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창세기 25강 구원역사에 요셉을 쓰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42:1-45:28 요절 창세기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형들을 만나고 그들을 테스트한 후에 자신을 밝힌 내용입니다. 요셉의 말속에는 섭리신앙과 함께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시간 그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위해 살므로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열한 형제들에게 흉년이 되어 양식이 떨어지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굶어 죽게 되었는 데 서로 바라만 보고 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애굽에 곡식이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항상 어려울 때 뭐라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나이가 129세가 되어 움직이긴 어렵습니다. 대신에 그의 아들들은 20대 중반인 베냐민을 빼면 39세 1명 그리고 모두 40대였습니다. 30,40대 장년들이 공동체가 멸절하게 되었는데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죄입니다. 이에 베냐민을 뺀 요셉의 열 형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베냐민을 뺀 이유는 야곱이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는 사람들중에 줄을 서 있다가 애굽의 총리앞에 이르렀습니다. 요셉은 총리로서 직접 곡식 파는 일을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총리가 직접 나서서 재난콘트롤 타워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보고 형들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무려 22년 만에 형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들 앞에 엎드린 것을 보고 22년 전에 꾸었던 꿈을 생각했습니다(6,9a). 정말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30대 후반에 이루기위해 그동안 얼마나 연단하고 훈련하셨는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밝히지 않고 어떻게 했습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추상같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9b)” 그들을 정탐꾼들로 몰기 시작했습니다. 형들은 이 왠 날벼락인가 싶었을 것입니다. 먼 이방 땅에 와서 정탐꾼으로 몰리다니, 당시에 정탐꾼이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해명을 받아주지 않고 정탐꾼으로 계속 몰아갔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베냐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 이어 베냐민마저 해치지 않았는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12 형제로서 가나안 땅의 한 사람의 같은 아들들이고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있고 한 아들은 없어졌다고 소상히 말함으로 자신들의 진실함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막내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모든 형제는 갇혀있고 한 사람이 가서 막내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범적으로 모든 형제들을 3일 동안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형들은 사태가 심각함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3일후 요셉은 가나안 땅의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9명은 곡식을 가지고 가고 한 사람은 남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22년 전에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악행을 떠올리며 이런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고 한탄했습니다. 요셉은 22년의 전의 사건이 기억이 났는지, 형들이 불쌍해서인지 그들을 떠나가서 실컷 울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시므온을 매몰차게 결박하고 나머지 형들은 가나안 땅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보내면서 받았던 돈을 다 자루 속에 몰래 넣어주고 길 양식까지 덤으로 주었습니다. 형들은 곡식을 싣고 가다가 여관에 머물게 되었는데 한 사람이 자루를 풀어 보니 곡식 살 때 준 돈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깜짝 놀라 다른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왜 이런 일이 벌어 졌는지 두려워 떨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곤란한 일들을 허락하시는 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가나안 땅에 올라온 형들은 아버지에게 애굽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보고했습니다. 특히 시므온이 억류된 것과 막내아우를 데리고 가야 곡식거래를 할 수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각 사람의 자루를 쏟아보니 거기에 곡식구입대금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곱과 형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야곱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한탄하며 자식들에게 요셉도 잃고 시므온도 잃고 베냐민까지 잃게 하냐고 그들을 탓했습니다. 그러자 르우벤은 야곱을 안심시키고 설득합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서 만약 다시 데리고 오지 못한다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말을 귓등으로 듣고 베냐민을 절대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셉도 잃은 마당에 베냐민까지 잃는 다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기근이 더욱 심해졌고 애굽에서 사온 곡식도 다 먹었습니다. 그러자 야곱도 어쩔 수가 없어 아들들에게 양식을 좀 더 사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다가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설득의 요지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왜 다른 아우가 있다고 해서 이런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했는지 아들들을 원망했습니다. 형들은 그 사람이 자세히 물어서 대답했을 뿐, 막내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이에 유다가 다시 나서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하며 그래야 열한 형제와 아버지와 손자들이 다 살수 있다고 재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담보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만약 베냐민을 다시 데려오지 못하면 자신이 영원히 죄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르우벤의 말은 아주 자극적이고 도발적이었습니다. 