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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1년 민수기 9강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민수기 16,17장 )2021-11-2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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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민수기 9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말씀/ 민수기 16,17

요절/ 민수기 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과거 왕정 역사를 살펴볼 때 여러 왕조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곤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건이 하늘의 뜻을 좇아 세워진 정당한 왕조인지, 또 어떤 사건이 개인의 야심을 좇은 쿠데타인지 구별하는 것입니다.

 

쿠데타(coup d’État)라는 말은 본래 프랑스 말로기존의 정부를 뒤집어 엎는다는 뜻입니다. 한 나라의 모든 시스템은 정부를 머리로 하여 움직이는데 그 정부를 뒤집어 엎는다는 것은 천지개벽과 같은 사건입니다. 군인은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되어있는데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자기보다 상관인 사람을 불법체포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군인에게 총을 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정권에 저항하다가 정보국 요원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고 오랜기간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도 이런 쿠데타 사건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그중 유명한 것이수양대군의 쿠데타입니다. 수양대군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형 문종은 글 읽는 것을 좋아하는 학자 타입의 모범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몹시 약했습니다. 이에 비해 수양은 사냥을 즐기며 강한 내면의 욕망과 야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죽고 난 후 문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약했던 문종은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문종의 아들 단종이 12살의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수양대군은 왕위자리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지 1년이 조금 넘은 1453 10 10일 수양은 단종을 보필하던 김종서와 황보인을 철퇴로 때려 죽였습니다. 또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보냈습니다.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총감독하고 돕던 한명회는 쿠데타에 대비해 미리 살생부를 작성했는데 대신들이 궁에 입궐할 때 살생부에 올랐던 자들은 모조리 죽였습니다.

 

마침내 수양대군은 조선의 제 7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대의명분이 약했고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그가 겉으로는 조선의 더 나은 번영과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왕이 되고 싶은 야심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지 3년 후인 1456년 성삼문과 박팽년은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도착한 것을 기회로 하여 6 1일 연회장에서 왕이 된 수양대군(세조)을 죽이고 다시 단종을 왕으로 복권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김질이라는 사람이 후환이 두려워 이 사실을 누설하고 만 것입니다.

 

세조는 성삼문을 불러 왜 나를 배반하려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성삼문은천하에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내가 이 일을 하려 함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백성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성삼문과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이 잡혀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처형을 당했습니다. 역사는 이 여섯 사람을 일컬어사육신(死六臣)’이라고 부릅니다.

 

그런가하면 수양대권의 왕위찬탈에 저항하여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던 6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이었고 역사는 이 여섯 사람을 일컬어생육신(生六臣 )’이라고 부릅니다.

 

사상가이면서 역사가인 함석헌 선생은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저서에서 조선역사에서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다 수양대군의 저 불의함과 살인에 대해 침묵하였더라면, 수양대군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와 유익을 도모했더라면 하늘은 조선을 버리고 이 민족을 버렸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역사 가운데 수많은 민족들이 고유한 자기 언어와 문화를 지키지 못한 채 다른 나라에 합병되거나 그 정체성을 잃었던 것처럼 우리 민족도 만약 수양대군의 불의에 대해 침묵했더라면 하늘이 이 민족을 버리고 이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사육신을 보고, 또 생육신을 보고 이 민족에게 절개와 기개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는 이 민족을 세계 무대 가운데 살아남게 하였고, 이 민족은 마지막 때에 세계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첫번째 쿠데타 사건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쿠데타의 성격과 그 근본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안에도 쿠데타를 일으키고자 하는 악한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주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주님의 주권과 통치에 순복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6:1-3절을 보십시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본문에서 쿠데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의 이름은고라입니다. 그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고핫 자손의 계열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의 계열이 맡은 직분은 제사장을 도와 언약궤를 운반하는 일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담은 궤입니다. 이 언약궤를 메고 운반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고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라와 모세, 미리암, 아론은 사촌지간입니다. 고라의 아버지의 형이 모세, 마리암, 아론의 아버지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세나 고라나 무슨 조선시대의 왕족이나 일반 사대부 양반가문처럼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모세하고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고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동할 때 언약궤를 어깨에 메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자신과 비교해서 모세와 아론은 너무도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먼저 모세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론은 짐승을 잡아 제사드릴 때 그 제사업무를 총주관하고 감독하는 일을 했습니다.

