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사도행전 제 23 강 로마로 가는 길에서 말씀 / 사도행전 27:1-44 요절 / 사도행전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지난 시간에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습니다. 당시 로마법상 로마시민권자는 그런 권리가 있었고 총독은 반드시 이를 수용하여 피의자를 로마로 보내야 되었습니다. 때가 되자 베스도 총독이 바울을 로마로 보냅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배의 항해가 순조롭지 못합니다. 큰 광풍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바울에게 로마선교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해 주십니다. 또한 바울을 영적 리더로 세우시고 같이 승선한 276명의 승객을 구원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는 가운데 바울을 사용하신 하나님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27장 1,2절입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 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바울은 로마로 가기 위해 가아사랴에서 일단 아드라뭇데노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아드라뭇데노는 소아시아 반도 서쪽, 에베소 위에 있는 항구입니다. 이 배는 소아시아 항구들을 다니는 일종의 연안선이었습니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 백부장과 로마 군인들, 그리고 바울의 시종 자격으로 본서의 저자인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함께 탔습니다. 이 배는 이튿날 시돈에 도착하여 화물을 내리고 실었습니다. 이런 하역 작업에 수 일이 걸렸는데 그 동안 바울은 시돈에 내려서 그곳에 있는 제자들과 교제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거기서 다시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초의 항해 방향은 구브로 섬 남쪽을 지나 무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강한 남서풍으로 말미암아 구브로와 길리기아 해안 사이로 항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소아시아 남단에 있는 무라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라는 제법 큰 항구였고 애굽에서 로마로 가는 곡물선의 기항지였습니다. 6절을 보면 바울 일행은 무라 항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달리야 로마로 가는 배를 갈아탔습니다. 이 배는 무역선으로 지중해 중심부를 통과해 로마까지 갈 수 있는 배였습니다. 연안의 파도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큰 배였습니다. 그 배에는 이미 승선한 승객들도 200여명이 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탔으니 심리적인 안정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7절입니다.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이 배가 무라를 떠날 때 맞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무라에서 약 220Km떨어진 니도까지 평소에는 사흘이면 올 거리였는데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니도에도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고 그 맞은편에 임시적으로 정박하였습니다. 당초 항해 계획은 니도를 떠나 아가야 반도와 그레데 섬 사이를 통과하여 수라구사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 로마로 가는 최단거리로 루트였습니다. 그런데 강한 북서풍으로 인해 그렇게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항해 방향을 크게 바꿉니다. 그레데 섬을 바람막이로 삼아 남쪽 해안을 끼고 항해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하여 배는 그레데 섬 남쪽 중간에 있는 미항에 도착합니다. 미항은 영어로 'Fair Havens' 아름다운 항구인데, 무역선이 오랫동안 정박하기에는 다소 작고 불편한 항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간의 항해가 늦어져서 이미 금식하는 절기, 곧 대속죄일 절기가 지났습니다. 태양력으로는 이미 10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당시 지중해는 10월에는 항해가 위험하고, 11월 중순 이후에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미 항해가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원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10) 바울은 그간 수차례의 전도여행을 하며 바다에 대한 경험이 많았습니다. 세 차례나 파선을 당하여 죽을 위험을 겪기도 했습니다(고후 11:25). 10월 중순이 넘은 지중해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항에서 겨울을 보낸 후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11절입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항해의 총 지휘권을 갖고 있는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또한 12절을 보니 그 항구 곧 미항이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겨울을 나려면 약 3개월간 지내야 하므로 숙소도 충분하고 보급품 조달도 원활한 큰 항구로 가고자 원했습니다. 북서쪽에 있는 큰 항구 뵈닉스까지는 약 65Km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날씨만 좋으면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 그리고 승객들 대대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뵈닉스까지 가기로 결정합니다. 때마침 남풍도 순하게 불었습니다(13). 돛을 올리기만 하면 뒷바람을 받아 저절로 그곳으로 갈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쉽게 될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뵈닉스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4절입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출항하자마자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레데 섬 중앙에는 약 2,500 M 높이의 '이디' 산이 있는데, 그곳으로부터 강력한 바람이 불고는 하였습니다. 유라굴라라는 말은 북동풍이라는 뜻인데 이 광풍을 만나면 배는 지중해에서 북 아프리카 쪽으로 떠밀려가다가 암초에 부딪혀 파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5절을 보면 배가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없어서 바람에 밀려 쫓겨가기 시작합니다. 배가 미항에서 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갈 때 잠시 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 떨어질 것 같게 된 거룻배(구명정)를 간신히 배 위로 끌어올립니다(16). 또 배가 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습니다. 로프 줄로 그 큰 배의 밑을 둘러 다시 위로 빼서 감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배를 줄로 감았다는 것이 현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무로 된 배이기 때문에 바다 물결에 깨어 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스르디스(모래톱)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닻, anchor)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갔습니다(17). 연장을 물속에 내린 이유는 혹시 배가 모래톱에 걸리면 닻을 이용하여 배를 빼내기 위함이었습니다. 18절입니다.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풍세가 더욱 험해졌습니다. 