반면 유다의 말은 르우벤의 말보다 담담하였고 막연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유다의 말을 신뢰하고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마도 유다의 말이 르우벤의 말보다 신뢰성 있고 무게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면서 지역 특산물들을 총리에 대한 예물로 챙겨줍니다. 그리고 갑절의 돈을 주어 지난번 자루에 있었던 돈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시므온과 베냐민을 돌려보내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잃게 되면 잃을 것을 각오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의 열한 형제들이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15). 요셉은 베냐민이 형제들과 함께 온 것을 보고 잔치를 벌이도록 했습니다. 청지기가 형제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자 형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지난번에 곡식자루에 든 돈뭉치 때문에 자신들을 특별히 취조할 것으로 알고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말하니 청지기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곡식대금은 이미 받았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도 석방하고 그들에게 발 씻을 물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이를 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형들은 예물을 정돈하며 요셉을 기다렸다가 요셉이 오자 예물을 드리며 엎드려 절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안부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요셉은 베냐민을 보며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베냐민은 같은 엄마배속에서 나온 형제였습니다. 베냐민은 어머니가 그를 낳다가 죽은 동생이었고 그는 어머니 얼굴도 모른 체 자란 불쌍한 동생이었습니다. 게다가 형마저 잃고 자라왔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축복하는 말을 했습니다.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그는 목이 메이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씻고 나와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도록 했습니다. 음식은 애굽 사람이 먹을 것과 히브리 사람이 먹을 것을 따로 차리도록 했습니다. 이는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겨 같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나이 순서에 따라 앉혔습니다. 즉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블론 순이었습니다. 이는 요셉이 하루도 형들을 잊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며 기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그런데 베냐민에게만 먹을 것을 5배나 준 이유는 뭘까요? 베냐민 앞에 먹을 것이 산처럼 수북이 쌓였습니다. 베냐민이 젊은이니까 많이 먹도록 배려한 것일 수도 있고 막내니까 특별한 사랑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형들이 베냐민이 많이 받은 것을 시기하는 지 테스트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옛날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형들은 베냐민이 많이 받은 것을 아무도 질투하지 않고 기뻐했습니다. 이를 통해 요셉은 형들이 예전과 달리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요셉은 형들을 테스트하는 사건을 만듭니다. 44장입니다. 요셉은 청지기를 통해 두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형제들의 자루속에 받은 돈을 다시 넣어 준 것입니다. 다음으로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 속에 몰래 집어넣게 했습니다. 형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잠을 잔 다음에 날이 밝자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베냐민도, 시므온도 다 데리고 대접도 잘 받고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어느 정도 갔을 때 요셉의 청지기가 급히 먼지를 날리며 따라와 말했습니다. “게, 섰거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청지기는 그들이 총리의 은잔을 훔쳐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그럴 리가 있겠냐고 부인했습니다. 만약에 그런 얼토당토한 일이 사실이라면 그 같은 짓을 한 놈은 죽어 마땅하며 모든 형제들이 함께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청지기는 은잔이 발견된 사람만 종이 되고 나머지는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순으로 자루를 풀어 조사해보니 막내 베냐민에게서 그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형들은 어이없는 일에 옷을 찢고 한탄하며 결국 짐을 싣고 다시 요셉의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보고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치는 줄을 몰랐느냐(15)” 하면서 그들을 겁박하며 야단쳤습니다. 요셉의 연기력이 쩝니다. 이에 유다가 형제들을 대표하여 어떻게 말했습니까? 유다의 말은 자신들이 정직하지만 변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신 것이라 했습니다(16). 아마도 유다는 이때 과거에 요셉을 판 죄와 여타 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그 죄에 합당한 댓가를 모두에게 치르게 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벌을 달게 받고자 형제들 모두가 은잔이 발견된 자와 함께 종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러지 말고 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되고 나머지들은 가나안 땅으로 편안히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유다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까? 총리님, 그게 합리적인 것 것 같습니다.” 라고 하고 아버지께 가서는 “최선을 다해 설득했지만 총리가 완강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베냐민, 참 그놈이 손버릇이 그렇게 나쁘고, 그런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라고 말했습니까? 44:30-33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올려 보내소서” 유다의 말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그는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요셉을 잃고 얼마나 힘들어했는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도 두 아이를 잃어 본 사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베냐민을 잃으면 죽을 것을 알고 어찌하든지 아버지를 살리고자 베냐민을 놓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둘째로, 그는 약속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는 과거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말을 절망가운데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약속을 돌처럼 무겁게 여기고 지키고자 했습니다. 