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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사도행전10강 "일어나 잡아먹어라" (사도행전 9:32-11:18)2023-05-22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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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 10

 

일어나 잡아먹어라

 

말씀 / 사도행전 9:32-11:18

요절 / 사도행전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지상 명령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1:18) 예수님은 당신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복음전파 역사를 위해 특별히 지난 9장 전반부에서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영적 무지 가운데 있던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바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까지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유대 변두리인 룻다와 욥바에 복음을 전하십니다. 또한 가이사랴까지 가서 고넬료를 전도하게 하십니다. 본문을 통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내려주신 하나님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우리의 좁은 마음을 넓혀 세계를 품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베드로의 전도사역

9:32절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녔습니다. 이는 스데반의 박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을 심방하고 또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룻다에 이르렀습니다. 룻다는 예루살렘 서북쪽 약 40Km 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곳의 성도들을 심방하러 갔는데, 거기서 애니아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치료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애니아를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찌하든 그를 낫게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믿음으로 그에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그러자 그가 곧 일어났습니다. 애니아가 즉시 일어나는 이 놀라운 이적을 통해 룻다와 인근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36절을 보면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욥바는 룻다에서 서쪽으로 약 17 Km 떨어진 지중해 해안도시였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입니다. 다비다는 아람어이고 헬라어로는 도르가였는데 그 뜻은 "아름답다"입니다. 그 이름과 같이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습니다. 이런 그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얼마 전에 베드로가 룻다에서 애니아를 낫게 한 것을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다비다를 바로 장사하지 않고 그녀의 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누였습니다. 룻다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와서 그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40절입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명하자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가 이와 같은 죽은 자를 살린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예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 (14:12a)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이 기적을 통해 욥바의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43절을 보면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었는데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무두장이는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늘 동물의 시체를 만져야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일에 종사하는 자를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에 백정을 천한 사람으로 여겼던 것보다 더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유대인이요 기독교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가 여러 날 동안 그의 집에서 머물었습니다. 유대적 편견을 뛰어넘은 모습인 것입니다. 이상의 베드로의 사역은 이방 땅과 같은 유대 변방 지역에서 행하여졌습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룻다, 욥바 사역은 새롭게 부르심을 받은 사울에게 이방 선교의 깃발을 넘겨주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한 것입니다. 바둑을 시작하면 처음에 포석을 둡니다. 중반전의 싸움이나 집을 차지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미리 돌을 벌여놓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곳에 포석을 두는지 불분명하지만 진행되면서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완벽한 계획 가운데 때에 따라 쓰실 자를 쓰시며 주도면밀하게 복음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이 세계선교의 주체이십니다. 전능하시고 지혜가 뛰어나신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니 세계선교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이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져 있을 때 그 삶이 복되고 형통합니다.

 

II.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이상에서 베드로는 변방 지역 룻다와 욥바에 가서 이적을 베풀었습니다. 부정하게 여기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정도는 품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그를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10 1절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북쪽으로 약 50 Km 떨어진 곳으로 헤롯대왕(B.C. 37-4)이 로마황제를 위해 건설한 도시입니다. 이곳은 파도가 세서 항구를 건설하기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깊이가 36미터가 넘는 바다를 돌로 메워 거대한 방파제를 만들고 큰 항구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위대한 왕이요,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는 신하임을 과시했습니다. 로마는 그곳에 총독부를 두었습니다. 그곳에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늘날 대대 병력 정도인 약 100명을 지휘하는 중대장급에 속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그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일에 여느 유대인 못지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기도하는 중에 어떤 환상을 보았습니까? 3절입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그는 기도 중에 "고넬료야" 하며 자기를 부르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4,5절입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지만 아직 예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와 그의 온 집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주고자 하셨습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말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욥바로 보냈습니다.

 

