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름 수양회 특강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누가복음 14:15-24
요절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본문 14:1절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리더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식사하시는 중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청함을 받은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영광스럽고 서열이 가장 높은 좌석을 택함을 보셨습니다. 곧 서로 높은 자리에 앉고자 눈치 작전을 펴고, 은근히 권력 다투는 것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곳에 청함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바리새인, 사두개인 같이 권한 있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백성을 맡은 영적 리더들로서 본인들이 당연히 구원받고 천국 잔치 상좌에 앉을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것은 스스로 영광을 얻는 방법이며 높은 자리에 앉으면 돈과 섬김이 따르기에 너도 나도 높아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잔치에 높아지고 하는 자들에게 상석을 거부하시고 끝자리에 앉도록 권유합니다. 그리고 12~14절에 복된 잔치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복된 잔치는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과 같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14절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의인들이 부활때에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잔치에 있어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던 유대인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그는 신앙 생활을 율법FM대로 하던 자신이야 말로 부활 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여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자신은 얼마나 복 된가
흐뭇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러한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거룩한 행위를 실천한 자신들만 천국잔치에 참여하고 죄인들이나 이방인들은 절대 참여할 수 없다 갈랐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죄인들을 만나면 어이 어이 ~~.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한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어떤 자가 이 큰 잔치에 참석할 수 있고 함께 신령한 복을 누릴 자인지? 그리고
같이 영 떡 먹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강력히 경고하십니다.
마태 복음 22장 2절은
이 큰 잔치를 혼인 잔치라 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은니”. 오늘 이 큰 잔치는 아들을 축하하는 혼인 잔치입니다. 그리고
이 잔치 비유의 결론은 전에 초대 받은 자들이 하나도 잔치를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비유를
듣는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그 시점 천국 잔치에 초대한 그 분이 그들 앞에 서 계시고, 함께 떡을 떼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16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NIV에 A great Banquet 로 표현된 잔치란 무엇일까요? 잔치란 경사가 있을 때, 호텔이나 특별한 장소에 단체 고객이 모여
음식을 즐기면서 함께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잔치의 주인공은 초청받은 하객이 아닌 아들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는 절대 행복을 소유할 수 없는 실존이며, 주인의 영광을 빛나게 하는 곳에 참여할 때 기쁨을 만끼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잔치에는 여러 잔치가 있습니다. 생일 잔치, 회갑/칠순 잔치, 혼인
잔치, 돌잔치, 재롱 잔치 등 있습니다. 잔치 중에 잔치는 혼인식 아니겠습니까? 본문에서 큰 잔치라고 한
것을 볼 때, 주인이 아들의 혼인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계획한 것 같습니다.
전세계 가장 큰 Wedding Hall 은 Jayalalitha Jayaram (India) 입니다. 150,000 하객이
참석 가능한 식장이고 음식 준비만 7억 정도 투입되었습니다. 본
비유의 주인은 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연회장과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잔치국수, 갈비찜, 잡채, 쓰시
등 온갖 종류의 음식을 만들고자 계획했고 포도주도 최상급으로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유력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왕족, 귀족, 부자들 또는 중산층이었고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초청장은 일년 전에 보내졌습니다. 그들은 잔치에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 초청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당연히 참석하야죠.”
이윽고 잔치 날이 임박하자 주인은 올거면 오고 안올라면 마라가 아니라 초청한 사람들에게 다시 종을 보내 정중하게
다시 권유했습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17) 잔치의 모든 것이 준비됐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것은 기쁨과 행복, 사랑과 은혜, 충만한 영광과 모든 먹을 것이 완벽하게 셋팅 됬다는
주인의 자부심입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 프로그램, 음식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주인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연복 Chief 를 초청해 평소에 듣도 못한 진귀한 음식을 만들고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별도 샐러드
코너도 준비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최고의 송이버섯 버거를 맛볼 수 있고,
안드레아 보첼리 노래에 곁들여, 알비노 벨루가 캐비어와 알바 화이트 트러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인은 이제 초청받은 백성들이 다 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청함을 받은 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 같이 잔치를 사양했습니다. 초반에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은 올것처럼 하며 정작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18-20 절을 보십시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그들은
약속한 초청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습니다
그들이 잔치를 거절한 이유를 보면 두 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못 오겠다고 말하는 이유가 긴급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구입한 밭이 좋은 밭인지 나쁜 밭인지 오늘 당장 시험해 보지 않아도 됩니다.
