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에스라 1강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말씀 / 에스라 1,2장 요절 /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오늘 우리가 읽는 에스라서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칙령의 내용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그 포고를 내린 때가 BC 538 년이었습니다. 이 칙령에 따라 제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인 에스라는 그 칙령이 내려진 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 포고가 있은 지 약 80년 후인 BC 458년에 제 2차로 포로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귀환하게 됩니다. 에스라는 제 1차 포로귀환 때부터 있었던 일(1-6장) 및 그가 예루살렘에 와서 행한 영적 갱신(7-10장)을 기록합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라서입니다. 이 책의 1차 독자는 에스라의 귀환 14년 뒤(BC 444)에 오게 될 제3차 귀환자들과 이미 유다에 와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할 마땅한 방향에 대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또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키워 가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1.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 1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는 현대어로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고레스(키루스2세)는 현재 이란에 있었던 고대 엘람의 작은 공국의 왕자였습니다. 그는 부친이 죽자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바사 제국의 땅들을 통합하였고, 얼마 후에는 바벨론까지 정복하여 대제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때는 고레스가 당시 세계를 통일하고 새 왕조의 역사를 시작한 해였습니다. (BC 538)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 있는 소원과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고레스 왕은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 무엇을 합니까? 2,3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죄 사함을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시대에 광야에서 최초의 성전인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 후 가나안 땅에서 솔로몬을 통해서 최초의 건물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제 1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 그런데 그 성전이 약 50년 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 없어졌습니다. (BC 586) 고레스는 예루살렘에 가서 다시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합니다. 성전 건축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 지난 70년간 수욕을 당했습니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하여 성전건축을 명하신 것은, 그들을 살리시고 새롭게 관계성을 회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노예백성들에게 내리신 성전 건축 명령은 그들과의 언약의 회복이며, 제 2의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그들에게 임한 크신 긍휼이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자 고레스는 포로 백성들은 다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볼 때 정복국가의 왕이 자기 나라의 포로들을 그냥 돌려보낸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바사의 대규모 노동력이었습니다. 값싼 비용으로 국가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왕이 국가의 보물창고를 열어, 과거에 탈취하였던 온갖 보물을 다 내어줍니다. 실로 이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출애굽 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낼 때에는 억지로 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쓰린 마음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출바벨론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마음이 감동된 고레스 왕은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자 이방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하늘의 신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다 귀환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은 마치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시 126:1) 고레스는 자국 백성들에게도 이스라엘을 도우라고 명합니다. 4절입니다.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는 바사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성전건축에 필요한 물질들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바사 주민들은 떠나가는 유대 백성들에게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을 줄 뿐 아니라 또 무엇을 합니까? 6절 하반절을 보면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은금과 타고 갈 짐승들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자발적으로 예물을 주었습니다. 이는 바사 백성들도 마음이 감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감동이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고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베풀고 줍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뜻하기만 하시면 푸틴의 마음도 움직이고 김정은의 마음도 움직이십니다. 우리의 마음도 감동을 시키사 전에 없던 소원과 열정도 주십니다. 오래 전에 제가 종로쎈타의 평신도 목자였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어느 주일에 우리 요회에 한 학사자매님이 나왔습니다. 요회식사 후 대화를 하는데 제가 그날이 주일인 것을 잘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자매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어머, 목자님은 오늘이 주일인 것도 모르세요?" 그 의미는 주일은 교회에 오는 특별한 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아, 그래요. 우리는 매일 쎈타에 오기 때문에 매일 매일이 주일인 것 같아요." 그 당시는 정말 매일 쎈타에 왔습니다. 사모님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거의 매일 일대일을 하고 저녁 모임이 거의 매일 있었습니다. 안 오는 날이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다들 캠퍼스 역사에 대한 소원과 열정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키셨을 때 열심히 선교사로도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감동시키심으로 이루시는 역사임을 보게 됩니다. 신약성경에 (개정판) '감동'이라는 단어가 8번 나옵니다. (마22:43, 막12:36, 눅2:27, 행21:4, 딤후3:16, 벧후1:21, 계1:10, 계4:2) 그 모든 단에 앞에는 "성령의"라는 말이 붙습니다. 이는 감동이라는 것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동은 깨닫는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 깨달음을 주시고 감동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깨닫고 받아 마음에 감동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움직여 기쁨으로 헌신하고 주고 사랑하는 은혜의 역사가 충만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2. 남은 자의 역사 시편 137편은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의 슬픔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시137:1-4) 유다 왕국은 이미 멸망했습니다. (BC 586) 북이스라엘은 남 유다 멸망, 약 140 년 전에 앗수르에 이미 멸망을 당했습니다. (BC 722) 이스라엘의 영광, 다윗의 영광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의 비극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현실에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레스가 칙령을 내린 때가 BC 538 년인데, 1차 포로 (BC 605)때 부터 치면 벌써 약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밑바닥 일을 하면서 조금씩 그 사회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자식도 낳고 손주들도 낳았습니다. 1세대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2,3 세대가 가서는 점점 달라졌습니다. 점점 선진국 바벨론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예루살렘 귀환 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가고 싶었을까요? 포로 1세대는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2세대, 3세대는 이미 바벨론, 바사 사람들이 다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교육을 받았고 그 나라 언어인 아람어를 썼습니다. 선진국 문화 시민들이 되어 갔습니다. 한편 예루살렘은 폐허만 남았습니다.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빈민들이었습니다. 바사를 떠나려면 그동안 닦아놓았던 삶의 기반들, 곧 집과 직장과 사업을 다 버려야 합니다. 도적과 강도들이 출몰하는 광야길 1,500km를 걸어가야 합니다. 노중에 어떤 위험을 당할 지 알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안정을 찾은 사람들이 그 모든 터전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로 큰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단도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1:5)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믿음의 결단을 한 사람들은 아브라함처럼 말씀을 붙들고 삶의 터전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모든 백성이 다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기를 바라셨지만, 이를 마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실제로 돌아온 사람은 2장 64절을 보니 42,360 명이었습니다. 