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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년 마가복음 18강 나귀새끼 타고 오시는 왕(마가복음 11:1~25)2024-08-0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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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마가복음18

나귀새끼 타고 오시는 왕

 

말씀 마가복음 11:1~25

요절 마가복음 11:9, 10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고난 주간의 행보중 3일간의 행보를 살펴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행보는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릴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은지 사흘 후 즉 주일에 부활하사 우리의 구주요 참된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호산나 호산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릴 참된 왕으로 임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3일간의 행적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고 말씀의 뜻을 밝히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역사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시작하기기에 앞서 예수님의 일주일의 행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날(종려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둘러보심(1~11)

둘째날(월요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12~19)

셋째날(화요일)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뿌리채 마름(20~25)

넷째날(수요일) 기록이 없음

다섯째날(목요일) 마지막 만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

여섯째날(금요일) 십가가에 못박히심

토요일(안식일) 안식하심

부활주일 부활하심

 

예수님은 지금까지 수차례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매번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마다 걸어서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입성을 하십니다. 1절부터 3절까지를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끌고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건너편 마을로 제자 둘을 보내시면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어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보냄을 받은 제자 둘은 예수님이 지시하신 그대로 말하고 별 어려움 없이 나귀 새끼를 풀어 왔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예수님이 어떻게 가보지도 않은 마을에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아셨을까? 예수님은 천리안을 가지신 분이신가? 또 나귀새끼의 주인이 주가 쓰시겠다고 하니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나귀의 참 주인이시구나 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 되심(Lordship)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귀의 참 주인이시요, 제자들과 모든 인생들의 참 주가 되십니다. 이것을 알려면 주가 쓰시겠다 할 때 드려보아야 합니다. 주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가장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 나의 생명 나의 시간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물질 자녀 집 차도 주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기쁨으로 자유함으로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숙해지려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예수님의 주되심을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깊이 깨닫고 영접하는 은혜가 우리들에게도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새벽기도 때 제가 이 말씀을 섬겼습니다. 그 때 양식 말씀의 본문 중에 주가 쓰시겠다가 있었습니다. 저는 주가 쓰시겠다 할 때 드리겠다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며칠이 못되어 주일 예배 사회자가 사정이 생겨 못하게 되었는데 제가 대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양식 말씀이 생각나서 그렇게 해보겠다고 해서 섬긴 후로 어느덧 고정 사회자가 되었네요. 물론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감당하니 제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함이 충만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음으로 로드십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제자 둘은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와서 자기들의 자기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았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길에 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2:13). 왕이나 개선 장군이 입성할 때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흔들며 환영했습니다. 종려나무는 기쁨과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그들에게 임한 왕으로 영접하고 존경과 환영의 표시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맞이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왕들은 멋진 말을 타고 수많은 호위병들과 칼을 찬 병사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가랴 99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이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공의로우신 왕이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며 겸손하신 왕이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공의로우신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공의로우신 왕이 되십니까?

이사야 11:1~4절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메시야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왕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공의로우신 예수님은 공평한 기준으로 판단하시며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억울하게 차별당하는 일이 없도록 변호해 주십니다. 보라 때가 이르리니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23:5,6).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악인들과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를 완전히 멸하심으로 완전한 공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구원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왕이 되셨습니까?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후 금요일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죄의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심으로 죄와 사망아래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신 참 구원의 왕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저주나 정죄함이 없고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지 못합니다. 유일한 그 이름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왕이 되십니다. 아직 구원의 주로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자가 있다면, 이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함으로 예수님을 구원의 왕으로 모시는 자의 참된 기쁨과 자유함과 감격과 감사와 그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겸손의 왕이 되십니까?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에서처럼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에 순종하여 볼품없이 보이는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래서 겸손과 사랑과 평화로 다스려 주시는 왕이 되십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나오는 사람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섬겨 주십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인 죄인들을 길이 참아 주십니다. 눈물과 겸손으로 섬겨 주십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왕 예수님을 우리 심령에 새롭게 모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 10절을 보십시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 하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 한 것은 예수님을 다윗과 같이 위대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실 분으로 믿은 것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들의 민족주의적인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앞서 가며, 뒤따르며 대대적인 환영 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며 그들의 환호를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무리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시며 입성하신 것은 예수님이 모든 인생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왕이심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 뿐 아니라 말 못하는 돌들의 찬양과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를 받으시기에도 합당한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이 예수님께 온 마음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립시다.

 

11절로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제일 먼저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의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베다니로 물러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베다니에서 나오실 때에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런데 잎만 무성하고 아무 열매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인 무화과 열매를 추수하는 시기는 6-7월경입니다. 그 때 무화과나무에는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나 이른 봄철인 3-4월에도 열매를 맺기도 하고, 때에 늦은 때인 9-10월에도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사귀가 나면서 열매가 맺힙니다. 따라서 아직 열매를 딸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열매는 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는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무화과나무는 병든 무화과나무이거나 아무 쓸모가 없는 나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무화과 나무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나귀 새끼까지 타시고 입성하시는 모습과 대조되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귀타고 입성하신 후 제일 먼저 어디를 방문하셨습니까?