이튿날에는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렸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 안에 있는 기구들도 그들의 손으로 내버렸습니다(19).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원양항해 무역선이 큰 배라고는 하지만, 대양에 나가면 일엽편주와 같습니다. 열나흘 동안 배는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를 나뭇잎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20절을 보면 하늘의 짙은 구름으로 낮에는 해가, 밤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나침판이 없었습니다. 해와 별이 보이지 않으면 항해가 불가능했습니다.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배는 언제 어디서 암초와 부딪칠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부딪치기만 하면 배는 깨어지고 즉시 침몰합니다. 아무도 살아 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다 사라졌습니다. 과거에 바다에 빠져 죽었던 사람들의 스토리가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선장과 선원들도 항해 전문가로서 모든 것을 다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습니다. 절망과 탄식으로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누가 나섭니까? 21절입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는 자기 의로움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주고, 이제부터라도 자기 말을 따라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아무도 생명에 손상이 없을 것이며 다만 배만 파선될 것이라고 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23,24절입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내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도 실제로는 두려워했습니다. 갈릴리 바다 같은 호수가 아니라, 이 거대한 대양에서의 광풍은 실로 공포스럽습니다. 바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될까 더욱 두려웠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기와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서도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울이 반드시 로마에 가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함께 항해하는 자들도 바울과 함께 다 살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25,26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사람들은 인생을 항해에 비유합니다. 순탄한 인생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광풍이 닥치기도 합니다. 미항을 떠날 때는 순풍을 만나 얼굴에 웃음이 만연하다가도 졸지에 유라굴라를 만나 사색이 되기도 합니다. 폭풍에 정신없이 떠밀려 가기도 하고 파선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한치 앞을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전도서7장 13,14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형통하게 하시다가도 갑자기 곤고함을 허락하십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게 하시고 오직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인생의 풍랑이 몰아칠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큰 바다에서 폭풍을 만날 때 자기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칩니다. 때로 다른 사람들을 붙들고 도움을 구합니다. 두려워합니다.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바로 그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으로 임하여 주십니다. 바울도 광풍을 만난 상황에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네 길을 갈 것이요,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도 내가 너와 함께 구원하리라” 27-29절입니다.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이었습니다. 배는 아드리아 바다에서 폭풍에 밀려 이리저리 쫓겨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자정쯤에 사공들은 배가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알았습니다. 바람의 느낌이 달랐습니다. 육지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납으로 만든 추를 단 줄을 내려 수심을 체크합니다. 재어보니 스무 길(약 36미터)이었습니다. 조금 더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약 27미터)이었습니다. 보통 큰 무역선의 경우 배가 물에 잠긴 부분(draft)이 약 10 미터이므로 조금 더 밀려가다보면 좌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물(배 뒤편)에서 닻(Anchor)을 내렸습니다. 캄캄한 밤에 배가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도록, 앵커를 네 개나 내려 땅에 박았습니다. 보통 하나나 두개만 내려도 충분한 데 폭풍이 워낙 세니 떠밀려가지 않고자 네 개를 내린 것입니다. 거기에 머물러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30절입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사공들이 이물(곧 배 앞부분)에서도 닻을 내리는 체 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 앞부분에서도 닻을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만 내린 닻의 줄들이, 배가 바람을 맞아 회전하면서 서로 꼬여, 나중에는 닻줄을 잘라버려야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공들은 닻을 내리는 체하며 실제는 거룻배(구명정)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월호 선장처럼 위기의 때에 자기들만 살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즉시 간파하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합니다. 31절입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바울이 반드시 로마에 가게 되겠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생명을 다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지난 5월에 소천한 미국의 유명한 Tim Keller 목사는 이 구절을 갖고 하나님의 주권과 신자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로마에 반드시 가게 하시고 자기와 같이 있는 모든 승객들의 생명을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그는 그 약속만 붙들고 뒷짐 지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폭풍 가운데서도 깨어 상황을 파악하였고 사공들이 도망가려는 것을 알고 즉시 차단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자기 측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는 분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지만 사람의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일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고 그러한 긍정적인 확신 가운데 책임성 있게 상황을 분별하고 섬긴 것입니다. 선원들이 없으면 돛은 누가 내리고 키는 누가 조종하겠습니까? 화물을 버려 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을 누가 하겠습니다. 