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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년 성탄 3강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세' (마태복음 2:1-12)2017-12-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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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성탄 제 3 강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세


말씀 / 마태복음 2:1-12

요절 / 마태복음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2017년 구주 예수님의 성탄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오늘 성탄 예배를 통해 여러분과 저에게 구주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동방박사들처럼 아기로 오신 구주 예수님께 온 마음을 드려 엎드려 경배하기를 기도합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1)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유대 헤롯 왕 때였습니다. '헤롯'이라는 이름의 뜻은 '영웅의 아들'입니다. 영웅의 아들! 얼마나 멋진 이름입니까! 그의 부모님은 그가 난세에 백성들을 구원하는 영웅으로 살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는 왕이었지만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이는 그가 왕이 되기에는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이두매 출신으로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 곧 이스라엘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중의 하나로 여김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 황제에게 아부하여 유대 왕이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야심이 많은 그는 누가 자기를 제거할까봐 항상 불안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의 확실한 신임을 얻기 위해 거대한 인공 항구를 건설하여 황제의 이름을 따라 가이사랴로 명하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당대 건축물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왕위를 탐내는 자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한 것 같이 무자비하게 숙청하였습니다. 그의 첫째 아내가 나은 두 왕자와 둘째 아내와 그 아들까지도 죽였습니다. 나중에는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다 학살합니다. 


이런 포악한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살던 백성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지난 40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가장 살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먹기만 하면 영생하는 참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그때 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동방은 페르시아를 의미합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500Km 거리입니다. 박사들은 그 먼 거리를 낙타를 타고 여행하였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에서 제사를 드리는 성직자들이요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철학, 과학, 역사, 의학, 기하학, 천문학 등 거의 모든 학문에 통달한 당대 최고 지성인들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선비들은 사서삼경을 공부했는데 맨 나중에 공부하는 과목이 역경, 곧 주역이었습니다. 주역은 음양의 이치와 하늘의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대의 뜻을 살피는 학문입니다. 이와 같이 당시 페르시아에서도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높은 학문은 천문학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천문학을 통해 하늘의 별자리를 연구하고 시대를 분변하는 미래학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당대의 귀족이며 최고 지성인들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그 먼 거리를 여행하여 예루살렘까지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2) 그들은 자기 나라의 왕을 경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페르시아는 과거에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 살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인류의 구주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것이며 민수기 24:17에 의하면 한 특이한 별이 나타나 그의 탄생을 알릴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천문학을 연구하던 동방박사들은 이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던 중 이 놀라운 별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니, 저 별 좀 봐, 저게 바로 예언된 유대인의 왕의 별인 거 같아!" "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아니, 저 신비로운 별이 우리를 따라오라고 인도하고 있어요!" 그들은 즉시 짐을 꾸려 먼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지났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밤에는 추운 날씨, 강도의 위협과 맹수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계속하여 서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밝은 가로등 빛 때문에 더 이상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시민들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박사들이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카톡을 통해 예루살렘 전역에 퍼졌습니다.  


이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헤롯 왕이 소동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대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입니다. 그곳에서 유대인의 왕이 될 아기가 났다는 것은 다윗의 왕위를 잇는 정통성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이제 자기가 왕위에서 쫓겨날 일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동안 탄압했던 자들이 축출된 자기를 죽일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심히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왜 소동했을까요? 이는 그들이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머리로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을 세상에 다 도적맞고 세상일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삶이 고생스러웠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름대로의 쏠쏠한 재미와 낙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고 하니 뭔가 빨리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또한 헤롯 왕이 큰 정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헤롯 왕과 같이 자기들의 삶을 피곤하게 만들고 헌신과 경배를 강요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의 말을 듣고 즉시 무슨 일을 했습니까?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4)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즉시 대답합니다. "아, 그것은 아주 쉬운 퀴즈이군요.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는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미가서 5장2절에 이미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6) 


6절 말씀은 태어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잘 말씀해줍니다. 어떤 분이시죠? 그는 ‘한 다스리는 자’요 또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십니다. 다스리는 자는 왕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왕들은 어떻게 다스리나요? 헤롯 왕처럼 무력으로 다스립니다. 군사력과 공포심으로 다스립니다. 모택동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선한 왕들은 법으로 다스린다고 하지만 법 뒤에는 법을 강제하는 무력이 있습니다. 세상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무력으로 다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목자가 양들을 섬기듯이 섬김으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목자 왕(A Shepherd King)이십니다. 겸손히 낮아져 섬겨주십니다. 그의 백성을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사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십니다. 이 목자 왕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아무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문대통령께서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이 분도 몇 년 후면 야인이 됩니다. 세상 왕은 수시로 바뀝니다. 그 정권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왕권은 영원합니다. 날마다 그 통치권이 강해지며 그 나라가 무궁합니다. 


무엇보다 세상 왕은 우리의 외면을 다스리지만 목자 왕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을 다스려주십니다. 우리 마음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과 누리는 의로운 관계성 가운데 참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참 평안과 기쁨이 넘칠 때 외적으로 누가 다스리느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겸손히 낮아져 섬기심으로 우리를 다스려주시는 목자 왕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헤롯 왕을 자문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실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얼른 베들레헴으로 가야 되었습니다. 적어도 정말 그리스도가 나셨는지 확인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은 1,500Km 나 되는 길을 왔는데, 이들은 불과 8Km 밖에 안 되는 길도 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 머리에만 갖고 있는 지식은 실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을 알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우리가 말씀 공부를 많이 하되 행함이 없는 헤롯의 종교자문위원들 같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경 지식과 함께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헤롯 왕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언제 별이 나타났는지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이는 그 때를 알면 아이의 나이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가서 그 아기에게 경배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거짓으로 박사들을 속여 아기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9)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길을 인도하였습니다. 그 별은 아기가 있는 집 위에 섰습니다. 하늘에서 아기가 있는 집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여기서 이 별이 도대체 무슨 별이었는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북극성이다, 혜성(comet)이다, 운석이 떨어지는 별똥이다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에 있는 별이나 혜성이 이와 같이 지상의 한 집으로 박사들을 인도하고 그 위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별은 하나님이 특별히 박사들을 아기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하여 보내주신 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여러 종류의 별을 사용하여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119:105는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빛이 되십니다. 



