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출애굽기 제13강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말씀/ 출애굽기 22:21-23:33 요절/ 출애굽기 23: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잠시 출애굽기의 흐름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셨던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장소로 특정하셨던 그 산입니다. (출3:12) 이곳에 하나님이 친히 강림하셨습니다. 20장을 보면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20장 후반부(20:22)부터 오늘 말씀 끝까지(22:33)가 십계명을 좀 더 자세히 규정한 약 70 여 개의 율법들입니다. 다음 장인 2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겠다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맺기 위해 당초부터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 상세 율법들의 후반부입니다. 우리가 이 율법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배우길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21절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당시 이방 나그네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그네들을 데려다가 종같이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정처 없이 지내는 것도 서러운데 압제를 당하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어떤 목자님은 명절에 부모님을 뵈러 천안에 가는데, 천안, 평택 지역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명절이기 때문에 일은 쉬는 데 갈 데가 없어서 기차역에 많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들을 보면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나그네 심정을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나그네였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의 심정을 잊지 말고 이방 나그네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22절을 보면 하나님은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해롭게 하지 말라는 NIV 에 "take advantage of.."로 ”그들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아주 가난했을 때 고아와 같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껌팔이를 시켰습니다. 돈을 벌게 하여 갈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부나 고아가 부르짖으면 어떻게 됩니까? 23,24절을 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맹렬히 분노하사 보응하신다고 하십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율법 규정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시 재판관이 벌을 내립니다. 해를 끼친 자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는 경우는 하나님이 직접 보응하십니다. 시편 68:5는 말합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고대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종교의 신은 강자의 신입니다. 통치자의 신이요 지배 계급의 신입니다. 노예들의 신, 과부들의 신, 나그네의 신, 고아들의 신은 없습니다. 그런 신은 대접을 받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 이와 같이 약자들을 보호하시는 계명은 참으로 차원이 높은 신적 계시인 것입니다.
22:25절부터 28절은 가난한 자들을 자비롭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었을 때 채권자같이 빨리 갚으라고 독촉을 하면 안 됩니다. 이자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자도 받지 말라면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되봤자 빌려준 돈 그대로 받는 것이고, 독촉도 하지 않아야 되니 못 받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차라리 안 빌려주는 것이 속 편합니다. 그래서 이런 계명은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자를 받지 말라“는 계명을 겉으로는 지킵니다. 동족들에게 돈은 빌려줄 때 이자를 받지 않습니다. 그 대신 빌려줄 때, 이자까지 포함한 금액을 빌려준 것으로 증서를 쓴다고 합니다. 결국 이자를 받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자를 받지 말라는 계명은 실효성이 없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자를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돈을 빌려주지 말고, 순수하게 그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빌려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이 이웃들에 대한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곧 자비와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명의 근본정신입니다.
26,27절입니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여기서 옷은 겉옷을 말하는 데 당시에 겉옷은 재산 목록에 속했습니다. 긴 천으로 되어 몸에 둘둘 말아 걸치거나, 통으로 짜서 머리를 넣는 구멍이 있는 도포 같은 옷이었습니다. 밤에는 그것을 이불 삼아 잠을 잤습니다. 그런 옷이 없으면 밤에 덜덜 떨며 잘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당 잡은 옷은 저녁이 되면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옷을 받고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계명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I am compassionate."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그 계명들이 목적하는 바,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십니다. 계명을 주심은 단순히 그것을 지키고 안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법에 따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법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한 공동체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법이 잘 만들어진다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법이 있습니다. 각 법마다 수많은 법 조항이 있습니다. 민법에 1,118조항, 상법에 1,141조항, 형법에 372조항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헌법이 있고, 행정법이 있고,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찾아보니 금융법, 특허법, 저작권법, 해사법, 정보통신법, 환경법, 부동산등기법, 도로교통법, 건축법, 의료법, 조세법. 군사법, 선거법, 노동법,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끝이 없습니다. 법 조항들을 다 합치면 만 조항도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많은 법들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될 때 그 많은 법들이 목적하는 하는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 (마5:45b) 하나님은 계명의 말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 하나님의 자비를 알고 덧입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문자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자기 의를 삼았습니다. 자비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그런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되도록 섬기셨습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말씀하셨는데 이제부터는 정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3:1입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거짓된 풍설이란 “false reports”로 진실이 아닌 말입니다. 십계명의 9째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에 해당하는 율법입니다. 우리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하여 이웃을 비방하는 죄를 짓기 쉽습니다. “나는 그렇게 들었을 뿐이야” 라며 변명하지만 당사자는 그로 인해 큰 상처를 입습니다. 인류 역사는 칼과 화살보다 사람의 말로 죽임당한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12:36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여기서 무익한 말은 “careless words”로 부주의한 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에 책임을 물으십니다. 근거 없는 말로 이웃을 비방하는 사람은 그 말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23:2절입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다수를 따라"라는 구절이 반복됩니다. 사람들은 다수를 따르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다수가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수를 따라갈 때 편합니다. 왕따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며 부당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수를 따르기보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잘 분별하여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3) 우리가 다수 가운데 있을 때면 항상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가는 일이 옳은 길인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23:3절을 보면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편 23:6절은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3절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옳고 그름을 가릴 때에는 그런 마음에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송사는 공식적인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다투는 일입니다. 그런 판결을 할 때는 가난한 자를 두둔해서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안 됩니다. 6절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금하시는 것입니다. 3절은 일방적으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이고 6절은 일방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불리하게 판결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이유나 감정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23:4,5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 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당시는 농경사회였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나 나귀는 큰 재산입니다. 