 

15절로 1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예수님은 일행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보시고 몹시 분노하셨습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용납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또 성전을 지름길처럼 다니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분노하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성전은 마땅히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NIV 에는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되어있고, 다른 번역본에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에서는 언제든지 만민을 위한 기도 소리가 가득 울려 퍼져야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아뢰는 장소가 되어야 되었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같은 특정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장소로 변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 모양은 휘황찬란하였지만 진실된 기도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제사장들의 물질주의와 세속주의,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들, 불결한 짐승들로 인한 악취로 가득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바치는 비둘기까지도 폭리를 취해 파는 탐욕과 물질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성전은 멀리서 온 순례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강도들의 굴혈이 되어버렸습니다.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신 예수님의 책망은 당시 교권을 잡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공격과 같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예수님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적대감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죽이기로 결심을 하고 그 방법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할 수 없었던 것은 무리들이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서운 분노로 성전을 정화하신 후 날이 저물어 성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예수님과 제자들이 어제 저녁 성밖에 있는 베다니에서 머문 후에 이른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 있지? 무심코 지나치려하던 그 순간,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놀라며 말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그 무화과 나무를 보는 순간 베드로는 바로 어제 아침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어제만 해도 싱싱하였고 잎이 무성하였습니다. 참으로 화려하고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있을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그 무화과 나무는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이것은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은 텅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였습니다.

 

또한 외적인 신앙 고백은 화려하지만 내적으로는 열매가 없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향하신 엄숙한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제 아침 예수님께서 이렇게 저주하실 때만 해도 설마 하였습니다. 설마하니 이렇게 푸르고 무성한 나무가 메말라버릴까? 때가 이르면 맛있는 열매를 많이 맺어 사람들이 따먹을 수 있게 되겠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저주하신지 하루 만에 그 무화과 나무는 뿌리로부터 말라 있었습니다. !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새삼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놀라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2절로 2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더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Have Faith in GOD”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히 살아계셔서 천지 만물을 당신의 선하신 뜻과 섭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 중 특별히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범죄하자, 구원자를 보내시기로 언약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인류를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나귀 새끼 타고 오신 예수님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며칠 후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으사,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 양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으로 성전의 주인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후로 참 성전 되신 당신을 통해 새로운 성전 시대가 열릴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산이 옮겨지는 것처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2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용서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십니다.

죄와 사망권세 아래에서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성전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작년 7월 이전 회사에서 퇴사한지 10일 만에 부동산을 여러 군데 가지고 계신 80세 회장님과 사모님 큰 따님인 큰대표, 작은 딸인 작은대표 총 네 사람을 모시는 수행기사로 좋은 조건에 재취업하였습니다. 그래서 1년을 근무하게 되면 820만원 가량의 조기재취업 수당을 정부로부터 받을 자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난 지난 4월에 권고사직을 받았습니다. 수행기사 업계에선 급여외에 때때로 수고했다고 하면서 수고비를 주는 것이 관행인데,

새 회장님은 외부 식사 자리에서 제가 보는 앞에서 다른 기사에게는 보란 듯이 황금색 지폐를 주셨지만, 정작 저에게는 수고비를 한 번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수행기사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수고비를 받아보지 못한 분이 처음이었습니다. 또 큰대표는 문자를 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보낸 문자를 50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제가 잠깐 조는 사이 답변을 하셨는 데 제가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가자 화를 참지 못하고 회장님께 보고하여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의 얼굴에서 불만이 표출되었는지 어찌됐든 저는 8개월만에 잘리게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문의해보니 퇴사 후 2주안에 다른 회사에 들어가 두 곳을 합해서 1년을 채우게 되면 조기재취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권고 사직을 받기 1달 전부터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면접도 보았으나,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조건에 맞는 곳에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저를 부르더니 급여는 못 주지만 한 달 정도 서류상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해줄터이니 빨리 새직장을 구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회장님을 모실 새 기사가 채용되어 저는 인수인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만에 경리업무 보는 여직원으로부터 임시로 다른 기사를 구할 때까지 일해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만에 출근하던 날 차안에서 회장님께 협상을 하였습니다. 면접 예정인 곳이 있는 데 면접에 안갈터이니 계속 근무하게 해달라고 하여 엊그제 820만원 가량의 재취업 수당을 받고 십일조를 드렸고 오늘 월급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수고비를 못받더라도 나귀 새끼처럼 있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다가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시면 드림으로 제가 주님의 생명구속 역사에 쓰임받는 청지기로 사용되어 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