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수양회 특강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말씀/마가복음 9:14-29 요절/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경험의 함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보통 경험을 많이 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경험’이 ‘실패’할 확률을 높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를 잘해서 1등한 팀이 다음해에도 1등할 확률이 높을까요? 그럴수도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다음해 성적이 부진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스포츠 만이 아니라 공부, 일등 우리도 일상에서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구글에 물어보니 AI가 다음과 같이 답을 했습니다. [첫째,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신만의 고정관념에 갇히기 쉽고, 둘째, 능숙해진 나머지 변화에 둔감해지며, 셋째, 과거의 성공경험에 집착하여 새로운 시도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경험이 고정관념을 만들어 새로운 변화나 시도를 할 때 장애가 되어 실패가능성을 높힌다는 것이죠. 그러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어떨까요? 오늘 말씀에서 귀신들린 아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돕고자 했던 아버지도 제자들도 아이를 낫게 하지도 귀신을 쫓아 내지도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이 시대 능력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문제 뿐 아니라 사단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예수님은 수제자 그룹인 베드로,요한,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놀랍도록 눈부신 모습으로 변형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장차 겪게 될 십자가 고난을 감당할 힘을 보태었습니다. 이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예수님 일행이 제자들이 있던 곳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큰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고, 서기관들과 고성을 오가며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자들은 순 사기꾼입니다. 율법도 지키도 않으면서 마치 대단한 것처럼 행세하더니 보십시요. 귀신도 못 쫓아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한번더 기회를 주십시요.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나가~ 제발 나가주세요, please! ‘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에 제자들은 쥐 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마침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던 것이죠. ‘아 저기 예수님이다! 일제히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께 향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을 보자 사람들은 더욱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한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있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물음에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 때 무리 중 하나 곧 아이의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 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선상님~ 아들 하나 있는 것이 몹쓸 귀신에 들렸구만요~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데, 귀신이 어디서든지 잡으면 거꾸러지고 막 입에서 거품이 나오고, 이를 부득부득 갈다 온 몸이 파리지는만유~ 용하다는 곳은 다 가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던차에, 선상님께서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구만유~ 그런데 저 제자들이 맡겨만 달라 금방 고쳐주겠다고 큰 소리 빵빵치더니, 고치키는 개뿔! 상태만 더 않좋아졌구만유~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자초지종을 들은 예수님은, ‘아이고 고생 많으십니다. 제가 제자들을 잘못 가르쳤네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답답한 듯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19절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하시며 탄식하십니다. 귀신들린 아이 하나를 고치지 못해 요란법석을 떠는 그 광경이, 한 사람의 불행을 넘어 믿음 없음으로 인한 불행으로 보시며 탄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 세대는 믿음이 없는 세대, 믿음이 완전히 고갈된 불신앙의 세대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 정치, 환경문제 뿐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잠잠하더니 최근에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온 세계가 시끄러웠습니다. 우리 나라는 점점 경제문제가 심각해져 청년들의 취업이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도 문제없는 집이 없습니다. 자녀, 물질 문제등 수 많은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취업, 결혼, 건강, 학업등 시급해야 해결해야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항상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저는 직장문제가 있습니다. 작년에 아는 분을 통해 현재 아워홈이라는 회사에 이직했습니다. 그런데 1년 사이에 대표가 2번이나 바뀌며 혼란스럽더니, 올해는 ‘한화’라는 회사에 인수합병되었습니다. 적어도 대표는 바뀌지 않아서 좋았지만 제가 속한 HMR사업부의 성과가 좋지 않아 구조조정이 언제될지 몰라 불안했습니다. 더욱이 이제 3년 뒤면 나이 앞자리가 5로 바뀌어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이런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저의 믿음 없음이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지난 20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함께하시며 베스트로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제 삶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아이를 예수님게 데려오자, 아이의 상태가 더 심각해 졌습니다. 경련과 괴성, 고통과 거품으로 발작이 진행되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현장에서 사람들은 놀라고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황하지 않으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물으십니다. 이에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러했다고 대답합니다. 그 과정에서 귀신은 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뛰어들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이의 몸은 이곳 저곳에 화상으로 인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귀신은 아이의 귀와 입을 막고,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게 더 심한 고통을 줍니다. 우리가 수양회 같은 역사를 섬길 때 사단의 방해가 더 심해집니다. 그러나 이 때 낙심하고 당황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가 있음을 알고 포기치 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2b~2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아이의 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 중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을 지적하십니다. 이 말은 믿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라는 불신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를 볼 때 아버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낫게 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차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예수님의 제자들 마저도 실망감을 안기자, 안된다는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불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하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는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또는 이런 일은 예수님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정하기도 합니다. 3년전 야심차게 국민대에서 상명대로 섬기는 캠퍼스를 옮겼습니다. 