고넬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다른 한편으로 베드로에게 나타나십니다. 9절입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는 동안 옥상을 기도처로 삼았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아래층에서는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모락모락 옥상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까? 10절입니다.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니" 그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는지, 음식이 담긴 큰 그릇이 그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릇 안을 보니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12절입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그 속에는 족제비, , 까마귀, 올빼미 같이 징그럽고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뱀, 지네, 지렁이 같이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부정한 짐승을 먹기는커녕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어떤 음성이 들립니까? 13b절입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는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라고 하시는가? 그는 대답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14) 베드로는 하늘에서 들리는 그 음성에 단호히 노!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였습니다. 부정한 짐승을 먹는다는 것은 더 이상 거룩한 백성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15) 무슨 말입니까? 그 짐승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깨끗하게 하신 것이다. 더 이상 부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속되다고 하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를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시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세 번 반복하여 보여주신 것은 베드로가 반드시 순종해야 할 명령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깨우쳐 주고자 하신 바가 무엇이었을까요? 큰 그릇은 온 세상을 가리킵니다. 네 귀는 동서남북을 가리킵니다. 수많은 짐승들은 그런 동물을 먹는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더러운 짐승들을 마구 먹는 부정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한 유대 랍비는 "왜 하나님은 이방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옥에 유황불이 타오르고 있지 않느냐? 그 유황불이 계속 타오르려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 땔감용으로 이방인들을 만들어 놓으셨느니라." 그 정도로 유대인의 이방인에 대한 생각은 배타적이며,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방인들과는 상종하지 않았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지만 그저 막연하게 이해했습니다. 이방인들은 결단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택함 받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 16:15) 그런데 베드로는 여전히 유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구원 받는 것까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온갖 부정한 짐승을 보여주시고 잡아먹으라고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의 하나님이십니다. 만민 구원 역사는 만유의 주로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뜻하신 바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을 목자 나라로 삼으사, 그들을 통해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자기들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우월감에 빠졌습니다. 민족적 프라이드 가운데 이방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이사야 10장에 보면 진노의 막대기와 진노의 몽둥이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강대국 앗수르를 쓰셔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징벌하셨습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였습니다. 마치 나무하는 자에게 도끼와 같고 켜는 자에게 톱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를 높이고 무자비하게 행하였습니다. 이런 앗수르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 10:15)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일어나 잡아 먹어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부정한 짐승과 같은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는 언제든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우리 모습을 잊고 높은 마음을 품거나 눈을 높은 곳에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디 기념교회의 목사였던 Harry Ironside 의 부친은 별세할 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특히 '기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특별히 깨닫고 감사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기는 것과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자입니다. 이런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이런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마음을 넓혀 다른 사람들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일어나 잡아 먹어라" 이 말씀은 세계인의 마음을 품고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이 있으니 하나 정도는 없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가 다 귀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모임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계선교에 힘쓰도록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이런 우리는 세계선교를 위해 우리의 유다이즘, 곧 코리아니즘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별로 민족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게도 매우 강한 코리아니즘이 있습니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여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정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직함과 공의로움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은 아내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기업 경영도 그러할 진대,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복음 외에는 다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한국인의 좋은 점을 다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입니다. 억지로 문화를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억지로 바꿔주는 듯한 마음이 도리어 위선적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단지 복음 외에 것을 주장하는 그런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문화 식민주의적인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겸손한 자세로 선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넓혀 현지인들읃 더 깊이 이해하고 성육신의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사장 나라로 쓰실 것을 믿습니다.

 

III. 이방인에게 성령을 내리신 하나님

17절입니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동일한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하나님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의아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19b,20절입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않으셨습니다. 내가 보낸 두 사람을 따라가 보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불러 들여 함께 유숙하고, 이튿날 함께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가이사랴의 집에 들어가니, 이미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5절입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고넬료가 베드로에 대한 자세는 마치 로마 황제를 대하는 것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고넬료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도 사람이라고 하며 더불어 대화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집에 모인 여러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28,29절입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당시 유대인의 규례에 따르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위법이었지만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왔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고넬료가 베드로를 부른 경위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30-33a)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는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자로 영접하였고,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믿음이 있는 자요 겸손한 자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36-43절에서 복음의 진수 곧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44절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과 같은 일이 이방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11:15) 가이사랴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성령의 임하심은 아주 분명한 표식을 동반하였습니다. 고넬료와 그의 일행은 술에 취한 것 같이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는 처음으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강력으로 역사하사 그들에게 내적 확신을 주시고 거듭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넘기 어려운 이방인 선교의 문을 하나님께서 친히 여신 것입니다. 그 확증으로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바야흐로 가이사랴 성령강림으로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이 확인되었고 세계선교의 물꼬가 트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사건이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사도행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말합니다.

 

베드로는 지혜롭게도 자기 혼자 그 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할례 받은 유대인 신자 여섯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11:12) 그들은 나중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고넬료 방문에 대해 변론할 때 증인이 됩니다. 그 유대인 신자들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민족과 인종에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47,48a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베드로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이 세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해 "일어나 잡아 먹어라"하신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11:1-18절은 베드로의 가이사랴 사역에 대해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는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주의자들은 자초지종을 잘 모르고 베드로를 비난하였습니다.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이에 먼저 베드로는 자기가 본 보자기 환상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와 그 집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자기를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하신 것임을 조근 조근 증언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17절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곧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 이방인을 구분 없이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자 힐난하던 자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잠잠하였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이방인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로써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일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고넬료 성령세례 사건은 기독교가 세계선교 역사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구원 받은 우리가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서로 영접하기 원하십니다. 양들을 섬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강한 스타일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세계선교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세계인으로서의 마음과 성품을 배워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