또한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도 빛입니다. 그들은 수고로이 성경을 연구하고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다니엘서 12:3절은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우리가 성경말씀과 목자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을 잘 배우고, 또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별들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기가 있는 집을 찾은 박사들의 기쁨이 어떠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성경은 웬만하면 과장법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여기서는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KJV 영어성경에는 "they rejoiced with exceeding great joy"로 되어 있는데 성경 전체에서 가장 강조된 표현입니다. 


그동안 박사들의 삶에도 크고 작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대학 수시 합격통지서를 받을 때 기뻤습니다.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기뻤습니다. 사이언스 잡지에 최고의 논문을 발표하여 유명해졌을 때 기뻤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했을 때, 황제에게 초대되어 VIP 왕궁 뷔페를 즐길 때 기뻤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기쁨은 박사들이 지금까지 맛보았던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샘처럼 솟아나는 기쁨이었습니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체면을 생각하기 때문에 기쁨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EBF 어린 아이들과 같이 서로 얼싸안고 펄쩍 펄쩍 뛰며 씽스피레이션을 하였습니다. 감사의 댄스를 추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행의 모든 수고와 고난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여기서 그러한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를 안아보고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는 덕담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예물을 전달해 주고 아기를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집에서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습니다. 그냥 경배를 한 것이 아니라 아기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엎드려 절하며 경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경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내가 누구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나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한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보다 당신의 생각이 옳고, 나 자신보다 당신이 더 고귀한 분인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과 나에 대한 사랑을 다 내려놓고 그 분께 온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거대한 신상을 만듭니다.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그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도록 명령합니다.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 신상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풀무 불에 들어갈지언정 절하지 않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그 금 신상은 숨도 쉬지도 못하는 물건에 불과하다,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가장 귀한 존재로 삼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의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삶을 살았는가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무엇에 엎드려 절했습니까? 돈 앞에 엎드려 절하지는 않았습니까? 명예와 성공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습니까? 직장에서의 승진과 자녀들의 장래 문제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습니까? 나의 자존심과 자기 영광의 우상 앞에 엎드리지 않았습니까? 일시적인 쾌락과 즐거움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난 한해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며 섬기며 살았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우상 숭배의 죄를 용서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성어거스틴의 고백록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기까지는 결코 안식을 누리지 못하나이다." 그런데 그 앞에 나오는 말씀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위해 지으셨나이다." 우리 인생이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는 때는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때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들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그때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을 맞아 그 앞에 엎드려 절한 마음의 모든 우상을 내려놓고 오직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 우리의 왕, 우리의 참 하나님이신 아기 예수님 앞에 엎드리길 기도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소유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소유하는 참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성탄 때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2018년 참 기쁨이 없는 이 시대 가운데 하늘의 기쁨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예물은 아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말해줍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예물입니다. 황금의 특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왕, 영원불변의 왕이심을 알고 엎드려 황금을 드렸습니다. 


유향은 아라비아의 특산물로 이것을 태우면 매우 그윽한 향기가 나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각종 제사 때 사용했습니다(출30:8).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유향을 드린 것은 바로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분향하며 기도하는 대제사장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몰약을 드렸습니다. 당시 몰약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는 향품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 중에 몰약을 드린 것은 가장 신비스럽습니다. 누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시신에 바르는 몰약을 드린다는 말입니까? 


동방박사들은 세상을 깊이 연구하고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던 자들입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 자체의 역사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역사요, 살육의 역사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았을 때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죄문제 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본성 깊이 내재한, 죽음 외에는 해결할 길이 없는 그 엄정한 실체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구주가 오시는 길임을 알고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이를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체가 죽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죽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이 임했습니다. 이 죽음은 단지 육신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 처하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아담 이후 죄 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게 이러한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죄와 사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상에서 그 어떤 부귀영화와 권세와 쾌락을 누린다 해도, 박사가 되고 세상 최고의 현자가 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짧은 한 순간의 인생 뒤에 영원한 형벌이 있다면 그 무엇이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이 심각한 문제를 그 놀라운 지혜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는 바로 죄 없으신 그의 아들 예수님을 한 아기로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받으시고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누구든지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16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멸망에 이르지 않고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12) 동방박사들은 가장 귀한 보물을 드리고는 빈 손으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무엇인가를 얻어야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얻고자 합니다.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하면 손해 의식에 힘들어합니다.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면 주기만 한 동방박사들은 손해만 본 사람들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가장 큰 기쁨을 누린 자들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구주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경배함으로 참 기쁨을 누린 진정한 현자(wise men)들이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이 지속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제는 끊임없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결국 우리가 부딪치는 이슈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형벌이 주어질 것인가 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단지 미래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이 땅에서 허무와 절망을 모르는 능력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도전하며 하나님을 위한 생명의 열매를 맺어갑니다. 이 땅에서도 가장 기쁘고 행복한 생애를 살게 됩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겸손히 낮아져 우리를 섬기는 목자 왕이십니다. 

우리의 제사장이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참 구주이십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들과 같이 오늘 나신 아기 예수님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엎드려 경배하므로 성탄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