그 때만해도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개강을 앞두고 동역자와 함께 바이블 룸을 청소하며 양들이 차고 넘치리라는 비전을 품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바로 기도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JBF 교사모임에서 알게 된 배봉센터 한 목자님을 통해 마리아라는 자매가 이번에 상명대 입학한다는 것을 알고 동역자에게 자매님을 소개 시켜 주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친구를 데려오면 금방 바이블룸이 꽉 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자매님은 1년 뒤 휴학을 하였습니다. 힘이 빠졌지만 그 자매를 의지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직접 소잉을 통해 양을 얻기로 마음 먹고, 퇴근 후 캠퍼스에 들러 학생들에게 전도용 간식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역자와 합심기도 하며 학생 제자를 세워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간식만 받아가고 성경공부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믿음이 약해지고, 본문의 아버지처럼 무엇을 하실 있거든 하며 반신반의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제 안의 부정적인 마음과 한계적인 생각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때에 상명대 바이블 룸에 양들이 가득할 것을 믿고 기도와 소잉의 오병이어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하며 믿고 싶지만 믿지 못하는 연약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처럼 불완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불완전함,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래서 겸손히 인정하고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할 때 전능하신 손길을 내미시며 도와 주십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예수님은 영적 권위로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그 때 귀신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소리 지르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한 후에야 나갔습니다. 귀신이 나간 아이는 잠시 죽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눈을 뜨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이 때 아버지는 감격과 기쁨으로 더덩실 춤을 추었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이를 다시 온전케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도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예수님께 조용이 질문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전 전도여행때만 해도 분명 귀신들린 사람을 낫게했는데, 왜 지금은 안되는지 궁금했던 것이죠. 그러면 제자들이 귀신을 쫓는데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9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시며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이유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이전에 귀신을 쫓아냈던 경험으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를 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문제 앞에서 기도하기 보다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기 싶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행동이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결과 일이 꼬이거나 그르치는 경험 있지 않으십니까? 이처럼 기도는 영적전쟁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기 17장의 ‘아말렉 전투’ 입니다. 이 전투에서 모세가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아말렉을 무찌르게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전쟁의 승패가 사람이 많고 적음도 아니고 무기가 있고 없고도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아무리 적군이 많고 철병거로 무장되어 있어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을 때 아무리 적군이 적고 무기가 없어도 집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 보다 훨씩 작고 약한 아이성에서는 패하였습니다. 승리의 경험에 도취되어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떻습니까? 간절한 마음,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섬기는 캠퍼스와 JBF 학생들 이전에 제 자녀들을 위해서도 언젠가부터 손을 놓고 영적으로 돕지 않았습니다. 고3이니까, 사춘기니까, 대학교1학년이니까 놀아야지하며 이런 저런 이유와 상황을 핑계로 말씀공부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그렇잖아도 회사일과 팀원들로 골치아픈데 영적인 것으로 애들과 갈등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애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 능력 밖이라는 한계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결국 기도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둘째는 학원이 JBF 예배에 겹친다는 이유로, 첫째는 겨우 예배에 와도 부족한 잠을 보충하였고, 혹여나 아브라함 목자님 ‘광고’가 길어지면 이를 간적도 있습니다. 이번 수양회와 알바 시간이 겹쳐, 알바 시간을 조정해서라도 수양회 참석하자고 했지만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저는 귀신들린 아이를 돕지 못하는 능력한 아버지, 제자들과 다를바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의 자녀들 뿐 아니라 이 시대 청년들의 영적인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우면 도울수록 반발하고 반항하며 어긋나게 합니다. 이런 세대를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답은 ‘기도’입니다. 말 듣지 않는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며 싸울 것이 아닙니다. 30년간 아들의 변화와 구원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모니카’처럼 ‘눈물의 기도’ ‘한 맺힌 과부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캠퍼스 영혼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저도 그 기도의 응답자중 한명입니다. 목자님들의 눈물의 기도와 수고, 섬김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빌어먹을 세상’ 하며 술에 취해 세상과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눈물의 기도로 예수님을 만났고, 변화되어 이렇게 말씀을 전하며 저와 같이 방황하는 영혼을 말씀으로 돕고 섬기는 캠퍼스 목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송드립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네 맞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의무감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자의 심정으로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얼마전 부산에서 여고생 3명이 함께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휴대폰 문자에 ‘현재 힘들다’는 글이 써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가슴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이 시대 많은 청년들이 학업과 취업, 불안한 장래로 고통받고 있고 이를 잊기 위해 게임, 도박, 심지어 마약까지 손을 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이런 청년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돕는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제가 안일과 게으름, 안된다는 패배적인 생각, 형식과 의무감에 젖은 기도의 자세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맡기신 JBF 영혼들과 상명대 캠퍼스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반신반의하며 한계적인 생각에 갇힌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온전한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의지한 제자들에게 “기도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 갈 수 없느니라.”하심으로 겸손하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한계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한 믿음과 기도의 자세를 덧입어 이 시대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능히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름수양회 가운데 말씀과 소감, 모든 프로그램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고, 참석한 모든 분들 심령에 성령의 역사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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