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선원들이 같이 있어주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군인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선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거루(구명선) 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33,34절입니다.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날이 새어 가자 바울은 상황을 파악합니다. 저 멀리 육지가 보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전개될 것인지 예상이 됩니다. 바울은 승객들에게 음식을 먹기를 권합니다. 이제 곧 배를 해안으로 최대한 가까이 대고 사람들은 각자 내려서 헤엄을 치거나 널빤지를 붙들고 육지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체력입니다. 이들은 지난 14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아직 의식은 멀쩡하나 그들의 육체는 전혀 힘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육지가 매우 가까울 때 물에서 내리는 순간 익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엄을 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축적해야 되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지도자였지만 상식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지금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떡을 떼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먹습니다. 이에 다른 사람들도 받아먹기 시작합니다. 먹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 살수 있다는 소망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신뢰하고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한 후, 남은 곡식을 다 바다에 버리게 했습니다. 최대한 배를 가볍게 했습니다(38). 그래서 배가 육지 가까이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39절입니다.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날이 새자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8:1절을 보면 그 섬의 이름은 멜리데(현재의 몰타)였습니다. 그들은 배를 거기에 끌어댈 수 있는지 의논합니다. 바울은 현재 이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실제적인 리더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중요한 문제를 혼자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배를 다루는 전문가들인 선장과 선원들과 같이 의논하였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소위 멜리데 상륙작전이 시작됩니다. 40절을 보면 먼저 배를 고정시켰던 닻을 끊어 바다에 버려 배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합니다. 키를 풀어 늦춥니다. 이는 자동차의 핸들을 풀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돛을 다 펴서 달았습니다. 악셀을 풀로 밟은 자동차처럼 된 것입니다. 이제 배가 뒷바람을 최대한 받게 하여 육지를 향하여 돌진합니다. 그 향하는 지점은 두 물이 합쳐진 곳으로, 유속이 정체되어 헤엄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드디어 돌진하는 배의 앞머리(선수)가 모래와 진흙에 박혔습니다. 충돌 충격과 뒤에서 내려치는 파도에 의해서 고물(선미)은 깨어졌습니다. 42절입니다. 배가 드디어 멈추어 섰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다 내려 헤엄을 쳐서 육지로 나아가야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혹시 죄수들을 놓칠까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43,44입니다. 백부장은 헤엄칠 줄 아는 사람을 먼저 뛰어내리게 하여 육지로 헤엄쳐가도록 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과 배 물건을 의지하여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육지에 상륙하였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고 다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멜리데 상륙작전은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이상의 과정을 볼 때 우리는 위기의 때 진정한 리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하였습니다. 그는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에 기초하여 사람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그는 배가 한 섬에 걸리리라고 예측하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예측대로 배가 육지와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무리들이 다 헤엄쳐 나가야만 할 것을 예측하였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그들에게 먹도록 권했습니다. 바울은 그 후에도 돌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예견하고 깨어 지켜보았습니다. 사공들이 도망치려하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백부장에게 고하여 막았습니다. 또 선장과 상의하여 배를 어디에 어떻게 좌초시킬 것인지 의논했습니다. 최대한 배를 가볍게 하여 물이 흐르지 않는 곳에 배를 들이 박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당시 지휘자인 백부장에게도 방향을 주며, 276명 전원을 섬에 안전하게 내리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위기 속에서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어찌하든 살고자 하는 마음과 두려움에 빠져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위기에 때에 하나님을 믿고 깨어 기도하며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약한 사람을 격려하며 힘을 얻게 했습니다. 공동체 전체를 살려 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믿음 있는 한 사람을 통하여 같은 배를 탄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공동운명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탄 배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목적지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광풍을 만나 요동치고 파선될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광풍에도 불구하고 가려던 땅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십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평소에는 잘 안 나타납니다. 위기에 때에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한 배를 탄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인생길에 큰 광풍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광풍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광풍이 몰아칠 때 더욱 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위기의 때에 믿음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전체를 돌아보기를 기도합니다. 서로 보듬어 주며 격려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성숙케 하여 주시고, 참된 지도자들로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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