소 다섯 겨리 산 것 들을 내일 시험할 수도 있습니다. 소가 당장 병에 걸려 죽지 않습니다. 또 장가를 든 사람 경우도, 이 잔치에 가서 자고 오는 것도 아니고
밤에 집에 가면 됩니다. 아니면 신부와 같이 잔치에 오면 간단합니다.
이 잔치는 이미 1년 전에 날짜가 정해진 잔치요 그들이 참석하겠다고 한 잔치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잔치가 얼마나 중요한 잔치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왜 내가 다른 사람 잔치에 가서 들러리를 서야해? 그 시간에 내 일이나 봐야지”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잔치를 거절한 이유를 보면, 모두가 새로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밭을 새로 샀고 소를 새로 샀으며 아내를 새로 얻었습니다.
그들은 새것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졌습니다. 새로 얻은 그것들을 기뻐했고 그것들로 인해
만족했습니다. 아무튼 초청받은 모든 사람은 초청한 사람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자신의 일들을 더 중시합니다. 잔치는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고, 잔치를 참여하는게 새로 얻은 것들을
버리거나 방해 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보다도 세상에서 자기 일을 중히 여기고 돈
벌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는 일에 온통 마음이 묶여 있어 잔치는 당연 옵션이 되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청함 받은 자들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을 세상 만민과 구별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천국 잔치를 예비하고 초청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그들에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하시며 천국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하나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 크신 은혜를 값어치 없게 여겨 감사치 않고, 도리어 세상에서 많이 소유하고 사업으로 재산을 불리고, 원하는 배우자와
안락한 생활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해도 듣지 않고 다 일치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는 소확행, 즉 작지만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그리고 물질적 안정에서 오는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하나님의 영적 초청은 업신여겼습니다.
일상의 많은 소소한 것들에 우리는 생각 보다 엄청난 집착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인간을 어느 정도는 만족하게 해 주어 현제 상태에 갇히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영적 잔치에 못 가게 만듭니다. 천국 잔치를 준비하고 양들을 초청해 보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거절합니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자격증 따기에 여념 없습니다. 젊은이로서 특권이다 하여 여행과 데이트에 바쁩니다. 또 이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도 많은 시간을 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천국 잔치는 아예 우습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잔치를 거절하는 것은 한 순간 말씀을 못 듣고 연회 저녁을 한끼 못 먹는 정도가
아닙니다. 부득이하게 절친 결혼식 1번 못 참석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 맺기를 거절하는 것이요, 동시에 구원과 영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을 포기하는 것은 영원히 활활 타는 불구덩이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며 본인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영원히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거절할지라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 잔치를 거절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종이
돌아와 보고하자 이를 듣고 집 주인이 노하였습니다. 주인은 홧김에 잔치를 취소하기로 하였습니까? 무례하다고 느끼는 그들에게 그 분노를 쏟아 부었나요? 아닙니다. 그는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주인은 잔치를 연기하지도 않았고 거절한
그들을 다시 초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당초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던 거리와 골목에 있는 자들을
찾아가 초청하고자 했습니다. 종이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가보니 거기에는 빈둥 빈둥거리는 사람들, 담요를 담벼락 밑에 깔고 누워 있는 노숙자들, 가난한 자들, 소경들, 저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 중 여러 사람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고 몸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주인의 잔치를
빛 내줄 대상으로는 적격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을 잔치에 데려간다는 것은 심히 자기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 서둘러서 그들을 모두 그 큰 잔치에 데려왔습니다. 여기서 주인이 말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저는 자” 들은 어떤 자입니까? 이들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유대인들 중에 죄인
취급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비천한 죄인이라고 여겨 찬국 초청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고
감히 주님께도 떳떳하게 나가지 못하던 자입니다.