 

고라가 보기에 솔직히 아론은 좀 부족해 보였습니다.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카리스마가 부족했습니다. 실제로 출애굽 직후 모세가 십계명의 돌판을 받기 위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백성들은 아론에게 금을 가지고 가서 우상으로 섬길 목적으로 이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론은 그들의 요구에 떠밀려 금을 불에 넣어 녹인 후 조각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중에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아론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묻자, 아론은 금을 불에 던졌더니 금송아지가 저절로 나왔다고 말도 안되는 황당한 변명을 했습니다. 요즘 정치인들 중에도 곤경에 처하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대신, 어처구니 없는 뻔한 거짓말로 당장 위기를 모면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정치인을 보면 솔직히 마음으로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정치인을 보면저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나라의 지도자로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생각이 듭니다. 고라도 아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 대제사장으로 받아들이고 모실 수 있는가?’ ‘차라리 내가 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터인데.’

 

고라가 볼 때 모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때 목격했던 그 위대한 열가지 재앙의 경우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모세가 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나일강의 그 푸른 물을 붉은 피로 바꿀 능력이 있습니까? 모세에게 메뚜기를 불러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을 능력이 있습니까? 이집트의 모든 큰 아들을 하루 아침에 시신으로 바꿀 능력이 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출애굽 때 모세는 80세 된 늙고 힘없는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그와 함께 하셨을 때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 이집트의 왕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런 모세를 쓰셔서 그렇게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면, 만약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더 크고 위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고라는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9:6절에서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출애굽기 29:45절에서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볼 중요한 포인트는 3절에서 고라가다 각각(every one of them)’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하셨습니다. 그러데 고라는 이 표현에다 각각이라는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모든 백성이 거룩하다는 표현은 모세도 거룩하지만 고라도 전혀 차이가 없이 똑같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고라의 이 논리는 정말 그럴듯합니다. 알쏭달쏭하고 풀기 어려운 신학적 논쟁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라가 이런 논리를 펼치는 그 마음의 동기입니다. 고라가 이런 알쏭달쏭한 논리를 펼치는 것은 그가 모세와 동등한 권력과 명예와 지위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이 주는 메시지의 핵심이 있습니다. 고라가 볼 때 모세는 이스라엘의 모든 권력과 명예와 지위를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모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이 모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이 잘 되었을 때 그 모든 명예와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광이 모세에게 돌아갔습니다. 고라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부당한 시스템을 깨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을 비난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을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비난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결단코 스스로 자기들을 여호와의 총회 위에 높인 적이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고 그들을 각각 출애굽의 지도자와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라의 비난은 결과적으로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고 쓰신 하나님을 비난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런 무시무시한 비난을 서슴치 않고 한 것은 모세와 아론의 자리에 자기가 앉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하여 이제 정식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첫번째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고라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사실 고라는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으로 섬기고 있음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세우시지 않고 모세를 세우시고, 하나님이 자기를 중요한 인물로 높이지 않으시고 아론을 높이시자 고라는 반역의 깃발을 높이 치켜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 크리스천이란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주신 하나님을 신으로 영접하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중 많은 이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자기 욕심과 욕망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하나님이 자기가 원하는 욕심과 욕망을 채워주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내 인생을 차로 비유한다면 운전수를 하나님에게서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 인생은 이제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옆으로 좀 비켜주세요.’

 

서론에서 언급했던 수양대군은 사람들이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지 않으니까 어린 조카 단종을 가택연금시켰다가 나중에는 죽였습니다. 이런 수양대군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나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가택연금시켜버립니다. ‘하나님, 한적한 곳에 조용히 계시고 절대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자꾸 내 인생에 간섭하려 드시면 그나마 교회 가끔씩 나오는 것도 아예 끊어버리겠다고 하나님을 협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 때 훌륭한 신하들은 임금이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명령을 내려도 그 명령을 순복했습니다. 심지어 죽으라고 하면 죽었습니다. 일제 시대 때 훌륭했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일본 귀신에게 절하라는 일본 정부에 명령에 목숨을 걸고 불복종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신에게도 절할 수 없다며 절개를 지키고 이를 위해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생명을 잃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제 시대 때 같은 신앙의 탄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대신 내 욕망을 섬기라는 유혹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대충 형식적으로 하고 세상의 물질과 권세와 명예를 섬기고 그것을 통해 내 욕망을 충족시키고 섬기라는 그런 무시무시한 유혹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라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깊은 욕망 속에 고라의 음성이 울려퍼집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 욕망을 섬기고 있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내 욕망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현재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학생이면 친구들에게 크리스천으로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거친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시험 도중에 커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직장인이면 직장에서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거나 업무를 대충 하거나 퇴근 후 퇴폐시설에 가거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자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양들을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그 일을 마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이 진심으로 내 욕망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9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고라 무리의 말을 들은 모세는 매우 분노하며 그들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일단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이 쿠데타에 하나님이 주시는 방향을 구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모세는 하나님께서 제사장만 다룰 수 있도록 하신 향로를 그들이 준비하여 가져오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분수에 지나쳤음을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을 대신하여 회막 봉사의 일을 섬기는 것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일이 아님을 지적했습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모세는 고라와 함께 반역한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고라와 같은 레위 지파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은 르우벤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라의 불만은 왜 같은 레위인인데 모세와 아론은 높임을 받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르우벤 지파 출신인 다단과 아비람은 고라와 같은 불만을 가질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불만이 있었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본래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가장 맏아들인 르우벤의 후손으로 장자 지파입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아버지 야곱의 부인 중 하나인 빌하와 성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르우벤 지파는 장자의 직분을 유다 지파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진영 중 해가 뜨는 동쪽, 가장 앞쪽에 자리잡게 되었고 르우벤 지파는 레위 지파와 함께 남쪽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본래 우리 지파가 해가 뜨는 동쪽에 진을 잡아야 하는데 남쪽에 있게 되어 불만이 많았습니다.