사무엘상 9장을 보면 기스의 아들 사울이 아버지의 나귀를 찾기 위해 온 땅을 돌아다닙니다. 살리사 땅,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닙니다. 베냐민 지파의 땅에까지 갑니다. 귀중한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리라“고 하십니다.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멜 때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처벌당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그를 이해할 것입니다. 그 소나 나귀를 붙잡아 원수에게 데려가는 것도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도 돌려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으로 끝인 사람이 아닙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정도만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적극적인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신약에만 나오는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도 벌써 원수 사랑의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또한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져 있으면 같이 그 사람을 도와 나귀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원수도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백성은 자기의 미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7,8절입니다.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신다 해도 악한 우리를 결코 거저 의롭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할 수 없으십니다. 나의 죄, 우리의 죄에 대해서 내가 대가를 치르던 그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내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자기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인을 의롭다고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23:10,11절은 안식년에 대한 율법입니다.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안식년도 지키라고 하십니다. 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짓습니다. 일곱째 해에는 땅을 갈지 말고 묵혀두라고 하십니다. 그 해에 그 땅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는 것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도 케어하시고 짐승들까지도 배려하시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땅도 쉬게 하심으로 지력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안식년을 지키라, 곧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를 지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포스코 같은 대규모 시설 투자가 된 공장을 일 년 동안 가동을 중단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국의 모든 공장을 중단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하실 것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 안식년 계명을 지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년을 거의 지키지 않은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로 바벨론에서 70년을 살게 하시고, 이스라엘 땅에 그간에 쉬지 못했던 안식년을 갖게 해주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십계명에서는 안식일의 중요한 의미는 창조 사역을 마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쉬는 것에 강조점을 둡니다. 안식일은 소와 나귀가 쉬고 종들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사는 인생들의 수고를 이해하십니다. 땀이 흘리도록 일을 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을 이해하십니다. 이들이 안식일만이라도 숨을 돌리며 쉬도록 하십니다.
23:14-17절은 이스라엘 3대 절기에 관한 규정입니다.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아빕월 14일, 곧 유월절날에 이어지는 7일간 무교병을 먹는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말은 혼용되어 사용됩니다. 맥추절(麥秋節)은 한자 의미로는 보리를 추수하는 절기라는 말인데, 한자 번역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보리 추수는, 우리나라의 3~4월이고, 밀 추수는 5~6월입니다. 보리는 유월절 직후 안식일 다음 날에 첫 추수를 하는데 (레23:9,10) 이를 초실절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맥추절은 보리가 아니라 밀을 처음 추수하는 날입니다. 유월절 일곱 주 후라고 하여 칠칠절, 또는 오십일 째라고 하여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은 곡식을 저장하는 날로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정리하면 유월절, 무교절이 같은 절기,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이 같은 절기, 수장절, 초막절이 같은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이 세 절기에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십니다. 하나의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블레셋 족속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북왕국 시대에 강성했던 가나안 서쪽 서해안에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나요? 그들은 바벨론 제1차 유다 침공 (BC 605) 이후, 느브갓네살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그들을 세계 각처에 흩어버렸습니다. 현재는 그 민족의 흐름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번성합니다. 이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늘 새롭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는, 민족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설이나 추석 명절에 고향 방문을 합니다. 이런 절기를 지킴으로 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지켜 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림으로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 의식을 새롭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15절을 보면 절기에 하나님께 나아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감사 예물을 갖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필요로 하는 것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바로 백성들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 물질을 드림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명의 마지막 부분인 20-33절까지 보면, 하나님은 디테일한 계명을 더 주시기보다 다시금 하나님 한 분을 절대적으로 믿도록 명하십니다. 20장에서 십계명에 이어 세부 계명을 주실 때 가장 먼저 주신 법이 무엇이었죠? 제단법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명을 계속 많이 주시기 보다 24장의 언약식 이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시는 것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20,21절입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0절에는 하나님이 ‘사자’를 그들 앞서 보내겠다고 하시고, 27절에는 하나님의 ‘위엄’(terror)을, 28절에는 ‘왕벌’을 먼저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이 표현들은 30절에 나오듯이,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가셔서 그들의 길을 준비하시고 그들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약속을 하시면서 반복하여 당부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23:22절입니다.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백성들이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섬기면 어떤 복을 받습니까? 25,26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이 땅에서의 삶도 복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먹을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십니다. 병들지 않게 하시고, 병들어도 고쳐주십니다. 낙태하거나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십니다. 이런 세상에서의 축복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믿는 기복신앙은 잘못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이러한 축복을 주시는 것은 또한 분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이방 신과 언약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 모든 계명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 알고 그 성품을 덧입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명 준수의 본래 수준을 드러내셨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정욕적인 마음을 품는 것 자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이나 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버리고 찍어 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계명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애굽에서 막 나온 노예 백성이 다다를 수 없는 수준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우리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계명을 주신 이유는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과 사랑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신 은혜를 깊이 알고 이에 감사할 때 점점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빚어 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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