이들의 훌륭한 점은 큰 잔치에 초청된 것이 은혜임을 이해하고 초청해 주신 것만 해도 지극히 감사한 것입니다. 이들은 다음 장인 15:1을 보면 세리와 죄인들로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기에는 세리와 창기들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이들이 천국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자신이 자격 없음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응답했습니다. 천국 잔치에는
인간적인 자격이 필요 없습니다. 잔치는 스스로 높아진 자들, 마음이
부유하거나 현실에 만족하는 자들은 받지 않습니다. 천국 잔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잔치에 데려오기 위해 모든 사람을 초청하였으나, 진정으로 초청하고자 했던 대상은 “스스로 은혜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대는 정말 불편하고 목마름의 고통이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과 비천함이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꼬투리, 가난한 심령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종이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다 데려왔는데도 남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어떤 명령을 내렸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은 종에게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라고 명했습니다. 여기서 길은 시내 길이 아니라, 시외에
있는 큰 길들을 말합니다. 또 산울타리 가란 영어로 country
lanes 로 산 오솔길을 말합니다. 곧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먼 곳까지 지나다니는
아무 사람들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안면부지의 사람들로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잔치에 초청하는 주인이 누구지 모르는, 그런
잔치가 있다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없던 사람들입니다. 길과 산울 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성경으로 말하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방인들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주인은 길과 산울가에서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오라고 합니까? 다시
한번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하여 데려오라 하십니다. 강권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끈질긴 설득과 환대로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강하게 데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이해 못하는 자들에게 신령한 은혜 맛집을 맛 보이고자 합니다. 한명이라도 더 잔치에 들여오려는
것은 종이 아니라 잔치를 베푸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관심 없다 거부하는 자들까지 일일이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가자고 조르며 붙듭니다. 그러면 주인이 이렇게까지
강권하며 그 잔치를 가득 채우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인간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좋게 보이고 만족시켜 줄 것을 좆아 삽니다. 그러나
주인의 큰 잔치에 진실로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과 구원, 진정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이 준비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예배
된 줄 모르고 살아가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주인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강권하고
강권하여 데려오도록 명합니다.
둘째는,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잔치를 성대하게 차렸는데, 텅비면 분위기가 썰렁하겠죠?.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주고 같이 먹고 마시면 그 주인의 기쁨이요 아들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 14:1,2a) 하나님의 집에는 청약 없이도, 융자 없이도 거할 집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세상 만민이 천국에 입성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썩지 않는 면류관을 쓰고 썩어지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어둠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의의 면류관, 죄사함의 증표를 쓰고 당당히 천축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종신토록 죽음의 고통에서 자유합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목자님 들에게도 저에게도 강권합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는 주님이 주신 선교 명령과도 같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UBF 수양회만이 천국 잔치는 아닙니다. 은혜가 부어지는 곳은 어디나 천국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잔치에
참여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그 기쁨과 평강을 매 순간, 매시간, 매일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기쁨과 사랑이 결여되면 무엇하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초대에 응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죄인에게 일방적 은혜가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늘 잔치는 은혜에 근거한 다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는 영적인 천국 잔치와 같아야 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 천국 잔치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평신도 메신저,
이성진, 김진영, 신레베카, 황제이콥, 김성환 목자님들이 내내 말씀을 곱씹으며 은혜로운 영떡과
붉은 포도주를 준비했습니다. 또 찬양 예배, 소감 발표, 듀엣 드라마 등 여러 다채로운 프로그램 등, 실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준비됬다 하십니다. 종로 2부 여름수양회 잔치에 은혜가
풍성하길 원하십니다. 이제 수양회가 얼마 남지 않아 수양회에 대해 자세히 묻고 답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강권하여서라도 데리고 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천국의 기쁨을 회복하고 그 동안 초청한 캠퍼스 1:1 양이 아니더라도 길과 산울 가에 있는 형님과 동생, 직장 동료라도, 먼 친척이라도 강권하여 자리를 채워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4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하였습니다. “이는 은혜의 세계로 강권하는 사랑” 입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매를 들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진정한 사랑, 강권하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여름 수양회 잔치에 강권하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깊이 이해하고 기쁨이 배가 될 수 있도록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강렬한 목마름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안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불안감 지수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능력은 없으면서 완벽주의가 있어, 왠만한 것에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심심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여 젊음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그것에서 자유롭게 술과 우정을 키워가고