1차 귀환자들이 그렇습니다. 나중에 80년 후에 에스라와 함께 2차로 귀환하는 사람은 총1,755명입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다시 14년 후에 느헤미야와 함께 3차로 귀환하는 사람 수는 알 수 없지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총 귀환한 사람들은 5만 명 내외인 셈입니다. 북이스라엘 멸망 후 수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잡혀가고 남유대 멸망 시에도 거의 다 포로로 잡혀갔기에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약 200 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그 경우 겨우 2-3 %만이 돌아온 것입니다. 돌아온 그들은 포로 1세대들이 아니었습니다. 2세대, 3세대, 4세대였습니다. 손자, 증손자 세대입이다. 이런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이방 땅에서 현지 문화에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3,4세대 후손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난과 고생이 기다리고 있는 그 땅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온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모 세대로부터 영적인 교육을 잘 받아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방 땅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들을 볼 때 모세의 결단이 생각납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히 11:24-26) 돌아온 그들은 그 시대의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들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래서 2장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돌아온 자들은 역사적인 제 2성전 건축역사에 쓰임을 받습니다. 이들이 건축한 제 2성전은 로마에 의해 파괴되기까지 약 600년 동안이나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이때 성전 건축역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3.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이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1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대 멸망에 대해 반복하여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멸망의 길로 가는 유대 백성들로 인해 밤낮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실상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었습니다. 우상숭배로 타락한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간 징계를 받아야 되었습니다. 잔뜩 낀 불순물들이 용광로 훈련을 통해 벗겨져야 되었습니다. 새롭게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요 회복의 코스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예레미야는 유다 왕과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갈대아 왕에게 항복하라. 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징계를 받으라. 바벨론 왕에게 대항하면 죽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한 그는 동족들로부터 바벨론의 스파이,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물 없는 우물 웅덩이에 던져 뚜껑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도 함께 전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을 보면 유대 민족들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나 칠십 년이 끝나면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다. 또 29:10을 보면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하십니다. 영적 훈련을 받고 나서 다시 돌아올 회복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한 그 예언의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실상 하나님은 포로귀환 약 2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고레스는 나의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44:28) 이미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위한 도구로 고레스를 쓰고자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사 45:1) 이처럼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때가 되면 그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역사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최후의 심판장으로 재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들을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반드시 응하게 하시기 때문에, 말씀이 우리 인생의 견고한 기초가 됩니다. (마 7:24)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삶의 유행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좇는 인생은 형통하고 복됩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지혜를 따라 살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지혜롭고 복된 사람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4. 소망의 하나님 예레미야 29:10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어지는 1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에스라서 바로 앞에 위치한 책이 역대하입니다. 역대하 마지막인 36장은 남유대의 멸망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합니다. 즉, 느부갓네살이 쳐 들어와 유다 왕 여호야김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갑니다.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다 가져다가 자기 신당에 둡니다. 여호야긴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유다 왕이 되지만 그도 바벨론으로 잡아갑니다. 느브갓네살은 다시 침공하여 칼로 유다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다 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랑이었던 아름답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불사릅니다. 성벽을 헐어버립니다. 살아남은 자들을 노예로 끌고 갑니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사로잡아 그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뺍니다. 놋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왕하25:7) 이로써 유다 왕국은 종말을 고합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종말입니까? 예레미야는 이러한 유다 멸망으로 인해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끝날 역대하서의 마지막 기록 36장 22,23절이 에스라1장 1-3절과 정확히 같은 말로 끝납니다. 즉, 역대하는 말씀하기를 이스라엘의 역사가 유다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서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사람은 실패하고 죄에 빠져도 하나님은 한번 택한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반복적인 배반 가운데서도 축복과 징계를 번갈아 내리시며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우리 각자에 대한 소망, 우리 모임에 대한 소망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축복과 징계를 번갈아가며 사용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결코 꺼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각자에게 소망이 있고 우리 모임에 대한 소망이 있고, 교회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소망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희망입니다. 택하신 그의 자녀, 그의 백성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소망 가운데 키워 가시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5. 성전 건축역사에 참여한 사람들 2장에는 성전 건축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1,2절에는 11명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2:3-63절에는 이들과 함께 믿음의 결단을 하고 바벨론을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 42,360 명이 그룹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들을 다섯 그룹으로 분류합니다. 자기 계보를 아는 사람들(3-20), 조상의 고향을 아는 사람들(21-35),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35-42),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43-58),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들(59-63)입니다. 68,69절을 보면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터에 도착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렸습니다. 힘 자라는 대로 드렸습니다. "힘 자라는 대로" 드렸다는 것은,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만큼 바쳤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그 하신 말씀을 이루시고자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기쁨과 소원을 갖고 일하게 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 소망의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강렬한 소원과 열정을 갖고 주님의 선한 뜻을 섬기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