 

또한 르우벤 지파의 불만은 혈통상 가장 장자 지파인 우리 지파에서 전체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야곱의 셋째 아들인 레위 지파에서 지도자 모세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그 모세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속히 들어가 거기에서 기업을 얻으면 좋은데 40년간 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좀 마음에 안들어도 일이 잘 풀리고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지도자에 대한 반응이 호의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반면 지도자가 훌륭하다고 열광을 하다가도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여러 안좋은 일이 생기면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내 인생이 꼬불꼬불 꼬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점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 것은 그들의 내면에 죄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내 내면의 숨은 죄문제들이 드러나고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광야의 연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금광석이 타는 불길 속에 불순물이 다 빠지고 정금으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도 광야와 같은 인생의 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단을 받고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넘치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외적인 복보다 내 내면이 거룩해지고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또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오지 않겠다는 다단과 아비람의 반응을 전해들은 모세는 몹시 분노했습니다. 모세는 다시 고라에게 다음날 아침 각자 향로를 들고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들은 고라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각자 향로를 가지고 왔습니다. 향로에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얹은 후 회막 문에 섰습니다. 본래 이들의 행위는 제사장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도 하나님이 지정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향을 피워 드리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고라 무리의 주장을 옳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죽임을 당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이 쿠데타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시는 것이 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20,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나님은 고라 무리만 멸하는 것이 아니라 온 회중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모든 육체의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범죄한 것으로 인해 온 회중에게 진노하지 않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고라 무리와 다른 회장이 서로 떨어져 있도록 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만약 고라 무리의 죽음이 일반 사람과 같으면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을 새 일을 행하셔서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진다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였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세가 예언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고라 무리가 서 있던 땅이 갈라져 그들은 산 채로 땅 속 깊은 어둠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 갔습니다. 또 불이 나와 반역한 250명을 불살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남긴 향로의 불을 다른 곳에 쏟으라 하셨습니다. 또 그 향로는 어쨌든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므로 거룩하게 되었다고 하시고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이 철판이 하나의 기념 표식이 되어 다시는 고라와 같은 반역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싸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반역한 고라 무리에 대한 심판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작당하여 하나님을 꼬드겨 고라 무리를 죽이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꼬드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온 회중을 멸하려 하셨으나 모세와 아론이 간구하여 고라 무리만 죽임을 당한 것이 정확한 사실관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모세와 아론을 비방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반역한 고라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라 무리가 당한 심판을 보고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전염병의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모세의 명령을 받은 아론은 급히 향로를 가지고 백성을 위해 속죄했습니다. 이때 전염병이 멈췄습니다. 이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무려 14,700명이었습니다.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지휘관들에게 지팡이 열 둘을 취하게 하시고 그 지팡이 위에 각 사람의 이름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도록 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다음날이 되었을 때 오직 레위 지파를 대표한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뿌리가 없이 말라버린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열린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택하시고 또 아론의 집안을 택하여 쓰고 계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크리스천이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2세들은 목자 가정에서 2세로 태어난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2세들을 전혀 신앙이 없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신앙이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리 2세들은 신앙이 있는 목자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도 권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통령의 권한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침해되어서도 안됩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자꾸 침해되면 그 나라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주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주권으로 우리 2세들을 목자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2세가 아닌 크리스천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습니까? 내가 믿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이 그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자기의 자녀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마른 막대기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열리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겉보기에는 마른 막대기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른 막대기 같은 내 인생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열립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QT를 하며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묵상할 때 어떻게 됩니까? 메마른 내 심령이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납니다. 우리가 매 주일 이렇게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됩니까? 1주일간 메말랐던 심령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납니다. 마침내 우리 삶 가운데 귀한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도록 택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고라가 있습니다. 때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내 욕망을 섬기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안에 있는 고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