싶었습니다. 대학은 왔지만, 외모와 실력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정욕과 쾌락을 즐기고자 술과 정욕행위에 빠졌습니다. 오히려 인생에 대한 불안감과 목마름은 더욱 심해졌고 내면에 어둠이 드리웠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 복음 5:6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성경 말씀으로 죄인을 천국 잔치로 초청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게 하시고 죄사함의 은혜를 충만케 하셨습니다. 죄사함의
증거로 기도에 응답하시고 일어나 걸어가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죄인의 마지막 자존심이던 Self-rightness 가 깨어지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인도하시는 삶에는 참 기쁨이 있었습니다. 캠퍼스에
올라가 쏘잉하는 것도 즐거웠고, 캠퍼스 학생이 성경 공부를 통해 진리를 이해해 가는 것을 보며 선교
비젼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또한 나에게 가장 맞는 교회인 종로
2부에서 최고의 믿음의 동역자와 Best의 직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 안에서 조금씩 내면의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체험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영혼의 생명의
빛이며 전능하신 천지 창조의 근원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녀들과 직장문제를 통해 끊임없이
겸손을 훈련하십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은혜를 이해하고 느끼는데 가장 중요한 Spiritual Attitude였습니다. 깨달음이 더디고 고집스런
죄인이 겸손의 미덕을 이해하고, 느끼고, 맛보도록 천천히
동행해 주셨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님안에서 실패에도 두려움 없고, 절망가운데 소망을
붙들며, 분노할 상황가운데 온유한자가 되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든
정욕과 세상 쾌락은 저를 더욱 목마름의 고통으로 몰아넣고, 자신을 더욱 가치 없게 느끼게 했습니다. 이 상처는 가족들, 친구들, 동역자들과
멀어지게 했습니다. 나와게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한 미움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자체가 지옥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의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끊임없는 소통, 용서, 겸손과 인내 문제를 겪으며 죄인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팀장 역할을 하는 동안에 소통이 안되고 미움 문제에 자주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죄인이 기쁨을 잃어버리고 직원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는 치열한 직장 생활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재정적인 안정감과 소소한 일상적 만족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죄인이 기쁨이 없는 현실적인
만족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제가 밭을 사 놓고 밭을 경작하느라 잔치에 초청을 수백번
거절하는 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느꼈던 주님과의 강렬한 영적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직장 일과
사람들에 지쳐 소소한 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님은 정유석 형제님을 바람과 같이 종로 2부에 보내주셨습니다.
1학년 때에 말씀 공부를 하면서 성경 공부가 논쟁이 되고, 서로 1도 대화가 통하지 않던 것이 생생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께서는 국민대
정유석 형제님이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셨고, 저 또한 성장하여 이제는 서로 대화가 되고 영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유석형제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남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군대 가는
것이 유석 형제님 에게는 어렵고 힘든 것이었습니다. 유석형제님이 가장 어려워한 것이 전자학 공부였습니다. 그리고 군대 제대 후 첫 학기를 믿음으로 완료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고 전공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믿음 요회 목자님들의 기도와 조언으로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학과 공부에 도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새벽에는
알바 하고 수업을 맨 앞자리에서 들었습니다. 주중에는 말씀을 공부하고,
한주에 한번은 마커스 워십에 참가하여 찬양했습니다. 주일 오전에는 JBF에서 고등학생을 섬기고, 주일은 싱어롱을 섬기며 청년들과 교제하였습니다. 학기를 완료한 것은 유석형제님에게는 엄청난 믿음의 승리입니다. 특히
이번 기말시험에서 코딩 과목 학점을 간절히 기도하고 시험을 감당했을 때 좋은 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죄인이 이런 영적 투쟁을 게을리하며 교만, 정욕, 욕심, 미움, 불신, 용서하지
않는 마음, 쾌락을 즐기는데서 돌아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믿음을 순수하게 하길 원하십니다. 저의 존재가 얼마나
죄의 힘이 나약하고 소망이 없는 존재인지 기억하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만이 생령을 충만케 하시는 영이요(Life giving Spirit) 나의 산 소망 (Living Hope)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그 예수님은 저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님과 천국 잔치의 기쁨을 나누도록 그리고
양들에게 그 진리를 나누어 주도록 강권하십니다. 내 안에 미움과 두려움은 하나님이 진정한 소망됨의 거울입니다. 죄인이 두려움과 미움을 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은혜를 간구합니다. 두려움과
미움이 씻기고 담대하고 사랑이 충만한 목자요 리더로 성장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잔치에 초청하시는 강권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 잔치에 들어갈 자격 없는 자들입니다. 그 앞에
영적으로 여전히 궁핍한 자요, 죄의 세력에 휘둘리는 비천한 자임을 고백하고 겸손히 은혜를 구하길 원합니다. 또한, 세상 잔치에 눈이 가리워 분별하지 못하는 우리가 이 시간
뜨겁고 간절한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양들에 대한 사랑을 부어 주셔서 강권하여
여름 수양회 잔치에 가득 채우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