 새롭게 하여 세상에서 믿는 자로 살고자 결단하는 이 자리가 믿음의 자리입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은 출근길에 직장동료들을 위해 기도하고, 옆 자리에 있는 바쁜 동료를 위해 작은 도움을 베풀
수 있습니다. 사모님들은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과 자녀 양육으로 피곤한 와중에도, 자기 전에 아이들을 안고 기도해줄 수 있습니다.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같이 교제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아직 믿음이 없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줄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저희가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코로나가 진정되고 새 학기를 앞둔 지금, 캠퍼스를 생각하면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학생들 중에 성경공부에 관심있는 사람이 있을까?" "시간내서 가봤자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저씨 아줌마라고 무시하면 어쩌지?" 캠퍼스에 가도 좀처럼 양을 얻기
힘든 현실을 생각할 때 힘이 빠지고 의욕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캠퍼스에 올라가는 목적이
양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가 캠퍼스 영혼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추운 날씨에 캠퍼스에 가고, 학생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동아리방에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어제 우리는 김승원 목자님의 특강을 통해서 예전에 떠났던 사람이 받았던 말씀과 은혜를 기억하고 돌아오는 역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드리는 믿음의 행동을 통해서 일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고, 혼자 겉도는 것 같아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우니 혼자 집과 학교를 오가며 책만 끼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목자님을
만나고 모임에 나오게 됐습니다. 선배 목자님들의 진솔한 소감을 들으며
"아, 나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자기 문제를 갖고 있구나"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던 목자님들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자기 문제를 해석하고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소감을 쓰면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벅찰 만큼 은혜로 충만했고, 어떤 때는 말씀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찌질한
모습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하고 간신히 자리만 지키는 신앙생활을 하던 제게, 하나님은 때마다 합당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과 갈등하던 어느날
이사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말씀으로 겸손을 가르치셨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시편 118편 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습니다. 제대 후에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사무엘상 3:9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팬데믹으로 3년 가까이 신앙생활이 멈춰있던 때, 하나님께서는 조건없는 사랑, 변함없는 약속을 가르치셔서 복음이 주는 참 자유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징검다리처럼 제 길을 인도하시고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기자 문제를 똑똑히 보고 하나씩 감당할 힘을 얻게 됐습니다. 제게는 올해 97세 되신 할머니를 돌봐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보지도, 듣지도, 걷지도
못하시는데다 잠도 못자고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십니다. 사는게 너무 고통스럽다며 식사를 거부하고 죽겠다고
하시는 할머니를 볼 때, 안타깝고 슬픈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손을 잡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할머니께 마지막 시간을 허락하신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를 뵐 때마다 잘 듣지 못하시는 할머니 귀에 대고 "할머니! 예수님 믿고 천국에 가셔야죠! 거기서 먼저 간 가족들 만나셔야죠!"하고 큰 소리로 복음을 전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마음에
맺힌 것들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할머니의 영혼을 구원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제게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제가 그 약속을 받은 자로서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기 원하심을 배웠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땅을 대여섯 번을 치는 믿음과 열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만 짓는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울고 있는 요아스에게 아람을 향해 화살을
쏘라 하심으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요아스가 화살을 잡고 땅을 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죄와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우리 삶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있는 캠퍼스와 직장, 가정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저희가 그 뜻을 생각하고 범사에 믿음으로 행하여 힘차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봄 학기에 캠퍼스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대여섯 번을 치는 열정으로 복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봄맞이 수양회를 통해 열왕기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승리의 약속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기억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적지만 믿음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큰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새 학기 캠퍼스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이 살아나는 구원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