셋째로, 유다는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베냐민의 죄를 지고 자신이 죄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베냐민을 자유케 하기위해서 자신이 억류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베냐민에 대해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유다는 행함이 있는 리더였습니다. 장자인 르우벤을 바라보고 그의 옆구리를 찌르거나 다른 형제들에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동체의 리더로서 자신이 희생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유다는 우리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메시야 약속을 지켰으며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요셉은 유다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 그리고 책임 있는 태도, 동생을 위한 희생적인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그는 변화된 형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정말 하나님 백성의 조상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감동과 형제애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다음에 형제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이것이 궁중에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가까이 와서 자신이 요셉임을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5-8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의 말은 우선 놀란 형들을 안심시킨 내용입니다. 그들이 22년 전에 행했던 악행 때문에 이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요셉에게 징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거나 과거에 대해 한탄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디테일하게 보면 형들이 팔아서 요셉이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보면 하나님이 그들의 악도 쓰셔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통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지위와 권력으로 형제들의 생명을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작은 그림만 보면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큰 그림을 보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면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아직 사람이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은 퍼즐하나에 갇혀 있고 퍼즐 하나에 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열 두 조상들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하면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과 지위와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을 보존하고 번성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속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육신적인 생명을 구원하고 애굽의 토지제도를 만든 것보다 이스라엘 족속을 살린 것에 포인트를 두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창 12:2, 출19:5,6)입니다. 이 민족을 통해 온 세상을 영적으로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가운데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성령충만한 요셉은 하나님의 뜻과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였고 열두 조상들의 중요성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인생목적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존해 주시고 그들을 통해 다시 믿음을 갖는 이들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새 이스라엘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남기신 것처럼 이스라엘 열두 조상을 보존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애굽에 보내졌습니다. 사람은 인생목적이 중요합니다. 인생목적은 내가 세상에 와서 이루고 가야 하는 삶의 목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했습니다(요 17:4). 우리의 인생목적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입니까?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 나의 잘남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혹은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 것입니까? 사람을 임의로 주관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까? 권력과 지위를 얻어 좋은 제도들을 만들어 세상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입니까? 인생목적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50대 중반에 조기 은퇴하여 미국 플로리다 해변의 은퇴자 타운에 살며 요트를 타고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모으는 것을 삶의 로망으로 여겼습니다. 그 은퇴자 타운은 시속 20km로 차가 달리게 합니다. 삶의 여유가 있는 마을입니다. 거기서 그는 요트를 타고 300만 개의 조개껍데기를 모아 조개껍데기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 까요? 하나님이 주신 인생목적이 없는 사람들은 껍데기 같은 것을 잔뜩 모으는 삶을 삽니다. 이런 삶은 껍데기 인생이며 알맹이를 놓친 삶입니다. 우리 삶의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땅에 창조질서를 인정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번성케 하는 것입니다. 외적 생명뿐 아니라 내면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다운 사람들이 되도록 훈련하며 돕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처럼 인생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설령 무명한 자 같으나 하나님께는 유명하고 가진 것이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삶(고후 6:10)을 살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구체적으로 평생에 12 제자를 세우고 보존하는 일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요셉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훈련을 잘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